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적 특수성 가진 사회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선언-2]동아시아 문명국가 복지국가로 가는 길
        2013년 01월 30일 10: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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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자본주의 진보파의 한계

    물론 모든 종류의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여전히 전통적 진보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제세력이 있다.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는 이처럼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비판 정신으로 충만한 반자본주의 진보파와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먼저 다양한 모습의 반자본주의 진보파는 오늘날 민중의 일상생활을 좌우하는 국가정책과 경제사회 정책의 무대에서 전혀 주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다양한 진보적 자유주의 및 신자유주의자들에게 그 역할을 맡겨 놓은 채 여전히 주변적 위치에 머물러 있다.

    왜 그럴까? 그 가장 큰 원인은 스스로 겪고 있는 사상적 혼란과 이에 따른 정책적 무능력이다. 이들의 대다수가 여전히 과거의 사상과 이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본주의에 내재한 위기와 모순을 해결하는 주도 세력으로서 자신을 환골탈태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일부는 교조적인 전통 좌파 사상에 여전히 머무르면서 자본주의 그 자체를 개혁하는 일체의 개혁적 시도를 거부하거나 또는 소극적 동참에 머무른다.

    이들의 혁명주의적 정신구조는 일거에 모든 것을 뒤집으려는 한판주의이다. 이는 초기 기독교인의 종말론적 태도와 닮아 있는데 따라서 이들의 정치는 일종의 종교적 정치운동이 된다. 또 이들은 강경한 급진적 실천이 있어야 그나마 작은 것이라도 얻는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급진적 실천만 있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혁명이 성공할 것처럼 생각한다. 이들은 현재의 삶을 중시하는 입장을 경멸하면서 수정주의라고 매도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종말론적 종교인의 태도이다.

    그런데 사랑을 기본 정신으로 하는 종교와는 달리 혁명주의는 언제나 상처 받은 자존심에서 비롯된 증오를 정치운동의 에너지로 삼는다. 그렇지만 증오라는 감정은 인간을 과거에 얽매어 현재를 파괴하려 할 뿐, 한걸음도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참된 진보 정치는 인간에 대한 종교적, 철학적 질문에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파괴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일상적 삶을 개선하는 것, 미래를 한걸음씩 여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일상적 삶을 무시한 채 막연한 혁명적 미래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얻고 집권하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인가?

    다른 한편 어떤 이들은 포스트모던 같은 선진국 신좌파의 철학 사상에 물든 나머지 숨 가쁘게 변화하는 국내외 자본주의와 민중의 생활현실을 적극적으로 포착하여 정치경제적 대안을 제시하는데 무능하기 그지없다. 이들은 서구 68혁명에서 시작된 신좌파의 자유절대주의 지향의 무정부주의(아나키즘), 즉 ‘모든 권력과 권위에 대한 부정’과 ‘대안 없는 즐거운 저항’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이 땅의 반자본주의 진보파는 공산주의 또는 포스트모던의 이념을 가지고 있되 그것을 실천할 완성도 높은 경제 전략과 사회 전략, 그리고 그와 결합된 정치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은 현실에서는 불임의 정치 세력이며 그리하여 민중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정치적 능력을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성과를 배우자

    진보의 대안 부재와 그 한계를 목도하면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이론과 역사적 경험이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현안인 대량 실업과 빈부격차 심화, 산업공동화와 출산율 저하 등의 문제를 1백 년 전부터 경험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생활정치의 문제들에 직면하여 대안 없는 혁명주의나 철학적 개인주의로 도피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의 여러 문제들을 실질적으로 해결하고자 싸우는 과정에서 지식인들의 머릿속에나 존재하는 추상적인 ‘혁명적 민중’이 아니라 변덕스럽고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현실의 민중을 발견하였다.

