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이코의 유서: 자살은 오답입니까?
    [서평] 『싸이코가 뜬다』(권리/ 한겨레출판)
        2013년 03월 09일 12: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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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이코’라는 거친 느낌의 단어를 제목에 떡하니 붙여놓은 권 리의 장편소설 <싸이코가 뜬다>를 마주하고 왠지 모르게 불편해졌다. 쌍시옷 된소리 발음 때문인지, ‘싸이코’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인지, 붉은색과 검은색 펜으로 마구 긁어놓은 것처럼 디자인되어있는 표지 때문이었는지.

    어쨌든 나는 불편한 느낌을 주는 책이나 영화를 좋아한다. 책 뒷면에는 마치 “자살폭탄테러” 같다는 평이 쓰여 있었다. 그래서 집어 들었다.

    플롯이 그리 복잡한 소설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자살을 계획 중인 여대생 ‘오난이’(이하 난짱)는 일본의 어느 대학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방문한다. 그러다 우연히 학생회관에 있는 ‘퀴즈 연구회’ 동아리 방에 들르게 된다. 퀴즈에 몰두해 있는 대학생들을 보고 흥미를 느낀 난짱은 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싸이코

    그 와중에 난짱은 기숙사에서 ‘사이코’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사이코는 이때부터 난짱의 공상 속 동행자로 등장하게 된다.

    사이코와 난짱은 야광도시를 누비며, 사이코의 옛 애인이자 퀴즈학의 창시자인 모리 메멘토의 행방을 살핀다. 이 둘의 동행은 난짱의 공상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가상인지 현실인지도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왜 이야기의 중간 중간에 난짱의 공상이 삽입되어 있는지 소설은 친절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정확히 ‘이해’가 되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어처구니없는 위트와 될 대로 돼라지 싶은 태도로 일관하는 글이 흥미로웠다.

    주인공의 이름인 ‘오난이’는 일본에서 생활하기에는 무척 불편한 이름이다.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하거나, 얼굴을 붉히거나, 다소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헛기침을 한다. 일본어로 ‘오나니(オナニ)’는 ‘마스터베이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퀴즈 연구회 친구들은 머쓱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을 친절하게도 ‘난짱’이라고 불러준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개그 코드 때문인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소쉬르, 보드리야르, 까뮈와 같은 고상한 이름들과 이를 인용하는 말들 역시도 왠지 우스운 궤변인 것처럼 느껴진다.

    검은 별과 흰 별 모양(★☆)으로 표시된 각주는 글쓴이가 만들어낸 단어를 위트 넘치게 설명하느라 바빴다. 글쓴이가 만들어낸 단어가 아니더라도, 별 모양의 각주는 해당 단어의 의미를 마음대로 변용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해주었다. 적지 않은 각주로, 페이지 하단에는 검은 별과 흰 별이 위트를 머금고 반짝였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와 어처구니없는 위트도 흥미로웠지만, 글 전반에서 묻어나는 강한 ‘불만’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난짱과 글쓴이가 같은 사람이고 글쓴이와 난짱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글쓴이는 난짱을 통해 사회에 대한 불만을 열렬히 토로한다. 난짱은 여러 개의 키워드를 이용해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다.

    난짱은 고등학교를 의미하는 ‘고등 수용소’에서의 입시 공부가 얼마나 쓸모없는 짓인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입시 교육 자체가 ‘표준형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제록시안’의 음모라는 것이다. 각주에 따르면 제록시안은 인간복제를 시도하는 종교집단이다. 이들의 음모에 따라 우리 사회는 ‘정상성’을 신봉하고 ‘싸이코’들과 ‘비정상’을 배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교육한다.

    정상성의 궤도에서 약간은 이탈한 난짱 역시도 표준형 인간 교육을 당한 피해자이다. 그녀는 뭐 하나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이 표류하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인식한다. 표준형 인간 교육에 세뇌당한 현실을 직시하기가 어려울 때는 스스로를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고 부르며 오나니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 나는 전자에 해당한다. 국영수는 물론 국사, 국민윤리, 불어, 사회문화, 문학, 물리, 화학, 지리, 생물 등을 단 3년 만에 패스하라는 슈퍼맨 공화국의 지령을 받은 사람답게 잡스럽게 공부했으니까.” (pg. 81)

    난짱은 사회에서 당연하게 통용되는 ‘정답’이 사실은 ‘만들어진 정답’이며, 그렇기에 곧 ‘오답’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우리 사회를 ‘오답사회’라고 부른다. 무려 “모든 것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시몬느 드 보부아르를 패러디하는 식의 위트는 보너스.

    답답한 오답사회 속에서 난짱은 소통할 수 있을만한 다른 싸이코를 찾아 헤맨다. 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속으로 ‘싸이코 지수’를 10점 만점에 n점으로 매기곤 한다. 웬만큼 유별나지 않으면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장을 읽고 나면,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엔 자살을 위한 유서였음을 깨닫게 된다. 난짱은 죽음은 삶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으며, 인생의 끔찍함이 삶의 끔찍함을 넘어섰기에 “그래서 나는 자살을 수용한다”다고,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를 패러디하며 끝마치고 있다. 모두에게 페티시가 있듯이, 자살을 계획하는 일이 내 인생의 페티시였다고 말하는 당혹스러운 농담을 던지는 것 역시도 잊지 않는다.

    글쓴이는 난짱이었고 난짱은 글쓴이였다. 글쓴이는 난짱을 통해 삶의 답답함을 토로했으며, 난짱을 통해 비유적으로 자살했다. 난짱은 자신이 풀어놓은 이야기를 “오답투성이의 유서”라고 말했지만 난짱의 자살은 과연 오답일까 정답일까.

    필자소개
    연세 편집위원 hwangji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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