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이 아닌 당신에게...
[작가들, 제주와 연애하다-7]"우리가 땅에 하는 일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하는 일이다"
    2013년 02월 14일 05: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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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의 두뇌를 20년간 멈추어야 한다.”는 유명한 판결문과 함께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이 유명한 경구는 로맹 롤랑의 글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를 그람시가 요약한 것입니다.

제주도 강정마을의 600명이 넘는 주민, 평화활동가들에 대한 연행, 구속, 투옥, 벌금 사태 뒤에는 불법 공사 상황이 있습니다, 주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강제 과정, 전쟁을 도발하는 안보 기지, 민군복합항이 입증되지 않은 설계도, 환경문제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공사, 인권 유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 요인에 대해 제주 도지사를 중심으로 제주 주요 언론은 입을 다물거나 사실을 왜곡해 왔습니다.

제주해군기지는 미 해군 설계요구에 의해 미군 핵항모가 입항할 규모로 설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2012년 9월, 장하나 국회의원이 밝혀냈습니다.

모국어로 글을 쓰는 시인과 작가들은 제주해군기지 건설 후 대정, 세화 성산에 공군기지가, 산방산에 해병대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으며 제주도가 최전선화되는 것을 공포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대한민국 곳곳의 요지를 미군에게 내어준 형편임에도, 비무장 평화의 섬 한 곳 확보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조국은 무력한 나라인가에 대해 다만 슬퍼합니다.

군함에 의해 오염될 서귀포 바다와 기지촌으로 전락할 제주도의 고운 마을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제주도민을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 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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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을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곳이 있습니다.

대추리의 황새울 들녘입니다.

세월이 흘러 우리 사회 평화운동의 심장은 황새울에서 강정으로 바뀌었어요.

동요 ‘노을’의 배경이 되어준 황새울이 그렇듯 강정마을은

제주 올레 7코스에 있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품에 안은 마을이지요.

 

대추리를 생각하면 또 매향리가 떠올라요.

헤아려보면 낯선 아픔의 현장은 없는 듯해요.

용산참사를 생각하면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단행된 합동재개발이 떠올라요.

근본적인 치료 없이 임의 처방을 한 병이 끝없이 되풀이 재발되듯이요.

 

고리를 끊지 못해 어디선가 본 듯한 아픔은 오늘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와 두리반과 마리. 재능교육과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그리고 두물머리와 내성천과 영주댐…….

지난 몇 해 동안 이러한 곳을 다니며 우리 시대와 미래에 대해 절망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체념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으려 해요.

역사는 어떤 가혹한 상황에서도 한 줄기 가느다란 빛마저 가리진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한 줄기 가느다란 빛을 만드는 이들이 꼭 한둘은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강정도 그렇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외부세력 또는 외부인이라 불리는 이들이

오늘도 빛을 꺼트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지키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 이유와 핑계로 강정엔 한 번도 가지 못한 채 멀찌감치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뉴스와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부쳐오는 소식을 챙겨보며 평화의 안부가 궁금했고,

노구의 한 신부님의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강정18

노순택의 사진.사진가 노순택은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는 평화유배자들’의 기록을 담은 책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공동 저자다.

지난해 한 권의 책을 쓰며 미국의 시인이자 농부인 웬델 베리의 글을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땅에 하는 일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사회가 구럼비에 행하는 것들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가하는 일들이란 걸 머잖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엔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대해 자세히 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흑인노예제를 고수하는 정부에 대한 불복종을 실천하며 인두세를 거부했고,

이로 인해 하루 동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가 쓴 <시민의 불복종>의 한 구절을 소개해 드릴게요.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감옥에 가두는 정부 밑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있을 곳은 역시 감옥뿐이다.”

 

정의에 대한 존경심으로 강정마을을 찾아간 이들은

구속되고,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히고, 강제 추방되었습니다.

소로의 시대에 그랬듯 우리 정부는 시민들의 불복종에 대해

폭력과 ‘불법적인 법 집행’으로 대응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정의롭지 못한 정부가 취하는 방식 그대였습니다.

 

다수 언론은 내륙과 해외에서 강정마을을 찾는 이들-불복종하는 이들을 일러,

‘외부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외부인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 인’이라는 한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에서 유래한 글자입니다.

또한 사람은 자연의 외부인이 아닙니다.

평화는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강정마을은 하와이, 오키나와와 연결되어 있고, 제주는 내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강정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강정의 ‘외부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지구별 어디에도 외부인이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강정마을로 삶터를 옮기기도 했지요.

용산참사 현장을 지키던 문정현 신부님도 강정 마을의 주민이 되어 그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의 다짐이 떠오릅니다.

‘내 글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을 위해 한 장의 유인물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에게 글이란 그것으로도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시민들에게 보내드리는 이 연애편지도

한 장의 팸플릿이 되고 싶은 작가들의 릴레이 편지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글을 필요로 하는 곳의 팸플릿이 되고 싶습니다.

 

일본 오키나와의 헤노코 마을은 강정마을과 같은 아픔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 오키나와 주민들의 저항을 다룬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시를 쓰는 동안 저는 오키나와의 외부인이 아니었습니다.

팸플릿 시랄 수 있는 <헤노코 마을에서>로 저의 편지를 맺겠습니다.

 

헤노코 마을에서

 

어디까지 멍들었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수평선에 다다르면 휘감는 바다의 철조망

 

그 멍은 강정 앞바다,

텐진 앞바다까지 이어져 있다

얼마나 패대기쳤는지 작은 바람에도

파도마다 날이 선다

얼마나 악다물고 있는지

순간 순간 부러지는 이빨들

 

톱날을 들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사라진 나라 류큐국의 톱날들

찌비찌리 집단타살된 영혼들

 

지도에서 보면 류큐국은 작은 톱날들이 모인

하나의 거대한 톱

 

헤노코 해변은 사람이 갈 수 없는 모래사장

미군기지 연병장은 바다까지 좀먹고 있다

 

타이라 목사는 매일 노아를 타고 멍 든 바다로 간다

올리브잎을 부리에 문 비둘기가 톱날 위를 날고 있다

 

[송기역] 전북 고창 출생. 시인이자 르포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4대강 르포르타주 <흐르는 강물처럼>(레디앙)과 <사랑 때문이다-조성만 평전>(오마이북), <허세욱평전>(삶이보이는창) 등을 펴냈다.

 

필자소개
시인. 르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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