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시즘의 폭력에 맞선 '신앙적 저항'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본회퍼....메리 글래즈너의 [진노의 잔]
        2013년 02월 12일 10: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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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총을 든 사제(司祭)의 모습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더구나 그 총이 그냥 단순한 물리적 과녁이 아니라 천하와도 바꿀 수 없다는 사람의 생명을 겨누고 있다면, ‘총을 든 사제’의 모습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자기 모순이 아닐까? 사제가 살인을 꾀하다니, 뭇 생명을 중히 여겨야 하는 신(神)의 명령을 받은 성직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설사 그 대상이 잔혹하기 그지없는 악인(惡人)일지라도 신으로부터의 소임을 맡은 사제가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은 용서될 수 없는 범죄가 아닐까?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신앙적 기준과 윤리적 기준의 통합을 오랫동안 훈련해온 사람들에게는, 살인은 절대악(絶對惡)이며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신은 용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말 역사 속에서 총을 빼들고 악인을 암살하려 했던 사제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 불가피성을 신은 눈 감아줄 것인가? 이러한 무한 연쇄의 질문 속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가 존재한다.

    본회퍼

    본회퍼 목사의 모습

    <진노의 잔(The Cup of Wrath)>(권영진 역, 홍성사)은 나치에 저항하고 히틀러 암살 계획을 세웠다가 불발로 그치고 체포되어 사형 당한 본회퍼 목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일종의 실명(實名) 역사소설이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의 작가 메리 글래즈너(Mary Glazener)는 10년을 넘게 독일을 오가며 본회퍼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모으고 생존자들을 인터뷰하여 이 책을 헌정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녀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저자의 말」)라면서 이 책이 비록 픽션의 외양을 갖추고는 있지만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에 매우 충실한 실록(實錄)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소설’이지만 ‘역사’이고 동시에 ‘전기(傳記)’이기도 한 다중적 속성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본회퍼는, 잘 알려져 있듯이, 나치에 저항하다 서른아홉 살 나이에 순교한 목사이자 신학자이다. 그는 아버지가 베를린대학교 정신의학 및 신경의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베를린대학의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고,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여 베를린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를린대학 신학부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하였고, 미국 유니언 신학교에서 교환 학생으로 공부하기도 하였다. 그 후 귀국하여 베를린대학 신학 강사 및 세계교회협의회 간사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33년부터 나치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에 가담하였고, 변호사인 매형 한스 폰 도나니의 소개로 히틀러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단체를 알게 되면서부터 치열한 저항 운동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1943년 4월에 매형 부부와 함께 체포되어 테겔 육군 형무소에 수감되었고, 1945년 4월 9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사후에 <윤리학(Ethik)>(1949), <옥중서신(Widerstand und Ergebung)>(1951) 등 그의 대표 저작들이 출간되었다. 이러한 그의 선 굵은 생애가 이 책에서는 다양한 인물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부조(浮彫)되고 있는 것이다.

    2.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 대강의 골격은 다음과 같다. 제2차세계대전 무렵, 본회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명망 있는 신학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독일의 정세는 나치의 득세와 군림으로 인해 분열되어 있었다. 가령 친(親)나치의 입장에 있는 사촌 형 후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직 힘만이 독일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걸 (…) 우리는 하나의 통일된 제국으로 뭉치는 독일 부흥의 기로에 서 있어. 반드시 이루어내야 해! 이를 실현시킬 사람은 히틀러밖에 없어.”라고 말한다. 히틀러 외에는 현실적 대안이 없고, 그를 중심으로 독일 민족주의의 발흥을 꾀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피력한 것이다.

