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을 움직인 4인의 경세가
    [책소개]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이정철/ 역사비평사)
        2013년 02월 11일 09: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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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생

    최근, 아니 훨씬 오래전부터 정치권의 화두는 ‘민생’이다. 민생 정책, 민생 탐방, 민생 행보, 민생 살리기…… “박근혜 정부 출범 초 국정 화두 1순위는 민생”, “2월 임시국회 원칙은 민생”이라는 굵직한 머리기사가 온통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민생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명사] 일반 국민의 생활 및 생계.”

    안민

    ‘안민(安民)’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뜻풀이되어 있다.

    “① 백성을 안심하고 편히 살게 함. ② 민심을 어루만져 진정하게 함.”

    ‘안민’은, 그러나 오늘날 뉴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어다.

    경세가: 經世家― 개혁가 혹은 실천가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한 단어인 ‘경세가’는 ‘개혁가’ 또는 ‘실천가’ 정도로 바꾸면 될까? 아주 틀리지는 않겠지만, 이들 단어에는 차이가 있다. 어찌 보면 ‘경세가’가 가장 포괄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경세가는 학자일 수도, 관료일 수도, 정치가일 수도, 개혁가나 실천가일 수도 있다.

    이 책

    조선시대 경세가인 이이, 이원익, 조익, 김육의 이야기다. 이들은 민생의 원칙을 안민에 두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부었다. 이 책은 옛날 사람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세가

    저자는 ‘책을 펴내며’의 제목을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로 뽑았다. 이 책을 읽으며 곱씹을 문구다. 역사에서 지나갔다가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없다는 점, 즉 과거에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는데 오늘날 정치권도 똑같이 민생 살리기를 외친다는 것! 그것을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이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가장 험난한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의 네 주인공 이이, 이원익, 조익, 김육이 살았던 시기를 도표로 보자. (※ 도표의 전체 모양은 책 8쪽에서 확인할 수 있음)

    국왕 재위년으로 보자면 중종 31년(1536)부터 효종 9년(1658)까지로, 이 시기 동안 큰 전란만 꼽아도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이 있었고, 이른바 정치적 쿠데타인 인조반정(1623)이 있었으며, 그 외에도 내란(이괄의 난, 1624), 전염병과 극심한 흉년(1643~1644, 사망자 40,200명)이 있었다. 참으로 험난했던 시기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조선 최고의 개혁인 대동법이 성립되어 백성들은 기존에 내던 세금의 1/5 정도만 낼 수 있게 되었다. 담세자들에게 세금의 80%를 줄여준 이 개혁은 혁명적인 상황에서나 이루어질 법한 규모지만, 조선은 이 조치를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 진행시켰다. 개혁 반대파의 파상적 공세를 막아가며, 그들을 이론적으로 설득하고, 자신의 생애를 걸고 이 개혁을 실행해간 것이 바로 위 네 사람이었다.

    이들은 모두 재상의 반열에 올랐으면서도 변변한 집 한 칸 없이 청렴하게 살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념인 성리학이 지극하게 구현된 ‘지치(至治)’를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말로만 민생을 ‘부르짖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직접 나서서 ‘실천’ 속에서 민생을 돌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마침내 대동법의 탄생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비로소 처음 만나는 그들,

    이 책은 ‘조선의 개혁’이라는 큰 주제하에 네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작은 평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평전 속에서 각각의 삶과 이념, 그 시기의 정치 상황과 사건 전개, 그리고 인물 관계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원익, 조익, 김육은 약간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이이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책에서 이이를 ‘처음 만나는’ 것처럼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세 인물의 삶과 죽음, 이들이 지향한 이념과 실천 활동, 그들과 엮인 사람들의 관계를 읽다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단편적이고 피상적으로만 이들을 알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율곡 이이, 탁월했지만 이해되지 못한 경세가

    저자 이정철은 이이를 ‘개혁의 좌표를 설정’한 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즉 사회제도적 측면의 경세론을 탄생시켰으며, 그 성과가 마침내 대동법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이이가 살았던 시대는 사림이 정치권 전면에 등장하던 때였다. 이이는 선조의 즉위와 사림의 정계 진출에 따라 이상 정치가 실현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이이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국정 경험이 없었던 사림은 정치적 역량이 부족했고, 문정왕후 시대를 청산하려는 작업은 미진하고 구체제의 파행은 계속되었으며, 심지어 사림은 동서로 분당되어 파당을 짓기까지 했다.

