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핵화의 순서...
    모든 핵의 폐기를 위해
        2013년 02월 20일 1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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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인제 곧 특강차 겐트대학에 갈 일이 있어서 몇 분 후에 비행장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달려가기 전에 한 가지 꼭 써놓고 가고 싶습니다. 최근 며칠 동안 노르웨이 부르주아 일간지 기자부터 동료나 학생들까지 제가 주위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북조선 비핵화의 전망” 그리고 비핵화 요구의 현실성에 대한 것입니다. 또 지금 남한의 대북정책의 골자도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대화, 협력”, 즉 “비핵화” 위주이기에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간단하게나마 한 마디 해야 하겠습니다.

    북조선 이외에 핵을 “국제 사회”의 공인 없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나라로서는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 등이 있습니다.

    가령, 북조선보다 약 10배 이상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이스라엘을 봅시다. 가끔가다가는 사우디 등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반대쪽 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교섭을 시도하곤 합니다. 그러면 그 교섭의 조건에는 “비핵화”가 들어간 적은 있나요? 기존에 이스라엘과 수교한 아랍국가로서는 애굽과 요르단 왕국 등이 있는데, 그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는 이스라엘에게의 “핵 포기” 요구는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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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핵무기를 폭로했다가 18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출소하는 모르데차이 바누누의 모습(출처는 blog.aladin.co.kr/ttalgi21/popup/689898)

    참, 미국도 인제 인도에 핵 포기 요구를 하지 않는 마당에 인도에다가 핵 포기 요구를 하는 인접 국가라고 어디 있나요? 파키스탄에게는요?

    참고로, 1953년 이후에 공식적으로 어디에도 참전한 적이 없는 북조선과 달리,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 등은 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차례에 걸쳐 상당한 규모의 전쟁을 치루어본 나라들입니다. “비핵화”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는 나라는, 아직도 핵무기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란뿐인데, 그 압력의 강도에 정비례하여 그쪽에서는 핵발전소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애착과 열정이 전국적으로 더 강해지는 셈입니다.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지역적 파트너 (이스라엘) 내지 하위 파트너 (파키스탄), 그리고 지역 강대국 (인도)은 사실상 핵을 안심하고 개발해도 되는 것은 우리 세상입니다.

    그러나 북조선이 핵을 가지면 안되는 진정한 이유는? 미국의 파트너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도와 같은 제3세계의 거인도 아니기 때문이죠. 북조선에 “비핵화” 요구가 마구 쇄도하고, “비핵화” 등을 명분 삼아 미, 일, 그리고 부분적으로 남한과 구주연합이 인제 관계 동결한 것은, 미국과 적대적 관계가 청산되지 못한 동북아의 약소국이 “감히” 핵에 손을 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요구들이 초강경의 압력과 함께 쇄도한다고 해서 “핵 포기”가 과연 현실적인가요? 이란의 전례로 볼 수 있듯이, 어림도 없습니다. 남한의 수출형 경제가 “국민적 응집력의 중심”이 되어 남한 주민들 다수의 자긍심, “국민적 소속감”의 바탕이 됐듯이, 북조선에서는 “핵”이란 이미 인민들의 응집력, 그들의 긍지, 그들의 자신감의 바탕이 됐습니다.

    원칙상 모든 핵을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주의자인 저로서는 이거 다 커다란 비극입니다. 아주 큰 비극이죠. 그런데 그 비극을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요? 핵을 진짜 포기한 유일한 나라인 카다피의 리비야를 멸망시키고만 유럽/미국 지배자들은, 김정은에게는 “핵 포기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주 좋은 레슨 하나 가르쳤잖아요. 김정은은 그걸 학습하지 않은 것이라고 정말 믿으십니까? 그리고 여태까지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펼쳐온 미-일-한의 보수세력들이야말로 이 비극의 주범이 아닌가요?

    저는 이 세상의 모든 핵 – 남한의 원전까지 포함해서! – 다 폐기되어 핵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진보신당이 옳게 주장했듯이, 결국 “모든 핵의 폐기”만이 궁극적인 정답입니다.

    그런데 핵 폐기 사업을, 그 핵을 가장 많이 가진, 그리고 대외전쟁 전과가 가장 많은 열강들부터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북조선의 “탈핵”을 정말 원한다면, 북조선이 대미, 대일 수교할 뿐만아니라 동북아 지역 공동체의 명실상부한 “멤버”가 돼야 됩니다. 그리고 주한 미군의 철수 같은 “미국의 대북압력” 정도의 대폭적인 축소에 일단 착수해야 합니다.

    대미, 대일 적대 관계, 그리고 주한, 주일 미군이 주는 압력이 점차 사라질 것 같으면, 북조선 지도부는 어쩌면 핵을 단계적으로 폐기해도 안전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기를 당연히 바라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조선의 “핵 폐기”는 대화의 조건이 되면 안되고, 대화와 대북 압력 해체의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치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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