    19세기 말 스웨덴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위키피디아)

    그들은 미래의 언젠가에 이루어질 막연한 혁명에 대한 기대와 준비보다는 ‘지금, 여기’를 개선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사회적 대안들을 고안해내고 실현하는데 몰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저차원적인 욕망을 넘어, 보다 높은 수준의 가치와 삶의 지평으로 민중을 인도함으로써 민중 스스로 새 역사를 창조하는 주역이 되도록 자극하였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내재한 진보적 역동성과 처참한 파괴성의 양면을 동시에 인식했으며, 그 진보적 역동성을 보존하면서도 그 처참한 파괴성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와 정책들을 창조해냈다. 그들은 막연한 이상향(理想鄕)에 대한 유토피아적 열정과 종교적 논의에 집중하기보다는 생활정치에 헌신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장기간 집권하는 가운데 한 걸음 한 걸음 미래로 나아갔다.

    그렇기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본주의와 세계 경제라는 제약조건을 철저히 고려한 가운데 ‘자유와 만민평등’이라는 인류의 꿈에 조금씩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했으며, 그리하여 현실 속에서 그 이상(理想)에 가장 근접한 국가를 건설해냈다.

    또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기존 좌우파의 철학적 도그마를 극복하여 ‘자유’와 ‘인권(기본권)’의 개념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즉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좌파와 우파의 역사적, 긍정적 유산을 폭넓게 받아들여 그것을 소화하였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양자의 합리적 핵심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양자의 한계와 부정성을 극복하고자 하였으며, 그리하여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양자의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 혁신적인 정치·정책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그리하여 민주공화국이 자본과 시장을 이성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여 사회공동체의 발전과 개인·개성의 해방에 기여하도록 경제를 재편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마르크스는 철학의 근본문제는 “세계를 해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세계를 변화시키되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또한 그 변화를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연속적인 과정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그들은 공상적 구호를 내거는 정치의 아방가르드보다는 현실적인 정책의 아방가르드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정립하였다.

    우리나라 특수성 속에서의 사회민주주의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성취한 역사적 전통과 성과를 이어받고자 할 때, 한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특수한 국내외적 환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에서는 남북분단 상황에서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이 오랜 기간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추동된 결과, 그리고 지난 민주 정부들이 보수적 및 진보적 자유주의들의 협조 하에 시장 주도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결과, ‘시장 원칙’과 ‘자본제일 원칙’이 일상생활의 지배적 규칙(rule)으로 확립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삶의 폐단을 교정할 역사적 기회를 지금까지 갖지 못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주의 그 자체의 폐단을 교정할 진정한 진보적 생활정치에 대한 민중의 욕구가 극도로 높아지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민주 정부가 추진한 형식적 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가 낳은 삶의 피폐화에 실망한 국민들은 이명박 한나라당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렇지만 보수적 자유주의 이명박 정권이 전방위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한 결과 민중의 삶은 더욱 피폐화되었고, 그리하여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렇다면 박근혜 식의 보수주의, 즉 자본주의를 적절히 관리하고, 노동자와 국민을 어떻게 적당히 통제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들의 입장에서 삶의 환경을 개선하려는 데는 관심이 없는 보수주의 복지국가론에 맞설 수 있는 진보적 대안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이 민주통합당 또는 통합진보당 식의 진보적 자유주의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대안 없는 반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일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남는 유일한 대안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양자의 긍정적 성과를 수용하면서도 그 양자의 부정적 한계를 뛰어 넘는 사상, 사회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다.

    둘째, 이미 수년간 진행 중인 글로벌 금융위기는 앞으로 더욱 심각한 파국적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 국면에서 세계 자본주의는 수많은 위기와 혼란, 격변과 대립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위기와 격변 속에서 국제적 신자유주의에 맞서 단지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긍정적인 대안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국제적 사회민주주의이다.

