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진보당의 죄 진보신당의 무능
        2012년 06월 01일 10: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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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웬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면 놀랄 기사도 아닌 통합진보당 사태. 폭력 사태가 끝인 줄 알았더니 당원의 분신, 그리고 폭탄 설치 협박까지, 이제는 회기가 시작돼 김재연 등이 등원하면서 ‘종북좌파 몰아내자’는 시위대가 따라붙질 않나, 하루하루가 놀라운 일 투성이다.

    통합진보당의 미래야 이후 혁신비대위와 당원비대위 간의 싸움, 그리고 색깔론으로 덧칠하려는 보수정당과의 투쟁이겠지만, 통진당 때문에 제대로 스텝이 꼬여 버린 건 진보신당이다. 어차피 인지도도 낮고 국민들마저 두 당을 헷갈려하는 상황에서 뭐가 문제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진보진영 전체가 함께 매도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허나 문제는 그다지 간단치 않다.

    통진당 구당권파가 지은 ‘죄’는 진보진영의 이미지 추락을 넘어선다.

    첫번째 죄,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의 불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확대와 전면적 도입은 그간 진보진영 정치개혁의 숙원의 과제였다. 소선거구 중심의 현 정치 구조 안에서는 지역 중심주의를 벗어날 수도 없는데다, 국민을 제대로 대의하기 힘들다는 진보정당의 지적은 ‘독일식 정당명부제 전면 도입’이라는 정치개혁의 과제로 여전히 유효했다.

    사과하는 통합진보당 혁신비대위(사진=진보정치)

    이 제도가 도입되려면 정당의 투명한 운영과 국민적 지지와 관심이 필수적이다. 자신의 표가 올곧게 쓰일 것을 염원하는 국민의 격에 맞는 당 운영이 필수적이다. 헌데 통진당이 보여준 허술한 비례대표 관리 체계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무용론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제 진보신당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주장한다면 “너희들이 비례대표 후보를 어떻게 뽑았는지 국민이 어떻게 믿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보수정당의 비례대표 밀실 공천이 차라리 더 깨끗해 보이는 착시현상, 통진당이 만들어낸 첫 번째 가장 큰 ‘죄’다.

    두번째 죄, ‘민주주의의 화신’이 된 유시민의 화려한 재기 지원

    구 참여당 계열에게는 경기동부의 악행(?)이 그리도 놀라웠나 보다. ‘새진보통합연대’야 다 알고 들어간 것이라 굳이 놀랄 일도 없었다. 남양주 총선 후보 경선에서 그들의 집단 입당이 시작됐을 때 당무를 정지한 유시민 공동대표는 이후에도 이들의 악행에 칼을 빼어든 투사처럼 묘사됐다.

    진보신당에서 빠져나간 이들이 침묵할 때 유시민과 참여당 계열의 문제제기는 지금까지 이 문제를 파헤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침묵했던 새진보통합연대와 비교해 유시민과 참여당 계열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경기동부와 맞장 뜨는 용감한 집단’이 됐다.

    그리고 유시민은 이제 “구 당권파는 이석기를 지키기 위해 이정희를 버렸다”는 핵심을 까발리기 시작했다. 운동권들의 뒷담화에서나 되던 평가가 이젠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그것도 유시민의 입을 통해서.

    철새 정치인으로 이곳 저곳을 맴돌던 유시민은 이 사건을 통해 제대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경기동부의 악행 속에서 노무현 정부, 신자유주의 반노동 세력이라는 딱지는 점점 옅어지고 있다. 이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유시민’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참여당 계열의 노동관, 국가관이 변화하진 않는다. 그들의 민주주의는 ‘1인 1표’라는 투표 민주주의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지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의제를 확대시켜야 할 진보세력은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에 의해 형식적 민주주의에도 미달하는 세력으로 찍혀 버린 것이다.

    신자유주의자 유시민의 화려한 재기를 도와준 것, 통진당 구당권파의 두 번째 ‘죄’다. 그와 동시에 진보신당이 추구하는 ‘진보좌파정당’ 건설의 정당성과 설득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쯤에선 진보진영이 유시민을 받아줘야 하지 않냐’는 말이 솔솔 확산되는 것이다.

