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윤주형씨, 복직문제로 괴로워해
        2013년 01월 29일 03: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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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밤 11시 30분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윤주형씨(37)는 죽기 전까지 복직 문제로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도장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윤씨는 하청회사의 차별에 저항하며 노조 활동을 펼쳤으며 2010년 4월 해고된 뒤에도 ‘기아자동차 해고자 복직 투쟁위원회(해복투)를 만들어 해고자 복직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요구 투쟁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하지만 2012년 9월 노사간 교섭에서 해고자 전원 복직은 받여들여지지 않고, 4명의 해고자(해고자 중 1명은 정규직, 3명은 비정규직) 중 정규직 1명과 비정규직 1명만의 복직 날짜(2014년 1월 1일)를 확정하는 것으로 합의됐다. 윤씨를 비롯한 나머지 해고자들에게는 ‘취업알선’이라는 합의만 있었을 뿐이다. 심지어 그 알량한 취업알선마저도 합의서에 기재되어 있지도 않은 구두약속이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당시 노사 교섭과 관련해 윤씨가 정규직 노조에 대한 원망과 불신이 커졌다고 전했다. 누구보다 밝았던 윤씨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진 것도 9월 노사 합의 이후였으며 많이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왼쪽이 고 윤주형씨. 사진 출처는 윤주형 페북

    윤씨가 남긴 A4용지 두 장 분량의 유서에도 그 같은 내용이 명시되어있지만 장례위원회에서 이를 공개할지 여부는 현재 논의중이다.

    윤씨는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평소 복직 문제와 정규직 노조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23일 마지막으로 작성한 글에서도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동지. 혁명과 노동자를 외치던 수많은 활동가들은 아무도 그의 고민을 몰랐다. 죽고 난 그를 놓고 말잔치를 벌이는 현실은 차갑다 못해 비정하구나. 노동자의 힘으로 현장과 세상을 바꾸겠다면서 노동자들과 제대로 관계 맺고 있는 것인가? 내게 가장 소중한 관계에서부터 잊고 있던 관계들을 종일 되짚어 본다. 주접떨지 말고 자중해야겠다”고 남겼다.

    지난해 12월 17일에 남긴 글에서도 그는 조직 내부의 민주성 문제를 제기하며 “본래 목적을 위해 그 조직의 파괴가 불가피하다면 파괴하는 것이 올바른 활동가의 태도다. 물론 이와 같은 방식은 최후의 선택이 되겠지만 조직 건설 본래의 목적이 조직 유지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여러 사례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윤씨가 떠난 다음 날인 오늘(29일) 해복투는 추모 성명을 통해 그의 죽음에 대해 “우리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윤주형 동지가 4년 동안 일하던 공장에서 쫓겨나고, 기아자동차와 하청업체의 온갖 모함에 시달려 힘들어할 때도 우리는 그와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라며 또한 “절망스런 합의 이후 지난 6개월 동안 환한 웃음을 짓던 윤주형 동지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그가 힘들어할 때 우리는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루만지지 못했습니다”고 자책했다.

    이어 해복투는 사측에 대해서도 “만약 그가 공장에서 쫓겨나지 않고 그의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일했다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겠습니까?…2012년 여름 노사간의 임단협에서 최소한 다른 비정규직 해고자와 함께 복직을 약속했다면 이렇게 절망 속에서 쓰러졌겠습니까?”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해복투는 “윤주형 동지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라며 “윤주형 동지가 걸어온 삶과 온 몸을 다했떤 투쟁이 헛되지 않도록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윤씨의 장례위원회가 구성됐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와 사내하청 분회, 해고자복지투쟁위원회가 공동으로 구성했다.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 해복투 3단위가 모두 참여한 것이다.

    윤씨의 유족이 없어, 장례위원회에서 윤씨의 장례를 책임지기로 했으며 공동 상주로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의 김수억씨와 사내하청분회의 양경수 분회장, 정규직 노조인 화성지회의 이재훈 부지회장이 맡기로 했다.

    장례 일정과 관련해서는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에는 윤씨의 죽음에 대한 기아자동차측의 책임 규명과 윤씨의 명예회복이 관철될 때까지 장례 투쟁을 벌어기로 했으며, 화성지회는 오늘 임시대대를 통해 31일 발인을 하기로 결정하고  그때까지 책임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투쟁하기로 했다.  더 구체적인 내용은 현재 협의중이다. 빈소는 화성중앙병원 장례식 6호실이다.

    필자소개
    장여진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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