    셋째, 개발도상국 단계를 지나 선진국 문턱까지 이른 한국 경제의 발전 수준을 볼 때 우리는 이 나라가 이미 자유주의적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선두 그룹의 일원으로 떠올라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한국의 진보 세력은 한국 자본주의가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자본주의와 중국과 일본의 동아시아 자본주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협력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으면서 자신의 정치 전략과 경제사회 전략을 구사하여야 한다. 우리 경제의 발전 수준과 대내적 복지국가의 발전 수준에 조응하여, 그에 맞는 적절한 수준의 대외 개방과 대외 협력을 신중하게 추진하여야 한다.

    이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진보적 대안은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로의 무조건적 통합을 의미하는 FTA도 아니며, 그렇다고 무조건적 단절을 의미하는 반세계화도 아니어야 한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보호주의가 득세할 위험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대내적 복지국가의 발전에 조응하는 적절한 수준의 대외개방과 대외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정치경제적 사고방식은 사회민주주의이다.

    넷째, 중국의 성장과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간의 긴장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미·중·일·소 등 초강대국으로 둘러싸인 한반도는 끝까지 평화와 중립을 선택해야 자립과 번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런데 대외적인 평화와 중립을 고수하기 위해서도 대내적인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전략이 필수적이다.

    과거 스웨덴이 제2차 세계대전에 휩쓸리지 않고 대외적 중립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복지국가 전략을 통해 대내적인 경제적,사회적 긴장을 해소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여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려 하는 우리는 이 나라의 지난 1백년 역사가 낳은 성과와 한계를 모두 껴안으며 드디어 보편적 세계사의 중심 무대로 나아가고자 한다.

    즉 이 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의 탄생은 19세기말 유럽에서 출범한 사회민주주의가 한 세기를 건너 뛴 끝에 이 땅에 그리고 아시아에 상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앞으로 대한민국과 아시아가 세계 역사를 이끌어갈 역할을 수행할 것임을 당당하게 선언한다.

    사회민주주의는 미래 역사의 주역

    이런 모든 면을 고려할 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무엇보다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이다. 스웨덴과 핀란드, 덴마크는 역사적으로 사회민주주의 사상의 종주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영국과 독일, 프랑스의 ‘제3의 길’ 사회민주주의들과 달리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자유주의적 재편이라는 도전에 맞서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는데 상당 부분 성공하였다. 즉 그들은 보편적 복지와 노동민주주의를 두 축으로 하는 복지국가 체제가 시장유연성과 어느 정도 상호보완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북유럽 사회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에게 상당히 양보하였으며 진보의 역사적 성과에서 후퇴한 면이 일부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북유럽 사회민주주의는 진보의 주요한 역사적 성과와 내용을 방어하는데 성공하였으며 그리하여 인류가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은 1930년대의 대공황 속에서도 노-농 동맹과 같은 창의적인 정치노선과 그리고 가장 앞선 선구적인 적극적 재정지출 확대 정책 등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으며, 이를 통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은 바 있다. 그리고 지금도 북유럽을 비롯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국제금융자본이 요구하는 긴축 기조를 거부하고 복지국가의 유지 및 강화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 나가고 있다.

    지금 이 나라가 직면한 상황도 1930년대에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직면했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만약 오늘날 이 땅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세계 자본주의의 대위기 국면 속에서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처럼 적극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정치적, 정책적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이 나라 민중과 시민의 신뢰를 점진적으로 획득하는데 성공한다면, 이들은 다가오는 미래에 이 땅의 주도적인 정치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 과제는 이 나라를 복지국가와 문명국가로 만드는 본격적인 진보 정치이다. 마치 소국이면서도 오늘날 세계적인 복지국가이자 문명국가로 우뚝 선 스웨덴과 핀란드처럼, 우리는 대한민국을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복지국가, 문명국가로 만들고자 한다.

    이 나라 진보는 영광스럽게 사회민주주의로의 부름을 받았으며, 아시아 최초로 고차적인 복지·문명국가를 건설하는 영광스런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 기회를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의 여부는 오로지 우리의 의지와 열정에 달려있다.

    미래는 우리의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여, 일어서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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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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