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부유럽, 유로존의 약한 고리
    [분석] 불투명한 유로존의 미래④ - 파국 가능성과 그 여파
        2012년 05월 31일 03: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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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째 연재기사를 보시려면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 유로존 국가들은 어떤 준비를 해왔나?

    유로존 채권국 정부 관리들은 파판드리우 전 총리가 지난 해 11월 말 구제 금융 조건의 수용 여부를 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한 직후부터 향후 발생할지 모르는 긴급 상황에 대비해왔다.

    실제로 독일 재무장관 볼프강 샤우블(Wolfgang Schäuble)은 당시 “정 원한다면 한번 국민투표를 실시해 보라”고 말하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해서 구제 금융을 대주면서 지리하게 협상을 벌여야 하냐?”고 그리스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유로존의 채권국 정부들은 만약의 긴급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재정적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유럽 차원의 금융 안정 기구를 유럽 금융 안정 메커니즘으로 확대 개편하고 기금 규모를 높혀 유로존 내 금융 불안정성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자고 이제 막 중지를 모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와 비교했을 때 상황이 다르다. 영국과 체코 공화국의 반대로 애초 규모보다 적긴 하지만, €500bn의 금융 안정 기금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고, 이 기금을 통해 그동안 사두었던 각국 정부의 유동성 높은 채권 규모도 상당하다.

    게다가 올해 3월에 접어들어 그리스 정부 발행 채권을 보유하고 있던 민간 투자자들이 그리스 정부와 합의 하에 액면가의 상당 부분을 손실 처리하기까지 했다. 다시 말해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한다고 해도 그로 인해 발생할 직접적인 손실 규모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든 상태이다.

    바로 이 때문에 유로존의 채권국 정부 관리들은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하는 긴급 상황이 발생한다고 해도 충분히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금융적 재정적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테네의 망한 가게 앞에 앉아 있는 한 남성

    영국계 파이낸셜 타임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익명을 요구한 유럽연합의 한 고위 관리가 한 말을 인용해 보자.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하는 것은 마치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했을 때와 같은 파국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년 전이었다고 해도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은 그것이 야기할 파급 효과와 은행권에 미칠 연쇄 반응이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위험천만한 결과를 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유로존 채권국 정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만큼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파이낸셜 타임즈 5월 13일자 기사 “유로존: 만약 그리스가 이탈한다면…”에서 재인용)

    유로존의 약한 고리 – 남부 유럽 은행들의 취약성과 파국의 전파 경로

    그러나 이와 같은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그리스 이외 남부 유럽 민간은행 부문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만약 남부 유럽의 다른 나라 시민들이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을 경험하면서 갑자기 자국 은행에 예치해 두었던 유로화 예금을 빼내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래서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에서 예금 대량 인출 사태가 벌어지면 이 지역의 은행들은 부도 위험 앞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 유로존 당국자들은 투자자와 유로존 시민들에게 그리스에서 발생한 일은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에 불과하다고 설득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에서 빚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조만간 진정될 것이라고 설득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 유럽 중앙은행이 그리스를 제외한 남부 유럽 민간 은행의 예금에 대해 지급을 보증한다는 선언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유로존 당국자들이 이 초기 대응에 실패한다면, 다시 말해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과정에서 발생할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질서정연하게 통제하는 데 실패한다면 유로존 전체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파국의 국면에서 제일 먼저 거론되는 대상은 아마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될 것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시민들은 자국 은행에서 유로화로 적립되어 있던 예금을 더 늦기 전에 대량으로 인출하려고 할 것이고, 대규모 뱅크런 앞에서 거의 모든 은행들은 파산을 선언하거나 국유화될 것이다. 개인 및 기관 채권 투자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동안 보유해 왔던 양국 정부 발행 국채를 앞다투어 시장에 내다 팔려고 할 것이고, 이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이 두 나라는 그리스 다음으로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존 밖으로 밀려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스 택시 노동자들의 시위

    이러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유로존 당국자들은 누구를 버리고 누구를 살릴 것인가 하는 냉혹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정부 부채 규모로 따지면 일본 다음으로 가장 많은 빚을 내면서 버텨온 이탈리아를 구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유로화를 찍어낼 것인가, 아니면 유럽연합 내의 단일 통화권이 해체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국면 말이다. 그러나 사태가 어디에서 수습될 것인가와는 무관하게,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 전체가 수출입 규모 축소, 국내총생산 하락 등을 동반하며 극심한 경기 침체 또는 공황 국면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 그리스인들은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탈하건간에, 그리스 정부는 유로 통화권에 진입하기 이전에 사용하던 정부 화폐를 다시 찍어내고 유통시키려고 할 것이다. 설사 그 화폐가 정부의 행정력과 조세 징수권을 매개로 시중에서 제대로 유통되고, 또 다행히 이전에 유로화로 계약된 거의 모든 거래들을 재환산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화폐는 유로화에 비해서 급격하게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급격한 환율 상승).

