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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방현석의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2013년 02월 04일 03: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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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적들의 식민주의와 군국주의

    방현석의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는, 루카치가 규정해 놓은 개념에 의거하여 말한다면, 역사소설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루카치가 말하는 역사소설의 ‘역사’란 구체적인 현실의 전사(前史)이며, 현재 명백하게 되어버린 사태들에 대하여 그것들이 객관적ㆍ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드러나게 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그러한 까닭에 시대 환경이 옴짝달싹하기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작가들은 당대의 질서가 어떻게 구축되었는가를 파악하기 위하여 역사소설 창작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이곤 했다.

    예컨대 일제 말기 카프(KAPF)가 해산되고 난 뒤 일제로부터 사상전향이 강요되고, 파시즘이 강력하게 확산되기 시작할 즈음 김남천의 『대하』(1939), 이기영의 『봄』(1940~1941), 한설야의 『탑』(1940~1941) 등 역사소설이 한꺼번에 발표되었던 사정은 이와 연관이 있다. 그러니까 조선 말기에서 일제 식민지로 전환되고 식민지 체제가 공고화되는 양상을 추적함으로써 이들 작가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폭넓게 조망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야만적인 폭압이 극에 달했던 시기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물론 박정희 前대통령이 암살당한 이후, 쿠데타와 1980년 5ㆍ18 광주학살을 통하여 집권한 전두환 군사정권 때의 질식할 것 같은 상황도 빠뜨리지 않았다. 소설은 실존인물이자 주인공인 김근태가 ‘남영동’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검찰청으로 이송되는 1985년의 장면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작가가 전두환 일당을 “박정희 잔당”(306면)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를 굳이 나누려는 작업이 별다른 의미를 가질 성싶지는 않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가 충분히 타당한 까닭은 현재의 집권 세력이 당시의 권력 집단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지금까지 굳건하게 이어져 온 데 있기도 하다.

    이 책의 초판이 찍힌 날짜는 대통령 선거를 정확히 한 달 남겨둔 2012년 11월 19일이고,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는 독재자의 영애 박근혜였으며, 선거 결과 그녀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니, 이러한 상황이 그러한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그들이 내 이름

    그렇지만 작가 방현석은 섣부르게 현재 상황을 소설 속에 투영시키는 대신 그러한 세력의 사상적인 근거를 따져들기 위하여 그 기원으로 더욱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하여 결국 박정희를 매개로 하여 맞닥뜨린 것이 식민주의와 군국주의이다. 투사이기는 하나, 김근태라는 인물은 한 가지 판단을 내리기 위하여 워낙 많은 질문을 하고 깊이 회의하고 폭넓게 독서하는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한 까닭에 작가가 제시하는 박정희 세력의 의식구조는 어설픈 논설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고 소설의 외양을 갖추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양상이다.

    조선 놈은 사흘에 한 번씩 맞아야 말을 듣고 일을 하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족속이기 때문에 책임감과 충성심으로 가득 찬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만 야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식민 지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카키 마사오가 되어 한 목숨 다 바쳐 일본에 충성하는 것은 마땅한 영광이었다. 그런데 이 열등한 민족을 포함한 아시아를 구원해야 할 일본이 분하게도 서양에 패망하고 말았다. 무능한 이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혁명으로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남로당에 들어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남로당 또한 못나고 무력하게 침몰할 때 거기에서 겨우 빠져나와 겨우 목숨을 구했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군을 계속하는 것이 불굴의 일본 정신이었다. 자신만이 옳고, 자신과 다른 것은 다 박멸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는 일본 군국주의는 파시즘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본 군국주의의 화신이 박정희였다.(191~1면)

    이번에 나온 방현석의 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를 우선 루카치의 관점을 적용하여 역사소설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나가게 되는 까닭이 그러한 인식에 있다. 즉 근현대로 진입하면서 일제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던 세력은 제대로 청산된 바 없으며, 오히려 이들은 해방된 이후에도 줄곧 국가권력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유지해 나갔던 바, 이들에게서 면면히 흐르는 의식세계를 1960년대~1980년대에 군사정권에 의해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하여 작가가 날카롭게 집어내었다는 것이다.

