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의 사과는 역사의 전리품
    [책소개]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김욱/ 개마고원)
        2013년 03월 02일 11: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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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ㆍ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본 분들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2012년 9월 24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

    “제가 관여했던 일은 아니지만 그 일(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이 참여정부의 큰 과오였다고 생각합니다. 호남에 상처를 안겨주고 참여정부의 개혁역량을 크게 떨어뜨렸습니다. 지금도 그 상처가 우리 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2012년 9월 28일,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18대 대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던 지난해 가을. 과거사 논란 속에 4년 반을 이어온 대세론이 기우뚱하며 지지율이 30%대로 곤두박질치자, 박근혜는 ‘사과’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것은 자신을 정치인으로 이끌고 성장시킨 원천이었던 제 아버지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사과였다. 그 고비를 어렵사리 넘긴 그녀는 12월 선거에서 이겼다.

    물론 이 날의 사과가 승리에 얼마나 보탬이 됐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사과가 지지층 가운데 구심력이 가장 약한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야권지지로 돌아서는 것을 막는 데 일정하게 기여했음을 부인하지는 못 할 것이다.

    비슷한 시기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문재인도 광주 방문길에 영호남 개혁세력의 분열을 야기한 2003년의 민주당 분당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참여정부의 2인자가 당시 여당이자 노무현의 정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탄생 자체를 과오로 인정한 것이다. 사과 이후 지지율 반등에 성공한 문재인은 단일후보 자리를 거머쥐었고 본선에서 석패하긴 했지만 90%에 달하는 호남의 지지를 바탕으로 민주개혁세력의 적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선거는 끝났다. 승패를 떠나 후보자들은 저마다의 전리품을 챙긴 듯하다. 그런데 사과를 받고 표를 찍어준 유권자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의 저자 김욱은 박근혜ㆍ문재인의 사과야말로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가 얻어낸 최대 수확이자 역사의 전리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 기록된 정치인들의 사과와 그 사과를 이끌어낸 정치사회적 맥락을 살핌으로써, 보이지 않게 그러나 뚜벅뚜벅 전진해나가는 역사의 힘을 들여다본다.

    정치적 사과를 통해서 본 역사의 진보

    세상에 흔하디 흔한 게 사과다. 더군다나 말 바꾸기가 일상인 정치인의 사과를 믿거나 거기에 의미를 두는 것은 순진한 짓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인의 사과가 그리 하찮은 것이라면 박근혜는 어째서 정치인생 15년 내내 사과를 아끼며 버티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뒤에야 사과했을까? 다른 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왜 금전적 피해보상을 마다해가며 일본 의회의 ‘공식 사과’ 한마디를 듣기 위해 20년간 집회를 이어갈까? 일본의 총리 아베는 어째서 주변국과의 갈등을 무릅쓰면서까지 전임자들이 발표했던 몇 안 되는 유감표명을 뒤집고자 기를 쓸까?

    정치는 역사를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무엇이 정치인들을 사과하게 하는가? 그 사과엔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가? 지난 대선 주요 후보자들의 잇따른 사과 릴레이에서 출발한 저자의 물음은 한국 현대사에 기록된 주요 정치적 사과들에 대한 탐문으로 이어진다. 일본의 사과, 친일파의 사과, 이승만의 사과, 전두환의 사과, 문재인ㆍ박근혜ㆍ이정희의 사과… 저자는 이 가운데 당사자들이 단번에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 숙인 경우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행위로 상처 입은 사람들의 끈질긴 투쟁과 요구가 사과를 강제로 끌어낸 과정을 돌아보며 그로 인해 우리 역사가 재정립되어왔음을 밝혀낸다.

    독자들은 사과를 놓고 벌어지는 역사의 전장을 목격하며 그간 뻔한 소리로 치부해왔던 정치적 사과 너머에 존재하는 거대한 역사의 기운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정치를 사과하게 만드는가?

