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는 다큐3일
    [TV 디벼보기] 진보의 가장 큰 매력은 휴머니즘이어야...
        2013년 02월 18일 12: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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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보아야,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늘 무심히 지나치는 어떤 골목에도 사연은 있고, 매일 담배를 사러가는 구멍가게 쪽방에 앉아 매일 바둑티비만 보는 할아버지에게도 다채로운 삶의 변주는 있다. 그저 짧은 순간 스쳐지나는 나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사연은 어떤 것이 있을까. 종종 뒷골목에서 자주 마주치는 누군가의 삶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꾸벅꾸벅 졸며 시장골목에서 나물을 파는 저 할머니는 젊었을 때 어떤 삶이었을까. 수유시장 노점의자에 ‘이쁜이꺼’라고 써 놓은 저 커피아줌마는 어떤 성격의 소유자 일까.

    ‘다큐3일’- ‘36.5℃ 인생 용광로 – 종로 광장시장 먹자골목’편을 보다가 울컥 눈물이 났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 도심 한가운데 먹거리가 넘치는 천국같은 곳이라는 단편적 관광객의 눈으로는 알 수 없는 그들의 사연을 보다가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종로의 노점상 골목을 찍었을 때도 그랬다. 어쩌면 내가 궁금해 했던 그 사연들이 무심한 단어가 되어 그들의 입에서 실타래처럼 풀려나왔다. 칼국수 반죽을 밀면서 새벽같이 나와 국밥을 끓이며 구성지게 노래 한자락 뽑으며 신산한 삶의 굽이굽이를 털털한 웃음에 말아 건네는 말이 그리도 시렸다. 새벽에 나와 고생한다며 제작진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안겨주는 할머니, 엄마의 가게를 물려받으며 나를 키우며 엄마가 이렇게 고생했을 생각을 한다는 이야기에 눈물을 참지못한 여인.

    다규3일

    <다큐 3일>의 매력은 ‘이야기’에 있다. 오래보고,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보이는 것에 대한 찬양이다. 72시간 동안 꼬박 그네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프로그램. 인간극장 이후 이토록 휴머니즘 가득한 프로그램은 별로 없었다. 아침마당에 나와 그저 신산한 삶을 섹시하게 풀어놓는 누군가 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무심하고 덤덤한 말투 속에 절절한 수사를 붙여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뜨거운 무엇인가가 있는 몇 안되는 프로그램이다.

    평택의 ‘와락’이 방송될 때는 말 없이 그저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무엇인가를 계속 삼키며 본 것 같다. 누군가에는 그저 ‘재개발’의 땅으로 보이는 그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아가기 위한 고군분투를 다룬 해운대구 반송동의 이야기도 그랬다. 판자촌으로 시작해 내쫒길 위기에 처한 공동체가 머리를 맞댄 이야기를 보면서 순간순간 나의 이기적 시선을 반성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스쳐가는 이방인일 뿐이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도 혹여 가만히 앉아 들어주기보다 상황에 맞지 않는 언어를 쏟아내는 그를 멀리하고 싶어하진 않았는지, 어떤 과거가 있길래 지금의 현재를 낳았는지 이해하려하기보다는 지금의 모습에 배타적으로 굴진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나의 시선을 생각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진보를 말하는 이들은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한다. 낮은 자들 세상의 시선에서 외면받은 비주류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를 한다고 한다. 문득 <다큐 3일>을 보다가 우리는 과연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긴 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인간은 그 스스로 귀한 존재이며 어떤 이유에서든 차별받거나 고통받아서는 안되며, 자본의 부속품이길 거부한다는 이들은 정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른이들도 그리 대하는지도 묻고 싶어졌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보다 그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닐까. 귀족노동자의 밥그릇 파업이라는 보수 언론의 헤드라인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교화와 조직의 대상, 동원의 대상, 정치의 대상으로 보고 있진 않았을까. 가난한 이들이 우리를 찍지 않는다고 분노하고, 스스로 조직하지 않는다고 투정부리고 있진 않았을까. 정치의식이 계급적 의식이 부족하다고 가르치려 들지는 않았을까.

    시장골목의 할머니는 자신과 똑같이 새벽에 시장에 나온 카메라를 보며 따끈한 차를 건냈다. 춥지는 않느냐 잠은 얼마나 잤느냐 힘들진 않느냐 물었다. 그들의 삶을 묻고 들어주었던 카메라에 툭툭 던지듯 삶의 구비를 말하던 할머니의 표정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민중 속으로 노동자의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이 공허한 정치인들이 제법 많다. 진보의 가장 큰 매력은 ‘휴머니즘’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 어쩌면 우리는 수많은 조직의 이해와 정치 논리 속에서 우리 스스로의 매력을 잃거나 순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월에 종영한 <학교 2013>을 보고 나서 내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아이들을 구원하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이다’라는 것이었다. 사랑과 관심으로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하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결국 아이를 변화시켰던 것은 아이들 자신이었고, 공동체였다. 선생님은 그저 아이들의 인생에서 스쳐가는 과정에서 끈 하나 맺었을 뿐이고, 그 끈이 이어진다면 아이가 나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그토록 목놓아 부르짖는 민중을 구원하는 것은 어쩌면 민중 스스로이다. 우리는 그저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오래 보아야 하는 이들이 아닐까. 공허한 구호가 시린 겨울을 메아리 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누구의 말을 얼마나 오래 들어주었을까. 진보가 말하는 ‘대중운동’에서 가장 부족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대중’이다.

    필자소개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의 저자, 은근 공돌 덕후 기질의 AB형 사회부적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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