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리고 울리는 신문고,
    국민대통합 약속의 향방은?
    [기고] 길들여지지 않는 ‘국민’의 외침...노동자들의 절규
        2013년 01월 24일 01: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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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고(申聞鼓)란,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하여 줄 목적으로 대궐 밖 문루(門樓) 위에 달았던 북이다. 백성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지이며, 해결방안 제시의 약속이다. 하지만 2013년, 국민은 하소연할 곳이 없다. 국가의 신문고는 찢어진 지 오래다.

    ‘벽’이라 했다. 고통을 말하고 민생을 강조했지만 그때뿐이었다. 허공에 떠도는 공약이었고 버려진 표심일 뿐이다. 그들이 그토록 강조한 ‘국민’이지만 그 틀에 갇혀 길들여지지 않는 ‘국민’은 더 이상 그들의 ‘국민’이 아니다.

    노동자, 그들의 ‘국민’ 아냐

    철탑에서, 다리에서, 거리에서 그 ‘벽’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 16일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노조파괴 등 3대 노동현안 해결을 위해 노동자들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대화를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묵묵부답도 못해 노동자들은 경찰에 의해 끌려나왔다.

    연일 언론에서는 인수위의 불통을 비판한다. 매일 아침 수많은 노동자가 인수위 앞을 찾는다. 1인 시위와 기자회견, 집회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마주하는 건 오직 경찰뿐이다. 재래시장을 방문하며 민생을 말했고, 분열을 꼬집으며 국민대통합을 약속했지만 그들에게 노동자는 그들의 ‘국민’이 아닌 듯싶다.

    무참히도 짓밟았다. 쌍용자동차가, 한진중공업이, 유성기업이, KEC가, 현대자동차(비정규직)가…. 모두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업장이 그렇게 짓밟혔다. “해고는 살인”이라 외치고 “함께 살자” 울부짖었지만 돌아오는 건 매질 뿐이었다. 한 명이 세상을 떠나고 또 한 명이, 그리고 그 또 한명이 세상을 등진 세월. 무수히도 많은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하지만 세상은 ‘조용하라’ 한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하지만 불안한 예감은 어쩔 수 없다. 새누리당은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를 약속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성태, 이종훈, 김상민, 최봉홍 의원은 “대선 이후 열리는 국회에서 쌍용차 해외매각․기술유출․정리해고 진상규명과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김우성 총괄선대본부장 역시 같은 뜻을 표하며, 쌍용차 국정조사가 당론임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18일 열린 환노위 회의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사실상 국정조사 거부의 뜻을 밝혔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21일 “(쌍용차 국정조사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사기업의 노사분규에 정치권이 개입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조사가 해직자 복직에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국회의원의 약속 이행 여부는 선택이 아닌 의무사항이다. 표심을 잡기 위한 공수표가 아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약속을 스스로 깨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 서명지 전달을 위해 이한구 원대대표를 찾았지만 면담조차 거부당했다.

    1월 17일 민주노총의 인수위 앞 기자회견 모습(사진=노동과세계 변백선)

    정부 책임 자유로울 수 없어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 쌍용차 측은 오는 3월 1일자로 무급휴직자 455명 전원을 복귀시킨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말이 많다. 일단 455명의 공장으로의 복귀가 조건부라는데 문제가 있다. 회사 측이 요구하는 확약서의 내용은 “1월 31일까지 임금 소송을 취하하고 사규를 지키겠다”는 것으로, 말 그대로 각서이다. “확약서를 쓰지 않으면 복직(은) 안 된다.”

    임금소송은 3년 전에 당연히 지급되었어야 할 임금에 대한 권리주장이다. 특히나 “사규를 지키겠다”는 확약은 지난 2009년 파업에 참여한 이들의 손발을 묶어 놓겠다는 것으로, 노동조합 활동과 근로조건 요구 등의 각종 행동이 차단될 수 있어 기본권 침해의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쌍용차의 무급휴직자 전원 복귀에만 초점을 맞춘 채 국정조사를 반대하고 있다. 더군다나 200여명의 해고자 문제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국정조사는 더더욱 중요하다. 해외자본의 ‘먹튀’ 논란에서부터 시작된 쌍용차 사태에서 회사는 물론 정부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해고의 정당성부터 다시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지난 22일 쌍용차 사측, 기업노조, 평택시민단체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쌍용차 정상화추진위원회는 “국정조사는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없다”며 “기업 경영은 기업 자율에 맡기고, 정치권은 쌍용차의 조속한 정상화를 지원해 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쌍용차 사태는 더 이상 개별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정리해고와 해외자본의 먹튀 논란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쌍용차만의 특수성도 아니다. 이미 수많은 사업장에서 경영악화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지우며 정리해고가 발생했다. 언제까지 눈 감고 귀 닫고 있을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최강서 씨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노사 간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하지만 이는 장례절차에 대한 대화일 뿐, 그 죽음 규명과 원인 해결을 위한 대화는 아니다. 수주 부족을 이유로 단행된 정리해고와 노조탄압, 억 단위의 손해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노사 교섭은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이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2011년 사회적 합의를 이룬 바 있다. 정치권의 권고로 조남호 회장이 해고자 94명에 대해 1년 안에 복직시키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한 것이다. 하지만 복직 이틀 만에 회사 측은 무기한 휴업으로 사실상 해고상태를 만들었고, 158억 원이라는 손해배상으로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장 내 노조사무실 조차 자유로이 출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노사 간 대화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또 다시 ‘벽’ 앞으로

    노동현장의 상황이 이러함에도 새누리당과 인수위는 요지부동이다. 소통을 말한 박근혜 당선인이지만 인수위에는 노동 전문가 한 명 없다. 국민대통합을 말하지만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통로 하나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인수위 앞에 설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위한 신문고는 없는 것이다. 박 당선인은 수차례 노동 현안에 귀 기울이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해왔지만 인수위를 통해 그가 보여주고 있는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정책기조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경제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제2의 쌍용차가, 제3의 한진중공업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지금도 수많은 사업장에서는 날 몸으로 정리해고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노동하고 있으며, 이들을 보호해줄 보호막은 없다. 때문에 쌍용차 사태가, 한진중공업 사태가 중요한 것이며, 정치권의 약속 이행이 귀중한 것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차근차근 따져보자는 게 무엇이 잘못인가. 회사가 어려운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알자는 게 무슨 잘못인가. 옆에 동지가 세상을 등지는 이유를 좀 따져보자는 게 무슨 잘못인가.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어 공장을 떠날 수 없다는 데 그게 무슨 잘못인가. 국민행복을 말하는 그들에게 노동자들은 그들의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노동자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그 ‘벽’ 앞에 선다. 공장으로, 대한문으로, 국회로, 인수위로 길을 나선다. 하지만 어제와 같이 그 길은 어김없이 막히고, 그 ‘벽’은 듣기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내일은 그 ‘벽’이 ‘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또 다시 발을 뗀다.

    필자소개
    <레디앙> 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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