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의 눈으로 본 의회정치
    [진보정치 현장] 뿌리 깊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 의식들
        2012년 05월 31일 03: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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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경북 경산지역의 기초의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엄정애입니다. 평소 의정활동을 하면서 느낀점을 레디앙 독자 여러분들과 소통하며 지역에서 일어나는 작은 의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진보적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깃발만 꼽으면 당선된다는 새누리당 텃밭인 경상도에서 진보정당 지역구 지방의원으로 활동한지 2년이 다되어 간다. 처음 의회에 들어가면서, 나의 각오는 진보정당 여성의원으로서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무엇보다 잘 할 자신이 있었다.

    공청회에서 발언하는 엄정애의원(오른쪽)

    2010년 7월 행정사회위원회에서 다룬 첫 조례안은 [경산시 여성회관 설치 및 운영 조례 전부개정조례안]이었다. 사업소의 운영규정에 관한 것이라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첫 조례안이라 타 시의 조례를 검토했고 수정 조례를 만들어 상임위원들에게 배포하였다.

    집행부안은 기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기초생활수급권자와 「한부모 가족지원법」에 따른 한부모 가족에 대해서만 면제되어 왔던 사용료와 수강료를 개정조례안에 다문화가족지원법에 따른 다문화 가정을 포함시키자는 안이었다.

    평소 여성단체 활동을 해온 나로서는 매번 교육장소가 없어서 관내 학교, 시민단체에 빈 공간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는 지라 이번에 여성회관 조례에 “시장이 인정하는 여성단체가 공익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사용료를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고자 했다.

     상임위원들과 의견 조율을 하는데 모 의원 왈 “아이구 여자들이 모여서 수다 떠는데 왜 여성회관을 공짜로 빌려주냐” “참 여자들 살기 좋은 세상이네” 라고 했다

    난 순간 너무 당황했지만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의원님 다른 조례에 보니 국가유공자와 유족도 다른 시에서는 공공기관에서 면제하던데 같이 삽입하면 어떨까요?”

     “그래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분들에게는 당연히 예우를 해 주어야 하는데. 여성단체가 하는 일도 없는데 공짜로 해줄 필요가 있을까?”

     난 가슴이 먹먹했지만 마음을 가다듬어 마지막 말을 했다. “만약 이 조항이 삽입되지 않는다면 저는 경산시에 있는 여성단체들과 함께 의원님이 발언하신 여성 비하 발언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습니다.” 결국 이 조항 하나로 3시간을 싸우고 나서야 경산시 여성단체들이 공익적인 목적일 경우 여성회관 사용료를 면제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수 있었다

     이 조례를 심의하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사회에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성의식이 얼마나 깊숙이 뿌리 박혀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2012년 경산시 예산 규모는 4500억 정도인데 여성관련 예산은 11억 정도로 0.25%를 차지하고 이중 한부모가족 복지 증진사업인 국비보조사업이 5억원 정도를 차지해 사실상 6억원 정도가 여성정책 사업이며 시가 자체적으로 하는 정책사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지역 여성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상임위활동하면서 성인지 예산작성을 요구하였고 예산지원에 있어서 일회성 행사 예산보다는 여성정책예산을 편성하여 새로운 사업을 시행해 볼 것을 건의 한 결과 올해 첫 성인지 예산서가 나오게 되었다.

    담당부서 공무원외에는 별 관심 없이 만들어진 예산서이지만 경산시 예산을 성별 영향평가를 통해서 성차별을 해소하고자 한 일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여성정치

    여성정치란 무엇일까? 그것은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일상에 산적한 여성문제에 대해 저항하고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문제라 하면 막연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역여성들과 이야기해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말한다. 남편과의 소통 부재,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가난의 문제, 동네 도서관이 없어서 아이들과 책을 보러 갈 때면 차를 타야하는 불편함, 자식은 있지만 돌보지 않아 살길이 막막해 하시는 여성 어르신들의 이야기, 남편은 있지만 대화상대가 있으면 좋겠다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민 등 여성의 삶 속에 녹아있는 문제에 대하여 여성의 입장에서 해결해 나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편한 진실, 하지만 걸어가야 할 길

    여성주의 시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삶을 매우 힘들게 한다.

    “저 사람 운전을 왜 저렇게 해, 안 봐도 여자다” “성교육은 왜 하노, 결혼하면 다 아는데” …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의식,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생각하고 권력을 가진 자로서 상대의 동의에 상관없이 함부로 해도 된다는 폭력성과 마주칠때면 깊은 상실감이 밀려온다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일이지만 그것을 말하고 저항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기존 질서대로 흘러가고 어느새 나도 그 질서속에 묻혀 살아갈 것이다.

    한마디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새누리당 중심인 경상도에서 진보정당 여성의원으로 의정활동하기는 쉽지가 않다. 조례 하나 발의 할려고 해도 의원 3명의 동의가 필요하고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8명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소수정당으로선 타협과 협상이 필요하며 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능력없는 왕따 의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갈등을 한다. ‘어느 선에서, 어떻게 하면, 이 일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

    가보지 않은 길이라 두려운 적도 많았지만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하며 길찾기를 한다

    그 길이 누군가에겐 행복이 되고 희망이 됨을 믿기에…

    필자소개
    정의당 소속 경북 경산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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