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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리딩의 힘-②] 부모의 역할 '놀이의 추종자'
        2012년 05월 31일 01: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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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잘 키워서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기, 아이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아이가 틀린 부분을 잘 지적해주기. 아이를 키우는 데 좋은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주어’가 어른이다. 아이가 훌륭한 아이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아이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부모는 철저히 조연, 조력자에 머무를 때 특히 빛이 난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능력이 어른처럼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표현할 수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록 진척이 늦어서 답답하다고 느껴질지라도 철저히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훈련이 가장 중요하다.

    의외로 부모님들은 이런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지적을 잘 하는 부모님은 자신의 부모님으로부터 지적을 들어왔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똑같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메모리딩 참여 부모님이 아이의 노트에 단 댓글 사례

    위 그림은 <책 먹는 여우>(주니어김영사)를 읽은 가족이 작성한 메모리딩 노트의 일부이다. 줄거리는 책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책을 훔쳐 먹었다가 감옥에 갇힌 여우 아저씨가 일필휘지로 소설을 썼고, 그 소설은 수백만부가 팔려나가면서 부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메모노트에는 아이가 기록할 부분과 부모가 반응하고 칭찬하는 난이 있다. 이 부모님은 생각이 술술 흘러나오는 연필이 실제로는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아이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상한 부모가 가지고 있는 교육 방법을 실천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아이는 여우아저씨의 연필에 주목하며 마치 ‘마법의 신발’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연필은 다 평범할 뿐 여우아저씨의 독서력에서 나온다고 말했을 때 아이는 상상을 멈추게 된다. ‘아, 그런 것은 없구나.’ 더군다나 아이가 스스로 얻은 결론이 아니라 엄마가 바로잡아준 결론이기 때문에 엄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이 상황 어떻게 해야 할까?

    수동적 듣기와 적극적 듣기

    심리학자 A.매슬로는 수동성을 강조했다. 특히 육아에 있어서는 부모의 수동적인 자세가 아이를 성장시킨다고 다소 엉뚱해 보이는 주장을 했다. 존 셰린이라는 미국의 심리치료사가 1916년에 남긴 수동적 듣기와 적극적 듣기에 관한 기록을 보자.

    “자신이 기대하거나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실제 말한 것을 듣고자 한다면, 훌륭한 치료사는 판단하기보다는 수용적으로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매슬로, <존재의 심리학>(문예출판사), 207-208면)

    즉 환자에게 강요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말이 흘러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경우만이 환자가 한 말의 윤곽과 패턴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적극적 듣기를 하게 된다면 치료자 자신의 이론에 부합되고 치료자 자신이 듣고자 하는 것만을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치료자를 부모님으로, 환자를 어린이로 바꿔도 훌륭한 교훈이 된다. 매슬로는 노자와 도교 철학자들이 이와 같은 일종의 ‘수동적’ 인지를 가장 잘 기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자를 수동적이라고 분석한 부분은 참 흥미로우면서도 날카로운데, 매슬로는 도가의 무위를 수정해서 ‘원조적 무위’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때때로 도교의 무위(let-be)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한 인간에 대한 나의 입장은 도교의 무위를 수정한 것으로, 이런 입장을 ‘원조직 무위(helpful let-be)’라고 공식화할 수 있다. 즉 사랑과 존중의 도교이다. 이러한 입장은 성장 및 성격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성장에 대한 두려움, 느린 성장 속도, 성장을 방해하는 것들, 병리적 특성 및 병리적 이유 또한 인정한다. (160-161)

    한마디로 수동적으로 듣되, 아주 내버려두지는 말라는 뜻으로 보인다. 이제 정리를 해보자. 심리치료사의 목적은 환자의 생각을 여과 없이 듣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독서활동을 하는 부모님의 목적은 아이의 생각을 여과 없이 듣는 것이다. 만약 심리치료사가 자신이 연구한 이론을 가지고 개입한다면 환자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하지 못하고 치료자의 이론적 틀에 빠지고 말 것이다. 부모님이 아이를 바로잡아주려는 뜻으로 개입하면 아이의 생각은 부모님의 생각에 갇히고 말 것이다. 놀이치료의 전문가 상진아 박사도 <행복한 놀이대화>(랜덤하우스)라는 책에서 부모의 좋은 역할을 “놀이의 추종자”라고 표현했다.

    놀이를 할 때는 아이가 놀이방향을 이끄는 리더가 되고 부모는 아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섬기는 추종자가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놀이는 아이의 언어이며 이 언어를 가장 잘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또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상진아, <행복한 놀이대화>, 28-29면)

    그러면 어떻게 할까?

    앞서 아이가 썼던 독서노트에 대해서 부모님은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 심리학자들은 일단 공감을 표현하고 아이가 상상력을 확장해주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아이의 생각을 다르게 표현하거나, 말을 덧붙여서 상세하게 재현해주면 아이의 뇌 자극이 강하게 일어나며 학습효과도 커지고 호기심도 자극된다고 한다.

    반응1 : “우와, 우리 혜주는 글이 술술 나오는 마법의 연필을 생각했구나.”

    반응2 : “우리 혜주는 예쁜 그림이 그리고 싶은 거구나. 그림이 예쁘게 잘 나오지 않아서 속상했나 보구나”

    ‘반응1’에서는 ‘마법의 연필’이라는 말을 새로 넣어서 혜주의 생각을 확장했다. <책 먹는 여우>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어른이라면, 여우가 수많은 책을 훔쳐 먹으며 쌓은 실력이 위기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발휘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가 알아야 하는 답이 아니다. 혜주의 입에서 나온 말이 곧 답이자 출발점이다. 혜주는 여우가 마법의 연필을 손에 넣어서 멋진 글을 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아이의 말과 행동, 그리고 아이가 쓴 글을 반복적으로 관찰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부모가 마음속에 제대로 가르치려는 마음이 가득 있으면 좀처럼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반응2는 혜주의 평소 고민을 건드려준 것이다. 왜 하필이면 혜주가 “예쁜 그림”을 생각했을까? 여우는 “멋진 글”을 썼는데, 멋진 글에서 멋진 그림으로 혜주의 관심사가 이동했다. 이것은 일종의 ‘놀이 언어’다. 하버드대학교의 ‘성장발달연구 프로젝트’를 책으로 다룬 <3~7세 아이를 위한 사회성 발달 보고서>(지식채널)를 보면 아이들은 종종 놀이를 통해 자신의 걱정을 표출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대중매체를 통해 목격하거나 어른들의 말을 통해 접하게 되는 세상의 모습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고 관찰되었다. 메모리딩은 엄마와 아이가 하는 일종의 놀이인데, 놀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평소 생각했던 것과 걱정을 꺼내놓게 된다. 부모는 이것을 놓치면 안 된다.

    혜주가 써 놓은 “예쁜 그림”은 무척 중요한 단서다. 혜주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개 부모들은 이런 중요한 장면을 번번이 놓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바르게 키우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진짜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아이의 입장에서 출발하고, 아이가 한 말 하나하나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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