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민주의의 가치 ①
자유 평등 연대 그리고 평화 생태
[사회민주주의 선언-3]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2013년 01월 31일 04: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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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2012년) 11월 홍진북스에서 <사회민주주의 선언>를 출판했다. 이 책의 저자는 조원희 국민대 교수와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준비위원이다. 최근 진보의 정체성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는 흐름들이 제기되고 있고, 이미 한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옹호하는 많은 자료와 서적들이 있다. 그럼에도 진보정치의 전망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압축되고 정리된 소개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레디앙>은 했다. 또 다행히 <사회민주주의 선언>을 출판한 홍진북스의 홍순종 대표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이에 <사회민주주의 선언>의 전체 내용을 연재한다. 책 자체가 많은 분량이 아니기에 5회~10회 가량으로 나누어 게재한다.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비판과 수용 모두 온전히 한국 사회의 진보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들의 몫이다. 그래서 때로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조건부 수용이나 선택적 비판일 수도 있다. 그런 생산적 논의와 실천적 고민이 있기를 바라면서 게재한다. 홍순종 대표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이 책의 내용을 게재하는 과정에서 비판적 의견 등이 있으면 <레디앙>은 적극적으로 지면을 제공할 생각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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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사회민주주의는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동체를 추구하고 완성하고자 하는 하나의 정치사상이자 정치적 기획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아나키즘, 민족주의 등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세계관으로서, 독자적인 가치관과 원리, 그리고 전략적 지향성을 가진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질서에 대한 근본적 비판 정신에서 출발한다. 즉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물질적 생산력과 기술력을 발전시켜 경제적 풍요의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그 경제적 풍요를 소수가 독점하여 대다수는 삶의 불안정성과 극심한 생존 경쟁에 직면하게 되고, 개인과 사회, 인간과 자연이 자본과 시장에 종속되며, 그 결과 인간의 삶과 생태환경이 황폐화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예컨대 자유주의처럼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질서를 기본적으로는 승인하면서 그 결함을 부분적으로만 보완하고자 하는 기획이 아니며 자본주의를 넘어서고자 한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과 시장이 인간과 사회를 통제하고 종속시키는 그런 경제사회 질서가 아니라, 거꾸로 인간과 사회가 자본과 시장을 최대한 통제하고 관리하여 그것들이 수익성과 상업성만이 아니라 더 높은 인간적 가치와 공동체적 가치, 생태적 가치에 봉사하도록 하는 경제사회 질서를 만들고자 한다.

새로운 경제사회 질서를 창출해나고자 하는 정치적, 사상적 기획으로서의 사회민주주의는 여러 가지의 <가치>와 <원리>, 그리고 그 가치 및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전략>으로 구성된다.

먼저 사회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가치>에는 자유와 평등, 연대, 생태, 평화의 5가지가 있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는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원리, 노동에 비례한 소득 분배와 누진적 과세의 원리, 기본 필요 충족 및 인간 존엄성의 원리, 사회적 연대의 원리 등이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치 및 원리와 긴밀하게 결합된 사회민주주의의 핵심적 <전략>에는 보편적 복지 전략, 노동민주화 전략, 여가 및 문화 전략,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전략, 대자본과 금융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 전략, 중소자본 및 영세자본의 산업고도화 전략 등이 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여기서 밝히는 <원리>와 <전략> 이외에도, 새로운 원리와 전략이 앞으로 계속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생태 및 평화의 가치와 관련되어 앞으로 사회민주주의 특유의 원리와 전략들이 새로이 제시되고 논의될 필요가 있다.

스웨덴 사민당과 노총의 행사 모습

그리고 이와 같은 가치와 원리, 전략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는 민주공화국과 대의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그리고 참여민주주의를 중시한다.

