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산 사태를 보며,
    ‘함께’ ‘사는’ 것을 생각하다
    [에정칼럼] 지역주민과 지역노동자가 먼저 만나야 한다
        2013년 03월 05일 0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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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이 삶과 분리된 사회, 지역사회와 분리된 노동

    바쁜 현대인 그것도 세계 최장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의 직장인은 흔히들 ‘내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직장에서의 시간 즉 노동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맞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노동시간은 ‘노동 이후의 내 시간’을 위한 시간이다.

    아주 조금만 더 확장해 보자면, 노동은 노동 이후의 내 ‘진짜’ 삶을 위한 것이고, 결국 노동하는 삶은 내 진짜 삶이 아니다. 정말로 노동을 하는 동안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이 ‘내가 사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직장이 있는 지역사회에서는 어떨까? 지역사회의 현안을 다루는 자리에 노동자가 초대를 받았다면, 열의 아홉은 그 노동자가 지역의 거주민이기 때문이지 그 지역의 노동자로서 초대받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역에서 시민사회단체는 지역주민을 만나고, 노동조합은 노동자만을 만난다. 그렇게 지역사회에서 노동자와 지역 주민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도 서로를 잊은 채 각자 살아간다.

    나라와 지역을 먹여 살리는 반도체와 핵발전?

    그렇게 노동자와 주민(혹은 시민)이 서로 상관없이 살아가는 가운데,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에서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반도체를 만들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거나 병들고 있었다. 그리고 아파도 왜 아픈지 모르던 노동자들이 2007년이 되어서야 노동‧사회운동단체들의 도움으로 투쟁한 지가 올해로 7년째.

    하지만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그 투쟁 역시 기업과 노동자의 산재를 둘러싼 싸움이었지 지역사회의 문제, 내 문제가 아니었다. 경기도 주민들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지역에 삼성 반도체 공장이 들어온다고 하면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뻐하지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지난 해 가을 경북 구미에서 불산 가스의 누출로 5명이 사망하고 주민 2천여 명이 대피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올해 1월,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또 다른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경기도 화성의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바로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산재 투쟁이 처음 시작된 기흥사업장과 맞붙은 곳이다.

    방송화면 캡처

    삼성 불산사고 방송화면 캡쳐

    삼성반도체

    2010년 삼성 백혈병 산재인정 요구 기자회견(사진=환경정의)

    이제야, 그렇게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또 1명의 노동자가 죽은 후에야, 지역주민들은 그곳이 위험한 곳임을 그 위험한 곳이 바로 내가 사는 지역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사실 이보다 먼저 알려진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바로 핵발전소. 후쿠시마 사고의 여파로 2011년 정부는 지난 15년간 4개 핵발전소 주변지역 주민과 발전소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해 온 암 발생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를 ‘요청’에 의해 제출한 바 있다.

    이 ‘원전 종사자 및 주변지역 역학조사 연구’ 보고서는 조사 과정과 결과의 많은 부분을 누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핵발전소 반경 5km 이내에 사는 사람들은 5~30km 거리에 사는 사람보다 더 많은 갑상선 암이, 5~30km에 사는 사람들은 30km 이상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갑상선 암이 발생하였고 특히 여성의 갑상선암 확률이 2.5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삼성 반도체가 그렇듯이 핵발전소 역시 나라 경제를 뒷받침하고 지역을 살린다고 매년 수십 수백억의 예산을 들여 홍보되어 왔고, 이는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후인 지금까지도 똑같이 이어지고 있다.

    자 그럼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삼성 백혈병 투쟁이 시민사회 운동 진영에는 자각을 불러일으켰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는 조용하게 다뤄졌다면, 불산 누출 사고는 특히 사태가 지역주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수많은 대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틈만 나면 유해물질사업장에 대한 실태조사와 감독 강화를 다짐했고, 시민사회 운동 진영도 기업의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 요구와 지역사회의 알 권리 주장 등 기존보다 진일보한 입장을 내놓고 있다. 환영할 일이고 시급히 제도화되어 마땅할 일이다.

