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요한 건 저항한다는 사실 자체
    [책소개] 『누구나 홀로 죽는다』(한스 팔라다/ 씨네21북스)
        2013년 01월 26일 01: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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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삶, 치욕과 눈물, 고뇌와 죽음에 대해 항상 새롭게 승리하고야 마는 삶을 위한 것이다.”-본문 중에서

    힘없는 노동자 부부, 나치와 싸우기로 결심하다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에서 아들이 무의미한 죽임을 당하자, 노동자 부부 오토와 안나 크방엘은 나치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엽서에 반히틀러 메시지를 적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건물에 놓아두는 것.

    그러나 2년 동안 뿌린 276통의 엽서는 18통을 제외하고 고스란히 게슈타포의 손으로 들어갔고, 부부는 투옥된다. 그들은 고작 18통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저항이 약하건 강하건, 작건 크건 누구나 자기 목숨보다 더 큰 것을 걸 수는 없다. 누구나 자기가 가진 힘과 능력만큼 행동할 뿐이다. 중요한 건 바로 저항한다는 사실 자체이다.

    이 소설은 베를린의 한 노동자 부부가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저질렀던 불법 행위에 관한 게슈타포의 기록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나치라는 거대한 악과, 침묵과 두려움으로 그에 동조한 독일 시민들, 자기 업무에 충실한 게슈타포, 이웃을 염탐해 먹고사는 협잡꾼, 그 와중에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 그리고 그럼에도 인간임을 잊지 않고 무력하지만 용감한 싸움을 벌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놀라운 흡인력으로 읽는이를 사로잡는다.

    엽서 한 장으로 나치와 싸운 노동자 부부의 실화 소설

    나치 치하, 독일 시민들은 모두가 히틀러에게 동조했을까? 이웃나라와 전쟁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탄압해 부와 영화를 가져다주겠다는 약속을 모두가 믿고 따랐을까? <누구나 홀로 죽는다>를 쓴 작가 한스 팔라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 소설에서 외롭고 무모한 저항 끝에 목숨까지 잃은 노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믿고 끝까지 선량함을 버리지 않은 독일 시민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한스 팔라다는 1893년 독일 그라이프트발트에서 태어나 귀족 영지의 관리인, 광고인, 출판편집자 등 다양한 일을 했다. 1920년 소설 <젊은이 괴데샬>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1947년 세상을 뜰 때까지 <농부, 관료, 그리고 폭탄> <늑대들 속 늑대> 등 여러 작품을 썼다. 팔라다는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제정되어 귄터 그라스, 베른하르트 슐링크, 스텐 나돌니 등 쟁쟁한 작가들이 수상했을 만큼 영향력 있는 독일의 국민 작가다.

    팔라다는 1945년 게슈타포 기록을 통해 베를린에 살았던 한 노동자 부부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1940년부터 1942년까지 히틀러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적은 엽서를 적어 공공장소에 뿌렸다. 자식은 없었고, 적막을 즐겨 고립된 생활을 하던 이들은 부인의 남동생이 전사한 것을 계기로 반 히틀러 운동을 시작했다.

    “히틀러의 거짓말을 더 이상 믿지 맙시다! 히틀러는 오로지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려고 할 뿐! 천천히, 더 천천히 일합시다! 동계구호사업 기금을 내지 맙시다.”

    “나치가 러시아를 침공하자 러시아 군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히틀러의 학살단이 기습을 감행했을 때 러시아 군인들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필적을 감추기 위해 손으로 인쇄체를 흉내내어 쓴 엽서에 이와 같은 메시지를 담았다. 지식인층이 아닌지라 문장을 다듬고 오자를 걸러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 또한 모든 작업을 일일이 손으로 했기 때문에 주말 동안 두세 장 정도밖에 쓸 수 없었다. 엽서의 끝에는 “이 엽서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세요.”라고 적었다.

    외롭고 무모한 저항이 선사하는 기적 같은 힐링!

