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티 우먼'과 주주자본주의
    [경제와 사민주의]주주자본주의적 재벌개혁론에 대한 비판
        2013년 01월 24일 0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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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 로버트가 인기를 얻은 ‘프리티 우먼’(pretty woman)이라는 영화에는 1980년대 후반의 미국에서 선량한 기업을 조각조각 해체하여 지역공동체의 삶을 파괴하는 나쁜 자본가가 등장한다.

    기업사냥꾼인 리차드 기어가 그 인물로 나오는데, 실제 모델은 칼 아이칸이라는 유명한 기업사냥꾼이다. 지금도 미국에는 칼 아이칸처럼 기업사냥 즉 적대적 M&A 위협을 전문적으로 일삼으며 떼돈을 버는 사모펀드 운영자가 많다.

    201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롬니 역시 비슷한 사모펀드 운영으로 억만장자가 된 자이며, 그는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월가 점령’ 운동을 조롱하곤 했다.

    칼 아이칸은 2006년 초 우리나라의 KT&G(과거 담배인삼공사)에 대해서도 적대적 M&A 위협을 가했다. 우리 사회에는 재벌기업과 공기업의 ‘비효율적인 기업지배구조’ 때문에 1997년 외환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주류경제학식 경제민주화론이 지배하면서 기업지배구조 개혁이 시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상적 모델로 간주된 것은 지배주주, 대주주가 없도록 주식 소유가 완전히 분산되고 집중투표제와 사외이사제 등을 통해 소수주주의 권리 및 이익 관철이 용이한 주주자본주의적 기업지배구조였다. 과거 공기업이던 담배인삼공사(KT&G)와 한국통신(KT), 그리고 포스코 등이 민영화 과정에서 그런 식의 기업지배구조로 바뀌었다.

    소액주주의 이익이 완벽하게 관철되는 민영화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완료된 2002년과 2003년에 KT와 KT&G는 경제민주화 시민단체들로부터 ‘최우수 기업지배구조상’을 연이어 받았다.

    시민단체를 대표해 상을 준 강철규 교수는 노무현 정부 출범 후 공정거래위원장이 되어 재벌개혁을 이끌었다. (그 후 2012년 4월 총선에 즈음하여 강철규 교수는 이른바 민주당 내 친노 세력의 추대에 의해 공천심사위원장으로 활동했고, 그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결정적 원인인 친노 패권주의 공천을 실무 지휘했다).

    그는 KT와 KT&G와 같은 민영화 공기업들이야말로 재벌개혁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모델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이칸의 적대적 M&A 위협에 대해서도 “적대적 M&A 과정의 공격과 방어 과정에서 투명성이 높아지고 지배구조가 개선될 것”이라며 기업사냥 펀드의 투기적 이익추구를 옹호했다.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온 여러 학자들 역시 KT와 KT&G야말로 이상적인 기업지배구조 모델이며, 재벌개혁은 궁극적으로 KT와 KT&G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즉 재벌의 계열사들을 독립기업화하고, 그 독립 대기업들에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지배주주도 존재하지 않도록 하며, 그리하여 소수주주와 기업사냥 펀드가 ‘투자자 이익 극대화’를 위해 마음껏 자신들의 권리와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상태를 이들은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말해왔다. 이들은 소버린의 SK그룹 공격에 대해서도 소버린의 편을 들었다.

    실제 오늘날 KT와 KT&G, 포스코 같은 민영화 대기업들은 ‘주주이익 극대화‘ 경영의 선봉을 달리고 있다. 이들 회사의 이사회 의장은 골드만삭스 출신 등 미국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물인 경우가 많으며, 매년 순이익의 절반 가량을 현금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의 형태로 주식투자자들에게 환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무자비한 주식투자자 이익 극대화는 노동권 약화를 초래했다. 예컨대 KT의 주주자본주의적 민영화 과정에서 불과 수년 만에 6만의 정규직 종업원이 3만으로 줄었고 그렇게 대량 해고된 노동자들이 외주노동자와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KT는 지금도 무자비한 노동권 파괴로 유명하며 더구나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등 장기투자에도 인색하다. 왜냐하면 주식투자자 이익 보호에 자칫 소홀하여 주가가 하락할 경우 아이칸 같은 기업사냥 펀드의 경영권 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벌 빵집 논란과 함께 지난 1년간 경제민주화가 민주세력의 최우선 과제로 다시 등장하면서 민주통합당은 재벌개혁과 함께 노동권의 신장과 비정규직 해결을 약속하였다.

