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가촉천민 등 하층세력 연합정당,
    '대중사회당'의 성장과 부침
    [현대 인도인민의 역사] 불가촉천민 투쟁은 왜 좌파 진영에서 배제되었는가?(3)
        2013년 02월 26일 08: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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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현대 인도인민의 역사] 연재를 마친다. 현대 인도가 만들어지는 50여년의 역사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룬 연재였다. 연재 글을 보내주신 이광수 교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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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사회당(Bahujan Samaj Party)은 달리뜨 즉 불가촉천민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정당이지만 여타 후진계급, 부족, 무슬림과 같은 소수 종교도들도 함께 아우르는 것을 표방하였다.

    인도공화당과 마찬가지로 암베드까르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뻔잡 출신의 달리뜨 지도자 깐시 람이 1984년 세운 정당이다. 현재 인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웃따르 쁘라데시 정부를 운영하는 여당이다.

    인도공화당이 만들어진지 거의 30년 만에 불가촉천민 정당이 만들어 진 것이고, 달리뜨 표범단의 급진적 운동이 사라진 지 10년 만에 정당이 세워진 것이며, 그 동안의 서부 인도를 기반으로 한 달리뜨 운동이 인도의 가장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우따르쁘라데시, 뻔잡, 마디야 쁘라데시 등 북부 인도에서 세를 결집 시킨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정당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듯 이 대중사회당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깐시 람(Kanshi Ram)이라는 한 정치인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크게 성장했다. 깐시 람은 암베드까르를 존경하고 그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활동하였지만 개종 같은 방법은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뻔잡을 중심으로 사회 운동을 하였지만, 권력을 쟁취하지 못하면 자신들에 대한 핍박과 착취를 바꿀 수 없음을 깨달은 후 정당을 조직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지지자를 넓히기 위해 불가촉천민 외에 지정 부족, 여타 후진계급, 무슬림, 기독교도 같은 소수 종교도들을 규합하였다. 하지만 인도에서 ‘바후잔’ 즉 대중이라는 범주는 결코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없다. 카스트나 종교 등은 하나의 단일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될 수 있지만, 불가촉천민만 해도 그 안에는 너무나 많은 카스트가 있고 그들끼리의 관계가 결코 우호적이지 못해 그들을 하나의 지지 집단으로 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달리뜨 정당의 힘은 전혀 발휘될 수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깐시 람은 1년 동안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의 불가촉천민, 지정 부족, 여타 후진계급, 무슬림, 기독교도 등을 구성하는 각 집단 내지는 정파의 지도자들을 만나 설득하면서 세를 규합해 나갔다.

    그가 주로 역설했던 것은 자신들의 자녀들을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는 사실과 조직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권력을 잡고 그래야 자신들이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불가촉천민 이외의 지지자들이 소외감을 느끼거나 정파로 분리될 것을 미연에 막기 위해 그 사람들에게 항상 더 많은 사회적 혜택을 주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깐시 람은 주로 대부분이 무학자인 지지자를 위해 최대한 쉬운 언어로 연설을 했고, 자전거와 같은 상징을 활용한 퍼포먼스와 대중 집회 같은 것을 잘 조직한 타고난 정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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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사회당의 지도자였던 깐시 람

    상징물을 앞세우고 전국을 돌면서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방법은 지금까지는 주로 힌두 근본주의자들이 세를 과시하고 지지자를 선동하기 위해 사용한 동원의 방식이었는데, 깐시 람에 의해 사회의 최하층이 용기를 얻어 ‘감히’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인구수를 대비하여 지지자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켰으니 전체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자신들이 뭉치면 15%를 차지하는 상층 카스트의 지배를 전복시킬 수 있음을 호소하였다. 그 외 특별히 언급할만한 사회적 경제적 개혁을 위한 이념은 내세우지 않았다. 오로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전략과 전술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태도였던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절대다수의 열렬한 지지 뿐이었다.

    창당을 앞두고 전국에서 자전거를 타고 일제히 출발해 델리에서 집결한 지지자들은 1984년 4월 14일 암베드까르 탄신일을 맞아 대중사회당을 창당하고 바로 총선에 돌입하여 100만 표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5년 뒤 총선에서는 600만 표가 넘는 표를 확보하면서 유효 득표율 2.07%를 기록하면서 하원 의원을 세 명이나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1996년 총선에서는 득표율은 3.64%, 의석은 11석으로 늘어났다.

    깐시 람은 처음에는 지지층 분산을 우려해 선거 연대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회제 아래에서 선거 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처음의 태도를 바꿔 1993년부터 적극적으로 선거 연대를 하기로 했다. 선거 연대의 대상은 여타 후진계급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부상하면서 대중사회당을 크게 위협하는 사회주의당(Samajwadi Party)였다. 연대는 철저한 전술적 차원에서 하는 것일 뿐, 이념 공유 같은 것은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

    여타 후진계급과 연대를 하는 것이 유리하였던 것은 앞에서 말한 바 있던 만달 정책의 시행 때문에 전국적으로 여타 후진계급이 정치적으로 단합하였고, 그로 인해 카스트 정치가 기승을 벌이는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념의 공유 없이 오로지 상황에 따른 선거 연대 전술은 이후의 상황을 아주 난감하게 만들어버렸다. 이념적 존립 근거가 없는 정당이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것은 역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대중사회당이 세력 확장과 권력 쟁취를 위해 지지 세력이 겹치는 사회주의당과 연정을 하는 것은 한 번의 시도였고, 길게 가지 않은 시도였으나 그 후유증은 상당히 컸다.