    두꺼비는 어떻게 번식하나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의 한편에 군사정권의 폭압이 자리한다면, 그 반대편에는 이에 맞서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었던 인물들이 존재한다. 당시 방관하는 태도를 취하였으나, 김근태가 이러한 부류의 인물들과 접하게 된 시기는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움직임이 분출하였던 경기고 시절부터이다. 이후 그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차츰 군사정부 반대 세력의 주동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러한 김근태의 변모는 퍽 흥미로운데, 왜냐하면 이로써 1965년 한일협정 반대에 나섰던 인물들이 이후 학생운동의 근간을 일구는 과정이 재현되는가 하면, 1970년 전태일의 분신으로 심각하게 촉발된 노동문제에 그들이 어떻게 결합해 들어가면서 관계를 형성하는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진보적인 종교 세력과의 연대 방식이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소설 내용으로는 펼쳐지지 않았으나, 군사정권의 폭압에 맞섰던 1987년 6월항쟁 및 7ㆍ8ㆍ9 노동자대투쟁의 역량이 축적되는 기원과 과정이 이를 통해 해명되는 것이다.

    방현석이 추적하여 복원해낸 1960년대, 1970년대 저항운동의 세력 형성 과정은 현재 상황에서 충분히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주지하다시피 이명박 정부의 오만하고 독선적인 국가 운영은 국민들로부터 무수한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이로 인하여 야당의 입장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은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라고 평가되어왔다.

    그렇지만 야당은 두 번의 선거에서 모두 패배하였는데, ‘386세대’라고 자부하던 정치 세력의 배타적인 면모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김근태 세대에 대해서도 배타적이었다). 주지하다시피 386세대란 1990년대 유포된 용어로서 60년대에 태어나서 80년대에 대학교를 다녔으며 90년대에 30대가 된 세대라는 용어이며, 이러한 담론을 유포한 이들은 그 세대의 정치인들이었다.

    기실 이 용어에는 아무런 시대와 맞서는 어떠한 정신도 개입되어 있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87년 6월항쟁의 성과를 자신들이 독점적으로 차지하겠다는 욕망만이 가득 차 있을 따름이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욕망이 결국 이번 두 차례 선거에서의 패배를 불러들였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는 다시 한 번 루카치가 말하는 역사소설 범주에 적절하게 들어맞는다고 하겠다. 물론 루카치의 개념 범주에 적합한가의 여부가 소설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역사를 몰각하고 배제하려는 태도가 그리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하며,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기 위하여 죽음까지도 기꺼이 감수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기억해야만 하겠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이 조직의 상징을 두꺼비로 삼았던 까닭은 스스로를 온전히 버리겠다는 결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꺼비는 새끼를 낳을 때면 일부러 뱀의 길을 가로막고 싸움을 겁니다. 뱀도 두꺼비를 잡아먹으면 자기가 죽는다는 거 알기 때문에 피하려고 하지만 두꺼비는 끝까지 엉겨 붙습니다. 그래서 기어이 자신은 뱀에게 잡혀 먹히지만, 두꺼비를 삼킨 뱀 역시 두꺼비의 독으로 죽게 되지요. 그러나 뱀의 배 속에서 알을 까고 나온 새끼 두꺼비들은 썩어 가는 뱀을 먹어치우면서 자라납니다.”(305~6)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의 주인공 김근태는 민청련의 의장이었다. 실제로 그는 민청련의 상징 두꺼비처럼 살다가 갔다. 아직 새끼 두꺼비들이 썩어가는 뱀을 먹어치우면서 자라지 못하여 그러한 면모가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을 따름이다.

    필자소개
    가톨릭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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