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실린다고? 낙종시킨 것일 뿐
    [진보정치 현장] 풀뿌리언론에 대한 갈증
        2013년 02월 25일 02: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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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시청에는 출입기자가 상당히 많다. 지금은 조금 줄었지만 한때 100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구미 부근에는 그만한 규모의 도시가 별로 없어서 이쪽으로 기자가 몰리고 있다는 가설이 설득력 있다.

    또 특이한 것이 있다. 구미 지역에 본사를 두고 구미 소식을 압도적으로 많이 쓰는 언론들 가운데 제호에 ‘구미’ 대신 그보다 넓은 지명을 쓰는 경우가 숱하다. 다른 지역이나 경상북도로 염두에 둔 것이다. 그 구체적인 과녁은 광고 및 홍보비다.

    재작년에 한 구미 지역언론 기자가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부시장 앞에서 칼을 꺼내 책상에 꽂기도 했다던 기자다. 해당 언론은 다른 언론보다는 구미시나 의회를 ‘찌르는’ 기사를 많이 써왔다. 내가 생각하는 ‘정곡’은 아니지만. 하지만 그나마의 비판적 보도조차 비판 대상으로부터 뜯어낼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에 쓴웃음이 났다.

    그가 석방된 직후였을 것이다. 시청 구내식당에서 총무과장과 식사를 하는데 그 기자 이야기가 나왔다. “아니 어제 과에 쳐들어 오더니 ‘두부 사오라’ 그러더구만요. 그냥 사줬지 뭐.” “어? 과장님 저기 뒤에 그분 보이는데요.” 별로 달라진 기색이 없는 그 기자가 있었다. 풀려나자마자 다시 시청을 드나드는 모양이었다.

    구속을 자초하는 이런 극단적인 사례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구미 지역 언론의 현실은 전반적으로 암담하다. 그리고 대학 시절 언론 활동을 자주 한 나는 편집만 봐도 행태가 눈에 훤하게 보이니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하게 언론 현실에 역겨움을 느낀다.

    나는 선거 당시 10차에 걸쳐 정책발표를 했다. 구미 지역 한 방송사가 취재하러 나왔고, 대구경북의 유력 신문도 기삿감이 생겼다며 자주 실어줬다. 파업하고 있던 언론의 기자도 당시에 실어줄 수 없어 안타까웠단다.

    반면, 구미에 본사를 둔 신문사들은 단 한 번도 보도하지 않았다. ‘정책발표를 하고 있다’는 단신기사도 없었다. 낙선이 유력시된다고 판단하고 무시한 것이다. 심지어 내 목표가 ‘종주’라는 식으로 자기 멋대로 소개한 기사도 있었다.

    또 하나의 원인은 얄팍한 균형감각이다. 다른 어느 후보도 정책 발표를 하지 않았다. 실제로, 의정활동 초기에 한 기자는 내게 “선거 때 눈치가 보여 못 실어줬다. 미안하다. 앞으로 열심히 활동해 주시고 보도자료 자주 보내달라. 모두 싣도록 하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선거가 끝난 직후에는 너그러이 넘겼지만, 이미 구미지역 언론과의 신경전은 잠재돼 있었던 셈이다. 그것이 한 달쯤 지나 의정활동 첫 주에 바로 터졌다. 한 언론이 칼럼으로 의장선거에서 기권표를 행사한 의원들을 의원 자질이 없다며 비난한 것이다. 길게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다. 기권이 아니라 무효표였고, 선택을 기피한 게 아니고 그게 바로 내 선택이었다.

    나는 되먹지 못한 비난에 즉각 댓글로 반격했다. 이에 대해 논란이 일었지만 나는 가볍게 일축했다. “이렇게 해둬야 ‘벌로 날리는’ 보도를 방지할 수 있다.”

    내가 기자라면 저것보다는 의회를 더 잘 비판하겠다 싶을 때가 많다. 진짜 문제점은 제대로 짚지 못하면서 시늉은 나름대로 해야 하니, 여러 이슈들은 제쳐두고 ‘누가 회의에 늦었다’식의 기사나 사진을 대서특필하기도 한다.

