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의 축'이 될 정파를 만들다
    [아빠의 현대사-53]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그리고 전진
        2013년 02월 13일 09: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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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앞에 주어진 과제는 그간의 관성으로는 감당키 힘들 정도로 무거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제를 던지고 있는 현실은 우리의 나태를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아니 우리가 한 발 앞서 내딛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장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일을 시작하려면 그 주체가 있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이에 따라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을 혁신하기 위한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 이에 우리는 당과 노동조합,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노동해방사상에 동의하는 활동적 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조직을 건설할 것을 제안한다.” (2004. 11. 6. 전국조직 주비위 제안서 중에서)

    얼마 전 네 외할아버지 제사를 치르는데 친척들이 내게 묻던 말을 너도 혹시 들었을까?

    “자네 혹시 주사파는 아니지?”

    “경기동부 애들은 왜 그래? 무섭더라구”

    설령 들었더라도 십중팔구는 무슨 말인지 이해 못했겠다. 환갑을 넘기신 분들이 쉽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언론에 그만큼 많이 나왔기 때문이겠다. 더구나 보수언론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만 고르고, 선정적인 것만 골라서 왜곡하기에 운동 전체가 받는 타격은 크다. 네게는 얘기가 조금 어렵겠지만 지금 진행되는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읽는 데는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변화를 원하면 조직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조직을 만든다. 뭔가를 하기 위해서다. 낚시를 좋아하면 낚시동호회를, 축구를 좋아하면 축구팀을 만든다. 혼자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도 아마 몇 개인가의 모임에 속해 있을 것이다. 사회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혼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조직에 가입하거나 새로 만들기도 한다.

    어떤 러시아 혁명가는 “나에게 조직을 달라. 내가 지구를 들어 보이겠다!”며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조직들이 순기능만을 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조직이기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정파(政派)라고 들어 보았을까? 정치운동에 있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노선을 가지고 만든 모임을 말한다. 특히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좌절 이후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서 해야 하는지를 두고 입장과 노선이 달라지면서 많은 사건들이 발생한다. 아주 치열한 토론이 있었다.

    이제 그 얘기를 하도록 하자. 왜냐하면 운동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 사람들이 모인 것이 정파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안에서 발생하는 각종 의견대립의 이유를 살펴보지 않으면 조선일보류의 보수언론의 질 낮은 여론공세를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민주노동자전국회의, 현장실천노동자연대, 혁신연대, 혁신네트워크, 현노회, 공공현장, 현장실천사회변혁노동자전선, 변혁산별, 사회진보연대, 해방연대,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 노동자정당추진회의, 평등연대, 사이버노동대학” 등등.

    이 모든 게 무엇일까? 현재 노동운동 안에 있는 각 조직 혹은 정파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도 어렵고 되게 많지? 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차이는 무엇일까?

    정파는 악의 축이다?

    누군가는 현재 노동운동이 어려운 것은 ‘정파’때문이라고 한다. 정파를 모두 해산해야 한다고도 한다. 심지어 정파가 ‘모든 악의 축’이라고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그동안 보여 준 정파들의 모습 때문이겠다.

    “정파간 대립을 볼 때 희망을 잃게 된다.”

    “목표가 같다면 발목잡지 말고 같이 가야하는 데 정파 때문에 안 된다.”

    “노동철학이나 정책을 가진 정파는 없고, 선거조직만 난무하니 조합원들이 정파얘기만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현재 정파로부터 아무런 희망도 발견할 수 없다. 하루빨리 해산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다.”

    많은 사람들의 얘기다. 실제로 정파가 자기 고유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편을 가르게 하거나 선거조직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 동안의 노동운동사 속에서 분파운동은 긍정적 모습보다는 부정적 모습을 많이 보여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왜 ‘전진’이라는 정파를 만들었고, 결국 해산하게 되었을까? 그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과거와 현재의 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을 아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패거리 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

    사실 ‘전진’을 만들기 전에 노동운동에는 ‘평등회의’라는 것이 있었다. 당시 민주노총 안에서 소위 ‘중앙파’라고 불리던 우리는 그동안의 인맥과 경향적 동질성을 넘어서는 조직을 만들고자 했다. 단병호, 양경규 등 몇몇 노동운동의 지도자 등 인물을 중심으로 막연하게 무리를 지어 활동해온 방식을 반성하고, 일정한 조직의 목표와 규율을 중심으로 한 조직운동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쉽게 말해 패거리주의를 넘어서자는 취지였다.

    전진2

    전진 총회의 모습(자료사진)

    “운동에 책임있게 다가서기 위해서 정체성을 갖는 조직운동으로 전환,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비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끼리끼리 모여 의논하는 것을 넘어 일종의 규율과 질서를 가진 모임으로 발전하고자 했다.

    당시 중앙파에 대해선 ‘권력에 집착하는 집단’ 혹은 ‘조직적 발전보다는 선거 중심의 활동을 전개’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걸 넘어서고자 하는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하나의 ‘이념과 노선을 가진 조직’을 만들지 못한다.

    당시 노동운동에는 크게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로 분류되는 세 부류의 정파가 있었다. 딱 맞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혹은 좌파, 우파, 중앙파로 부르기도 했다. 중앙파는 국민파와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방침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했고, 노무현 정부가 만든 노사정위원회의 참여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이 달랐다. 반면 현장파와는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같았고,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달랐다.

    민주노총 4기 임원선거

    2004년 1월 16일 민주노총의 4기 임원선거가 실시된다. 중앙파는 좌파연대를 위해 위원장 후보를 내지 않고 사무총장 후보만 내서 연합한다. 97년 국민승리 21의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선거 기조에 대해 반대하면서 ‘노동자의 힘’이라는 별도 조직을 만든 진영과의 연대를 모색한 것이다.