    세 번째 죄, ‘경기동부’만 축출하면 된다는 착시현상

    이석기가 실질적인 주주인 C&P와의 거래, 김재연의 ‘자신은 당당하다’는 인터뷰, 종북주의 논란, 그 안에서 진보진영은 ‘경기동부’만 통진당에서 축출하면 마치 대단히 민주적인 정당, 제대로 된 노동자 서민의 진보정당이 될 수 있다는 착시현상에 빠졌다.

    구 당권파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신들의 조직력과 열정으로 비례대표 앞 순번에 자신들의 후보를 배치되도록 노력했고, 쉽지 않은 국회의원 지역구 당선자도 배출했는데, 지금 상황은 선거부정의 모든 것을 자신들이 뒤집어 쓰고 있는 분위기가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권파가 달리 당권파인가? ‘당의 권력’을 잡고 있었기에 다른 정파들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인센티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당권에 집착했던 것 아닌가? 하지만 권력의 힘만큼 책임의 영역도 커지는 법이다. 그래서 그들의 ‘죄’는 씻어지지 않는다. 비례대표 1번 윤금순 후보가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함께 사퇴했다면 문제는 비교적 깔끔하게 해소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김재연, 이석기가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소위 ‘경기동부’ 세력만 축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일종의 착시현상이 생겼다. 김재연, 이석기가 사퇴한다고 하더라도, 설사 중앙당 요직에서 경기동부 세력이 모두 철수한다고 하더라도 통진당의 문제들은 해결된 것이 아니다. ‘의석 확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행태는 경기동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누군가는 지금 비난의 화살을 다 맞고 있는 경기동부의 방패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통진당 때문에 꼬여버린 진보신당의 스텝

    누구는 ‘통합진보당 분당의 가능성’을, 누구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가장 가능성이 적은 경우이지만 만약 구 당권파가 통합진보당을 나가 당이 쪼개진다면 가장 스텝이 꼬이는 것은 진보신당이다.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제휴’ ‘연립정부 구성’이라는 진보신당으로선 타협하기 힘든 문제가 제기될 것이고, 앞서 언급한 착시현상 덕에 진보신당은 또 당 통합의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역풍이 불 수도 있는 경우이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거대한 폭풍 앞에 진보신당의 앞날이 걱정스러운 것이 필자의 마음이다.

    폭풍 속에 흔들리는 진보신당호, 6인의 선장은 뜻을 모으라

    진보신당 재창당의 속도도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비관적이다. 여기서부터는 진보신당 내부 문제다. 노동계의 움직임과 진보신당 지도부가 어느 정도로 함께 보조를 맞추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또한 대표단의 정리되어 있지 않은 모습은 지금 진행 중인 전국 순회 간담회에서 중앙당, 안효상, 강상구, 김선아 명의의 4가지 문서가 당원들에게 제시되는 어이없는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다 보니 토론 결과도 ‘구체적 실천’ ‘당협 역량 키우기’ ‘당 정체성 확립’ 등 너무도 당연한 과제의 나열이다. 전국의 당원들이 지도부 얼굴 한 번 보자고 순회 토론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진보신당은 6개의 무지개가 아니라, 6명의 선장들이 서로 다른 곳으로 가자며 흔들고 있는 배의 꼴이다. 흔들리는 배는 더군다나 지금 같은 악천후에선 순항할 수도 없다. 누군가에게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등대는 더더욱 될 수 없다.

    진보신당 지도부는 하루 빨리 통일된 입장을 만들어야 한다. ‘당연하지도 않고’, ‘뻔하지도 않은’ 의제를 당원들에게 제시해달라. 당원들은 그것에 목말라 있다. ’10월까지 반드시 재창당을 완수한다’는 것이든, ‘진보신당 홀로 재창당은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이든 대표단이 통일된 입장을 제시하고 당원들에게 다가간다면, 어렵더라도 당원들과 함께 실질적인 재창당의 로드맵을 그리고 추진할 수 있지 않을까?

    통합진보당 사태로 진보 정치의 미래를 우려하고 있는 이들, 하지만 아직 진보정치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고 있는 이들이 ‘진보신당’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당원들도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진보신당 지도부가 역할을 해주기를 부탁한다. 당원들은 아직 ‘정당’이 아닌 ‘진보신당 재창당추진위’ 안에서 불안해 하고 있다.

    악천후로 흔들리는 배에서 극심한 멀미에 시달리면서도 당원들이 항해를 버틸 수 있는 것은 지도부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 믿음만큼 진보신당 지도부에게 책임의 몫이 있다.

    필자소개
    진보신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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