    의원의 처신에 대한 기사도 어떤 의원은 까발려지고, 어떤 의원의 사건은 없었던 것처럼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무슨 잣대를 따랐는지 궁금해 할 가치도 없다. 친소관계나 거래 여부밖에 더 있겠는가. ‘동정란’에도 뒷말이 많다. 의정활동의 중심에 행사 참석이 있다는 식의 허접한 관점, 같은 행사에 여러 의원이 가더라도 누구는 소개되고 누구는 소개되지 않는 희한한 선별 때문이다.

    의원이 잘한 일을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로, 어떤 것은 크게 혹은 앞에서, 어떤 것은 작게 또는 뒤에서 다뤄진다. 의원 대 집행부, 의원 대 의원 구도에서 억지 양비론을 펴는 기사도 잦다. 한쪽의 손을 들어줬다가는 다른 편의 미움을 사게 될 테니 그럴 것이다.

    한 의원의 활동을 호의적으로 상세히 다뤘다가도 바로 다음호에서 그가 회의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기사를 쓰기도 한다. 그 중간에 언론에 밉보였거나, 그 의원 기사를 쓰지 말라며 누가 압력을 넣었으리라 추측한다. 자신이 관심 있는 소재만 기사로 쓰고 그밖에 의회 소식은 일절 다루지 않는 기자도 있다. 보도자료를 몇번 발송했더니 수신확인에 ‘읽지 않음’만 뜰 뿐.

    한 신문사는 어느 기자의 호의로 내 활동을 한달에 한두번씩은 다루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아예 내 소식은 단독으로는 절대 소개되지 않는다. “그 신문에는 왜 그렇게 안 실리냐”는 주변의 언급에, 나는 “본회의장에서 똥을 싸면 실릴까요?”라며 웃기도 한다. 이 신문사를 지배하는 사람은 구미에서 ‘마피아’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에게 찍힌 거라고 보면 된다.

    이 신문사에는 내가 보도자료를 안 보낸지 꽤 되었다. 이런 신문들을 보는 사람은 뻔히 정해져 있고 더욱이 그들 중에 내 지지층은 거의 없다. 편집 수준은 시정 알림판을 방불케 할 만큼 낮디 낮고, 칼럼도 하나마나한 소리들이 많다. 내가 보도자료를 주지 않고 취재협조를 하지 않는 것은 이 신문의 공신력을 더더욱 떨어트려 참된 언론이 아닌 ‘보도기관’으로 전락시키기 위함이다.

    그외에도 구미에 본사를 둔 몇몇 언론이 내가 보도자료를 줬다가 안 줬다가 하는 리스트에 들어가 있다. 불산사태 때 나의 움직임이나 이마트 불매운동에 대해서 이들은 당시 모조리 ‘낙종’했다.

    손해 보는 것은 내가 아니다. 변화된 미디어환경 덕분이다. 페이스북 사용의 확산은 결정적이었다. 페이스북은 트위터보다 구미시민을 만나기가 훨씬 더 쉬웠고, 그들에게 내 주요 의정활동은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 지역언론만 보고 “처음엔 잘하더니 요새는 수그러들었다”며 뭘 잘 안다는 듯 떠벌린 사람도 페이스북을 본 후로는 내게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 내게는, 조회수는 많지 않지만, 블로그가 있고 그 블로그에서 인터넷방송을 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을 잘 쓰지 않는 3, 40대 아주머니들과는 카카오스토리에서 수다를 떤다. 구미시민이 만명 이상 가입한 어느 인터넷카페도 나의 중요한 홍보 공간이다.

    지역언론

    사진출처는 담양주간신문 홈페이지

    아무래도 방송이나 전국언론에 등장하는 기회가 처음보다 늘어난 배경도 뒷받침이 된다. 여기 <레디앙>이나 <시사IN>에서 고정 칼럼 연재 기회를 얻기도 했고, 불산 사태처럼 큰 사건에서는 ‘누군가 해야 할 말을 아무도 하지 않는 차에 해주는’ 수준으로도 방송을 타기도 한다. 지방정치인으로서 방송의 위력을 자주 실감한다. 지역방송이더라도 그렇다. 챙겨보지 않아도 지상파 채널을 돌리다가도 마주칠 수 있는 게 지역방송이다. 주로 관청이나 기껏해야 경로당 몇군데에 들어오는 구미지역신문은 그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시민들에게 제대로 가닿지도 못하면서 몇몇 지역신문들은 오만하게 활개쳤고, 공무원들이나 의회도 자주 끌려 다녔다. 결국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의원들이 언론홍보비 예산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시정이나 의정을 알리기 위해 광고 비용은 얼마간 필요하지만, 홍보비를 노리는 언론사가 너무 많았고 이는 공식적 촌지의 성격을 곧잘 띠기도 했다. 돈의 힘으로 언론자유와 비판기능이 훼손될 수도 있다.

