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노동자의 나홀로 싸움, 일부 승소
    야근으로 폐 잘라낸 개발자, 강제야근 인정
        2013년 03월 04일 01: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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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7월 국내 굴지의 기업 농협중앙회 자회사인 농협정보시스템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양모씨는 살인적인 야근에 시달리다 2008년 10월 폐결핵과 결핵성 폐농양 진단을 받고 폐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심야시간까지 이어지는 강제 야근과 다음날 아침 9시 정시출근의 반복이 이어지면서 끝내 폐 일부를 잘라내는 고통을 겪은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퇴원 후 복귀한 양씨를 상의도 없이 ‘대기팀’으로 발령냈고, 근로복지공단은 양씨의 산업재해 신청을 거부했다. 양씨가 제출한 야근 기록을 회사가 객관적인 기록이 아니라고 거부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야근 시간을 강제로 할당하면서도 야근 수당을 신청하는 시스템에 월 8~12시간 이상 입력이 되지 않도록 막았는데, 회사는 이 시스템을 근거로 월 8~12시간을 초과하는 야근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새벽 2-3시 퇴근, 휴일 근무 등이 모두 자발적인 야근이었다고 잡아뗐다.

    양씨, 1년간 2,250시간 초과근무
    IT업계 평균도 연간 3,000시간에 달해

    양씨는 몇 년간 홀로 싸웠다. 과로에 의한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우선 과로한 근무시간을 입증하기 위해 ‘연장, 심야, 휴일 근로수당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it노동시간

    IT산업노조와 진보신당의 2010년 노동환경 조사(주간 노동시간)

    양씨가 정리한 바로는 양씨가 2006년 11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2년 동안 정규 시간 외 근무한 시간은 4,525시간이었다.

    민주노총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노조)와 진보신당이 2010년 1,6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실태 조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연간 3,000시간의 초과근무를 한다고 나타났다. 2008년 프랑스 IT노동자들의 1,533시간, 독일 1,433시간의 초과근무보다 두 배이상 높은 수치이다. OECD평균 초과근무 1,768시간에 비해서도 훨씬 더 많이 일하고 있다.

    따라서 누가보아도 비정상적인 수치인 2년간 4,525시간이라는 양씨의 초과 근무 시간은 IT업계에서는 평균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법원, 야근 강제성과 위법성 인정…인정 초과근무시간은 최소한도

    양씨는 2년간 정리했던 야근기록표와 당시 함께 재직중인 직원들을 증인으로 법정에서 다투었다. 회사측은 양씨의 야근시간 근무표의 서명을 위조해 제출했고, 증인들의 법원 출석을 막았다. 그렇게 1심에만 3년이 걸렸다. 출석한 증인만 9명이었다. 그리고 2월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일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절반의 승리였다.

    법원은 양씨가 주장한 연간 4,525시간이라는 초과근무 시간의 약 25%만 인정해 그를 금액으로 환산, 재판일까지 연 5%의 금리를 적용해 양씨에게 갚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특히 법원은 양씨의 주장 대부분을 인정했다. 강제로 할당한 야근 시간을 초과한 부분을 신청할 수 없도록 시스템에 입력할 수 없게 한 점을 인정하고 양씨가 제출한 야근 기록의 일부를 인정했다.

    반면에 자발적 야근이었다, 초과근무 수당은 정액 지급하기로 했다는 회사측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사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운 회사측 증인들의 증언도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소송시효가 끝났다는 주장도 단 이틀에 대한 야근 시간분만 소송시효가 만료됐고 나머지는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법원이 양씨가 제출한 2년간의 야근근무표를 모두 검토하고 회사측의 ‘자발적 야근이었다’는 주장을 기각했음에도, 인정한 야근 시간이 25%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법원이 양쪽 주장이 상이할 경우 더 짧은 시간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양씨, 항소 검토 중…IT 노조 “양씨 사례 상징적 의미, 함께 싸울 것”

    강제적 야근을 인정했다는 면에서 일부 승소이지만, 이를 토대로 산업재해를 신청하기에는 보수적인 판결이었다. 이에 양씨는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현재 변호사랑 논의해 항소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양씨는 “실제로 초과 근무한 시간이 그렇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법원이 강제성과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최소한의 시간만 초과근무로 인정한 것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it노조

    노동조합신고서 반려에 항의하고 있는 IT노조원들. 자료사진 출처 : IT노조

    IT노조 나경훈 위원장도 “재판과정에서 합의 중재했던 내용에 턱 없이 못 미치는 부족한 판결”이라며 “판사가 너무 보신주의적 판결을 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나 위원장은 “양씨의 사례가 IT업계에 전례를 남기는 상징적인 소송이다보니 만약 양씨가 항소하겠다면 소송비 모금운동 등을 진행해 앞으로도 함께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양씨의 재판 결과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개발자는 “남의 일이 아니다. 야근은 IT노동자들에게 일상이다. 심지어 야근비를 연봉에 포함시켜 야근은 의무라는 곳도 많다”고 한국의 IT업계의 현실을 전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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