    때로 막대한 범죄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반성이나 사과를 요구하지 않고 용서를 베푸는 이들이 있다. 언론은 이를 거룩함의 한 표상으로 기록한다. 물론 그것은 보통 인간이 쉽게 다다를 수 있는 어떤 경지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정치적 차원의 사죄와 용서 문제에서만큼은 그 거룩한 정신이 미덕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정치적 사과를 원하는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은 과거사의 잘잘못을 분명히 함으로써, 현재 우리들의 왜곡된 삶을 바로잡고, 미래에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정치적 상호약속에 대한 요구다.

    그러므로 개인이 홀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사죄 없는 용서를 함으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차원에서 과거사의 잘못과 아무 상관없는 정치인이 조직의 대표로 사죄하고 용서받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제주 4ㆍ3 사건에 대해 대통령 노무현이 사과한 것이나,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과거와 무관한 일본 총리가 사죄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심지어는 전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처럼 반나치 활동을 했던 정치인이 나치의 과거 잘못에 대해 사죄하는 경우도 있다. (37쪽)

    이 책에 등장하는 김대중과 김근태의 사례는 정치적 사과와 용서 문제가 갖는 무게감을 잘 보여준다. 김대중은 당선 후 전두환ㆍ노태우를 사면함으로써 사죄 없는 용서와 화해를 실천했다. 개인 차원에서 김대중이 보인 도량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출소 이후 아무런 반성 없이 국가원로로 행세하며 만수무강하는 학살자를 눈뜨고 봐야 하는 ‘80년 광주’ 피해자들의 한은 어쩔 것인가?

    결국 정치지도자로서 그의 처신은 역사적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야 할 직분을 저버린 것이었다.

    반면 김근태는 고문 가해자 이근안을 쉽사리 용서하지 못했고 이 문제를 두고 생의 마지막까지 번민을 거듭했다. 그가 옹졸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처럼 고문으로 인생이 파괴되거나 가족을 잃었음에도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한 다른 피해자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김근태는 ‘사죄 없는 용서 이데올로기’의 해악을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에 저항했다.

    그렇다면 왜 사과를 할까? 우선 현실적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선거의 당락이든 외교상 실리든 정치적 사과엔 이불리에 대한 판단이 녹아 있기 마련이다. 박근혜는 중도표를 위해, 문재인은 호남표를 바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독일과 일본은 주변 공동체에서 인정받기 위해 오랜 역사적 과오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결국 힘의 크기, 권력의 역학이 사과 여부를 결정한단 말일까? 저자는 이 결론에 반만 동의한다.

    현실 권력과 역사 헤게모니를 장악해나가는 싸움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과거의 상처를 잊지 않고 계승하며 현실에 저항할 줄 아는 연대야말로 사과를 끌어내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역사적 정의를 믿는 ‘기억의 힘’이라 명명한다.

    박정희ㆍ전두환 독재가 종지부를 찍고 그들로부터 사과를 받아낸 것은 단순히 교과서에 독재가 나쁘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독재로 고통받은 이들이 끈질기게 저항하며 그 기억을 대물림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미 대통령 클린턴이 자국 내 흑인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까지 날아가 수백 년 전의 노예무역을 사과한 것이나,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 무오류설을 스스로 부정하며 2000년간 가톨릭교회가 저지른 종교적ㆍ정치적 죄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것은 시간의 길이에 관계없이 인간이 기억을 놓지 않는 한 역사의 상처는 반드시 치유된다는 희망을 웅변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기억의 힘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만약 사과가 없다면, 사과가 참회의 표현이 아니라면, 그래서 우리는 현실적으로 정치적 압박에 의해서만 사과를 받아낼 수밖에 없다면 ‘기억의 힘’이라는 것도 결국 ‘힘이 곧 정의다’라는 말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을까?

