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와 교사가 함께 자라는 글쓰기
    [책소개]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양철북)
        2013년 03월 09일 1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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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가 30년 만에 처음으로 펴내는 교실 이야기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에 실은 글은 1983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글쓰기회)에서 다달이 펴낸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회보에서 가려 뽑은 교실 일기들이다.

    글쓰기회는 1983년 이오덕 선생님을 중심으로 전국 초중고 선생님들이 모여 만들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기의 삶을 바로 보고 정직하게 글을 쓰면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게 하고, 생각을 깊게 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는 30년 동안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지낸 이야기다. 1부는 교실에서,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낸 이야기고 2부는 아이들과 글쓰기 하면서 서로 마음 나눈 이야기다.

    그동안 글쓰기회는 아이들과 함께 꾸준하게 글쓰기를 한 결과를《엄마의 런닝구》《주먹만 한 내 똥》들로 엮어 내곤 했다. 이 책들은 모두 아이들이 쓴 글을 모은 것이다.《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와《우리 반 일용이》(2013년 1월 출간)처럼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쓴 글을 모은 것은 처음이다. 두 권의 책은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30년 동안 품어 온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가 고스란히 담긴 최초의 글 모음집인 셈이다.

    맨손 학교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에는 교사와 학생이 꾸미지 않고 마음을 나누며 사는 이야기,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쓰면서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이 생기고 비로소 제 삶의 주인으로 서게 되는 아이들 이야기가 가득하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학교는 그저 교과서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아끼고 보살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곳임을 깨닫게 된다. 선생님들의 따뜻하고 솔직한 글에서, 어떤 교육서에서도 찾기 어려운 우리 시대 교사와 교육의 원형을 떠올린다면 지나칠까?

    한편, 4월에는 이오덕 선생님이 시골 분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무너미 고든박골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쓴 40년 동안의 일기를 양철북출판사에서 다섯 권으로 펴낼 계획이다.

    교실에서,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이승희 선생님 반에서는 월요일 아침 난롯가에 둘러앉아 눈을 감고 꽃향기를 맡으며 무슨 꽃일까 상상하면서 하루를 연다. 노미화 선생님 반 아이들은 맨손으로 학교 가면서 작고 예쁜 것들을 들여다본다.

    동무랑 선생님이랑 골목길을 누비며 누구네 할머니가 하는 반찬가게에 어떤 맛있는 걸 파는지 또 동무 집은 어디인지 살펴보기도 하는 게 김숙미 선생님의 그림지도 수업이다. 그 뿐 아니다. 공부하다 더우면 냇가에 가서 물놀이도 하고 빨래도 해 보고, 평상에 누워 구구단을 외우고, 글자 공부는 우리 집 식구 이야기로 그림책 만들면서 배우고….

    이 책에 나오는 교실과 수업은 대부분 이렇다. 뭐 하나 어색할 게 없이 자연스럽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대안학교에서나 가능한 얘기라고 하는 이가 많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모두 공교육 교사들이 아이들과 지지고 볶은 사실 그대로다.

    경쟁과 성공이 미덕인 세상에 왜 어렵고 힘든 일이 없었을까? 당연히 있다. 그렇지만 교사들은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 힘을 믿고 아이들에게 배운다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이것이 거친 세상을 헤쳐 가는 글쓴이들의 소박한 철학이다.

    책에 나오는 교실처럼 살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따뜻해질까, 아이들이 제 모습으로 얼마나 싱싱하게 살아날까, 함께 살아가는 마음, 그런 게 자연스레 길러지지 않을까? 교육 산문집에서 이 정도의 통찰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이오덕 선생님은 살아계실 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세상에서 진리를 찾는 방법으로 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고, 땀 흘려 일하고…, 이보다 더 확실하고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오덕 선생님 말처럼 교육은 진리를 찾는 것이다.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말이다. 누구를 가르치고 누구에게 배워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힘을 모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리는 교과서나 참고서에 있지 않다. 오로지 감각을 열고 몸으로 체험하고 노동할 때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진리는 늘 새롭고 감동적인 무엇이다. 학교는 바로 이러한 진리를 찾는 곳이다.

    딱딱하고 무색무취한 무엇이 아니라 말랑말랑하고 정감이 느껴지는 무엇을 찾는 곳. 이 책 속의 맨손으로 학교에 가는 아이들과 교사들이 보여주는 교실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학교는 그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사는 곳이라는, 그리고 거기서 싱싱한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자라는 글쓰기

    나영이가 시 쓰기 시간에 가슴에 안고 있는 돌덩이를 하나 꺼내 놓았다. 자기를 버리고 간 엄마 얘기다. 선생님이 이 시를 아이들에게 읽어 준다.

    어제 저녁 여섯 시에 / 아름다운 용서를 봤다. / 거기선 엄마가 딸을 찾는다. / 나는 속으로 / ‘버리고 간 애를 왜 이제야 찾노?’ /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난다. / 생각 안 할라고 해도 난다. / 나도 그러니까. / 엄마는 나를 두고 갔다. / 그것도 아기 때 / 엄마 얼굴도 모르는데 / 이학년 때 찾아와서 / 내가 니 엄마다 했다. / 근데 여기 나온 언니는 / 엄마를 용서해 준다. / 나는 왜 용서 못해 줄까? / 속이 좁아서일까? / 엄마라는 단어가 나오면 / 자동적으로 눈물이 흐른다.

    나영이 시를 읽어 내려가는 중간에 벌써 아이들 눈가가 발개지고 읽는 선생님도 목이 멘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을 느낀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선생님은 아이들과 더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동무들 사생활 이야기를 했는데 한 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네.” “뭐가요?” “동무들 상처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동정하는 마음이 생길까 봐.” “아,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요.” “그러면 어째야 되노?” “사람마다 다 상처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아이들은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쓰면서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 같다. 비로소 제 삶의 주인으로 서게 되는 것이다. 또 아이들은 동무가 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배우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엄마 없고 아빠 없고 가난한 게,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싶고. 처지가 비슷하니까 서로 다독거려 주고. 그러면서 아이 마음이 자란다. 더불어 선생님 마음도 자란다.

    책은 교사들이 대부분인 글쓰기회가 30여 년 동안 왜 그렇게 아이들과 스스로의 글쓰기에 매달렸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교실 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진정한 마음으로 제 사는 모습과 아이들을 살피게 됩니다. 내가 왜 이 일을 겪게 되었는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왜 아이 때문에 힘들어 했는지, 상황을 객관으로 보게 되고, 그러면서 잘 몰랐던 아이 마음속까지 비로소 헤아리게 됩니다. 한발 물러서서 자기를 바라보고, 아이들을 찬찬히 살펴볼 줄 아는 힘, 성찰이 여기서 나옵니다.”(구자행) 글쓰기는 재주가 아니다. 글쓰기는 삶 그 자체다.

    멋 부리지 않은 글쓰기, 세밀한 묘사가 주는 공감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는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다. 이오덕의 동무들은 책에서 “어른들 글을 흉내 내어 글재주나 부리는 글쓰기 교육에 맞서, 정직하게 제 삶을 담아내는 살아 있는 글쓰기’라는 이오덕 철학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

    이들은 사람이나 사건을 자세히 관찰해서 쓴다. 마치 옆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듣는 듯하며, 세밀화를 보는 듯하다. 그러니 사람의 속마음과 사건의 본질을 잘 느낄 수 있다.

    또 멋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쓴다. 그러니 글쓴이의 진심이 쉬이 와 닿고 오래 남는다. 오래 전 이야기도 꽤 있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낡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학생이나 교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공감하는 까닭이 이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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