    그런데 정부의 감시‧감독 강화는 벌써부터 깨졌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또 불산과 질산 등이 섞인 화학물질이 누출된 것이다. 지역은 경북 구미, 사업장은 LG실트론 바로 반도체 부품 공장이다. 이번에도 공장 측은 누출사고 16시간이 지난 후에 늑장신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미 불산 사태 이후 5개월 만, 삼성 불산 사태 겨우 한 달이 넘었을 뿐이다. 핵발전소는? 지난 2월 24일 월성 핵발전소에서는 계획예방정비 중 냉각수가 누출되고 한수원 관계자 14명, 한전KPS 관계자 16명, 방사선용역회사 직원 24명, 기타 11명 등 총 65명이 방사선에 노출되었다. 이 사고 역시 26일에야 뒤늦게 공개되었다.

    감시‧감독이든 정보공개든 정부와 기업에만 맡겨놓는 한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으로 세계의 실시간 뉴스를 확인할 수 있다는 21세기 한국의 상황은 여전히 이렇다.

    함께 살아갈 지역, 함께 살아갈 사회를 만든다는 것

    그래서 대안은 지역의 주민과 노동자가 만나는 것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구체적으로 참고할 만한 사례도 있다. 미국의 그 유명한 실리콘밸리에서도 1981년 반도체 공장의 지하 저장탱크에서 유출된 유독화학물질이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는데, 이를 계기로 지역 주민과 반도체 업체 노동자, 환경 전문가들이 참여한 ‘실리콘밸리 독성물질방지연합’(SVTC)이 만들어진다.

    SVTC는, 이 단체는 지방자치 조례인 ‘지역사회의 알 권리에 대한 법’과 ‘유해물질 모델 조례’를 통과시켰으며, ‘철저한 감시와 참여를 보장하도록 지역사회나 노동자들과 긴밀히 협조한다’는 내용이 담긴 ‘전자산업의 사회적·환경적 책임에 대한 실리콘 원칙’을 만들기도 했다.

    또 영국노총에서는 작업 현장이 환경 친화적이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고 노동조합 차원의 작업장 녹색화 사업을 벌이고, 고용주와도 녹색문제를 의제화할 수 있도록 안내서를 펴내기도 하였다. 우리 역시 노동자와 지역주민, 시민사회단체들이 개별 기업 수준의 ‘사람과 환경에 안전한 작업장’ 전환 프로그램을 마련해, 정기적인 평가와 지침 마련 및 집행 감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실험들이 한국에서 추진된다면 그야말로 혁혁한 진전일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밀고 나가보자. 예를 들어, 이러한 프로그램이 제도적 뒷받침으로 강한 권한을 부여받아 이러한 조치에 지속적으로 응하지 않거나 태만한, 그래서 심지어 반복되는 사고를 발생시키는 기업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다.

    아무리 다양한 안전 조치를 취하고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반도체를 지금과 같은 재료를 가지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생산하고, 방사선을 방출시키는 핵발전소를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면,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결국은 퇴출시켜야 하는 건 아닐까? 결국 상황이 그 지경에 이른다면, 해당 기업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여기에서야말로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자각이 없다면 대안은 막막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경기도 삼성 반도체 공장의 퇴출’은 그곳 경기도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던 3만 1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살아갈 대안 없이는 실현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몇 년 전 종영한 드라마 ‘시티헌터’에는 바로 삼성 반도체 백혈병을 소재로, 이 사례에 대한 대안을 다룬 적이 있다. 악덕기업주에게 넘겨받은 기업을 노동자들이 직접 경영하도록 한 것이다.

    이 상상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실험은 그러나 이미 현실에도 존재한다. 한국에서도 90년대 기업의 도산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이 기업을 인수하는 형식으로 출발한 노동자생산협동조합들의 경험이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영국의 사례도, 1970년대 루카스 항공의 군수산업을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으로 전환하고자 노동자들이 첨단기술을 통해 독거노인을 위한 난방 조절장치,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쉬운 버스 설계 등의 대안적 생산 계획을 제시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지역 주민들과의 공동 모색, ‘함께 살아가기 위한’ 모색 속에서 발전한다면, 한층 더 현실적인 대안들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기업과 정부의 무반응이나 말뿐인 대책을 요구하는 데에서 이제 한 발 아니 몇 발 더 나아가려면, 우리가 먼저 만나야 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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