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청문회의 계절과 문학의 위기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시대의 위기, 문학의 위기
        2013년 02월 18일 10: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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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정신은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불화하면서 지금과는 다른,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를 꿈꾸며 문학은 비로소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학적 상상력이란 지금 있는 세계와 작가가 꿈꾸는 세계 사이를 매개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간혹 그러한 힘에 자신의 삶 전부를 내맡긴 나머지 요절에 이르러 신화의 반열로 올라서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이상이니 랭보니 하는 예가 이에 속한다.

    문학을 전공으로 삼는 내 입장에서 보자면,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의 문학정신은 갖추어야 하리라고 본다. 주지하다시피 문학은 인문학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며, 인문학적인 소양이 부족한 사람에게 정치를 맡겨서는 곤란하겠기 때문이다.

    인간에 관한 이해 없이 도대체 어떤 정치가 가능하겠는가. 뿐만 아니라 구태에 찌든 한국사회의 패러다임을 수정하여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도 문학적 상상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터이다.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인사청문회의 계절이 돌아온 탓이다. 이제는 후보들의 위장전입, 증여세 탈루 정도는 으레 그러려니 하게 될 정도로 식상해졌다. 관행이라고 봐야 하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정도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한 나라의 장관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관행을 진작부터 문제 삼을 수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닐까. 그러니까 지금 나는 그네들의 인문학적인 소양을, 문학적 상상력의 수준을 비난하는 것이다.

    하기야 더욱 요령부득인 이들도 있다. 가령 이동흡 헌재소장 前후보의 경우. “이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헌법재판관으로 6년간 재직하며 지급받은 특정업무경비 3억여 원을 개인계좌에 넣어 개인보험료나 자녀 유학비 등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후보가 특정업무경비 3억여 원을 초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 투자한 사실도 확인됐다.”(『경향신문』, 2013.2.12, 12면) 이동흡 前후보는 이러한 행태까지도 관행이라고 우기는 한편, 자기 덕에 특정업무경비 사용의 개선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의미 부여까지 하고 나섰다. 이 정도면 후안무치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도 납득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독일 군수기업 ‘엠티유’의 국내 중개업체인 ‘유비엠텍’에서 2010년 7월부터 2012년 6월까지 비상근 고문으로 일을 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 측에서는 “전역 2년 뒤에 회사에 들어갔으므로 공직자 윤리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답변하는 모양인데, 글쎄 내가 보기엔 같은 기사에서 인용되고 있는 무기 구매 업무를 담당하는 군 관계자의 지적이 훨씬 설득력 있다. “김 후보자는 1999년부터 2년 동안 합참에서 전력기획부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국방력 제고와 관련한 무기 수출입에 깊숙이 관여해온 분이다. 그런 분이 왜 하필 다른 나라 무기를 수입하는 중개상을 위해 일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경력이 있었다면 애초 장관으로 나서지 말았어야 한다.”

    다른 예비역 장성들은 군 경력을 활용할 때 대체로 방위산업체에서 무기 개발ㆍ생산 등에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한다고 한다. 만약 김 후보도 그 길을 걸었다면 크게 문제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유비엠텍은 김 후보자가 일할 당시 혈세를 낭비한 해외 무기 수입과 관련해 로비를 벌인 의혹도 받고 있다.” 이 사건은 감사원의 수사 의뢰에 따라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이라고 하니 그 결과 또한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김 후보와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는 까닭이다.(『한겨레』, 2013.2.16, 1면)

    신문기사를 읽다가 생각난 시 구절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의 제목에 붙은 다소 긴 부제이다. 김중식의 「어제가 가도 오늘은 오지 않고」에 달려 있다. “가라는 대로 가면, 화살표를 따라가면 訃告(부고)의 담벼락과 전봇대를 따라가면 초상집이었다.” 그러니까 이동흡, 김병관과 같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화살표를 따라 그저 눈 가린 경주마처럼 앞으로만 내딛다가 죽음의 수렁에 빠져버린 것이다. 인사청문회가 없었다면 그 자신들이 죽음의 수렁에 빠졌다는 사실조차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황금빛 모서리

    아마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리라. 궤도에 길들여져서 그 질서를 전부라고 생각하는 자가 어찌 이탈한 자의 자유를 알겠는가. 그네들은 문학적 감수성이 꽝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건대, 문학정신은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데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김중식의 『황금빛 모서리』(文學과知性社, 1993) 맨 앞에 실린 「이탈한 자가 문득」이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

    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

    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

    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

    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

    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서 획

    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이동흡, 김병관 같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으로 군림해서는 곤란해진다. 그네들의 가치관이 확고한 틀로 자리를 잡아 국민들에게 하나의 사례로 제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가령 10억이 생긴다면 1년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답변한 비율이 초등학생 12%, 중학생 28%, 고등학생 44%로 나타나는 현상은 소위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누차 반복하여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결과라 할 수 있다.(『경향신문』, 2013.1.8, 15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의원직을 상실했다. 상식 위에 군림하는 삼성의 막강한 위력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2월 16일 『오마이뉴스』의 「선생님, 노회찬의 가장 큰 죄가 뭔 줄 아세요? – 노회찬 의원을 ‘돈키호테’라고 조롱하는 고등학생들」이란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고등학생의 발언을 접할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코리아’는 몰라도 삼성은 다 안다고 하잖아요. 이미 삼성은 좋건 싫건 우리 국민들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어요. 선생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걸요. 북한 정권 세습은 봉건왕조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며 희화화하고, 교회의 목사 세습도 반종교적인 작태라며 욕해도, 삼성의 오너 세습을 두고 그렇게 발끈하진 않잖아요.”

    만약 이렇게 말하는 청소년의 눈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읽어야 한다면, 우리 사회는 퍽이나 암담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다. 모두가 눈을 가린 경주마가 되어 그저 생존하기 위하여 일인 대 만인의 대결을 펼치는 사회에는 아무런 희망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편법과 부정이 판치더라도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회에서는 도덕이니, 정의니 하는 것이 남아있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내가 몸담아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나는 바로 이러한 대목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느낀다. 문학의 위기를 절감한다.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1,000여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이다. 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는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월요일에 게재한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홈페이지(http://www.professornet.org/)에도 함께 올라간다.<편집자>

    필자소개
    가톨릭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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