    진노의 잔

    하지만 본회퍼는 교회 개혁자들의 모임에서 “그러나 국가가 하나님의 법에 저촉이 될 때는, 무엇보다 이번 경우에는 한 민족 전체가 인종 차별로 피해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교회는 국가에게 권위의 한계를 상기시켜주어야 합니다.”라고 항변한다. 교회가 국가 권력의 부당성에 대해 전면적으로 항거해야 함을 외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신념과 행동 의지는 “이제 가야 할 길이 정해졌다. 고백 교회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고, 그 길 위에 놓여 있는 위험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기리라. 그에게 주어진 숙명적인, 피할 수 없는 특권이었다!”라는 표현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보여준 광기와 폭력성에 대해 신의 성전(聖戰)을 치를 태세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당시 독일 교회는, 히틀러를 옹호하는 ‘독일 교회’와 신 중심을 부르짖는 ‘고백 교회’로 분열되어 있었다. 본회퍼는 ‘고백 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목사로서, 그 반대편에 선 베를린대학 학장 헤켈은 그를 자신의 편에 끌어들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본회퍼는 신앙의 양심을 지켜 스위스 국경을 넘는 수많은 유대인에게 도움을 주는가 하면, 밖에서 일어나는 대전(大戰)의 참상과 독일 교회의 현실을 알리는 저항 운동을 지속한다.

    이때 그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라는 성경 말씀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생애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지킨다. 본회퍼는 그렇게 나치 정권의 특혜를 누리며 얼마든지 학문에만 전념할 기회가 있었지만, 신의 인도를 좇아 신앙의 양심을 지킨 것이다.

    결국 그의 도움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스위스 국경을 넘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고, 그가 평생 신념을 가지고 헌신했던 에큐메니컬 활동도 결실을 얻어간다. 그래서 교회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설교의 언어나 상아탑에 갇혀 있는 학문으로서의 언어가 아닌,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일어나 자신의 신앙과 신학의 표지(標識)를 행동으로 보여주게 된다. 그것이 결국 강단의 언어만으로는 나치에 저항할 방도가 없다고 판단한 후 내리게 되는 히틀러 암살 계획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여러 차례에 걸친 암살 시도는 모두 실패로 귀착되고 본회퍼는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된다. 그리고 종전을 목전에 둔 1945년 4월 9일, 히틀러의 특별 명령에 의해 본회퍼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이러한 일련의 저항, 체포, 죽음의 과정에서 본회퍼는 자신의 생각을 에버하르트에게 전하는 서신 형식으로 정리해 남기고 있다.

    만약 사람이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마음을 철저히 포기한다면, 결국은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부딪치는 삶의 현장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품 안에 던지게 된다. 그렇게 될 때, 거기서 자신의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오히려 이 세상의 고난을 짊어지고 세상과 함께 고통하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진실로 만나게 된다. 그때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의 그리스도와 함께 깨어 있게 된다. 생각하건대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회개이며, 이렇게 하여 참 인간이요 참 그리스도인이 된다.(예레미야 45장을 참조하기를!) 사람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고난을 당하며 동참하다 보면, 어찌 성공했다고 교만해지고, 실패했다고 좌절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생각은 본회퍼의 일관된 저항과 정결한 삶을 추동하는 근원적 힘이 되었다. 말하자면 불의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적 현장에서 스스로 감내하는 고난이야말로 신앙인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생의 형식이며, 그것을 신과 함께 감당하는 것 외에는 신앙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떠올리면서 본회퍼는 고통과 폭력 앞에 노출된 자기 조국 독일을 눈물 젖은 눈으로 응시한 것이다. 그 ‘눈물’의 결과가 허무와 감상(感傷)으로 귀착되지 않고, 저항과 신념의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본회퍼의 행동적 언어가 우리에게 남겨준 역사적 몫이다. 그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준 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언젠가 한번 자신의 생애 가운데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모든 일이 거꾸로만 돌아가고 있을 때, 이 땅의 모든 소망이 사라질 때, 저항할 힘도 없이 원수의 손에 넘겨질 때, 누구나 다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을 보고 만난 자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기한 방법으로 이 세상 한가운데 숨어 계시며, 이 세상에서 걸어나와 십자가로 향하시는지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씀하신 대로 “한시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고 우리에게도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나누도록 부르고 계십니다. 개인적인 필요, 개인적인 문제, 죄와 걱정, 자기 중심적인 사유와 관심을 벗어나서 예수님의 길에 동행하도록 부르십니다. 낮아짐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기는 하지만 사랑과 용서의 길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는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설의 신념과 의지가 본회퍼를 불굴의 저항적 초상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총을 든 사제’의 모습으로 역사에 남긴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폭력에 대한 ‘대항 폭력’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그것은 과연 정당 방위적 속성으로 인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도 폭력의 일환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인가?