    그리스의 새 화폐의 유로화 교환 비율이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골드만 삭스가 발행한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유로존 내 다른 나라 화폐와 30대 1, 그리고 독일 화폐와 비교해서는 50대 1 정도의 교환 비율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도 화폐 발행 초기 국면에서는 더욱 급격하게 가치가 떨어질 것이다.

    그리스의 새 화폐가 이렇게 평가절하되면 그리스가 수출하는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생겨날지도 모르고, 이것이 그동안 그리스 경제가 누적시켜왔던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혹은 그와는 반대로 소규모 개방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서 자본재는 물론이고 기초 생필품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수출 경쟁력 개선이 무역 수지를 반드시 흑자로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수출이 과거에 비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그 보다 더 많은 상품을 수입하여 결과적으로 무역수지가 적자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평가된 자국 화페 가치 때문에 그리스는 수입 물가 상승에서 비롯되는 인플레이션, 그것도 극심한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사 한동안 무역 수지 흑자를 경험한다고 해도 그리스 정부가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디폴트 이전의 해외 채무를 점진적으로 갚아나가는 데 쓰게 될지, 아니면 다른 용도로 돈을 사용할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리스 정부가 자국의 은행과 금융 부문을 어떻게 처리할 지도 불투명하다. 그리스 정부가 복잡다단한 정치세력간의 잠재적인 갈등을 봉합하고 일관되게 자국의 경제 성장과 수출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고유의 확대 재정 정책과 금융 정책 및 산업 정책 등을 추진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자국 은행 부문을 국유화하거나 정부 지분을 매개로 국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취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유로화로 잉여 자금을 보유하거나 저축하고 있던 기업과 가계 등의 민간 경제 주체들이 해외로 자본을 빼돌리거나 이체시키는 행위 등을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할 수 있을지 여부도 그리스 금융 시스템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를 판별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과제들은 아마 구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직후 당시의 정책 결정자들이 맞딱드렸던 경제 현실과 유사할지 모른다. 또는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여파로 2001년 재정 위기를 경험해야 했던 아르헨티나 정부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그 이전까지 미 달러화와 1대 1일 교환비율을 유지하고 있던 자국 화폐를 평가절하하면서 발생했던 사태에 비견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이전까지 미 달러화와 동등한 실질 구매력을 가지고 있던 은행 예금이 정부가 단행한 평가절하 조치 때문에 하루아침에 가치를 상실하게 되자 은퇴자와 가정 주부들은 국유화된 은행 지점들 앞에서 냄비와 식기를 요란하게 두드리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와 같은 일이 그리스와 남부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지난 5월 7일의 선거 결과만을 놓고 볼 때 다음 번 선거에서도 정치 세력들 가운데 그 누구도 과반 이상의 안정된 지지를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상황에서 과연 수많은 정당정치 세력들이 중지를 한데 모아 일관된 경제 정책을 구상하고 집행할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잠재적으로 있을 수 있는 수많은 경제 개혁 및 재건 과제 앞에서 끊임없이 쿠데타와 정치적 소요만 벌어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동아시아와 한국에 미치는 영향 – 엔 캐리 트레이드의 무질서한 청산과 자산 가치의 폭락

    그리스와 남부 유럽 국가들이 무질서하게 유로존에서 벗어난다면 동아시아와 한국에는 어떠한 영향이 미칠까? 논의의 편의를 위해 한국의 민간 은행들이 지난 몇년 사이 남부 유럽 국가와 은행들에 대한 직접적인 노출 규모를 줄여 왔고, 서유럽 은행들에게서 빌려왔던 단기 채무도 상당한 정도로 축소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엔 캐리 트레이드, 다시 말해 일본의 엔화를 값싸게 빌린 다음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신흥 국가들의 금융 자산을 사들여 손익을 취하고 급속하게 역외로 빠져나가는 외국계 은행들의 투자 전략이 어떻게 청산되는가에 따라 한국의 금융 자산 시장과 환율 시장은 심하게 요동을 치게 될 것이다.

    유럽발 재정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국제 금융 시장을 강타하고 유로존이 붕괴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동아시아와 한국의 자본 시장은 해외 단기 자본의 급속한 유출과 엔 캐리 트레이드의 급속한 청산, 그리고 이에 따른 통화 가치와 금융 자산 가치의 폭락 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한국 경제가 제대로 그 파고를 넘어설 수 있는지 여부는 외환 보유고의 절대 수준과 그에 대비된 단기 해외 채무 비중, 그리고 미국, 일본 및 중국의 중앙 은행들로부터 얼마만큼의 달러화를 단기적으로 빌릴 수 있는가 (currency swap; 통화 스왑 유무와 정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연재 끝>

     

    필자소개
    뉴욕 뉴스쿨 대학원(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재 오하이오 주립대학 (Wright State University)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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