* 사회민주주의의 가치

가치란 가장 소중하고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고 동시에 우리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를 말한다. 사회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모든 긍정적 성과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또한 앞으로 그것들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자유와 평등, 연대의 3대 가치와 그리고 그것의 확장으로서의 생태, 평화를 포함한 5대 가치를 가장 소중한 가치 또는 궁극적 달성 목표이자 행동 원칙으로 삼는다.

먼저 자유와 평등, 연대는 각각 그 자체만으로도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들이다. 동시에 이들 3대 가치는 각각 서로 다른 가치가 없으면 쓰러진다는 의미에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보완적 가치들이다. 우리는 이들 3대 가치가 현 사회뿐 아니라 더 높은 단계의 미래 사회에서도 유효하다고 본다.

또한 사회민주주의는 수단과 목적을 분리하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합리화하지 않고, 목적에 이르는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특히 5대 가치에 있어 이 원칙을 고수한다. 이점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자신들의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과 목적, 과정과 최종목표를 분리하면서 목적을 위해 자의적으로 수단을 구사하거나 과정을 무시하는 혁명주의적 구좌파와 구분된다.

–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이 인간의 존엄성

무엇보다 먼저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일차적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다. 물론 자유와 평등은 사회민주주의의 주된 경쟁 상대인 자유주의 사상의 핵심적 가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유주의가 약속하는 자유와 평등은 자본주의 성립기에 봉건적 신분제의 족쇄로부터 개인성을 해방시킨 위대한 가치이다. 특히 자유라는 가치는 모든 형태의 정치적, 경제적 독재에 맞서는 거부와 투쟁의 근거이며 이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식민지 지배와 군사독재 체제에 맞서 민족의 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위대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적 자유는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민주주의는 정치적 자유를 소중히 여긴다.

또한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성을 <절대적으로>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은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신분과 인종, 성별, 종교, 신념 등에 따른 어떠한 정치적 차별도 거부하며, 또한 어떤 이유에서건 개인의 기본권에 대한 제한을 거부한다.

그런데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와 평등은 정치적·법률적, 형식적·절차적인 것에 머무른다. 경제사회 생활의 관점에서 볼 때 자유주의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유란 사유재산권 및 시장 영업 활동의 자유를 의미하며, 그 평등이란 사유재산권 행사 및 경쟁적 시장 참여기회의 평등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생활의 현실에서 자유와 평등은 서로 대립되어 나타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낳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자유롭고 부유한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를 나누며, 그 결과 <평등 없는 자유>를 낳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생활의 현실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평등 없는 자유와 대다수 개인에 있어 실질적 부자유와 실질적 불평등에 주목하며, 따라서 정치적·형식적 자유와 평등을 넘어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고자 한다.

실질적 자유란 개개인들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인간적 잠재력을 경제사회적 이유로 제한받지 않고 구현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또한 실질적 평등이란 형식적인 기회 균등을 넘어 삶을 향유함에 있어 실질적인 경제사회적 평등을 뜻한다.

예컨대 모든 개개인이 적절한 주택과 함께 좋은 교육 기회를 가지며, 병에 걸렸을 때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고, 또한 노후에도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는 생활 유지가 불가능하다면, 그리고 안전한 노동 환경에서 적절한 시간 동안 노동할 수 있는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때의 자유란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실질적 자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기 위하여 자본과 시장을 사회적, 민주공화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복지국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사회민주주의는 기존의 공산주의에서 나타났던 <자유 없는 평등>에도 반대한다. 과거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체제에서 개개인들은 평등한 경제사회적 삶을 살았으되 자유로운 삶은 아니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했으며 경제사회적 삶에 있어서도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지 못했다. 사회민주주의는 이와 같은 <자유 없는 평등>은 개인과 개성을 부정하는 것,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거부한다. 이처럼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유 없는 평등>을 거부하는데, 그렇지만 자유주의와 달리 <평등 없는 자유>를 낳는 자본주의적 경제사회 질서에도 반대한다.