    다르다. 힘이 곧 정의라면, 이념적으로는 힘에 저항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현실적으로는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의 힘’이란 정의를 믿는 힘이다. 그것은 한낱 당위 주장으로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경험적으로 입증된 힘이다. 분명히 힘에 대한 맹목적 숭배는 경험적 진실이 아니다. (…) 기억의 힘은 현실적 힘이 없을 때조차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투쟁한다. 현실적 힘이 없을 때도 의심 없이 순응하는 것과 의심하며 살아가는 것은 큰 차이다. 힘이 정의가 아니라 언젠가 그 정의가 힘이 되는 것이다. (- 229~230쪽)

    사과를 강제 vs 사과를 부정, 그 끝없는 힘겨루기

    정치적 사과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사과를 받아낸다고 해도 그것은 지난한 힘겨루기의 서막일 뿐이다. 사과를 요구하고 이를 인정하는 사람들 반대편에 늘 그 사과를 부정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핑계는 다양하다. 민족사랑이나 대세를 핑계로 자기합리화를 시도하거나(이광수와 서정주), 공과를 비교형량하자고 주장하거나(식민지 근대화론 또는 박정희의 지지자들), 아예 사과의 원인이 된 행위 자체를 부정하거나(아베 신조), 일단 사과를 하되 이후 계산된 침묵으로 사과 자체를 망각하려 들거나(친노세력), 이데올로기 투쟁을 통해 역사적 복권을 시도(이승만 지지자들)한다.

    정치적 사과를 부정하는 자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사과를 방해하며 나아가 사과로 정립된 역사의 전복을 꿈꾼다. 저자는 이 힘겨루기의 역사를 두 개 장에 걸쳐 소개하며 정치적 사과를 부정하는 자들의 논리와 현실인식을 차례차례 논파해낸다.

    정치적 사태는 아무리 악한 행위라 할지라도, 설령 악마 같은 행위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 행위로부터 이익을 얻은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 이익이 적극적 이익일 수도 있고, 소극적 이익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사력을 다해서 자신을 방어할 뿐이다. 악마라고 해서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리라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 따라서 정치적 사과란 이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데올로기를 포함한 총체적인 힘관계를 끊임없이 재정립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11~12쪽)

    하여,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

    지난 대선은 박근혜의 승리로 끝이 났다. 많은 이들이 ‘멘붕’을 호소하며 역사의 반동을 걱정한다. 역사가, 정의가 패배한 것일까? 아니다. 앞서 말했듯 박근혜는 독재자 아버지를 찬양하며 이긴 것이 아니다. 자신이 승계한 최대 정치적 자산의 정당성을 부정하고서야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 오히려 역사는 박근혜에게 사과를 강제할 수 있는 딱 그만큼 진보했다.

    패배한 문재인은 어떨까. 승자가 제 공약을 흔히 권력으로 뭉개듯 패자의 무력함을 핑계로 얼버무릴 수 있을까? 아니다. 문재인의 사과로 친노에겐 영남패권주의가 불러온 영호남 개혁세력간 이데올로기 단절을 해결할 책임이 지워졌다. 그리고 호남 유권자들은 그 사과를 역사의 전장에서 지켜낼 숙제를 떠안게 됐다. 역시 그 책임과 숙제의 무게만큼 역사는 진보한 것이다.

    이 책은 감수성 충만한 ‘힐링’이나 ‘멘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는 박근혜의 당선이라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유권자의 역사의식 운운하는 대신 선거 국면이 사과를 강제함으로써 독재자의 딸이 쥐고 있던 역사 전쟁의 칼자루가 국민 손에 왔음을 일깨운다. 정치적 승리를 위해 역사의 칼자루를 포기한 셈이다. 그 대가로 박근혜는 5년 기한의 권력을 얻었다. 정치적 사과를 둘러싼 역사가 말해주듯 그녀는 끊임없이 사과 번복과 역사 전복을 시도할 것이다. 이 싸움은 어떻게 전개될까? 저자의 전망은 이렇다.

    정의로운 개인은 지칠 수 있지만 역사는 지치지 않는다. 부정의한 정치가 승리할 수는 있지만 역사를 이길 수는 없다. 역사의 주인인 민중들은 결코 지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는 듯 모르는 듯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낼 뿐이지만 지치지 않고 옛이야기를 기억한다.

    그리고 기억을 잃은 정치로부터 기어이 왜곡된 과거에 대한 사과를 받아낸다. 더욱 두려운 것은 그 지치지 않는 역사가 영원히 계속된다는 점이다. 그 영원한 역사가 태초까지 거슬러간 옛이야기를 꺼내며 정의를 묻는다. 그러므로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 나는 그런 역사의 힘을 믿는다. (- 245~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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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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