    그것은 정당의 목표를 정체성 확립이라는 본질에 두지 않고 오로지 연정이라는 방편에 둠으로써 나중에 최소한의 강령이나 지지 세력의 공유도 하지 않은 정당과 더 큰 연정을 하게 되는 길을 터준 것이다. 대중사회당의 ‘묻지마 연정’은 깐시 람이 사망하고 그 후계자로 지목 받은 마야와띠 라는 여성 정치인에 의해 1995년 6월 웃따르 쁘라데시 주의회 선거를 두고 이루어졌다.

    그 대상은 인도국민당이었으니 그 당은 이미 아요디야 사태를 일으켜 힌두 종교공동체주의를 가장 큰 무기로 삼은 극우 정당이다. 이는 단순히 우파 정당과의 연정으로서 문제가 아니고 자신들의 정체성인 불가촉천민 착취와 핍박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는 힌두교를 앞세운 정당과 연정을 한다는 문제였던 것이다.

    대중사회당은 처음 출발할 무렵 여러 가지의 퍼포먼스를 하면서 지지자를 모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힌두교도들이 최고의 경전으로 치켜세우는 [마누법전]이나 [바가와드 기따]를 불태우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연정 파트너라 하는 인도국민당은 노골적으로 [바가와드 기따]를 찬양하고 카스트 질서를 옹호하는 정당이다.

    그럼에도 대중사회당은 권력을 잡기 위해 그들과 연정을 단행했다. 그들이 바라던 바는 지지자들이 겹친 라이벌 정당, 그렇지만 대중사회당이 첫 연정을 한 바 있던 당시의 파트너이던 여타 후진계급 주축의 사회주의당과의 반목과 그에 대한 견제를 하기 위함 뿐이었다.

    그것은 대중사회당의 의사 결정권이 당 대표에게 주어진 비민주적인 체제이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지만 당원 모두가 정당 구조 안에서 권력을 사유화하여 더 큰 권력을 지향하는 엘리트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 지지를 보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들은 오로지 정치 공학에만 함몰되어서 라이벌을 죽여야 우리가 산다는 제로섬 게임에만 몰두하였을 뿐이다. 결국 불가촉천민이 동지 관계에 있었던 여타 후진계급을 죽이기 위해 본래적 적대 관계에 있어야 하는 상층 카스트와 손을 잡는 블랙 코미디가 벌어진 것이다.

    그들은 연정의 조건으로 내건 당 대표 마야와띠가 웃따르 쁘라데시 주 수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만 만족하였다. 그들은 불가촉천민이 인도 역사상 최초로 하나의 정부를 이끄는 수장이 되었다는 데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그것은 향후 선거에 커다란 자부심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마야와띠는 주 수상이 된 후 달리뜨 마을에 길을 닦아주고, 손 펌프를 달아주고, 집을 수리하는 등 주거 환경을 대폭 개선해주는 데 매우 열중했다. 달리뜨 아이들이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장학금도 대폭 주었다. 특히 불가촉천민 가운데서도 전통적으로 인도국민당 지지자인 청소부 카스트인 방기(Bhangi)에게는 – 마야와띠는 가죽 무두질을 하는 업을 하는 짜마르(Chamar) 출신이다 – 장학 혜택을 두 배로 늘리고 마을에 학교를 세우고 도로를 닦아주는 등 전폭적으로 혜택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젊은이들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그러면서 가족 내에서 자식과 부모 사이에 투표를 놓고 세대 간의 갈등이 벌어지는 양상이 발생했다. 부모는 전통적으로 회의당 지지자였는데 자식들은 대중사회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대중사회당의 선거 공학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오로지 표를 모으는데 만 혈안이 되었을 뿐, 본질적인 사회 구조 개혁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기본적으로 모든 사회적 여건에서 무조건적인 착취 대상인 그들에게 교육, 취업, 복지 등의 부문에서 전폭적인 혜택을 주는 것보다 더 실질적인 좌파 정책은 없는 것으로 봐야 할까?

    애초에 결심했던 불가촉천민 외 여러 하층민을 규합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각오는 물거품처럼 사라졌지만, 그것은 여러 카스트 정당이 난무하는데서 발생하는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권력욕에 빠져 집단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그 위에서 정권의 달콤함을 누리는 속셈으로 봐야할 것인가?

    해석은 분분하되 대중사회당은 여전히 북부 인도에서는 막강한 정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이 카스트 집단주의든 최하층의 계급의 철저한 계급주의이든 그들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노무현 전대통령이 제안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한나라당이 받아들여 비정규직 노동자를 최대한으로 줄이고, 해고를 최대한 자제하여 한진중공업, 현대자동차, 쌍용자동차 등의 파업을 최소한 하여 노동자들이 최소 자살하는 것만은 막겠다는 단 한 가지만 합의를 봤다면 나는 어떤 행보를 취했을까?

    지금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와 같은 정책을 하겠다면서 진보 진영에게 연정을 제안한다면 진보 진영은 어떻게 할까? 나는 두 번도 고민하지 않는다. 그 약속을 어떻게 지킬지 장치만 마련되면 새누리당 아니라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인데다가 그 노동자들 가운데 다수가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두 점 사이에 장애물이 있다면 그 사이의 최단 거리는 돌아가는 길이라는 브레히트의 말을 믿는다. <끝>

    필자소개
    이광수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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