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유주의 시대,
    인도 노동조합의 위기와 변화
    [현대 인도 인민의 역사] 노동조합과 노동자 투쟁(2)
        2013년 02월 04일 10: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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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의 탈정치적 독자 행보의 시도는 얼마 되지 않아 신자유주의라는 괴물 앞에서 좌절하고 만다. 인도는 1991년 외환 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그 동안 유지해 온 사회주의적 혼합 경제 정책 즉 보호주의 경제 정책을 버리고, 시장 개방, 인허가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를 정부 운용의 기조로 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도처에서 공기업의 민영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은 두 가지 차원에서 노조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우선 조합원 수가 급격히 감소되었다. 조합원 수의 감소는 그 동안 인도 노조의 큰 젖줄기인 공무원 부문에서부터 시작했다.

    인도 정부는 신경제 정책을 운용하면서 공무원 인원을 60%나 감축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노조 조합원의 주요 공급원이 크게 감소되었다는 말이 된다. 그로 인해 노조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음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두 번째로 노조 성격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이는 특히 민간 부문에서 두드러졌는데, 민영화 된 기업은 경영 합리화를 구실로 구조조정과 대량 해고가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특히 여성 인력을 대거 채용하였다. 노동의 유연화가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이다. 정규직을 줄이고, 협력 업체나 파견 근무 혹은 대체 인력과 같은 다양한 비정규직 고용을 늘렸다. 그러면서 공장들이 임금이 낮거나 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다른 주(州)로 공장 설비를 이전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게 노조 활동을 크게 위축시켰다. 노조들은 조직화된 부문의 조합원이 감소하자 비조직화된 부문에 고용된 노동자를 통해 조직율을 높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비조직화 부문 노동자로 조합원을 충당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상황이 노조에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노조 내부에서는 조합의 편파성을 줄이고 조합 내부 민주성을 확보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들은 개별 산업체에 단일 노조를 권장했으며, 단일 사업장에 하나 이상의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단합을 통해 교섭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인도 노동조합의 쇠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아웃소싱을 늘려갔고, 통상적으로 100명 이상 규모의 사업장에 적용되는 노동법을 피하기 위해 아웃소싱이나 계약직 혹은 파견 노동자 고용을 더욱 늘렸다. 그 결과 비정규직의 비율만 갈수록 치솟았다. 계약직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조 가입이 재계약 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모두 노조 가입을 꺼린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면서 노조는 강경한 대응을 고수하였다. 일단 신분이 유리한 공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민영화와 공기업 직원 감축에 대해 조합원들은 더욱 과감한 파업을 일으켰다. 하지만 경기 침체와 일자리 축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조합원들의 참여도는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져만 갔고,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강경 일변도의 파업에 시민 여론도 등을 돌렸다.

    신자유주의 속에서 모두들 겪는 경제난에 그 동안 약자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인도의 시민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관리자들이 더욱 강하게 노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온갖 폭력과 공작 정치를 동원해 노조 와해를 시도했고, 이에 새로운 투쟁 방법을 찾지 못한 노동운동은 급격하게 활기를 잃어갔다.

    인도 노동조합의 집회 장면

    인도 노동조합의 집회 장면

    노조운동이 얼마나 크게 감소했는지를 공산당이 집권한 께랄라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자. 노조 파업은 1983년에 104건이었는데, 2000년에 10건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직장폐쇄는 1990년에 15건이었는데 반해 2000년에는 30건으로 늘어났다. 1983년부터 2000년 사이에 일어난 파업의 절반 이상이 1990년 이전에 발생하였고, 직장 폐쇄의 72%가 1991년 이후에 발생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1991년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시작되면서 노동자운동이 얼마나 크게 위축되었고, 사용자의 탄압이 얼마나 거세졌는지를 알 수 있다.

    침체된 노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것은 2008년 금융 위기였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로 촉발된 금융 위기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되거나 위기를 겪자 노동자들도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노조 인정을 강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2008년의 경우를 보면 분명히 파업 횟수와 파업으로 인한 손실 일수는 줄었지만 파업 참가자 수는 늘어났다. 실로 오랜만에 일어난 이례적인 일이었다.

    인도 노동부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공식적으로 57만 명이 파업에 참가했던 것이 2008년에는 93만 명으로 파업 참가자수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민간 연구기관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2009-10년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은 과거 노동계가 큰 힘을 발휘할 때처럼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사용자의 강경 대응과 노동계의 위축 사이에서 팽팽한 대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계의 힘이 약화되던 시점은 현대 인도사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 발생한 것과 같은 시기이다.

