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민주의의 원리 ①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과 규율
[사회민주주의 선언-5] 사유재산권 인정, 하지만 그 신성불가침성은 불인정
    2013년 02월 13일 02: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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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2012년) 11월 홍진북스에서 <사회민주주의 선언>를 출판했다. 이 책의 저자는 조원희 국민대 교수와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준비위원이다. 최근 진보의 정체성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는 흐름들이 제기되고 있고, 이미 한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옹호하는 많은 자료와 서적들이 있다. 그럼에도 진보정치의 전망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압축되고 정리된 소개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레디앙>은 했다.

또 다행히 <사회민주주의 선언>을 출판한 홍진북스의 홍순종 대표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이에 <사회민주주의 선언>의 전체 내용을 연재한다. 책 자체가 많은 분량이 아니기에 5회~10회 가량으로 나누어 게재한다.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비판과 수용 모두 온전히 한국 사회의 진보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들의 몫이다. 그래서 때로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조건부 수용이나 선택적 비판일 수도 있다. 그런 생산적 논의와 실천적 고민이 있기를 바라면서 게재한다. 홍순종 대표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이 책의 내용을 게재하는 과정에서 비판적 의견 등이 있으면 <레디앙>은 적극적으로 지면을 제공할 생각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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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의 원리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체제이며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그 모순을 발현시킨다. 현실의 모순을 회피하지 않으면서 그 모순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천 속에서만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가고자 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입장에서 그 정책과 처방이 시대와 장소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상 최초의 사회민주주의 강령이었던 독일 사회민주노동당의 1875년 고타 강령에서 제시되었던 정책과 처방들은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발전된 나라들에서 이미 거의 다 실현되었다. 또한 전후 브레튼우즈 국제경제 체제의 조건에서 번성한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구사되었던 구미 선진국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정책적 처방들이 오늘날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리고 전세계가 직면한 최대의 공통적 과제는 한마디로 과격한 급진 우파 사상인 신자유주의 30년이 낳은 경제와 사회의 파괴를 수습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범세계적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 단기적 과제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를 대체하는 대안적 경제사회 체제를 모색하고 동시에 생태환경적 위기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는 과제가 포함된다.

물론 경제위기와 생태위기는 나라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정책의 내용과 형태는 서로 다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변치 않는 사회민주주의의 정책 원리도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언제 어디서든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질서 하에서, 그것에 대항하여 진행되는 진보적 정치 운동이며, 대의제 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활성화와 교섭력 및 정치력 증대를 기반으로 한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발생하는 본질적 폐해를 교정하기 위하여 사회적, 국가적 개입을 확대하며, 개인과 사회를 자본 원리와 시장 원리의 침투로부터 최대한 방어하여, 앞서 말한 5대 가치를 구현하려 한다.

이렇듯 그 기본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지켜야 하는 변치 않는 기본적 원리가 있으며, 또한 그것과 밀접하게 결부된 핵심적 전략들이 있다. 물론 우리가 여기서 제시하는 원리와 전략들만으로 사회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며, 앞으로 더 많은 원리와 전략들이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원리 :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원리

–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경제민주화

1인 1표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1원 1표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경제적 자본주의의 관계는 늘 팽팽한 긴장과 대립으로 점철되어 왔다.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반드시 통제된 시장, 통제된 자본주의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본과 시장을 민주공화국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로 전락하여 형식과 절차만 남게 되고 국민들의 삶은 실질적으로 시장과 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소득과 부의 집중 현상과 빈부 격차의 확대를 막을 수 없으며, 금융 위기와 경제위기를 막을 수 없다.

이는 스스로 진보적 자유주의였음을 자부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치하에서 우리 국민들이 절실하게 체험했던 바이다.

정치적 국가의 형태에는 민주공화주의와 전체주의, 권위주의, 왕정주의, 그리고 의회주의와 대통령중심제 등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에도 자유 시장 자본주의와 통제된 자본주의, 조합주의 자본주의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이 중 박정희 체제는 국가 형태는 전체주의이면서 경제 형태는 통제된 자본주의였다. 그에 반해 사회민주주의가 원하는 복지국가는 국가 형태는 민주공화국이면서 경제 형태는 사회적, 민주공화적으로 통제되는 자본주의, 복지 자본주의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정치적 민주주의가 만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적 자유 시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말하는 정치경제 사상을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즉 자유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수적 자유주의자들 즉 신자유주의자들만이 아니라 민주적 자유주의자 또는 진보적인 민족·민주적 자유주의자들 역시 박정희식 경제체제, 국가주도형 시장경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주장해왔다.

