• 정든 집과 마을을 빼앗긴 사람들
    [책소개] 『하얀 라일락』(캐럴린 마이어/ 돌베개)
        2013년 03월 09일 12: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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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라일락』은 1920년대 미국 텍사스 주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바탕으로 쓴 역사소설이다. 어느 날, 열두 살 흑인 소녀 ‘로즈 리’는 백인 부잣집에서 식사 시중을 들다가 충격에 휩싸인다. 백인 주민들이 흑인 거주지인 프리덤타운을 없애고 공원을 세우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소식을 접한 프리덤타운 주민들은 터전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지만, KKK단의 백색 테러가 평화롭던 마을을 집어삼킨다. 과연 주민들은 정든 마을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 이야기는 1인칭 화자이자 주인공인 로즈 리의 눈과 입을 통해 전개된다. 천진난만하던 소녀는 철거라는 참극을 계기로 불의하고 불평등한 세상과 부대끼면서 자신이 흑인이고 여성이며 아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살빛이 검어서 차별받고, 여자라서 죽어지내야 하고, 아이라서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현실에 의문을 품고 고민하면서 성장해 간다.

    외할아버지 ‘짐 윌리엄스’는 로즈 리에게 작고 여린 생명들이 저마다 지닌 고운 빛깔로 활짝 피어날 수 있게 온 정성을 다해 돌보고 가꾸는 모습을 몸소 보여 준다. 그런 할아버지에게서 손녀가 보고 배우는 것이 사랑, 곧 모든 이를 감싸 안는 인류애다. 그 상징물이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하얀 라일락’이다.

    하얀라일락

    할아버지가 정원사로 일하는 백인 부잣집 안주인은 자기 피부색처럼 하얗거나 환한 빛깔 꽃들만 좋아하고 파랑이나 노랑 같은 짙은 빛깔 꽃은 질색해서 자기 정원에서는 키우지 못하게 한다. 그런 반면에 할아버지는 자기 살빛과 완전히 다른 하얀 꽃마저 차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집 부엌 옆에 서 있는 하얀 라일락에서 벋은 가지를 가져다가 ‘에덴동산’이라고 이름 붙인 꽃밭에 심고 정성스레 가꾼다.

    결국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한 곳으로 내쫓기고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면서 하얀 라일락을 잘 키우라고 로즈 리에게 당부한다.

    강제 철거: 공권력에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 이야기

    『하얀 라일락』은 강체 철거로 정든 집과 마을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 이야기다. 1920년대 초반 미국 텍사스 주 덴턴 시에 존재했던 작은 흑인 마을 퀘이커타운이 도시공원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철거된 역사적 사실이 청소년소설로 새롭게 태어났다.

    커쿠스 리뷰의 상찬 그대로 『하얀 라일락』은 한 편의 소설이자 다큐멘터리이다. ‘작가의 말’에도 정확하게 밝혀져 있듯이, 퀘이커타운이라는 실재 이름이 소설에서 프리덤타운으로 바뀌고, 등장인물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작가의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꾸며졌지만, 강제 철거에 따른 정황들은 거의 전부 사실이다.

    가구 수와 마을의 주요 시설물 등의 디테일뿐만 아니라, 도시공원 설립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채권 발행안이 발의되고 가결되기까지 일련의 과정들, 백인들이 왜 그토록 작은 흑인 마을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는지 등까지 모두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가는 아득한 시절, 그리고 머나먼 나라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내용이지만 『하얀 라일락』은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다. 백인들이 흑인 주민들의 자부심이 어린 터전을 한낱 슬럼으로 치부하며 밀어내는 이야기는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과거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 기막힌 이야기를 앞에 놓고 용산을, 두리반을, 거슬러 올라가서는 사당동과 상계동과 난곡을, 그리고 작은 기록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을 숱한 마을과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큐클럭스클랜, 즉 KKK단이 주도하는 백색 테러는 우리네 철거 현장에서 흔히 보는 용역 깡패의 폭력과 소름끼치게 흡사하다. 재개발이니 도시 정비 같은 그럴싸한 명목을 붙여서 약자를 몰아내는 논리도 너무나 똑같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내 작은 안락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깨뜨리거나 고통을 외면하지는 않았느냐고. 너무나 뜨거우면서도 아름다운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절망이 아니라 끝끝내 꽃피워야 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며 끝맺는다.

    코끝을 스치는 1920년대 미국 남부의 향기, 생동감 넘치는 흑인민권운동의 현장

    『하얀 라일락』은 여든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백인 여성 작가 캐럴린 마이어의 역작이다. 1993년, 쉰여덟 살이던 작가가 원숙한 필력과 그윽한 시선으로 완성한 이 이야기에는 1920년대 초반 미국 남부의 풍경이 활동사진처럼 생생하게 담겨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끈끈하게 결속하는 흑인 커뮤니티의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로즈 리가 이종사촌 언니 대신 부엌일을 거들면서 목격하는 백인 부유층의 호사스러운 생활상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또 하나. 오랜 세월 흑인민권운동을 이끌어 온 여러 입장들이 어떻게 태동하고 전개되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들도 등장인물들의 열띤 말과 행동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평등을 누리려면 직업교육을 열심히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부커 T. 워싱턴의 온건노선(로즈 리의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어른들), 불의한 땅을 박차고 조상들의 땅 아프리카로 돌아가자고 부르짖은 마커스 가비의 급진노선(로즈 리의 오빠 헨리), 흑인과 백인이 함께 세웠고 언뜻 온건노선과 급진노선을 합리적으로 절충한 듯 보이기도 하는 흑인민권운동 최대 조직 NAACP와 공동 설립자 W. E. B. 듀보이스(프린스 교장 선생님과 수재나 고모, 그리고 어쩌면 작가 자신) 등의 다양한 목소리가 이야기 속에 매우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억압의 시대, 다양한 여성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

    로즈 리의 성장기에는 의외의 인물이 한 명 등장한다. 바로 벨 씨네 말괄량이 외동딸 캐서린 제인이 바로 그다. 캐서린 제인은 로즈 리의 유년기 친구이자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다. 성격과 환경 등 무엇 하나 닮은 구석이 없는 두 소녀의 독특한 우정은 이야기에 생동감과 재미를 가득 불어넣는다.

    이 이야기는 흑인 소녀 로즈 리의 성장기이지만 한편으로는 백인 소녀 캐서린 제인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는 캐서린 제인에게도 결핍은 존재한다.

    20세기 초 보수적인 남부 지방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탓과 덕’을 고루 보는 열혈 소녀 캐서린은 눈앞을 가로막고 선 봉건 가부장제의 벽을 뛰어넘으려고 좌충우돌한다. 제 손으로 머리를 싹둑 자를 만큼 거침없고 낙천적인 캐서린 제인은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속편이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개성과 매력이 넘친다.

    이 밖에도 흑백 혼혈이라는 인종적인 핸디캡을 극복한 듯 보일 뿐 아니라 백인 남성과 파혼한 뒤 불타 버린 학교 재건에 뛰어드는 수재나 고모, 여성 참정권 운동가를 어머니로 두었으며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의 권익을 지지하는 퍼스 선생님, 가부장에 종속된 약한 존재라는 자기 처지를 깨닫지 못한 채 겉치레에 불과한 품위와 교양에 전부를 거는 벨 부인과 딜런 원예 부녀회 회원들, 가정을 돌보랴 백인 집에서 품을 팔랴 하루하루 고달픈 틸리 이모를 비롯한 흑인 부인들 등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이 또 다른 생각거리를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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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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