    그 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실로 종족, 카스트, 종교 공동체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정체성 정치가 부쩍 커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힌두 극우 집단이 무슬림 사원을 파괴하고 그 보복으로 무슬림 극우 분자들이 계속해서 테러를 감행하는 비극적 연쇄 사건이 반복된 것은 노동자의 저항이 사라지면서 일부 정치 모사꾼들이 봄날 맞듯 정치를 마음대로 공작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종교 공동체 간의 충돌이 상대적으로 잔잔한 곳에서는 카스트 집단끼리의 충돌이 커져 갔다. 모두 노동자로서의 계급성이 사라진 자리에 종족을 중심으로 하는 만들어진 상상의 정체성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인도 근대사 100년 동안 줄기차게 나타난 현상으로 계급 의식이 사라지는 곳에는 항상 종교나 카스트의 갈등이 독버섯처럼 자라난다. 그리고 그 피해는 그 계급 의식을 상실한 노동자, 농민, 하층 카스트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게 일어났다.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는 전체적으로 사회의 보수화가 극대화된 것이다. 그것은 통합진보당이 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상식 이하의 처사를 하면서 진보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했고, 그 와중에 중산층이나 서민들 사이에 계급 의식은 옅어졌다. 그 자리에 ‘박정희’라는 종교적 열망이 부흥하고, ‘종북’이나 ‘전쟁’ 혹은 ‘퍼주기’와 같은 극우적 논리가 판을 쳤다. 그러면서 진보 세력도 아닌 민주당이 애꿎게 유탄을 맞은 셈이다.

    진보정당의 패착에서 시작된 것이 계급 의식에 대한 배신으로 연결되더니 종국에 가서는 극우적 보수화로 귀결된 것이다. 한국에서의 종교와 카스트의 갈등은 곧 ‘빨갱이’의 부활인데 그것이 지난 대선에 다시 등장했다. 다만, 매우 자발적으로 등장을 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사전에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현재 인도 노동조합법에 의하면 단일 사업체 노동자의 10% 이상 혹은 1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조합을 구성하여 신고하면 합법 단체로 인정받을 수 있다. 단일 사업장 내에서 복수 노조 구성이 가능하며, 노동조합 결성을 사용자에 알릴 의무는 없다.

    2009년 기준으로 등록된 노동조합은 70,000 개이며, 비공식 노동조합까지 합치면 100,000 개 정도로 추정될 뿐, 조합의 수나 조합원들의 수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인도는 한국에서와 달리 임금을 받고 농업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을 농민이 아닌 노동자로 분류한다. 그래서 가난한 무토지 임금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경우도 많다. 정부에서는 전체 노동력의 2% 정도가 노조원으로 조직된 것으로 보고, 노동 전문가는 대개 6~7% 정도 될 것으로 본다.

    노동 운동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전통적 방법의 강경 파업에 더 이상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제 아무리 정당하다 할지라도 신자유주의라는 괴물 앞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강경 파업을 지지할 시민은 없다.

    정치 지향의 투쟁을 지양하고, 서로 다른 노총끼리, 같은 노총 안에서의 노조들끼리의 연대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 운동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괴리를 하루 속히 좁혀야 살 수 있다.

    그 동안 노동계는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쫓겨난 농민을 지지하는 인권 운동이나 댐 건설을 하기 위해 쫓겨난 농민이나 부족민을 지지하는 운동에 함께 하지 않으면서 그들과 대척점에 선 경우가 많았다. 오로지 자신들을 위한 임금이나 복지 투쟁에만 전념했을 뿐 다른 소외된 사람들의 삶과 인권에 대해서는 연대 투쟁하지 못했다. 노동 운동이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과거 민족 운동 때에서부터 해왔듯이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인도의 노동계를 보면서 한국의 노동계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데자뷔도 아니요, 일란성 쌍둥이도 아닌 바로 동일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계가 민주노총 중심으로 정치 투쟁에서 손을 떼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사업을 하는 편향성을 버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투쟁에 앞장서고, 이주 노동자나 다른 인권 운동에 대해 연대 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그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는 과거 식민주의보다 더 가혹하다. 그 안에서는 노동이 살아야 모두가 산다. 이는 인도에서나 한국에서나 똑같은 만고의 진리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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