    그들은 자신들의 이 지난한 작업이 곧 여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2년여 동안 썼던 200여 통의 엽서는 대부분 게슈타포로 신고되었다. 게슈타포는 긴장했다. 정련되지 않은 문장, 순박한 구호는 누가 봐도 조직이 아닌 일반 시민이 만든 것이 분명했다.

    사회주의 운동가들이라면 으레 쓸 법한 교조화된 관용구나 구호도 없었다. 별것 아닌 엽서 몇 장에 불과했지만, 민중의 반발을 두려워한 게슈타포는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몇 번의 행운이 부부를 도왔으나 그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들은 1942년 체포되었고, 사형에 처해졌다.

    한스 팔라다는 이 책의 부록에 수록된 글 <히틀러의 학살에 대한 독일인의 저항은 분명 존재했다!>에 실제 모델인 노동자 부부의 사건기록과, 이 작품을 쓰게 된 경위를 상세히 밝혔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이렇게 적고 있다.

    오토 크방엘과 안나 크방엘이라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저항은 듣는 사람 없이 소멸되었고, 가망 없는 싸움에 헛되이 자신들의 목숨을 바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그렇게 완전히 가망 없었던 건 아니지 않을까? 어쩌면 아주 헛된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앞으로 쓰게 될 소설의 저자로서 나는 그들의 투쟁, 그들의 고통, 그들의 죽음이 아주 헛된 것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이들의 무모한 저항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을까?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 고작 몇 통의 엽서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팔라다는 이런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소설의 여러 곳에 심어두었다. 이를테면 오토 크방엘이 수감된 감방의 동료 죄수였던 닥터 라이히하르트와의 대화가 그렇다.

    “우리의 저항이 누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 겁니까?”

    “우리 자신에게요. 죽을 때까지 우리는 의로운 인간이었다고 느끼게 될 거니까요. 크방엘 씨는 최소한 악에 저항했습니다. 같이 약해지지 않았단 말입니다. 야만적인 폭력에 맞서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우리가 승자가 될 겁니다.”

    “우리는 각자 행동했고, 따로 잡혀왔고, 홀로 죽을 겁니다. 하지만 헛된 죽음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괜히, 헛되이 일어나는 일은 없어요.”

    한스 팔라다는 2차대전 직후인 1946년 이 작품을 24일 만에 써내려갔다. 전범국의 국민으로서 가졌을 부채감을, 최소한 악에 가담하지 않았던 선량한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증명’을 보여주고 싶었을 터이다. 1947년 그는 이 책의 출간 몇주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소설은 영화와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으며 팔라다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이고 인기 있는 소설로 꼽히고 있다.

    협잡꾼, 성실한 게슈타포, 희생자, 그리고 선량한 시민

    이 소설의 매력은 묵직한 주제의식과 더불어 다양하고 입체적인 인물들에 있다. 당시 독일에 살았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 가운데, 두려움으로 침묵하는 다수의 인물들과 그저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할 뿐인 게슈타포, 도박중독자이자 무능력해서 동정의 가치가 없는 인물이지만 희생양이 되어버린 사람, 그리고 그들을 아무 대가 없이 도와주는 선량한 시민들의 이야기가 그물처럼 촘촘하게 짜여 있어 800쪽짜리 소설이 단숨에 읽힌다.

    “우리만은 나치가 되지 말아야죠!”

    오토헨이 제일 좋아했던 건 라디오 만지는 거였고, 군에 가기 싫어 울었다는 걸 당신도 나도 알잖아요? 그런데 이제 그 아이가 모든 군인의 모범이고 장렬하게 전사를 했다고? 거짓말, 모두 다 거짓말이에요. 이 모든 게 당신과 당신의 총통 각하가 벌이고 있는 그 끔찍한 전쟁 때문이라고요! – 안나 크방엘(평범한 노동자의 아내, 아들이 전사하자 남편과 함께 정부 비판 엽서를 배포한다)