    그러나 유덕상-전재환후보는 국민파의 이수호-이석행후보 진영에 지고 만다. 이수호 후보는 전국교직원 노조 출신으로 내가 민주노총에 있을 때 사무총장을 하셨고, 신일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신일고등학교 선생님이셨다. 지금도 선생님으로 부르는 이유다. 지난 2012년 서울시교육감 후보로도 출마하셨었다. 당시 민주노총 선거에서는 서로 반대진영에 있었던 셈이다.

    당시 나는 “좌파연대를 한다면 이후를 위한 서로간의 약속을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3년 안에 달리 발행하고 있는 기관지의 통합을 약속한다든지, 이후 지속적인 연대를 통해 정치방침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한다는 등등의 서로간의 약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칫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길게 보고 ‘하나가 될 약속’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안 되었고, 그렇게 나뉜 흐름은 지금도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들은 2007년 4월 약칭 ‘노동전선’이라는 별도의 조직을 만든다. ‘현장실천 사회변혁노동자전선’이라는 이름을 줄인 것이다. 그 조직을 만들 때도 모임의 핵심인 사람들을 만나 당시 존재하고 있었던 ‘전진’과 같이 논의하자고 했다. ‘전진’을 배제하면 또 다른 갈등과 혼선이 생길 것이니 같이하자고 했으나 거부당했다.

    네가 알 듯이 2012년 대통령선거에는 무려 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진보정당 혹은 노동자후보를 내세우며 출마했다. 언뜻 보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 이런 배경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 이후 ‘평등회의’는 정치노선이 같았던 국민파와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된 것에 대한 내부 이견, 금속노조의 중심이었던 단병호, 심상정의 국회의원 당선 등을 이유로 활동이 소강상태에 이르다 결국 해산하고 ‘전진’으로 결합한다.

    내 컴퓨터에는 2004년 7월경 쓰다 완성을 못 본 ‘평등회의 해산문’이라는 게 남아 있다. 완성하지 못해 발표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그게 있었는지도 모를 수도 있겠다. 네게는 매우 생소할 수밖에 없는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계속 걸린다. 그러나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조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갈라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현재의 운동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즐겨 이렇게 말한다. “문제의 핵심은 정파에 있지 않다. 오히려 정파가 아니라 권력의 향방만을 쫓고, 인맥과 친분에 끌려 다니는 게 더 문제다. 이념적 지향과 전략을 가진 제대로의 정파를 만들고, 각 정파들이 대안과 정책을 중심으로 경쟁하고, 사람들이 평가하는 속에서 건강한 정파간 대립과 협력이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전진’을 함께 만든다.

    노동조합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의 통합적 모색

    ‘전진’은 처음부터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혁신방안을 중심에 두고 활동을 전개한다. 한편의 사람들은 노동운동을 주로 했던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은 정당운동을 주로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각자가 자신의 운동영역에서 이루어낸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자는 취지에서 의기투합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안에서 점차 힘을 키워가는 우파들의 패권적 태도에 대한 위기의식도 있었다. 노동운동을 한 사람들의 경륜과 당 운동을 한 상대적으로 젊은 후배들의 패기가 어울러졌다. “운동가의 삶이라는 것은 실패한 역사와 부정적 경험이 있더라도 성공할 때까지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 아니던가? 모래사막에 씨앗을 티우 듯 불굴의 의지로 현실을 변화시켜 내는 것, 바로 그것이 운동이다.”라고 서로를 다독였다.

    노무현 정부는 소위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내세우면서 87년 이후 형성된 노동운동의 주요 동력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필수유지업무제도 도입 등으로 공공부문의 파업권을 제약하고, 대공장 이기주의라는 이념적 공세를 펼치고,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사정 기구와 공익위원을 확충 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이에 맞서 국회의원 10명을 가진 민주노동당을 진보정당답게 강화하고, 민주노총을 혁신해야 했다.

    십시일반으로 회비를 모아 마포 공덕동에 사무실을 구하고, 정기적인 토론회와 잡지를 발행하고,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2005년 8월 결의한 ‘전진의 조직원의 자세와 태도’라는 활동 강령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우리는 활동가이기 전에 하나의 인간이다. 우리는 어떤 소설 속 멋진 주인공 같은 강철의 투사가 아니라, 고뇌하고 머뭇거리는 보편적 인간이다. 개인의 삶을 보다 안락하게 살고픈 욕구, 돈과 명예와 유희에 대한 욕망도 어느 한 구석엔가 지니고 있는 인간이다.”

    “다른 정치노선은 결코 타도대상이 아니다. 그들도 운동역량의 한 부분이다. 그들도 자신을 헌신하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정치노선은 그 주체들에 의해 스스로 극복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정치노선이나 활동가를 비판하는 것의 최종목적은 그들을 견인하고 함께 하기 위함이다.”

    그런 운동을 시작한 셈이다.

    필자소개
    이근원
    대학 입학과 동시에 전두환을 만나 인생이 바뀜. 원래는 학교 선생이 소망이었음. 학생운동 이후 용접공으로 안산 반월공단, 서울, 부천, 울산 등에서 노동운동을 함. 당운동으로는 민중당 및 한국사회주의노동당을 경험함. 울산을 마지막으로 운동을 정리할 뻔 하다가 다행히 노동조합운동과 접목. 현재의 공공운수노조(준)의 전신 중의 하나인 전문노련 활동을 통해 공식적인 노동운동에 결합히게 됨. 민주노총 준비위 및 1999년 단병호 위원장 시절 조직실장, 국민승리 21 및 2002년 대통령 선거시 민주노동당 조직위원장 등을 거침. 드물게 노동운동과 당운동을 경험하는 행운을 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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