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에 짓는 한옥
    [목수의 옛집 나들이] 광주안씨 종택
        2013년 02월 11일 11: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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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

    나는 한옥목수다. 초보 시절에는 주로 한옥 살림집만 짓다가 2009년부터 문화재수리업체에 소속되어 문화재 보수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해에 “광주 안씨 종택”을 경기도 광주시 중대동에 새로 짓는데 참여했다.

    이번에는 현대한옥을 한다. 한옥이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으로 지은 집”이라고 되어 있다. 19세기 이전까지 우리나라에 있던 집과, 20세기 이후에 전통적 건축양식으로 지은 것만이 한옥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옥이라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만을 떠올리는데 이뿐만 아니라 초가집, 너와집, 굴피집 등… 선조들이 살았던 집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집들 중 전통 양식의 건축은 모두가 한옥인 것이다.

    21세기 한옥

    현대한옥은 전통한옥과 외양은 거의 흡사하다. 그렇지만 현대적 생활방식에 맞게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한옥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그런 진화의 결과로 전통한옥과 21세기 한옥은 분명 다르다. 지금부터 이 둘의 다른 점은 무엇인지와 그 이유, 바뀐 형태 등에 대해서 살펴본다.

    허1

    2012년에 지은 광주안씨 종택(경기도 광주시 중대동 소재)

    첫째는 난방이다. 예전에는 구들을 놓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난방을 했다. 아주 추운 겨울에는 아궁이 숯을 화로에 담아서 쬐는 정도였다. 지금은 전기, 가스, 석유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적 난방 설비를 사용한다.

    간혹 구들을 놓고 그 위에 현대적 난방 설비를 추가하는 경우도 있는데 설치비가 이중으로 드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여러 면에서 추천할 만하다. 집주인이 화목을 구하는데 시간과 체력이 충분 할 때는 아궁이에 불을 넣고, 그렇지 못할 때는 보일러를 가동시키면 된다.

    기와 모양의 태양열 집열판을 만들어 한옥의 외관은 살리면서 태양열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이용하는 기술개발은 앞으로의 과제이다.

    둘째는 벽체의 단열 강화이다. 기둥과 인방재 사이에 중깃이라는 가는 막대기를 세로로 받쳐대고 대나무나 삼대, 싸리나무 같은 얇은 부재를 가로로 엮어 흙벽을 바르는 것이 전통 방식이다.

    흙벽의 열전도율은 0.2이고 현대적 단열재의 열전도율은 0.02~0.03밖에 되지 않는다.(열전도율이 높을수록 열을 잘 전달한다. 즉 열전도율이 높을수록 단열이 잘 안 된다) 현대적 단열재는 단열효과가 흙벽보다 7~10배 정도 좋다. 흙벽 사이에 단열재를 넣거나 단열이 우수한 소재만으로 구성한 벽체는 겨울에 춥다는 한옥의 단점을 없애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셋째는 창호다. 나무는 습하고 더운 여름에는 팽창하고, 건조하고 추운 겨울에는 수축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여름에 딱 맞는 문이라면 겨울에는 틈이 생기고, 반대로 겨울에 맞는다면 여름에는 문이 늘어나 잘 닫히지 않는다.

    나무는 계절별 수축률이 보통 0.5~ 1% 정도다. 여름에 딱 맞는 50cm * 100cm 크기의 문이 있다면 겨울에는 문틀과 문 사이에 0.5cm~1cm 가량 틈이 생긴다. 이 경우 창호의 총 넓이는 500㎠ 이고 틈의 넓이는 작게 잡아도 75㎠ 나 된다. 75㎠라면 한 변이 8.6cm인 정사각형의 넓이인데 문을 닫아 놓아도 팔뚝이 드나들만한 구멍을 나 있는 것과 같다. 바깥에는 여닫이문, 안쪽에는 양면에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까지 이중, 삼중으로 문을 설치한 좋은 집도 겨울이면 바람이 숭숭 들어와 방바닥은 따뜻하나 아랫목에 둔 그릇에 물이 얼었던 것이다.

    넷째는 화장실이다. 우리나라 건축은 비슷한 용도의 공간을 뭉쳐서 하나의 건물에 배치하고, 용도가 완전히 다른 공간은 건물을 따로 짓는다. 이는 우리나라 건축배치 원칙의 하나인데 “채분리”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하나의 커다란 건물에 다양한 용도의 공간을 모두 두었던 것과 확연하게 구별된다. 우리나라 저택은 용도와 신분적 질서에 따라 크고 작은 여러 채의 건물로 되어 있고, 서양의 저택은 하나의 커다란 건물에 다양한 용도의 공간들이 나뉘어 있다.

