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제주 강정에 가보지 않았다
    [작가들, 제주와 연애하다-2] 우리는 모두 제주 강정이다
        2013년 02월 07일 10: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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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의 두뇌를 20년간 멈추어야 한다.”는 유명한 판결문과 함께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이 유명한 경구는 로맹 롤랑의 글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를 그람시가 요약한 것입니다.

    제주도 강정마을의 600명이 넘는 주민, 평화활동가들에 대한 연행, 구속, 투옥, 벌금 사태 뒤에는 불법 공사 상황이 있습니다, 주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강제 과정, 전쟁을 도발하는 안보 기지, 민군복합항이 입증되지 않은 설계도, 환경문제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공사, 인권 유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 요인에 대해 제주 도지사를 중심으로 제주 주요 언론은 입을 다물거나 사실을 왜곡해 왔습니다.

    제주해군기지는 미 해군 설계요구에 의해 미군 핵항모가 입항할 규모로 설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2012년 9월, 장하나 국회의원이 밝혀냈습니다.

    모국어로 글을 쓰는 시인과 작가들은 제주해군기지 건설 후 대정, 세화 성산에 공군기지가, 산방산에 해병대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으며 제주도가 최전선화되는 것을 공포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대한민국 곳곳의 요지를 미군에게 내어준 형편임에도, 비무장 평화의 섬 한 곳 확보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조국은 무력한 나라인가에 대해 다만 슬퍼합니다.

    군함에 의해 오염될 서귀포 바다와 기지촌으로 전락할 제주도의 고운 마을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제주도민을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 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필자들을 대표하여 조정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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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제주 강정에 가보지 않았다

    제주 강정 구럼비 해안의 바위를 모른다

    구럼비 바위에서 솟는다는 맑디맑은 물로

    대대로 제를 지내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생사를 나는 모른다

    정화수에 비치는 제주의 새벽하늘과

    높은 정성을 모른다

    나는 구럼비 해안의 파도 소리를 듣지 못했다

    파도 소리에 귀가 울고

    귀 울음으로 생활의 먼 길을 갔을

    제주 사람들의 목마름을 모른다

    구럼비 해안의 붉은발 말똥게의 낮은 길을 모른다

    거기 산다는 맹꽁이들의 울음소리를

    모른다

    강정08

    노순택의 제주해군기지 사진.사진가 노순택은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는 평화유배자들’의 기록을 담은 책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공동 저자다.

     

    나는 다만

    내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가 없었던 시간에도

    제주에서 제주의 땅과 바다를 안고 제주의 하늘을 이고

    누대 살아온 이들이 있어서

    그들만이 제주의 소유와 제주의 일초 일초와 꿈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다만

    미제국의 피 묻은 군함이 코를 킁킁거리며

    지금도 끊임없이 제주의 모든 해안을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

    노쇠한 자본 대국이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제주의 파도와 제주 사람들의 생가슴에

    더러운 죽음의 피를 토할 것이라는 사실을

    비교적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니 나는 입 없는 가슴 사람의 심장으로만 말한다

    4.3의 다른 이름 4.3의 오늘로

    제주 강정 구럼비만이 아니라 모든 제주의 시간과 역사와

    한반도의 현대로부터 미국은 물러나야 한다고

    뼛속까지 친미인 매국첩자들과 더불어 사라져야 한다고

    제주민들이여

    우리 가난한 연대의 가슴이 함께 운다면

    이제 나는, 우리는 모두 제주 강정이다

    제주 강정의 구럼비 해안이고 바위이고 파도소리이다

    구럼비 바위의 정화수로 생의 먼 길을 함께 가는

    상처받은 얼굴들이다

    생가슴 깊이 박힌 다이너마이트를 뽑으며

    피고름을 흘리는 구럼비 바위이다

    우리는 구럼비 바위의 울음이고 웃음이다

    머지않아 정화수 하늘에서 평화의 빛이 쏟아질 것이라는

    상투적인 노래라도 부르고 싶다

    우리 모두여 그 때까지 몸도 맘도 다치지 말고 건강하시자

    평범한 평화가 올 때까지

    평화가 유치해질 때까지 살아서 또 살아서

    부디

     

    나는 제주 강정에 가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제주 강정과 구럼비 바위를 안다

     

    김주대 :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민중시』, 1991년『창작과 비평』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도화동 사십계단』(청사출판사 1991), 『꽃이 너를 지운다』(천년의시작 2007), 『나쁜, 사랑을 하다』(답게 2009), 『그리움의 넓이』(창작과비평 2012)가 있다.

     

    필자소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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