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민주의의 원리②
    수평적 수직적 연대와 복지국가
        2013년 02월 19일 11: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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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2012년) 11월 홍진북스에서 <사회민주주의 선언>를 출판했다. 이 책의 저자는 조원희 국민대 교수와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준비위원이다. 최근 진보의 정체성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는 흐름들이 제기되고 있고, 이미 한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옹호하는 많은 자료와 서적들이 있다. 그럼에도 진보정치의 전망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압축되고 정리된 소개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레디앙>은 했다.

    또 다행히 <사회민주주의 선언>을 출판한 홍진북스의 홍순종 대표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이에 <사회민주주의 선언>의 전체 내용을 연재한다. 책 자체가 많은 분량이 아니기에 5회~10회 가량으로 나누어 게재한다.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비판과 수용 모두 온전히 한국 사회의 진보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들의 몫이다. 그래서 때로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조건부 수용이나 선택적 비판일 수도 있다. 그런 생산적 논의와 실천적 고민이 있기를 바라면서 게재한다. 홍순종 대표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이 책의 내용을 게재하는 과정에서 비판적 의견 등이 있으면 <레디앙>은 적극적으로 지면을 제공할 생각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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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원리 : 기본 필요 충족과 인간 존엄성의 원리

    인간의 삶이 자본주의의 치열한 시장 경쟁에 의존한다는 것은 반인간적이며, 개개인의 실질적 자유와 평등을 위협한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개개인의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시장이 아닌 국가가 보장하여 탈상품화, 탈상업화 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 시민의 권리로 확립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것을 실질적 자유를 구현하는 원리 즉 ‘인간 존엄성의 원리’라고 부른다. 사회민주주의는 적절한 품질의 주택과 의료, 교육, 노후보장이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모든 국민 개개인에게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런데 인간 존엄성의 확보는 경제적인 기본필요 충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의 집단 괴롭힘과 각종 성인 범죄 같은 사회적 병리 현상의 대부분은 자본주의 사회의 살벌한 경쟁과 개인주의의 만연, 우애적 공동체의 파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경제 환경만이 아니라 사회 환경을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혁하는 과제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한다.

    네 번째 원리 : 사회적 연대의 원리

    사회적 연대는 앞에서 말했듯이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이며 동시에 가장 중심이 되는 사회변혁 원리이다. 여기에는 수평적 연대와 수직적 연대가 구분된다.

    – 수평적인 사회적 연대와 복지국가, 산별 노조

    먼저 수평적 연대를 보면, 비정규직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을 연대의 원칙에 따라 조직하는 통일적인 산업별 전국 조직과 그 단체교섭이 바로 수평적 연대이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산업별 노동조합의 전국적 구축과 산별 단체 교섭 효력의 범위 확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노동자건 자본가건, 자영업자이건 모든 국민은 동등한 복지의 권리를 가진다는 것, 즉 모든 국민은 동등한 복지 수급권을 가진다는 보편적 복지의 권리 역시 또 하나의 수평적 연대이다. 질병과 실업, 노후의 위기에 처한 국민은 누구나 타인과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소득 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적절한 세금을 지불해야 하며, 더구나 남보다 더 많은 소득을 획득하는 이는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누진적 조세 부담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 역시 수평적인 사회적 연대의 원리이다. 또한 따라서 노동 능력을 가진 이는 누구나 일할 의무와 세금을 낼 의무를 갖는다.

    – 수직적, 세대간 연대와 복지국가

    수직적 연대는 자라나는 어린 세대와 일하는 청장년 세대, 은퇴한 노년 세대 간의 세대간 연대를 말한다. 일하는 청장년 세대는 각자 자기 자식을 포함하여 자라나는 어린 세대 전체를 각종 복지 제도를 통해 공동으로 부양하고 교육시킬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이렇듯 청장년 세대 전체로부터 부양과 교육 혜택을 받은 어린 세대가 성장하여 자신 스스로 일하는 청장년 세대가 되고 그 부모 세대가 은퇴하여 노인 세대가 되었을 때 그 노인세대 전체를 노인연금 제도를 통해 공동으로 부양할 의무가 있다.

