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건대에서 TV 보던 큰 아들
    [어머니 이야기-8]애들 둘이라고 셋방 구하기도 어렵던 때
        2013년 02월 12일 02: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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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1960년 여름에 첫아들을 낳고 나서 서울에 올라와 광주리장사를 했다. 날마다 500원씩 새마을금고에 돈을 넣었다. 어머니는 돈을 모아서 전셋집을 얻었다.

    시골에서 작은아버지가 올라왔다. 작은아버지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혼례를 치른 뒤에 먹고살 길을 찾아서 아내는 시골에 놔두고 혼자 왔다. 작은아버지는 방 한 칸에서 아버지 어머니랑 같이 살았다. 방이 좁아서 다리를 벌리면 옆 사람이 닿았다. 새색시가 젊은 시동생이랑 같이 한 방에서 잠을 자니 이웃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작은아버지는 따로 방을 얻을 돈이 없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일주일씩 바꿔 가면서 잠을 잤다. 일주일은 아버지가 밤에 일을 하고 또 일주일은 작은아버지가 밤에 일을 해서 번갈아가며 잠을 잤다.

    어느 날 작은아버지가 화장실에서 신문쪼가리를 가지고 오더니 제약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보증 서 줄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가 다니는 종이공장 사장과 사장 친구가 보증을 서 주었다. 작은아버지는 제약회사에 다니려고 헌 자전거를 한 대 샀다. 며칠 뒤 그 자전거를 누군가 훔쳐갔다.

    어머니가 둘째형을 가졌다. 그래도 광주리장사를 했다. 등에 업는 큰아들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허리끈을 꽉 맸다. “아주머니 그러다 아기 나오겠어요!” 어머니 아랫배가 불룩한 것을 본 사람들은 어머니가 너무 허리끈을 꽉 매서 뱃속 아기가 아래로 나오겠다고 걱정을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광주리장사를 이어갔다.

    1962년 12월이다. 어머니가 둘째형을 낳으려 했다. 그날은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같이 잠을 자야했다. 아버지는 작은아버지 보고 “야! 태경아, 너 형수가 아기 놀려 한다. 너는 아래 닭장주인집 가서 하룻밤 자라” 했다. 작은아버지는 밤에 이불을 끌어안고 집을 나갔다.

    어머니는 둘째형 은영수를 아버지 도움만 받고 낳았다. 탯줄 끝 양쪽을 꽉 묶고 발가락 사이에 탯줄을 걸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탯줄이 아기 뱃속으로 들어간다. 어머니는 미리 소독한 가위로 탯줄을 잘랐다. 어머니 나이 13살에 남동생 해산바라지 했던 일이 당신 아이들 낳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큰형을 낳을 때는 고향 친정어머니가 도와주었지만 둘째 셋째 막내아들은 모두 어머니 혼자 낳았다.

    어머니는 밤 11시쯤 둘째형 은영수를 낳았다. 배가 고파서 아버지에게 밥을 해오라고 했더니 아버지는 새벽 4시가 되서야 밥이랑 뭐랑 이상한 것을 해 왔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고도 다음날부터 시동생 밥을 해 주고 기저귀도 빨았다. 어느 날 작은아버지가 물었다. “왜 형수는 아기를 낳았으면서 밥도 안 먹고 미역국도 안 먹어요?” “아니, 삼촌도 밥을 안 먹고 자는데 내가 어떻게 밥을 먹어요.” 방이 워낙 좁으니까 작은아버지가 잠을 자면 어머니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아침과 저녁밥만 먹었다. 작은아버지가 밤에 일을 하고 낮에 잠을 자려고 누워있으면 어머니는 겨우 다리를 뻗고 벽에 기대고 앉아만 있었다.

    큰형은 텔레비전 보기를 좋아했다. 주인집 마루에 엉덩이를 겨우 걸치고 앉아서 손바닥만 한 창문으로 텔레비전을 훔쳐봤다. 어머니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 날도 추운데 방안에 들어와서 텔레비전을 보라고 하지 않는 주인집이 미웠다.

    또 하루는 어머니가 일을 나갔다 저녁 5시쯤 집에 돌아오니까 둘째형만 있고 큰형이 안 보였다. 어머니 아버지는 정신이 나가서 울부짖으며 큰아들을 찾았다. 섭씨 영하 20도가 넘고 밤 11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들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모습을 본 어느 가겟집 할머니가 따뜻한 물 반 컵을 주었다. 어머니는 그 물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어머니는 그 때 따뜻한 물을 준 할머니를 몇 십 년이 지나도 잊지 못했다.

    그렇게 집 둑길을 헤매며 아들을 찾고 있는데 저쪽에서 아들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큰아들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두 손으로 뒷짐을 지고 어깨를 앞뒤로 건들거리며 신이 나서 걸어왔다. 그 때 큰형 나이가 4살쯤 되었다. 그 때는 1960년 초반이라 겨우 흑백텔레비전이 동네에 한두 집 있을 때였다.

