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는 지금 인도주의적 재난 상황
        2013년 02월 14일 02:2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그리스의 현 보수당 연립정부와 유럽연합 국가들이 강요해온 긴축 위주의 경제 정책 하에서 그리스 사회는 지금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한국이나 미국의 주류 언론에서는 이와 관련된 정보를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알렉스 폴리타키(Alex Politaki)라는 아테네 소재 라디오 방송국 기자가 영국의 정치경제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에 기고한 글은, 그리스의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경제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녀는 이 글에서 지금 그리스 사회는 현 그리스 정부와 유럽연합 채권국 국가들이 강요한 긴축 위주의 ‘구제 정책’ 때문에 실업률과 빈곤률이 폭등하고, 다수의 그리스인들이 기초 의료 서비스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알렉스 폴리타키는 유엔 등의 국제 사회가 적극 개입하여 지금 그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기 상황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글의 원문은 2013년 2월 11일자 [가디언]에 “Greece is facing a humanitarian crisis”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원문 보기)(옮긴이)
    ———————————————

    “유럽연합의 자체 빈곤 기준을 따르더라도 지금 그리스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 국가들은 그들이 강요한 ‘구제 정책’ 때문에 이러한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가디언 편집자)

    유럽인들은 대개 인도주의적 위기(humanitarian crises)가 자연재해나 전염병, 그리고 전쟁 등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난 뒤에야 발생하는 일로 생각한다. 그들은 그와 같은 일들이 유럽 국가에서, 그것도 유럽연합 가맹국들 가운데에서 생겨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수의 전문가들은 지금 그리스가 바로 그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의 NGO들 가운데 가장 크고 명망 있는 단체인 [세계의 의사들](Medecins du Monde) 의장 니키타스 카나키스(Nikitas Kanakis)는 그리스가 바로 이와 같은 인도주의적인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아테네 인근에 위치한 항만 지역 페라마(Perama)는 그리스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인도주의적 재앙 상태에 빠져 있는 도시다. 민간 의료 전문 종사자들의 협회들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아테네 의료협회](Medical Society of Athens)는 심지어 유엔에 이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개입해 달라는 공식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만약 현재 그리스가 직면하고 있는 이 같은 위기 상황이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면 거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그리스의 현재 위기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하는 순간 그리스 정부와 유럽연합은 그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사태들이 바로 그리스를 “구제”하겠노라고 말하던 그들의 경제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행정 당국은 지금까지 침묵해왔다.

    과연 무엇이 인도주의적인 위기인가? 물론 이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정의는 매우 실용적이고 결코 복잡하지 않다. 한 나라에서 인도주의적인 위기가 발생하면 그 나라에서는 빈곤률이 상승하고 교육과 사회 보장의 영역에서 심각한 불평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초 사회 보장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일이 생겨난다. 특히, 기초 건강 서비스와 의료 검사, 병원 치료와 약물 치료 등이 부족해지는 것도 매우 중요한 지표들 가운데 하나이다. 인도주의적인 위기를 판별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 국민들은 자기들이 이와 같은 인도주의적인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유엔이 2008년에 발표한 [인간 개발 지수]에 따르면, 그리스는 전 세계에서 18위를 차지했던 나라다. 이 나라의 그 누구도 이 지수가 그렇게 급격하게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유럽연합이 제공했던 것은 거짓된 안정성이었다. 유럽연합 가입국들은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가상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연합이 제시하는 정치경제적 요건들을 맞추면서 값비싼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한 가지 역설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경제적 안정성과 가입국가들의 공동 번영을 보장한다던 유럽연합이 매우 잘 정의된 절대적 상대적 빈곤 기준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기준이 그리스가 지금 인도주의적인 위기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Greece Personal Crisis

    급증하고 있는 그리스의 노숙인 모습(자료사진)

    유럽연합이 마련한 기준과 데이터를 가지고 그리스의 현재 상황을 분석해보면, 지금 그리스는 심각한 빈곤 상황에 직면해 있다. 2011년을 기점으로 할 때 그리스 전체 인구 가운데 3천 4백만 명에 해당하는 31.4%가 이 나라의 중간 가처분 소득의 60%에 못 미치는 소득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 전체 인구 가운데 27.3% 또는 1천 3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심각한 빈곤 상황에 직면해 있다. 2012년 데이터는 아직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는 것처럼 이 상황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유럽연합의 지표들을 한두 개 더 인용해 보자. 절대 다수의 그리스 가정이 소위 “물질적 궁핍(material deprivation)” 상태에 놓여 있다. 이 가운데 11%를 상회하는 가정은 “극심한 물질적 궁핍” 상황에 직면해 있는데, 이 때문에 그들은 적절한 난방이나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자동차나 전화기를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고기나 생선 등의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긴급한 상황에 발생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월세 등을 제때 납부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유럽연합의 경제 정책이 실업자들을 노동 시장으로 다시 통합시키지 못하고 제대로 된 사회 보장 프로그램들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그리스는 더욱 심각한 빈곤 상태로 떠밀려 내려가고 있다.

    성인 실업률은 2012년 10월을 기준으로 할 때 이미 26.8%에 달한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에 비해 훨씬 더 악화된 이 실업률 지표조차도, 그리스 경제 상황의 전모를 보여주기엔 충분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이 실업률은 수천 개의 소규모 비즈니스가 파산하거나 몰락한 데에서 비롯되는 실업 상태의 심각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이 공식 실업자 규모에 덧붙여, 일을 하고는 있으되 임금이 워낙 낮아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을 제대로 구입하지 못하는 상태 상태에 처해 있는 근로 빈민(working poor)들을 추가해야 한다. 그리스의 전체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13%에 해당되는 사람이 바로 이 근로 빈민층에 속해 있는데, 이 수치는 유로존 국가들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수치에 해당한다.

    그리스의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들 가운데 다음의 세 가지를 더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홈리스의 숫자가 지금까지 유럽 국가들로서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어느 한 비공식 자료에 따르면, 그리스 전역에 대략 4만 여명의 홈리스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NGO가 제공하는 긴급 의료 서비스를 받은 그리스인 수혜자가 어떤 도시 지역에서는 지난 한 해 전체 수혜자들 가운데 60%를 넘어섰다. 이 같은 일은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NGO의 이 긴급 의료 서비스는, 그리스인들이 아니라 각종 의료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처해 있는 이민자들에게 주로 제공되던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세 번째, 지금 그리스 전역에서 간이 급식대와 음식 배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물론 그리스 정부는 이 숫자를 공식적으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 정교회의 경우 하루 평균 25만 끼의 음식을 나누어주고 있고, 몇몇 시 정부들과 NGO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 그리스 정부가 내린 방침에 따라 각급 시 정부들도 이 같은 음식 무료 배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것은 어린 학생들이 제대로 칼로리를 섭취하지 못해 학교에서 기절을 하거나 쓰러지는 일들이 점점 더 늘어났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이다. 더불어 각급 시 정부들은 청소년들에게도 간식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음식 배급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절박하게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기초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그리스는 이미 인도주의적인 지원의 대상이 되었고, 따라서 마땅히 그러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그리스 정부와 유럽연합이 눈을 감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함께 대처해온 국제 사회는 하루라도 빨리 그리스를 지원해야 한다.

    * 글쓴이 알렉스 폴리타키(Alex Politaki) – 그리스 아테네에 거주하는 라디오 방송국 기자

    * 옮긴이 신희영 – 미국 뉴욕 신사회과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현재 재정정책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