    이렇듯 일하는 청장년 세대는 결국 자신의 노후를 위해 어린 세대를 공동으로 부양하고 새로운 청장년 세대는 과거의 은공을 갚기 위해 노인 세대 전체를 봉양한다. 이것은 ‘효’의 사회화이며, 아름다운 사회 연대 정신의 발로이다. 또한 이것은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대가족 제도의 해체, 즉 대가족 내에서의 세대간 연대의 해체에 진보적으로 대응하는 길이다.

    이렇듯 연대를 통해 시장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면 시장이 초래하는 과도한 경쟁이 사라지고 사회 전체에 공동체의 가치가 만개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재테크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보편적 복지

    한편 지난 수십 년간의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증권화는 각 개인들이 금융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통한 재테크를 통해 각자의 자녀교육비와 주택마련, 노후준비를 하도록 요구함으로써 개인 생활의 금융화, 재테크화가 진전되었다.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의 팽창, 개인들의 사보험 가입과 증권·부동산 투기의 팽창이 엄청나게 진행되었으며 그것은 결국 개인 부채의 팽창과 함께 금융시장의 불안정화와 금융 및 부동산 거품의 증가를 낳았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금융 및 부동산 시장 거품이 붕괴하면서 이제는 그간 재테크에 매달려온 개개인들의 생존 기반 역시 무너지고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증권·금융 시장과 그 자본에 의존하고 종속되는 불안정한 삶 대신에 사회적 연대에 의존하면서 안정적으로 보편적 복지를 누리는 삶을 원한다. 즉 수평적 또는 수직적인 사회적 연대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이 인간의 삶을 안정시키는 올바른 길임을 확신한다. 이렇듯 사회민주주의는 금융자본주의와 주주자본주의 대신 보편적 복지를 대안으로 해야 하는 바, 이는 사회연대 정신의 부활과 강화를 통해 가능하다.

    * 사회민주주의의 전략

    가. 보편적 복지 전략

    이상의 여러 정책 원리를 종합적으로 구사하여 사회민주주의가 내세우는 여러 핵심 전략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이 보편적 복지 전략이다. 사회민주주의가 보편적 복지 전략을 추구함에 있어 구사하는 기본 정책 원리가 앞에서 말한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원리, 노동 분배의 원리, 연대의 원리, 기본 필요 충족 및 인간존엄성의 원리 등이다. 특히 연대의 원리와 기본 필요 충족의 원리는 보편적 복지 전략의 핵심적인 논리적 기반이 되는 근거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오로지 이윤을 위해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장이 개개인에게 결코 평생에 걸친 안정된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한다.

    누구나 태어나면 양육받고 교육받아야 하며 때로는 병에 걸려 치료받아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직장을 잃을 수 있으며, 살 집이 있어야 하고 언젠가는 은퇴하여 노인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전 과정을 자본과 시장의 변덕과 수익창출에 맡길 수는 없다. 모든 시민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출산과 보육, 교육, 질병, 주거, 그리고 은퇴 후 생활까지 각자의 시장성과, 시장소득과는 무관하게 자유롭고 풍요한 삶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보편적 복지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수평적 및 수직적 차원의 사회적 연대 원리가 관철되어야 한다.

    복지표

    사회민주주의는 소득이 많은 이는 누진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소득이 적은 이는 더 적게 내지만, 평균적으로는 모든 이들이 보편적 복지가 심화되는 것에 상응하여 각자의 시장소득의 절반까지를 자신을 포함한 모든 시민을 위해 세금 또는 사회보험금으로 낼 것을 요구한다. 그 대신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노동자건 자본가건, 자영업자이건, 아니면 비취업 여성 및 노인이건, 모든 국민은 동등한 복지 수혜권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일하는 청장년 세대는 일하지 않는 어린 세대 및 노인 세대를 수직적 연대를 통해 부양하고 봉양하여야 한다.

    이렇듯 누진적 세금과 사회보험금을 재원으로 수준 높은 보편적 복지 전략을 관철할 경우 각 개인은 자본과 시장으로부터 최대한 독립하여 생애 전체에 걸쳐 기본 필요를 충족하는 인간존엄성에 걸 맞는 삶이 가능해진다.