– 연대는 우애와 소통의 공동체

자유, 평등과 함께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세 번째의 고귀한 가치는 사회적 연대이다. 여기서 연대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각자의 이익 증진을 위해 이기적 개인들이 서로 결합하는 ‘이익의 공동체’ 즉 게젤샤프트(Gesellschaft)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예컨대 자본주의 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주식회사는 이기적인 주식소유자들이 각자의 투자수익 향상을 위한 영리적 관점에서 상호 결합함으로써 만들어지는데, 이런 것을 사회적 연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회민주주의가 말하는 사회적 연대란 각 개개인들이 타인들과 동일한 사회적 경제적 삶의 기반 위에 서 있음을 인식하고 그러한 사회경제적 삶을 개선 또는 타파하기 위해 비영리적 관점에서 서로 소통하고 손을 잡는 ‘우애의 공동체’ 즉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를 말한다.

자본주의적 시장과 기업이 우리의 경제사회 생활 속에서 추방하고 억압해온 ‘공동체와 협동의 정신’, 돈으로 평가할 수 없고 살 수도 없는 ‘소통과 우정’ 등이 바로 연대의 다른 표현이다. ‘돈으로 살 수 없으며’, 그러면서도 무한한 부와 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정과 소통, 공동체의 가치이며, 따라서 사회적 연대는 미래 사회를 열어 나가는 핵심적 원동력이다.

사회적 연대만이 자유와 평등을 더 높은 차원으로, 즉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으로 이끌어 올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연대의 정신만이 자유와 평등의 실질적인 내용에 결정적 도약을 가능케 한다. 이들 3자 간의 관계를 보자.

– 자유 없는 연대를 넘어서

먼저 <자유 없는 연대>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자유로운 개인을 부정한 연대, 가짜 연대이다. 물론 자유 없는 연대가 종종 정당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 민족의 자유가 유린된 식민지 시대의 경우 우리 민족 전체의 자유가 유린된 결과 개개인의 자유의 공간 역시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때는 민족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연대 속에서 자유 없는 연대, 집단주의적 연대가 ‘잠정적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연대만이 진정으로 진보적이다.

우리나라에는 지금도 전통적인 연대가 있다. 먼저 학연과 지연 등으로 뭉친 연고주의적 연대가 있는데, 이것은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패거리 문화를 구현하고 있을 뿐,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의 공동체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가족주의 즉 가족적 연대가 있는데, 그렇지만 가족주의는 오늘날 사회적 연대의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이는 악순환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사회적 연대와 그리고 이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가 없으니 개개인은 가족에 기대게 되고 그러니 다시금 사회적 연대에 소극적이거나 무지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을 깨는 방법은 개개인, 특히 가정 내의 여성의 역할, 즉 아동양육과 노인, 환자 돌봄 기능을 복지국가의 틀 속에서 해결함으로써 사회적 연대의 틀을 확보하고 이로써 여성을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하여 경제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만 진정한 자유가 확보된다는 것을 이 예에서 알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가족’을 중시하되 ‘가족주의’에 반대한다. 예컨대, 자본주의 경제의 본원적 불확실성 속에서 각 개인의 노후 보장을 그의 자식이 보장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내 자식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미래 세대가 잘 양육되고 교육되었을 때, 그리하여 훌륭하게 성장한 그들이 생산적인 직업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나와 노인 세대 전체를 위해 소득의 일정 부분을 기꺼이 세금과 사회보장비로 내 놓을 때 나의 노후는 보장된다.

이처럼 사회민주주의는 가족을 넘어서는 ‘세대간 연대’의 가치를 중시한다. 결론적으로 오직 연대를 통해서만 노동자와 여성, 아동과 노인 등 다양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은 실질적 자유를 확보할 수 있다.

이렇듯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적 연대는 모든 형태의 연고주의와 가족주의, 집단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일체의 연고주의와 집단주의, 가족주의에 반대하며, 진정으로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공생의 연대를 구축하려 한다.