특히 신자유주의는 사회 영역에 시장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사회라는 독자적 영역을 부정하고 시장에 흡수·종속시키려 한다. 이에 반해 사회민주주의는 사회 영역의 독자성을 확보하면서 시장과 자본에 대한 적극적인 사회적, 민주공화적 통제를 시행하고자 한다.

자본에 대한 통제, 특히 대자본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이 우리나라에서는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자본과 기업, 특히 오늘날 자본주의의 핵심조직인 대자본과 대기업에 대한 통제(즉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기에는 크게 두 입장이 대립되고 있다. 하나는 시장이 주체 또는 주역이 되는 통제 즉 시장 규율(market discipline)에 의한 통제이다. 이것은 경제민주화를 경제자유화로 이해하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에 의한 통제 즉 사회적 통제이다. 이 두 번째 입장이 진정으로 사회민주주의에 부합되는 접근법이다.

먼저 경제자유화론에서 해결책은 국가의 경제개입과 대기업(대기업집단)의 역할을 가능하면 작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자유주의의 철학의 귀결인데, 여기서는 ‘합리적 (자유) 시장’의 원리가 가장 중요하다.

경쟁적 시장을 효율성과 생산성의 원천으로 보는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와 정부는 되도록 적게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좋고, 또한 대기업과 대기업집단(기업그룹)의 역할과 비중 역시 되도록이면 줄여서 적게 만들어 작은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완전 경쟁 상태를 만들면 ‘시장에 의한 규율’ 즉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규율’이 작동하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자유 시장’ 원리가 구현된다고 본다.

이에 반해 아무리 공정한 시장질서라 할지라도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본원적 파괴성과 폐해에 주목하는 사회민주주의는 대자본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개입주의 국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재벌과 엠비

이명박 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의 회동 장면(사진출처는 청와대)

그리고 대자본 즉 대기업 및 대기업집단에로의 경제력 집중이 산업과 업종에 따라서는 필요하고 효율적이라고 보며, 따라서 필요한 것은 대자본을 작게 쪼개는 것보다는 어떻게 그것을 사회적으로 통제할 것이냐 라고 본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한국경제에서 적어도 30대 재벌그룹은 반드시 사회적, 국가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사회민주주의가 강조하는 것은 대자본 및 재벌그룹에 대한 사회적 통제만이 아니다. 그 구조와 인맥상 은행과 자본시장 등 금융자본의 이익을 우선하게 마련인 중앙은행(한국은행)에 대한 민주공화주의적,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여 중앙은행이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성장 등 일반 국민들이 더 중시하는 과제들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것도 자본에 대한 사회적, 민주적 통제의 일환이다. 또한 자본 및 자산 소유자들의 개인적 고소득과 법인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것 역시 자본에 대한 – 즉 자본의 소득 처분권에 대한 – 사회적, 민주공화적 통제이다.

자본에 대한 사회적, 민주공화적 견제와 통제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기업들에 있어 최저임금 및 비정규직 채용에 대한 규제, 그리고 산별 단체 교섭을 기피하는 기업에 대한 법률적 규제 등등 노동시장에서의 다양한 규제 역시 자본에 대한 사회적, 민주공화적 통제이다.

또한 외환금융시장 및 자본시장의 투기성에 대한 규제와 은행의 영업 및 자산에 대한 규제 등등 자본·금융시장에서의 다양한 법률적 규제 역시 자본에 대한 사회적, 민주공화적 통제이다.

NHS

영국의 무상의료시스템(NHS)을 옹호하는 시위(사진출처는 레프트21)

전기와 철도·지하철, 버스, 우편, 수도처럼 모든 국민의 일상생활에 중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 또는 그런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기업을 공공의 이익에 맞게 유지하도록 민주공화국과 시민사회, 노동조합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규제하는 것 역시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이다.

– 사회적 통제와 사회적 소유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중요한 방법이 사회적 소유 또는 국유화임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모든 자본에 적용하려 하는 전통적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에 반대한다.

20세기 말 소련 등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는 사회적 소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지, 그리고 실질적인 사회적 통제, 민주공화적 통제와 무관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사회적 소유는 다양한 사회적 통제의 한 유형일 따름이다.

