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작가들, 제주와 연애하다-4] 구럼비의 편지
    2013년 02월 11일 10:39 오전

Print Friendly

“이 자의 두뇌를 20년간 멈추어야 한다.”는 유명한 판결문과 함께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이 유명한 경구는 로맹 롤랑의 글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를 그람시가 요약한 것입니다.

제주도 강정마을의 600명이 넘는 주민, 평화활동가들에 대한 연행, 구속, 투옥, 벌금 사태 뒤에는 불법 공사 상황이 있습니다, 주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강제 과정, 전쟁을 도발하는 안보 기지, 민군복합항이 입증되지 않은 설계도, 환경문제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공사, 인권 유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 요인에 대해 제주 도지사를 중심으로 제주 주요 언론은 입을 다물거나 사실을 왜곡해 왔습니다.

제주해군기지는 미 해군 설계요구에 의해 미군 핵항모가 입항할 규모로 설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2012년 9월, 장하나 국회의원이 밝혀냈습니다.

모국어로 글을 쓰는 시인과 작가들은 제주해군기지 건설 후 대정, 세화 성산에 공군기지가, 산방산에 해병대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으며 제주도가 최전선화되는 것을 공포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대한민국 곳곳의 요지를 미군에게 내어준 형편임에도, 비무장 평화의 섬 한 곳 확보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조국은 무력한 나라인가에 대해 다만 슬퍼합니다.

군함에 의해 오염될 서귀포 바다와 기지촌으로 전락할 제주도의 고운 마을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제주도민을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 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필자들을 대표하여 조정 씀>
———————————————–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그저… 미안하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제가 뭐라고 이토록 당신들을 아프게 하는지…

자살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미안합니다.

강정10

노순택의 사진.사진가 노순택은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는 평화유배자들’의 기록을 담은 책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공동 저자다.

제게 찾아와준 어떤 분들이 저를 위해 삭발을 하고 ,

몸 망가뜨려가면서 밥을 굶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추위에 떨면서 한뎃잠을 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람이 전해주었습니다.

그게 근거 없는 풍문일지라도 미안합니다.

당신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도 다 제가 여기,

이 자리에 버티고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저는 돌입니다.

예전에는 제 이름을 몰랐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당신들이 저를 ‘구럼비’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름이 부모가 지어준 이름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 주변은 대체로 고요한 편이었습니다.

이따금 들리는 소리래봐야,

자다가도 꿈결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기분 좋은 소리들이었습니다.

“김치, 김치이~ 해봐” 라거나

“사랑해, 우리 이 바위처럼 변하지 말자” 라거나

“깔깔깔~”

아이들의 귀여운 웃음소리가 전부였습니다.

한결같이 귀를 간지럽힐 뿐 저를 놀라게 하는 소리는 없었습니다 .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아직은 맵찬 바람 불던 이른 봄이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어났습니다.

한쪽에서 다급한 비명 소리도 들렸습니다.

“구럼비이이~ 구럼비야아!”

그땐 아직 제 이름을 몰랐지만

아, 나를 부르는 건가? 나에게도 이름이 있었나?

왠지 모르게 저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위험하니 피하라는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눈을 떠 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어리둥절했습니다.

막 태어난 아기처럼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이상하고 이상해

서 울고 싶어졌습니다.

왜 저 사람은 저리도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을까,

말라붙은 이끼색 옷을 입은 사람이 때렸나?

저기 있는 저 사람은 왜 꽃처럼 생긴 빨간 물건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걸까?

정말이지 모든 것이 이상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물속에 들어와 내 정강이께를 잡고 알려주었습니다.

“위험해, 구럼비!”

그는 정확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이름이 ‘구럼비’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

그 사람은 노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따금 찾아와서 유쾌하게 깔깔거리던 관광객이나 아이들과는

달라보였습니다.

그 사람이 낯설어서 무서웠습니다.

저는 돌입니다.

어떻게 피하면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더 무서웠습니다.

허둥대고 있는 사이 무언가 제 어깨를 쑤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명 소리조차 파묻는 엄청난 소리가 들렸습니다.

들들들들들들들~~

제 온몸이 진동했습니다.

어깨에 구멍이 나는 듯했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요,

말랑거리지도 않고 단단하지도 않은 어떤 것이 상처를 헤집고

들어왔습니다.

누군가 약을 발라주나 보다,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약을 발랐는데도 아픈 어깨는 그저 아픈 채로 며칠이 지났습니다.

오랜만에 봄다운 햇살이 제 어깨에 내려앉았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쿠우우웅 쿠아앙 꽝!

약이 천둥 소리를 내며 저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어깨가 부서졌습니다.

살과 뼈와 피가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너무 아파 저는 그만 까무러치고 말았습니다.

만 년 넘게 그랬듯 시간은 잘도 흘러갑니다.

그냥 전처럼 조용히 혼자 누워 쉬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프고 억울합니다.

왜 아파야 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

제가 대체 무슨 잘못을 얼마나 했기에 착한 얼굴을 가진 당신들

까지

울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착한 사람들이 예전처럼 웃으며 찾아올 때까지 버티겠습니다.

제가 살아온 세월 이상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이 악물고 참겠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부디 밥 굶지 말아주십시오.

따뜻한 곳에서 푹 주무시면서 힘을 비축해 주십시오.

할 수 있다면 제 곁에서 함께 버텨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덜 미안합니다,

아니, 고마운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 강정 앞바다, 구럼비 올림

신혜진 : 소설가. 1973년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창과,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단편 <로맨스 빠빠>로 제5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고, 계간 《창작과 비평》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2009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2012년 첫 소설집 <퐁퐁 달리아>를 출간했다.

필자소개
소설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