    이이는 처음에, 왕이 열심히 공부해서 덕을 쌓아 국가를 바르게 다스리면 민생도 회복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정에서 정치 세력이 교체된 뒤에 ‘사람의 문제’에서 ‘방법과 태도’의 문제로 경세의 방법론을 전환했다. 그 유명한 <만언봉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사는 시의(時宜)를 아는 것이 귀하고, 일은 실공(實功)에 힘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사를 하면서 시의를 모르고, 일을 당하여 실공에 힘쓰지 않으면, 비록 성군과 현신이 서로 만난다 하더라도 치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시의가 정치에서 올바른 목표 및 방식의 선택에 해당한다면, 실공은 진정성 있는 과감한 실천이다. 요컨대 이이는 민생을 위한 체계적 제도 개혁을 주장했다.

    우리가 이이를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대부분의 관료와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관심 범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국가의 존재 이유가 일차적으로 민생을 보장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의 경세론은 이이가 살았던 당대에 결국 실패로 귀결되었지만, 이후 조선 경세론의 원칙이자 방법론으로 자리 잡았다.

    오리 이원익, 진심으로 헌신한 관리

    이원익은 ‘묵묵히’ 개혁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관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원칙과 성실로 맡은 임무를 수행했다. 그가 맡은 업무에서 새로운 조치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관리의 본분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착실히 했을 뿐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평안도의 민심을 다독이면서 군량을 운반하는 일까지 탁월하게 해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군사를 모집하고 군량을 모으는 일은 백성의 원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가 평양을 떠날 때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생사당을 세워 그를 기리기까지 했다.

    그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민심을 살펴보고 선조에게 상소를 올린다.

    (백성에게) 이미 항심(恒心)이 없다면 아무리 그들을 엄중한 법으로 묶어서 마음을 붙잡으려 해도, 모두 떠나버릴 계획만 갖고 정착할 마음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 백성의 생활이 곤궁하고 어렵다고 사대부들은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 오직 백성만이 나라의 근본입니다. 조정은 이 점을 절실하고 급박한 임무로 삼아야 합니다. 그 밖의 일들은 모두 부수적인 일일 뿐입니다.

    사대부들이 입버릇처럼 백성의 곤궁함을 말한다지만, 거기에는 진심이 없다고 파악한 이원익이다. 이러한 절실한 깨달음이 마침내 공물 변통을 이끌어냈다.

    흔히 광해군이 대동법의 시초인 선혜법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백성들에게 베풀 시혜의 내용이 담긴 광해군의 비망기에서 공물 변통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항구적인 제도로 만들려 했던 사람은 이원익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꿋꿋이 수행해 나간 헌신적 관료였다. 그가 추진한 공물 변통은 앞 단계를 완성하고, 뒷 단계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분명히 드러나는 역할을 했다.

    포저 조익, 이론과 현실을 조화한 학자

    조익에 대해 한 줄 평으로 아주 간단히 말한다면, ‘현실에 참여한 지식인’이다. 저자는 조익이 조선시대 진정한 사대부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조익은 생소한 인물이다. 그저 성리학의 대가라고 알려져 있을 뿐, 그의 진면모를 다룬 글이나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송시열은 조익이 죽고 난 뒤 신도비에 이렇게 썼다.

    조선은 문(文)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삼대의 도(道)를 높이 숭상한다. 퇴계와 율곡 이후로 선비들은 이치(理)와 사업(事業)이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효가 충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말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말이다.

    송시열은 조익을 통해 성리학이 ‘리(理)’만 일삼는 것이 아니라 ‘리(理)’와 ‘사(事)’가 결합되어 있음을 보았다는 말이다.

    삼도대동법을 시작한 사람이 이원익이라면, 이를 실무적으로 추진한 사람은 조익이다. 그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치밀한 논리로써 개혁 반대 세력을 설득해 나갔다. 제도가 좋지 않은데도 나라가 잘 다스려졌던 경우는 없었다면서 바른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에 따라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아 나갔다.