    독일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가 될 겁니다. 그런데 수만 명 정도 죽는다고 뭐 대수겠어요?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될 거라고요! -보르크하우젠(주민들을 감시해 자잘한 정보를 게슈타포에 제공해 먹고사는 놈팡이)

    그렇게 부자가 되면 뭘 할 수 있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먹게 되나요? 아니면 잠을 더 잘 수 있나요? 부자가 돼서 더 이상 공장에 나갈 필요가 없으면 하루 종일 뭘 해야 하죠? 딴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 부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더구나 그런 방식으로는. 그렇게 얻은 부는 한 사람의 목숨 값도 안 돼요! -오토 크방엘(가구공장 작업반장으로 아들이 전사한 후 정부를 비판하는 엽서를 쓰기 시작한다)

    우리의 첫 번째 엽서에 적을 첫 문장은 이래. ‘어머님! 총통이 제 아들을 죽였습니다!’

    안나는 오토의 그 첫 문장이 그의 선전포고라는 것을 한순간에 깨달았고 그 전쟁이 누구와 누구의 전쟁인가도 어렴풋하게 이해했다. 한편에는 말 한 마디 때문에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가난하고 비천하고 하찮은 노동자인 이 부부가 서 있고 다른 한편에는 총통, 당, 온갖 권력과 영광을 누리고 있는 거대한 조직과 그 뒤를 따르는 전체 독일 국민의 4분의 3, 어쩌면 5분의 4가 서 있다. 그렇다, 이쪽에 서서 싸울 사람은 야블론스키가의 이 작은 방에 있는 두 사람뿐이다! -(크방엘 부부의 첫 번째 엽서)

    우리는 온 베를린에 그런 엽서가 넘쳐나게 만들고, 공장 기계들을 멈추게 만들고, 총통을 무너뜨리고, 전쟁이 끝나게 만들 거야.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의미 없는 익명의 존재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같이 우글거리고 있는 무의미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오로지 둘만 그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나왔다. 다른 누구와도 혼동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둘은 완전히 고립된 외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크방엘 부부가 엽서에 대해 기대했던 것)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들과 다르다는 거예요. 설사 그들이 온 세상을 다 무릎 꿇게 만든다 해도 우리는 나치가 되지 말아야죠! -트루델 바우만(전사한 크방엘 부부 아들의 약혼녀)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민중 선동가일 뿐이야. 자기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있을 뿐이라고. 아들이나 국가 같은 건 그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 아마 나이 든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뭐 이런 놈일 거야.”

    “그들은 파시즘이니 반동주의니 연대니 프롤레타리아니 이런 단어들을 빼놓고는 말을 못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엽서에는 그런 단어는 하나도 없었어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는 아니에요.” -(엽서 사건을 수사하는 게슈타포간의 공방)

    총통이 정말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라면 이런 전쟁은 일으키지 말았어야 했다. 수백만 명을 매일 사지로 몰아넣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위대한 사람일 리가 없다. 그녀는 자신만은 자존심을 지킬 거라고 결심했다. 그러면 바른 처신으로 자존심은 지켰다는 한 가지 성과는 인생에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에바 클루게(크방엘 부부에게 아들의 전사 소식을 전달한 집배원)

    저에게는 복종해야 할 주인이 있습니다. 그 주인은 저와 부인과 이 세상, 그리고 이 세상 바깥에 있는 세상까지도 지배하는 분입니다. 그 주인은 바로 정의입니다.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의를 믿습니다. 그리고 정의만을 제 행동의 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프롬 판사(크방엘 부부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은퇴한 판사, 유대인 로젠탈 부인을 은닉해준다)

    그들은 폭력으로 우리를 그들과 같은 생각으로 전향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폭력의 지배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비, 사랑, 정의를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행동해야 했고, 모두 따로따로 잡혀 들어왔고, 모두 혼자 죽게 될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혼자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헛되이 죽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라이히하르트 박사(오토 크방엘과 함께 수감된 사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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