    그런데 과연 그 약속을 믿을 수 있을까? 문재인, 안철수 캠프가 그간 발표한 재벌개혁안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출범 시와 거의 똑같다. 즉 펀드 의결권 강화와 집중투표제 강화, 순환 출자 규제, 금산 분리, 지주회사 규제 강화 등을 통한 소수주주권 강화와 적대적 기업사냥 활성화가 그 목표이며 결국은 주주자본주의 활성화를 겨냥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주자본주의적 재벌개혁론자들이 여전히 꿈꾸는 재벌개혁의 이상향은 삼성과 현대차, 롯데 등의 재벌그룹을 부분 해체(즉 일부 계열사들의 분리·매각) 또는 완전 해체시키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차, 롯데 등을 KT와 KT&G와 같이 단기투자자 수익 극대화, 즉 국내외 주식펀드 기업 사냥 펀드들의 낙원으로 만드는 것일 터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99% 국민의 인권과 노동권을 위한 민주주의의 길이란 말인가?

    재벌 규제 강화로 과연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을까?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를 말하는 민주 인사들은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대안적 이념으로 구 자유주의를 제시한다. 구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공약이 바로 문재인, 안철수 캠프가 가장 우선시한 정책이었던 ‘공정한 시장질서’였다. 그리고 재벌규제를 통해 달성되는 공정한 시장질서는 누구보다도 중소기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해진다.

    공정시장 우선론자들은 각종 중소기업 관련 통계들을 제시하면서, 중소기업들이 힘들어하는 이유가 주로 재벌계 대기업들의 하청단가 인하 때문이라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통계표와 논리 전개만 들어보면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만 실제의 경제 현실, 산업 현실로 한번 들어가 보자. 신문 지상에서 흔히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재벌계 대기업들이 중국과 인도, 미국, 유럽 등지에 현지 공장을 세워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읽는다. 그런데 그 신문 기사 바로 아래에는 삼성전자나 현대차에 납품하는 1차 협력사(1차 하청)들의 대부분이 해외로 동반 진출하고 있다는 기사도 등장한다. 실제로 그렇다.

    그렇다면 공정시장 우선론의 주장에 의문을 품어보자. 삼성전자, 현대차와 함께 해외로 동반 진출한 1차 협력사들의 매출과 수익이 과연 하청단가 인하 때문에 늘지 않고 있을까? 하청단가는 어디까지나 단가에 불과하다. 제품 단가가 깎이더라도 총매출 수량(해외공장까지 포함한)이 늘어나게 되면 총매출액과 그 수익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 삼성전자나 LG전자, 현대기아차 등과 함께 해외에 동반 진출한 하청협력사들의 국내외 총매출은 지난 10년간 크게 늘었다.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 재벌계 대기업의 국내외 총매출이 지난 10년간 2배~4배로 늘었고, 그만큼 하청 물량 역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정시장 우선론자들이 제시하는 통계표에는 하청협력업체들의 해외공장에서 발생한 매출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한데, 회계기준상, 해외 현지 법인은 법률상 독립법인인 까닭에 한국 본사의 매출액으로 계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현지 법인에서 발생한 이익 역시 한국 본사의 영업이익으로는 잡히지 않고 (회계기준상 지분법 평가에 의해) 영업 ‘외’ 이익으로 잡힌다. 그런데 그 통계표들은 오직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만을 보여주고 있고, 영업이익의 하락을 근거로 중소기업들이 대기업들로부터 수탈당한다고 말한다.

    더 결정적인 오류도 있다. 재벌계 대기업에 납품하는 1차 하청협력업체의 상당수가 이미 법률상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즉 이미 글로벌 중견기업(즉 히든 챔피언)으로 10년 전부터 성장해 있는 협력업체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그들은 오직 (법률상) 중소기업으로 등록된 기업들의 통계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제시하는 통계에 등장하는 중소기업들은 누구일까? 대부분 재벌계 대기업과 직접 계약한 1차 하청 협력기업이 아니라, 그 1차 협력기업과 계약한 2차 또는 3차 협력업체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1차 협력 하청업체들은 그 통계표에서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즉 중소기업을 수탈한다고 하는)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들 2차, 3차 하청 회사들에서 발생하는 하청단가 인하 문제를 재벌계 대기업들을 규제하여 (그것이 바로 재벌 규제 강화인데) 팔을 비틀어 해결하겠다? 그것은 초법적 발상일 뿐만 아니라, 별로 큰 효과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식의 재벌 규제 강화를 통한 하청단가 인상의 즉각적 수혜자는 2차, 3차 하청업체와 그 종업원들이 아니라 이미 매출과 수익성이 높은 – 따라서 종업원 임금 수준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 1차 하청업체들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계속됨>

    필자소개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사민저널 편집기획위원장. '쾌도난마'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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