    이처럼 본회퍼의 언어와 행동의 일관성은 아직도 근대적 과제를 산적해 놓고 있는 우리에게 단연 시사적으로 다가온다. <진노의 잔>은 우리가 불의에 눈감았을 때, 신의 ‘진노의 잔’을 피할 수 없다면서 그 잔을 용서와 화해의 잔으로 바꿀 것을 역사 속에서 요청하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신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하고, 언젠가 우리는 이 진노의 잔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셔야만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우리에게 동시대적으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제2차세계대전의 서막이 된 폴란드 전쟁의 참상을 지켜본 본회퍼의 어머니 파울라의 눈에 비친 이 ‘진노의 잔’의 형상은, 히틀러가 초래한 잔혹한 전쟁터에서 독일 청년들이 목숨을 잃는 동안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던 당시 독일 교회에 대한 쓰디쓴 고발의 은유이자, 현실의 고통 앞에 새로운 행동을 요청받고 있는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자기 고백으로 다가온다.

    본회퍼는 “두 말이 필요 없으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아니십니까?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만이 법을 재해석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 마지막 판단을 맡겨야 합니다.”라면서 교수형 틀 아래 무릎을 꿇는 순간에도 본회퍼는 멀리 철조망 너머 어둠이 가신 땅에 밝아오는 하느님 나라의 여명을 보았다. 그 여명에 대한 신념이 지금 독일 민족의 자기 반성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동시에 부끄럼을 모르는 제국주의 협력 세력에 대한 강력한 항체(抗體)로 존재하는 것이다.

    <진노의 잔>은 이처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을 사랑하고 기독교 신학과 교회를 지키려 했던 디트리히 본회퍼의 뜨거운 삶을 사실적으로 재구(再構)해낸 역작(力作)이자, 신앙의 참모습에 대한 유력한 질의록(質疑錄)이기도 한 것이다.

    3.

    최근 우리 사회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동양의 주변국은 물론 모든 타자들을 자신의 안으로 해소시키려 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전도된 오리엔털리즘’의 담론 체계에 대한 활발한 해석을 축적해가고 있다. 제국주의 협력자들에 대한 단호한 청산의 요청에서부터 그러한 요청의 정치적 음모를 고발하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그 담론적 편차는 무척 커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민족주의가 가진 불치(不治)에 가까운 동일성 집착이나 배타적 로컬리즘 혹은 모든 합리적 기제들을 약화시키는 과잉된 쇼비니즘의 여러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구체적 국면에서 폭력적인 자기 훼손의 행위들을 보여준 이들에 대한 폭 넓은 자기 반성을 치러야 한다. <진노의 잔>은 비록 역사의 구체적 국면은 다를지라도, 제국주의와 파시즘이 결합된 엄혹한 체제 아래서 한 지식인이자 사제가 보여준 행동을 통해 우리에게 이러한 반성의 목소리를 요구하고 있다 할 것이다.

    결국 <진노의 잔>은 공의의 신이 세상의 폭력에 대해 진노하는 것을, 그 폭력에 대해 눈감고 성전 안으로 유폐된 신앙에 대해 진노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신을 떠난 잔혹함, 교만함에 대해 그리고 불경건에 대해 신은 진노한다는 전언을 들려주고 있다.

    이처럼 <진노의 잔>은 파시즘의 폭력에 맞선 ‘신앙적 저항’의 역사적 국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증언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전기는 이명박 정부 이후 한국의 주류 교회가 걸어간 친자본주의적, 친정부적 태도의 역상(逆像)으로 우리에게 아프게 다가오고 있다.

     

    필자소개
    한양대 교수.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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