    흑백텔레비젼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텔레비젼을 보는 모습(자료사진)

    큰형은 그 동네 ‘재건대’에 가서 텔레비전을 보고 왔다. 재건대는 재활건설대 줄임말이다. 등에 소쿠리를 이고 다니며 다른 이들이 버린 종이, 빈 깡통, 빈 병을 모아서 삶을 꾸리는 사람들이다. 요즘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방이 넓고 따뜻해서 큰형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껏 텔레비전을 봤다.

    큰형은 어머니를 보자. “엄마! 왜~”하고 잠깐 어디 나갔다 들어온 아이처럼 말을 했다. 어머니는 기가 막혔지만 아들을 찾은 반가움에 혼내지 않았다. 그 뒤에 어머니는 없는 돈에 헌 흑백텔레비전을 한 대 샀다.

    어머니는 큰형은 늘 업고 다니며 골목장사를 했다. 집에는 둘째형이 혼자 놀았다. 광주리장사를 하지만 동네 가까운 곳에서 먹을거리를 팔고 다녔기에 자주 집에 와서 아기가 잘 있나 보았다.

    한 날은 집에 돌아와 보니 둘째아들이 옆집 홍씨 아주머니 등에 업혀 있었다. 어머니 보다 한두 살 어린 사람인데 자식 없이 사는 젊은 부부였다. 그날 둘째형은 똥을 누고 똥을 먹고 똥을 손으로 온몸에 바르며 놀았다. 홍씨 아주머니는 아기를 씻고 방을 닦아 주었다. “내 아들, 내 아들~” 하면서 둘째형을 업어주면 어머니는 “그래 아들 해, 아들 해” 하고 가깝게 지냈다.

    아무튼 큰형은 늘 어머니가 업고 다녔지만 둘째형은 혼자서 잘 놀았다. 밥을 해 놓고 가면 혼자 먹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둘째형 보고 ‘영감’이라 불렀다.

    어느 날 둘째형이 장사를 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집 앞에서 가만있었다. “어이, 영감! 지금 뭐 해?” “나, 집 지켜요.” “야이, 이 영감아, 이 집이 너희 집이냐. 집을 지키게.” “그래도 집 지켜요.” 그렇게 순했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둘째형은 지금껏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부모 말을 잘 따랐다고.

    어느 날 주인집은 전세를 월세로 바꾼다고 나가라고 했다. 집을 얻으려고 돌아다녔지만 아이가 둘이나 있다고 방을 내 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겨우 동네 둑길 밑에 방을 얻었다. 방을 주지 않자 아이가 하나 라고 했다. 그 집이 그 동네에서 제일 싼 집이었다. 근데 전세보증금을 주인이라고 속인 세를 사는 사람에게 주고 말았다. 그 사람은 그 돈을 받고 날랐다.

    하루는 집에 어떤 낯선 남자가 와서 집 마루에 앉았다. 어머니가 밥도 해 주었다. 시골에서 쌀이 올라왔으니 찾아서 주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앞에 걷고 뒤에서 그 남자가 따라갔다. 한참 가다 뒤를 보니 그 사람이 안 보였다. 아버지는 그 사람이 도둑 같다고 집에 알렸다. 그러고 며칠 뒤 한 밤 중에 진짜 도둑이 들었다. 양은 냄비와 숟가락 젓가락 곤로 같은 얼마 없는 세간을 몽땅 훔쳐갔다. 어머니는 빈털터리가 돼서 그 집을 나왔다.

    전세금도 받지 못했지 살림살이는 아무 것도 없지. 그마나 모아 둔 돈으로 지금 살던 곳에서 걸어서 30분쯤 떨어진 휘경동 위생병원 가까이에 방 한 칸을 얻었다. 이사라고 오는데 살림살이는 아무 것도 없었다. 수레에 아버지가 다니는 종이공장에서 버린 종이 찌꺼기만 잔뜩 들어 있었다. 주인집은 아주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땐 작은아버지도 따로 나가 살았다. 어머니는 힘차게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 그곳에서 살면서 돈을 많이 모았다. 살림이 늘어나니 사는 게 재밌었다. 어머니 뱃속에 내가 들어섰다. 어머니는 그 때 돈 9만 원으로 다시 처음에 살았던 휘경동으로 와서 집을 샀다. 무허가 판잣집이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처음 당신 돈으로 산 집이라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곳에서 내가 태어났다. 1965년 음력 6월 18일. 내 이름은 은종복.

    2013년 2월 11일 월요일 추운 날씨에 감기에 걸려 몸이 괴로운 날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필자소개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 93년부터 일하고 있다. 두가지 꿈을 꾸며 산다.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날과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날을 맞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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