그렇지만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에는 국가적 통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권과 노동조합의 권리를 대폭 향상시키고 또한 독일과 북유럽의 공동결정제처럼 종업원 전체를 대변하는 종업원 대표자들이 – 지역사회나 다른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 개별 회사의 이사회에 이사로 참여하는 것 역시 자본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견제·통제이다.

소비자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기업에 맞서는 소비자 권익을 향상시키는 것도 일종의 사회적 견제·통제이며, 또한 소상공인과 소농들이 자율적으로 결성한 협동조합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 또한 사회적으로 통제된 시장 경제를 만들어 나가는 중요한 형태이다.

그런데 노동조합과 공동결정제, 소비자 및 생산자 협동조합 등의 발전을 통한 비국가적 방식의 사회적 통제의 실현을 위해서도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시민사회의 역할이 발전하려면 단지 그들 운동 스스로의 발전만이 아니라 그것들을 입법을 통해 행정적,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실질적 민주공화국 또는 복지국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예컨대 산별 노조 건설 운동은 노동운동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독자적으로 달성되어야 하며 정치권과 민주국가는 별로 도와줄 일이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협동조합운동에서도 역시 국가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과는 무관하게 협동조합 운동이 발전하여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지만 산별노조와 산별 단체교섭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그것을 의무화하는 국가적 입법이 반드시 필요하며, 따라서 사회민주주의 정당 정치와 민주공화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협동조합 운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 사회적 통제와 국가적 통제, 아나키즘

이와 관련하여, 일체의 국가적 통제를 거부하면서,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용인하지만 국가적 통제는 거부하는 아나키즘(무정부주의)에 대해 사회민주주의는 반대한다.

무정부주의자들, 특히 생태주의적 무정부의자들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일체의 국가권력(민주공화국과 복지국가도 포함한)을 해체하고 그것을 자율적 협동조합 및 공동체의 연대적 결사체로 대체함으로써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사회민주주의는 자율적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도 민주공화국과 복지국가의 발전이 중요하며, 양자가 힘을 합쳐야만 비로소 자본과 시장에 제대로 맞서는 사회적 견제·통제가 가능하다고 본다.

두 번째 원리 : 노동 비례 소득분배와 누진적 과세의 원리

사회민주주의는 사유재산권과 이윤 추구,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인정하며 시장 원리에 따른 시장소득 분배를 인정한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노동에 근거한, 그리고 노동에 비례하는 소득분배 원리로 역사는 발전한다고 보며, 경제 발전에 따라 이 원리가 자본주의 내에서도 가능한 한 더 많이 구현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원리의 관점에서 보면, 법인 기업의 이윤은 그것이 현금 배당 및 이자 등의 형태로 분배되어 개인소득으로 되는 경우 높은 누진적 개인소득 과세를 통해 재분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식 및 채권 등 금융자산 소유로 인해 발생하는 고소득은 노동에 근거하지 않는 불로 소득이며, 노동에 비례하지 않는 소득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법인 기업의 이윤이 기업에 유보되어 궁극적으로 생산적 투자에 사용되어 일자리 창출에 사용될 경우, 그것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세 면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근로 소득의 경우에도 누진적으로 과세한다. 왜냐하면 그의 특별한 노력을 제하고도, 물려받은 천부적 재능 덕분이거나 단지 운이 좋아서 또는 시장의 변덕스런 변화에 의해 높은 고소득을 얻었을 경우, 그 고소득은 그의 노동에 비례한 것이 아니므로 그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세율의 개인 소득 과세를 메기는 것은 정의와 공정의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노동과 무관한 여타 불로소득들 특히 부동산이나 증권투자에서 발생하는 매매차익 즉 자본이득(capital gain)은 노동 의욕과 생산적 투자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효율성의 관점에서도 경제적 합리성이 없다고 보아 고율 과세가 원칙이다. 우리는 이러한 원칙을 사회민주주의의 ‘분배 정의의 원리’라고 규정한다.

이처럼 사회민주주의의 분배의 정의는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되 그 신성불가침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국가의 조세와 지출을 통하여 분배의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그런데 국가를 매개로 한 분배의 정의의 구현 이전에, 시장 영역에서의 분배의 정의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심각한 분배의 부정의(unjustice)가 나타나 고착화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사회민주주의에 대단히 중요하다.

