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숨 쉬는 마을, 강정
    그곳에서 살고 싶어요!
        2013년 02월 18일 03:43 오후

    Print Friendly

    “이 자의 두뇌를 20년간 멈추어야 한다.”는 유명한 판결문과 함께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이 유명한 경구는 로맹 롤랑의 글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를 그람시가 요약한 것입니다.

    제주도 강정마을의 600명이 넘는 주민, 평화활동가들에 대한 연행, 구속, 투옥, 벌금 사태 뒤에는 불법 공사 상황이 있습니다, 주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강제 과정, 전쟁을 도발하는 안보 기지, 민군복합항이 입증되지 않은 설계도, 환경문제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공사, 인권 유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 요인에 대해 제주 도지사를 중심으로 제주 주요 언론은 입을 다물거나 사실을 왜곡해 왔습니다.

    제주해군기지는 미 해군 설계요구에 의해 미군 핵항모가 입항할 규모로 설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2012년 9월, 장하나 국회의원이 밝혀냈습니다.

    모국어로 글을 쓰는 시인과 작가들은 제주해군기지 건설 후 대정, 세화 성산에 공군기지가, 산방산에 해병대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으며 제주도가 최전선화되는 것을 공포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대한민국 곳곳의 요지를 미군에게 내어준 형편임에도, 비무장 평화의 섬 한 곳 확보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조국은 무력한 나라인가에 대해 다만 슬퍼합니다.

    군함에 의해 오염될 서귀포 바다와 기지촌으로 전락할 제주도의 고운 마을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제주도민을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 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입니다. 아름다운 섬 안의 작은 마을 강정은 소박한 포구지요. 연극의 대본인 희곡을 쓰고 공연 연출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제가 예전에 동료 극단 친구들과 올레길을 걷다가 그 작고 소박한 마을을 지나가면서 “아, 여기서 한 달만이라도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탄성을 내지른 적이 있어요. 그러한 곳이 지금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섰을 경우의 득과 실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어렸을 때 자주 놀러가던 동해의 작은 포구 정동진이 어떻게 옛 정취를 고스란히 잃어버리고 흉물스러운 상업단지로 변해버렸는지는 말할 수 있을 듯싶어요.

    인적 드문 바닷가 마을 정동진이 ‘모래시계’라는 아주 유명했던 TV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난 후에 모든 것이 급격하게 달라졌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없이 늘어난 모텔과 노래방을 비롯한 위락시설들은 그곳에 살던 주민들을 예전보다 잘 살게 해주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바닷가 소나무 사이로 한적하게 늘어선 백사장의 풍경은 다시 찾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물론 인심도 각박해졌지만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은 정동진 주민들이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점이겠지요.

    행복의 기준이 무언지는 알 수 없지만 돈이 많다고 꼭 행복한 건 아니지요. 인간이 인간답게 잘 사는 방법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서로 돕고 사는 것입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으면서 살던 우리네 미풍양속과 옛 선인들의 지혜를 떠올려 보세요. ‘사랑’을 ‘돈’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설령 그렇게 바꾼다 한들 그 사람의 삶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리 없겠지요.

    강정_090000

    노순택의 사진.사진가 노순택은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는 평화유배자들’의 기록을 담은 책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공동 저자다.

    저는 강정이 정동진처럼 변해버릴까 두렵습니다. 해군기지가 들어서서 강정 주민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조금 나아질지는 몰라도 궁극적인 삶의 행복지수가 높아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에요. 지역경제가 활성화될지는 몰라도 사람들이 맘 놓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저보고 고르라고 한다면 돈이 많아서 불행한 삶보다 돈은 없어도 행복한 삶을 택하겠습니다. 돈이 많아서 걱정 근심이 늘어나는 생활보다는 돈은 없어도 마음은 편한 생활을 택하려는 것이지요.

    강정의 일은 제주도 전체의 일입니다. 저는 제주도에 사시는 모든 분들이 참마음의 평화를 얻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물질적인 이익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리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냉혈한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으로 따뜻한 사랑과 믿음을 주는 오랜 고향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어요. 저도 언젠가는 그런 제주도에서 살고 싶으니까요.

    2013년 2월 강정의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며 극작가 최창근 올림

    최창근 : 극작가. 희곡집 <봄날은 간다>와 산문집 <인생이여 고마워요>, <종이로 만든 배> 등이 있음.

    필자소개
    극작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