    전통건축에서 이렇게 “채분리”를 하다 보니 현대 생활에 가장 불편한 것이 화장실이다.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말은 근대이전 위생의 관점에서는 아주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수세식 화장실의 보급으로 위생의 문제가 해결된 지금, 생활공간과 위생공간이 먼 것은 너무나 불편하다.

    그래서 20세기부터 화장실을 실내로 끌어 들이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였고, 이제는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 한옥에서조차 창고 등을 화장실로 개조해서 사용하는 실정이다. 화장실만큼은 “채분리”가 아닌 하나의 생활공간 안에서의 분리로 이미 자리 잡았다.

    다섯째는 부엌이다. 부엌은 신발을 신고 마루나 방을 내려가야만 했었다. 같은 건물에 있었지만 생활 방식이 달랐던 공간인 부엌을 같은 높이의 실내로 들였다. 부엌에서 조리를 위한 열원도 온돌 아궁이에서 석유나 가스, 전기등으로 바뀌었다. 수도의 보급 및 설치로 우물가에서 물을 떠오는 수고로움은 오래전부터 옛말이 되었다. 부엌에는 냉장고나 식자재의 수납공간도 있어 광의 필요성도 적어졌다.

    法古創新 그 현장을 보자!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 방식인 문화재 보수나 복원도 중요하다. 동시에 현대적 이기를 접목한 한옥, 현대인의 일상생활이 가능한 한옥을 짓는 것도 전통 계승의 한 줄기이다. 이것도 法古創新이 아닐까. 여러분께 21세기 한옥 건축 과정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소개한다.

    허2

    치목 : 나무를 자르고, 깍고, 파고, 대패질하여 다듬는 일

    과거에는 원목에서부터 시작했으나 지금은 제재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기에 수월해졌다. 하지만 한옥의 모든 부재는 규격화되어 있지 않기에 목수가 직접 자르고, 깍고, 파고, 대패질해야만 한다.

    허3

    지정 : 건물을 세우기 위해 땅을 다져 지반을 만드는 일

    지반이 단단할 경우에는 바로 집을 짓지만 반대일 경우 땅을 파내고 다져야만 했다. 여럿이 함께 땅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을 “달고질”이라 한다. 요즘에는 철근콘크리트로 기초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허4
    주초 : 기둥을 하중을 지반으로 전달하는 석재

    기둥이 세워 질 자리에 주초를 놓는다. 주초는 기둥하부가 땅과 직접 접촉을 막아 기둥이 썩지 않게 하는 역할도 한다.

    허5
    목부재 조립1 : 기둥세우기

    입주(立柱)라 한다. 정확히 수직으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기둥과 주초사이에 숯과 소금을 넣기도 한다. 소금과 숯은 기둥을 해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허6
    목부재 조립2 : 기둥상부 부재 결구 현황

    수직부재인 기둥 상부에 사방으로 홈을 파서 수평부재인 보와 도리를 결구한다. 다양한 각도와 치수로 가공된 부재들이 서로 잡고 있어 못이나 철물을 쓸지 않더라도 결구가 튼튼하다.

    허7
    목부재 조립3 : 종도리까지 결구된 현황

    이 집은 한겨울에 치목하여 초봄에 조립했다. 조립된 나무가 봄 햇살에 잘 마르고 있다. 나무는 마를 때 비틀리고 터지는 것이 원래 성질인데 이렇게 집을 짜놓으면 부재들끼리 물고 있어 비틀림이 적다.

    허8

    목부재 조립4 : 서까래 걸기

    건물 중앙부분은 처마와 직각인 평서까래가, 귀부분에는 부채살처럼 펼쳐지는 선자연이 걸린다. 선자연 설치는 쉽지 않기에 목수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허9
    목부재 조립 5 : 개판 깔기

    서까래 위를 덮는 판재를 개판이라 한다. 예전에는 개판과 같은 판재를 켜기가 매우 어려워서 개판을 설치한 건물은 궁궐이나 관청 등 극히 일부에 한정되었다.

    허10
    지붕단열 : 예전에는 없었던 일이 단열을 위해 추가되었다.

    개판을 깐 지붕위에 방수포와 단열재를 시공하여 지붕의 단열을 강화하였다. 단열재 위에 다시 합판을 깔고 흙(보토)을 얹어 기와를 잇는다.

    허11
    기와이기 : 기와는 전통방식 그대로 와공들이 직접 잇는다.