    언론홍보비 예산을 먼저 심의하는 상임위의 한 의원이 칼을 빼들고 나서자 몇몇 기자들이 하이에나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공갈협박이 잇따랐다. 보다못해 성질이 뻗친 내가 이에 가세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맹렬히 비판하자 그들의 표적은 또 바뀌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전화가 걸려오자 나는 거꾸로 더 큰소리쳤다. 그쪽도 황당했을 것이다.

    안티조선으로 사회운동을 시작한 내게 언론과의 일전만큼 신나는 일도 없다는 걸 몰랐을 테니까. 나한테 말이 먹히지 않자 몇몇 기자들은 의장실을 찾아가기도 했다. 자기네들 휴가비를 뜯어낼 요량이었다. 의장은 내게 “이제 더 싸우지 않아도 된다. 잘 처리하겠다”고 조언했고, 나는 의장에게 “절대 어떤 요구에도 응해주면 안 된다”고 당부드렸다.

    그때 전화했던 기자는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역시 구속되었다는 소문도 들렸다. 엑스파일이라도 폭로했나? 얼마 지나니 명절 때 그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대의회전략’을 수정한 건가.

    구미시의회는 2013년 언론홍보비 예산을 30% 삭감했다. 반대하는 의원도 있었지만, 50%나 70%를 삭감하자는 의원도 있었다. 일단 지켜보고 나서 개선이 되는 만큼 추가경정예산에서 다시 반영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나는 충돌했었던 언론과는 별 일 없이 지낸다. 서로 무시한다고 해야 할까. 그쪽에서 나를 헐뜯어봐야 그 상황까지 SNS에서 공개되니 건드리지 않는 게 낫긴 나을 것이다. 다른 한편, 대구에 본사를 둔 광역단위 지역언론과는 관계가 무난한 편이고, 따지자면 내 활동을 잘 다뤄주는 셈이다. <매일신문>이나 <영남일보>는 대다수 전국 일간지처럼 보수적인 성향인 것은 맞으나 지역사회라는 공간에서 이쪽저쪽을 살피는 노력은 하는 편이라 진보의 목소리를 괄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인의 SNS 활동으로도, 단발적인 방송 출연이나 칼럼 기고로도 풀리지 않는 큰 갈증을 느낀다. 구미에 <옥천신문> 같은 풀뿌리언론이 있어야 한다. 마침 ‘협동조합으로 신문을 만들자. 일단 인터넷뉴스라도 만들어보자’는 목소리가 부상하고 있다. 물론 창간이 쉽지 않을 것이고, 창간해도 언제까지 유지될는지 비관적이긴 하다. 그러나 이를 대체할 다른 방도는 없다.

    구미에서 약소하게나마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대안적 흐름을 구슬 꿰듯 담아내고, 이를테면 ‘어느 동네 어떤 할머니가 팔순 잔치를 맞이한다’거나 ‘조기축구회 시합에서 어느 팀이 몇대몇으로 이겼으며, 승리 원인은 정교한 패스였다’는 소박하고 쏠쏠한 기사를 쓸 수 있으며, 기관에서 제공하는 관점과 자료를 베끼지 않는 독립적 미디어. 이 모범적 언론만이 견제와 개혁의 대상이 되레 시정과 의회를 감시한다며 날뛰는 언론들을 변화시키거나 도태시킬 수 있다.

    추신: 대구경북에서 진보언론의 자존을 지키며 없는 사람, 서러운 사람을 대변하는 인터넷뉴스가 있어 레디앙 독자들께 알린다. 대구경북 민중언론 <뉴스민>이다.

    필자소개
    전 구미시의원. 스스로를 정당인보다는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녹색당 소속. 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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