– 연대 없는 자유는 껍데기 자유

다른 한편, 반대로 <연대 없는 자유>가 있을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의 대다수는 사회적 연대가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말하면서 ‘연대 없는 자유’를 소중하게 여긴다. 그들은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으로의 단결과 단체행동, 진보세력의 정치적 결집, 연대적 복지국가의 시장 경제 개입 등이 ‘자유로운’ 시장의 효율성을 침해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적을수록 더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분산된 개인 또는 노동자는 오로지 자본과 시장의 막강한 힘과 구속력 앞에 굴복할 자유밖에 없다. 따라서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인간의 자유,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실제로는 자본의 자유, 시장의 자유를 의미할 따름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인간과 개인의 ‘실질적’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본과 시장을 ‘실질적으로’ 통제해야 하며, 그 통제를 위한 기구가 바로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시민운동, 복지국가 같은 사회적 연대체라고 본다.

우리는 내 일자리만 지키고 내 월급만 지키겠다고 발버둥치는 이기적인 개인과 조직들의 필사적 노력이 결국은 모두의 일자리와 소득을 불안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에서 경쟁하는 파편화된 개인으로서는 – 아무리 그것이 ‘공정한 경쟁’이라 할지라도 –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은 불가능하며, 시장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복지국가라는 연대적 결집체가 필요하다.

–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은 결과의 평등을 일정하게 포함

그렇다면 연대와 평등의 관계는 어떠한가? 연대는 평등을 구현해주며 반대로 평등은 연대를 공고하게 한다.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인 것이다. 이 사실은 다음을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연대 없는 평등>은 껍데기에 불과한 평등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공정한 시장질서’가 달성되면 ‘절차적 공정성’과 함께 ‘기회의 평등’이 달성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롭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정의’와 ‘공정’은 ‘사회적’ 정의(사회정의)가 아니라 시장의 정의 즉 ‘시장적’ 정의(시장정의)에 불과할 따름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그것이 제아무리 공정하다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개인간, 기업간 차이를 낳으며 승리자와 패배자를 가른다. 즉 아무리 공정한 시장질서와 함께 제 아무리 공정한 기회의 평등이 잘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피하게 결과의 불평등, 즉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낳는다. 그런데 자유주의자들은 공정한 경쟁질서, 공정한 거래 질서에 따른 시장 결과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모두가 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정의’롭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결과의 불평등 즉 심각한 소득격차의 연속적 누적은 역으로 기회의 평등과 경쟁의 공정성(절차적 공정성)마저 껍데기로 만들어 버린다. 예컨대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어떻게 부유한 집 아이들과 동등하고 공정한 교육 기회 하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건가? 어떻게 그런 경제사회 질서를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단 말인가?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관에 따라, 소득의 불평등, 결과의 불평등을 일정 한도 내에서 사회적으로 통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편적 복지라는 사회적 연대, 이를 통한 소득의 재분배를 통해서만이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이 실현될 수 있으며 따라서 <실질적인 평등>이 이룩될 수 있다. 이렇듯 사회민주주의는 공정 시장, 공정 경쟁이라는 가치 즉 ‘정의로운 시장’이라는 가치보다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 즉 ‘정의로운 사회’라는 가치를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긴다.

물론 자유주의의 진보적 일파 즉 진보적 자유주의는 공정한 시장질서와 보편적 복지를 동시에 추진하면 되지 않느냐고, 즉 ‘정의로운 시장’과 ‘정의로운 사회’를 동시에 구현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진보적 자유주의가 그 ‘행동에 있어’ 여전히 소중히 여기면서 정치적으로 우선시하는 것은 보편적 복지가 아닌 공정한 시장 거래 질서의 구축이다. 게다가 진보적 자유주의가 궁극적 이상으로 꿈꾸는 복지 역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꿈꾸는 높은 수준의 보편적 복지가 아니며,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복지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시장의 합리적 작동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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