    기와나 흙을 지붕위로 올리는 데에만 크레인을 제한적으로 이용한다. 자연스런 기와지붕의 곡선을 잡아내는 게 와공의 실력이다.

    허12
    기와이기 완료 : 목구조 결구 후 기와공사 부터 마쳤다.

    집의 형태는 잡혔으나 전체 공정의 40% 정도 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비 걱정 없이 집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한다.

    허13
    건물바닥 다지기 :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 바닥은 마사토, 참숯, 소금을 다져 만들었다. 지면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냉기를 막기 위해 단열재-비닐-기포콘크리트-참숯을 깔았다. 참숯, 좋기는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허14
    황토미장 : 참숯위에 황토와 모래를 섞어 미장하여 방바닥을 마무리한다. 보일러 시설이 필요한 부분은 보일러 배관을 깔고 마감한다.

    허15
    벽체 : 전통방식이 아닌 현대적 소재로 만든 벽체이다.

    바깥부터 설명하자면 [회벽-방수포-합판-단열재-시멘트보드-대나무 외엮기-흙벽-한식벽지]의 순서로 시공하였다. 현대적 소재를 사용하더라도 사람이 직접 접하는 실내는 흙벽을 바르는 게 몸에 좋다.

    허16
    기단설치 : 기단은 처마선보다 약간 안쪽으로 들여 설치한다.

    기단은 건물 기초를 할 때 동시에 설치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면 일하는데 너무 불편하기에 건물이 거의 완성되어갈 즈음에 하는 것이 좋다.

    허17
    담장 쌓기 1 : 건물에 대한 일이 거의 마무리 되는 즈음에 담장공사를 시작한다. 담장의 기초는 돌로 해야만 빗물에 담장이 무너지지 않는다. 담장 사이에 있는 일각문은 담장보다 빨리 세워야 한다.

    허18
    담장 쌓기 2 : 아주 고급스런 와편담을 쌓았다. 암기와로 수평 줄눈을, 수키와로 원형 문양을 넣는다.

    허19
    담장 쌓기 3 : 기와 조각으로 담장속에 福자를 새겨 넣었다. 팔작지붕의 합각벽에는 광주 안씨의 廣자와 安자도 새겨 넣었다.

    허20

    쪽마루 만들기 : 쪽마루를 덧달아 내고 있다. 쪽마루의 동자기둥이 기단위에 서야 하기에 기단이 완성된 다음에 설치한다.

    허21
    창호 달기 : 나무로 만든 시스템 창호의 모습이다.

    창호지 뒤에는 두겹 유리가 있다. 시스템 창호지만 모든 부재는 인공건조 후 압착한 나무라서 거의 수축하지 않는다. 철물은 예전의 것과 거의 같다. 한식 시스템 창호는 전통창호와 외양은 거의 같으나 단열 및 방음 성능은 훨씬 좋다. 소량 주문생산이라 가격이 무척 비싼 게 맘이 아프다.

    허22
    완성된 모습 1 : ㄷ 자형 안채의 모습

    마당에 비친 처마 그림자선이 좋다.

    허23
    완성된 모습 2 : 안채 내부

    종손이 사는 종택이라 제사가 많아 일반적인 경우보다 대청을 넓게 잡았기에 시원한 느낌이다. 노출된 목부재가 천장의 장식이다.

    허24
    완성된 모습 3 : 협문을 들어서며 본 광주안씨 종택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난 좁은 통로사이로 종택의 옆모습이 보인다.

    낙숫물이 떨어지는 땅이 파이지 않도록 콩자갈을 깔아 마당에도 처마선이 보인다. 담장 문양도 다채롭다.

    허25

    완성된 모습 4 : 바깥에서 본 모습

    나지막한 자연석 석축위에 일자형 문간채를 겸한 사랑채가 있다. 건물의 오른편이 사랑방과 사랑마루다.

    허26
    완성된 모습 5 : 사랑마루

    아기자기에게 짜인 난간과 네짝 들어열개문이 사랑마루를 장식하고 있다.

    뒤쪽으로 보이는 중첩된 안채의 처마선도 좋다.

    허27
    완성된 모습 6 : 사랑방에서 본 사랑마루와 바깥 전경

    사랑마루로 난 문을 모두 들어열개로 열어 놓았다.

    허28

    완성된 모습 7 : 집 뒤편 언덕에서 본 종택

    중첩된 기와지붕이 다른 건물들 사이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필자소개
    진정추와 민주노동당 활동을 했고, 지금은 사찰과 옛집, 문화재 보수 복원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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