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날 허출함에 관한 근원적 고찰
    [잡식여자의 채식기-3]“츠허라싸(吃喝拉撒)”...먹고 마시고 배설하기
        2013년 01월 21일 03: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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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전, 몇 년 간 신림동의 반 지하를 전전하며 살았다. 방세가 쌌기 때문이다. 이런 방은 공통적으로 햇빛이 잘 안 들고, 습하고, 딱히 부엌이라 할 만한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마음을 잘 붙이지 못했다. 그럼 마음 붙일만한 방으로 이사하지? 햇빛이 잘 들고, 쾌적하고, 부엌과 화장실이 잘 갖추어진 곳을 찾아가기에 내 경제적 능력은 보잘 것 없었다.

    그런 방은 적어도 일이천의 보증금은 깔고 월 오십은 내야하는 것이 시세인데, 대학을 다니며 근로장학생으로 근근이 버는 나의 수입은 월 사십 내외가 전부였다. 거기다 엄마에게 나한테 노후보장연금 넣으시는 셈 치라고 해서 얻어낸 돈 오십. 이렇게 구십이 내 생활비였다.

    여기서 방세와 세금 삼십을 내고 나머지로 밥값, 차비, 교재비, 노예 계약한 2G 핸드폰비를 내고 남는 것은 내 품위유지비. 사실 유지할 품위도 없었지만, 설령 품위가 있었다 해도 유지할 돈이 남지 않는 게 다반사였다.

    다행히 내 전공이 사회복지학이여서 우리 학과 학우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사회복지사였다. 억지 간지 부리느라 어디어디로 브런치 먹으러 다니거나, 패밀리레스토랑에 다니지 않아도 그럭저럭 학생사회에서 왕따 당하지 않았다.

    나는 주로 학교에서 밥을 먹었다. 자취방에 부엌이란 게 따로 없어 무언가를 해 먹으려면 방에서 부르스타를 놓고 수선을 떨어야 했다. 밥하고, 설거지가 불편한 것은 어떻게 참는다 해도, 된장국 한번 끓여먹으려면 된장, 고춧가루, 파, 마늘, 두부 등등 없는 것은 왜 그리 많고 사야하는 것은 또 왜 그리 많은지.

    차라리 사먹는 게 쌌다. 한 끼에 3~4천 원 하는 고시촌의 밥집들은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하지만 가격 대비 만족도는 학교 밥이 “갑 오브 갑”이었다. 10년째 값을 올리지 않는다는 학관B메뉴는 1700원에 밥과 국을 계속 리필해줬다. 그 밥 덕분에 적어도 열량만큼은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열량만으로는 아니지 싶다. B메뉴로 배는 불렀지만, 뭔가 배가 허전하고 출출한 것이. 그랬다. 뭔가 속이 허출했다. 초코바도 사먹어 보고, 커피우유도 홀짝거려보고, 생크림 바른 와플을 질겅거려보기도 했지만, 복부 비만만 생기고, 허출감은 더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채식뷔페가 생겼다. 학교 생협 식당에서 채식코너를 열었다고 했다. 거금 오천 원. B메뉴를 세 번 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오천 원에 과일과 야채를 양껏 먹을 수 있다면, 한번씩 갈 만하다고 생각했다.

    서울대 채식뷔페의 메뉴 안내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 현미밥과 버섯야채탕수육, 김치, 해조류, 야채샐러드, 쌈 야채, 나물반찬, 국을 기본으로 하는 메뉴는 맛도 상당히 좋았고, 신선한 야채와 해조류가 정말 일품이었다.

    채식뷔페를 가면서부터 나의 허출함이 채워진 것 같다. 일주일에 두세 번, 많게는 네 번, 채식뷔페를 갔다. 채식뷔페를 다니면서부터 하면서부터 뭔가 삶의 질이 상당히 월등해진 느낌이 들었다.

    허출함도 채워졌지만, 물기 송송한 치커리 이파리와 하이얀 청경채의 아삭한 몸통을 입안에 넣었을 때 느껴지던 그 웰빙스러움. 아아, 그것은 정녕 웰빙 마케팅의 세례를 받으며 웰빙에 배제된 삶을 살다 구매력이 생긴 이, 그렇다! 어느 날 구매력이 생긴 이의, 웰빙으로 사회적 신분이 상승하는 우아한 만족감 같은 것이었다.

    물론 나의 경우 구매력이 생겼다기보다는 갑자기 뿅~하고 생긴 학교 채식뷔페 덕에 누리게 된 호사였지만 말이다. 더불어 화장실 동동이도 탄생의 아픔 없이, 빛깔 좋은 형태와 모습으로 아침마다 나를 찾아왔다. 채식뷔페에서 현미밥과 야채들을 통해 섬유질을 섭취했기에, 나의 대장은 활발히 운동을 했고, 고통스러웠던 아침의 일상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말에 “츠허라싸(吃喝拉撒)”라는 표현이 있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인간의 순환체계를 일컫는 말이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일이 편안하면, 삶이 편안하다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겠다. 우리말에 의식주(衣食住)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허출함, 그렇다 나의 허출함은 “츠허라싸” 혹은 의식주의 문제가 편안치 못한데서 기인했을 것이다. 몸을 누일 곳, 먹는 것, 입는 것,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객지 생활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또 미래를 얼마간 보장해줄 대학졸업장을 하나 얻기 위해 학점도 따야하니 나는 편안치 못했다. 엄마가 차려주는 집 밥, 영양가 골고루 들어간 그 밥을 얻어먹을 수도 없었고, 열량만 과잉되어 불편한 몸은 아침마다 된똥을 뽑아내느라 고통을 겪었으니, 편안과는 거리가 멀었던 게지.

    그 편안치 못함은 아마 돈만 넉넉했으면, 쉽사리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었으리라. 돈으로 조금 더 좋은 집에 살고, 조금 더 좋은 부엌에서, 조금 더 좋은 오르게닉 식재료를 사다가 수제로 직접 만들어 먹고, 조금 더 좋은 식당에서 밥을 사먹고….돈으로 산 웰빙으로 웰빙스럽게 살 수 있었으면, 조금 더 편안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돈이 없었어도 나의 불만족스럽던 “츠허라싸”가 해결이 되었다. 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만들어진 채식뷔페 때문에.

    어떤 제도 하나가 누군가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란 생각보다 큰 것 같다. 그러니 좋은 제도는 계속 생겨야 한다. 그래야 돈 없는 사람도 웰빙을 할 수 있지. 각 대학마다 채식뷔페가 하나씩 생기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필자소개
    ‘홍이네’는 용산구 효창동에 사는 동네 흔한 아줌마다. 남편과 함께 15개월 된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직장생활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느라 집안은 늘 뒤죽박죽이다. 몸에 맞지 않는 자본주의식 생활양식에 맞추며 살고는 있지만, 평화로운 삶, 화해하는 사회가 언젠가 올거라고 믿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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