–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과 사회적 연대의 조직화

비정규직 및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적 대우와 이에 따른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의 붕괴는 분명 노동에 비례한 소득분배 원리에 어긋난다. 앞서 보았듯이 자유주의는 이 문제를 노동조합이 노동시장을 독점한 결과 노동시장에서의 공정 경쟁, 완전 경쟁 원칙이 붕괴되어 ‘시장 원칙’이 붕괴되고 가격(임금) 체계가 왜곡된 까닭이라고 본다.

동일 상품(노동)에 대한 차별적 가격(임금)은 시장원리에도 위배되는 까닭에 이것이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중대한 문제로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그 본성상 자유주의는 연대의 해체 즉 노동조합의 약화와 ‘자유로운 (노동)시장’의 복원에서 그 해법을 찾는다.

그에 반해 사회민주주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산업별 조직화와 중앙단체 교섭이 필요하며 따라서 대·중소기업 전체에서 비정규직 및 정규직의 노동조합 조직율을 높이는 연대의 강화에 해답이 있다고 본다.

동시에 최저임금 수준을 높이는 민주공화국의 국가개입주의(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보며, 또한 저임금 착취에 의존하는 중소기업 및 영세자영업의 경우 그들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산업고도화를 요구하고 그에 실패하는 경우 단계적으로 퇴출시키는 국가개입주의 정책(산업·기업 규제 및 지원 정책)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만 비정규직 및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차별적 임금의 문제 즉 1차 분배(즉 시장에서의 원천적 시장소득 분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자유 시장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해법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와 민주공화적 국가개입을 중시하는 다양한 사회민주주의적 해법이 동원되어야 한다.

– 생산적 투자와 양질의 일자리 확대를 통한 1차 소득 분배의 개선

또한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자본 및 금융시장, 기업지배시장에서 ‘시장 규율’(시장적 통제) 원칙을 강화하는 내용의 재벌개혁을 수행하게 되면 그간 재벌가문 및 대기업들이 독식해온 시장소득 분배가 개선되어 마치 하청 중소기업 및 노동자에게 유리한 방향의 시장소득 분배가 나타날 것처럼 말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완전한 허상이다. 그러한 내용의 재벌개혁은 오히려 자본 및 금융시장 투자자들 즉 국내외 재테크 자산계급에 – 따라서 총자본에 – 더욱 유리한 방향으로 시장소득 분배가 일어나도록 할 뿐이다.

오히려 주주자본과 금융자본, 외환금융시장을 민주공화국이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과 결합된 재벌개혁, 그리고 재벌 대기업들이 미래성장 산업에 대한 생산적 투자를 더욱 늘려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더욱 나서게 하는 재벌개혁이 되어야 총노동에 더 유리한 방향의 시장소득 분배(즉 1차 분배)가 일어날 수 있다.

동시에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므로, 재벌 가문과 금융자산 및 부동산 자산 재테크 세력 모두를 포함하는 부유한 자산소득 계급에 대한 고율의 소득 과세를 통해 소득의 재분배, 즉 2차 분배를 하여야 한다.

이처럼 주주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정책, 생산적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기 대기업 통제 장치, 조세를 이용한 재분배 정책 등의 종합적인 정책이 구사되어야 1차 분배와 2차 분배가 동시에 개선되어 분배의 정의가 구현될 수 있다.

– 저임금 착취 기업의 존재를 원천적으로 금지

자유주의자들은 또한 마치 대-중소기업간 원하청 거래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민주공화국이 규제하면 중소기업 및 영세기업에게 유리한 방향의 시장소득 분배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 이들 기업에서의 저임금 착취가 원천적으로 사라질 것처럼 말한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매우 과장되어 있다. 아무리 대기업-중소기업간 원하청 거래가 공정 경쟁, 공정 거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하는 경우에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을 민주공화국이 강력하게 규제하여 금지하지 않는 한, 저임금 착취에 의존하는 하청기업은 계속 나타날 것이며 그런 기업이 하청 거래 공개입찰 경쟁에서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따라서 원하청 거래에서 공정시장 질서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중소기업 및 영세기업에서 만연한 저임금 노동 착취를 원천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이며, 이를 위해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높이고 이들 기업의 노동자들을 포함하는 전국적 산별 노조를 구축하고 산별 단체교섭이 법률적으로 유효하도록 민주공화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개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총자본과 총노동간의 원천적 시장소득(즉 1차 소득)의 분배에서 총노동에 유리한 방향의 변화가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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