    보편적 복지 전략의 추진에서 중요한 수직적 연대는 노인연금 문제에서 잘 드러난다. 지금처럼 각 개인이 퇴직연금을 상업적 금융회사에 적립하여 그것을 통해 노후 안전을 도모하는 경우, 또는 ‘적립식’으로 설계된 국민연금이 그 적립금을 채권 및 증권시장에서 운용하는 경우, 그 적립금들은 결국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노출되어 있는 까닭에, 결국은 그 가입자들의 노후가 불확실해진다.

    이에 반해 부과식으로 설계된 국민연금 제도에서는 일하는 청장년 세대가 그 해 일하여 생산한 부가가치에서 일정 몫을 떼어내 일하지 않는 노인 세대를 위한 연금으로 바로 바로 지급한다. 따라서 이 경우 노인들의 생존이 금융시장으로부터 자유롭다.

    오늘날 각 나라의 복지 전략은 크게 ‘선별적 복지’ 전략과 ‘보편적 복지’ 전략으로 나눌 수 있다.

    영미형의 선별적 복지 전략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사회 질서의 틈바구니에서 사회 밑바닥에 내쳐지는 최하위 계층만을 선별하여 국가복지 혜택의 대상으로 삼는 시혜형, 빈민구제형 복지제도이다. 이는 진정한 복지국가라기보다 신자유주의 경제사회 체제의 사회 안보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

    선별적 복지란 인간의 삶을 최대한 시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 아니며, 사회양극화와 경기변동에 따른 삶의 불안정성과 피폐화라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본원적 결함을 선별적 복지를 통해 일부 보완함으로써, 인간을 더욱 더 자본과 시장에 얽어매고자 하는 보수주의 및 자유주의의 ‘책략’이다.

    이에 반해 북유럽형의 보편적 복지 전략에서는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등 모든 개별적 사회구성원이 하나의 당당한 권리로서 또 당연한 의무로서 보편적 복지 체제에 참여한다.

    여기서는 각 개인이 자신의 시장소득을 자신만이 독점하지 않고 누진적 조세 및 사회보험금을 통해 복지국가에 납부하는 대신 전생애에 걸친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삶의 질을 보장받는다.

    지금은 부유한 자본가와 사업가들도 미래의 언젠가 병에 걸려 일할 능력을 잃거나 사망할 수 있으며 파산할 가능성도 많다. 그 경우 그들은 가족과 자녀를 돌볼 수 없으며 자신의 노후 대비도 마련하지 못하고 노숙자로 떠돌아다닐 수 있다.

    그러므로 부유하건 가난하건 관계없이, 또 개인적인 경제적 성공 또는 실패와 무관하게, 그리고 국민경제가 전체적으로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또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한, 모든 이에게 기본 생활의 유지가 무조건 보장되고 그리하여 각자가 인간적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포괄적인 보편적 복지의 틀이 필요하다. 실질적 자유와 평등은 보편적 복지의 확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렇듯 모든 시민이 복지국가 혜택을 누릴 수 있기에 북유럽의 보편주의 복지 모델에서는 여타 모델에서보다 비교적 높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부유층과 중산층의 조세 저항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납세 의무가 잘 지켜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유럽 사회민주주의가 성취한 보편주의 복지는 복지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 든든한 경제사회적 기반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사회민주주의는 인간의 삶을 탈시장화, 탈상품화시켜야 한다고 요구하며, 이것만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면서 또한 동시에 경제의 역동성을 보장하는 전략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사회민주주의의 최우선적인 정치적 목표는 보편주의적 복지국가의 실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나라 현실의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그러한 복지국가를 당장 실현하기 힘들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복지 급여는 시혜가 아니닌 시민적 권리’라는 사회적 인식의 계몽과 함께 복지국가 예산의 확대에 필요한 조세개혁 및 사회보험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광범위한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점진적, 단계적으로 획득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이처럼 복지국가는 사회민주주의의 핵심 정책목표이며 이는 미래의 보다 고도한 사회민주주의에서도 여전히 그러하다.

    혹자는 복지국가가 사회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실천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추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복지 체계가 선진 각국에서 발전해 왔다는 점을 생각할 때, 복지 후진국인 우리나라가 북유럽만이 아닌 다른 선진국의 복지 모델을 모방하면서 사회복지를 확대해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선별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는 사회민주주의라는 정치 세력이 성장하지 않고는 결코 실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실천으로부터 분리하여 보편적 복지 체제를 구현하고자 하는 이들을 참된 진보라고 보지 않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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