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전의 상처, 국민들의 희망
        2013년 02월 27일 03: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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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룽족 마을 청년들

    구룽족 마을 청년들

    남키마을

    남키마을

    타망족 공연

    타망족 공연

    며칠 전 네팔에서 ‘번다(Strike)’ 가 있었다. 마오주의 정당의 분파 중 어느 한 파가 주도한 파업이었다.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았고 거리에 다닐 수 있는 차는 오로지 구급차와 관광객을 위한 초록색 간판의 차와 UN기구의 파란색 간판 차량이다. 간혹 시위대를 피해 영업을 하는 사이클 릭샤도 빨간 마오 깃발을 든 몇 명의 시위대에 막혀 걸어야 한다.

    아직 헌법은 합의하지 못한 채 6월 초 총리 선출 선거를 하기로 하고 대법원장 Khil Raj Regmi를 과도정부의 수반으로 결정했다. 96년부터 10년간 있었던 내전의 상처는 안팎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10년동안 관광산업은 멈췄고 많은 이들이 내전을 피해 해외 이주노동을 떠나기도 했다. 네팔 국가수입의 1위가 해외 이주노동이고 2위가 관광산업인 만큼 내전은 많은 것들에 영향을 미쳤다.

    용병으로 유명하고 24개나 되는 독립 왕국들이 제각각 영향력을 행사하는 네팔왕국을 1769년 하나로 통합한 쁘리트위 나라얀(Pruthvi Narayan) 샤의 탄생지이기도 한 고르카 지역으로 홈스테이 프로그램 답사를 다녀왔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고르카 중심시내로 4시간, 다시 비포장도로를 4시간 달려 ‘타망(Tamang)’ 족이 주로 거주하는 남키(Namki)마을과 남키마을 주변으로 산속으로 걸어서만 다녀올 수 있는 ’구룽(Gurung)‘족이 거주하는 마털(Matthar)마을을 거쳐 ’바훈체트리족‘이 거주하는 ’라미단다(Lamidanda)’ 마을을 돌았다.

    티벳불교의 색채와 힌두교문화가 섞인 타망족의 마을에서 보는 주민들의 자부심이 담긴 노래와 춤 공연을 즐거이 감상하고 굽이굽이 난 산길을 다시 걸었다. 2천미터가 넘는 높은 산에 계단식 논을 만들고 살아가는 소수민족 마을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이어 도착한 마을은 구룽족의 마을이다. 마을 청년모임에서 마중을 나와 청년들이 여기 저기 마을을 소개해준다. 마을 구경을 한 후 장작불에 저녁밥이 될 때까지 이 마을에서 TV가 있는 집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힌두교 3대 신 중 하나인 ‘시바’ 신에 대한 드라마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장작불 앞에 모여 밥을 먹고 피곤한 몸을 누이려는데 마을 청년들이 분주하다. 밤 10시가 다되어 어두컴컴한 산길을 2시간 건너가 다른 마을 청년들과 저녁 파티를 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온다는 것이다. 산속의 청년들에게 이런 기회가 얼마나 기대가 될지 생각하니 분주하게 꽃단장 하는 모습이 예뻐 보인다. 다음날 아침 산 중턱에 걸쳐진 모든 마을에서 장작불에 아침밥을 짓느라 모든 산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카트만두로 돌아오기 전 들른 마지막 마을은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기획해주시고 오랫동안 마을공동체 활동을 해온 네팔 단체 CCODER 활동가들의 고향인 ‘바훈체트리족’의 라미단다란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특히 내전 동안 피해가 컸던 마을이라고 하신다. 가는 동안 CCODER가 가꾸어오던 유기농 농장과 훈련센터 건물들이 다 파괴되어 지금은 폐허로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몇몇은 내전 때 집이 불타 마을을 떠나기도 했단다.

    앞으로 6월 초 선거 때까지 많은 ‘번다’가 있을 거라고 한다. 내전의 상처를 지닌 마을들은 새롭게 발전하고 싶어 한다. 지금 네팔은 생활물가는 오르고 헌법은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으며 국민들은 해외로 이주노동을 떠나고 있다. 국민들의 희망을 담은 선거가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필자소개
    구로에서 지역복지활동으로 시작하여 사회적기업 착한여행을 공동창업하였다. 이주민과 아동노동 이슈에 관심이 많고 인권감수성을 키우려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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