    학자이자 이론가로서 공납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해 개혁 반대 세력의 논점을 하나하나 반박하고, 관리로서의 경험을 보태 구체적이고 현실에 밀착한 개혁안을 제시함으로써 당시 인조와 대동법에 의심쩍어 하는 사람들의 불안을 덜어주었다.

    그는 어마어마한 독서량과 비판적 독서로 유명했다. 늘 치열한 독서와 공부를 계속했고, 이는 혼란한 시대에 상황을 분석하여 문제를 찾아내고 국가 운영의 원칙 위에서 풀어내는 힘으로 작용했다. 이것이 바로 행정적 실무에 숙달하지 못한 그가 대동법의 설계도를 그려낼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잠곡 김육, 안민을 실현한 정치가

    저자는 김육에 관해 본격적으로 서술하기에 앞서 “어떤 정치가가 좋은 정치가인가?”라고 묻는다. 국가가 존재하고 우리가 그 속에 사는 한 정치가는 반드시 필요할텐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정치가를 뽑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묻는 것이다.

    이 글의 마지막을 먼저 보자. 김육이 죽고 난 뒤 충청도 사람들이 슬퍼하며 서로 와서 곡을 하고 부의금을 내려 했지만 김육의 아들 김좌명은 그것을 받지 않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그 돈으로 비석을 세운다. ‘조선국영의정김공육대동균역만세불망비(朝鮮國領議政金公堉大同均役萬世不亡碑)’다.

    지금 평택에 있는 ‘대동법시행기념비’의 원래 이름이다. 대동법을 시행해서 세금을 고르게 해준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조문한 예가 두 사람 있는데, 한 사람은 이이요, 또 한 사람은 김육이다. 백성들이 김육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육의 젊은 시절은 신산하고 고달프기 그지 없었다. 성균관 유생 시절에 정인홍이 올린 ‘회퇴변척소(晦退辨斥疏)’(광해군 대에 오현종사와 관련하여 이언적과 이황이 아닌 성운과 조식이 문묘에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상소) 사건에 관해 상소를 올리고, 굳이 책임지지 않아도 됨에도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잠곡으로 은신하여 직접 농사 지으며 숯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인조반정으로 서울에 올라온 뒤 계속된 장원급제로 뒤늦게 관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의 젊은 시절의 고난은 이후 그가 개혁을 추진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머리가 아닌 몸과 생활에 배어든 백성의 삶은 그가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진한 토대였던 것이다.

    김육은 자신의 평생 정치적 목표를 ‘안민’에 두고, 정치의 핵심을 누가 권력을 갖는가가 아니고 어떻게 ‘안민’을 구현해낼 수 있는가로 보았다. 그는 현실의 복잡함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추상적인 원칙만 내세우지 않았고, 직무에 적합한 사람을 뽑아 썼으며(심지어 동전 유통과 관련해서는 사대부와 논의할 수 없고 저잣거리의 사람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사람을 정치적 외풍에서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생각하는 정치란 어디까지나 현실 문제 해결의 도구이고, 그것은 곧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수립이었다. 대동법이 완성된 것은 이러한 그의 신념과 실행이 가져온 결과다.

    정치가는 당위적 요구에 민감한 실천적 지식인과 구분되며, 정책이 지향하는 방향과 목표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이미 규정된 절차나 관행에 집중하는 관리와도 다르며, 현실이 내포하는 복잡성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변주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학자와도 다르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김육을 좋은 정치가로 꼽았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

    이 책을 읽기 전에, 또는 다 읽고 난 뒤에 이 책의 주인공들 묘소를 들러 참배해볼 것을 권한다. 실제로 출판사는 저자의 초고를 본 뒤 그들과 관련된 유적지를 찾아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고 나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의 삶과 죽음, 그들이 지향한 이념과 그 이념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 그들의 묘소는 경기도와 충청도에 몰려 있다. 이이는 경기도 파주에, 이원익은 경기도 광명시에, 조익은 충청남도 예산에, 김육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다. 책을 보고 난 뒤 들러보면 남다른 감회가 느껴질 것이다.

    이 책에는 출판사가 직접 그들의 묘소와 유적지를 찾아가 직접 촬영한 사진과 ‘특별한’ 캡션을 각 장마다 넣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진과 설명일 듯하다. 이를테면 김육 묘의 문인석을 찍은 사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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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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