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5일의 수감생활,
    400여 통의 만화편지
    [책소개] 『꽃피는 용산(김재호/ 서해문집)
        2013년 01월 19일 03: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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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부터 용산에 터를 잡고 평범한 금은방을 운영했던 김재호씨. 늦둥이로 본 외동딸 혜연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진 평범한 아빠였다.

    그러던 2007년 용산 도시정비 사업으로 인해 정들었던 가게가 부당하게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어쩔 수 없이 망루에 올랐다. 그리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용산참사 사건. 다행히 참혹한 그 현장에서 목숨은 건졌지만 김재호씨는 딸바보 아빠에서 일순간에 테러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공안사범으로 4년형을 선고받아 수감된 그는 딸이 아빠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울증을 심하게 앓는다는 소식을 감옥에서 듣고는 세상에 홀로 남은 딸을 위해, 가장 없는 집을 어렵게 꾸려나가는 아내를 위해 만화 형식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변변한 도구조차 없는 척박하고 제한된 장소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어렵게 복사지를 구해 한 칸 한 칸 직접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딸을 위해 향기 나는 컬러펜까지 구해 색깔을 칠했다.

    딸의 생일에 맞춰 출소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맡겨 밖으로 보내기도 했고, 편지 검열이 심해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렇게 보낸 만화편지가 1345일(3년 9개월)의 수감생활 동안 400여 통에 이르렀다.

    만화편지를 통한 소통과 치유, 힐링의 과정

    <꽃피는 용산, 딸에게 보낸 편지>는 김재호씨가 쓴 만화편지를 모아 엮은 책이다. 소박한 그림체로 그려 보낸 편지에는 감옥에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족의 소식을 듣고, 때로는 추억을 바탕으로 상상해서 그린 가족 모두의 이야기, 딸에게 들려주고픈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용산참사 사건 4주기가 가까웠지만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못했다. 식어버린 관심 속에서 피해자들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지금도 농성 중이다.

    상처받은 한 가족이 험난했던 4년여의 세월을 감옥 안과 밖에서 함께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담긴 이 책은 용산참사 사건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 나아가는 소통과 치유의 기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저자 인터뷰

    딸아이와 아내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행복합니다
    (※ 책 출간 직전 출판사가 저자와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Q: 딸이 아버지가 없어서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감옥에서 듣고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A: 이 만화를 그리게 된 가장 큰 이유였죠. 어른과 달리 어리니까 단순해서 편지로 마음을 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글로 써 보내면 지루해서 읽다 말더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만화로 그려 보내면 기억에 남을까 해서 보냈는데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한번은 방청소도 하고 엄마를 도왔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만화로 그려 보냈는데, 얼마 뒤 아내가 접견 와서 하는 말이 아이가 달라졌다는 거예요. 결과가 바로 나타나니까 이거다 싶었죠.

    Q: 편지라고 하면 보통 글 쓴 사람의 이야기가 중심인데 보내신 편지를 보면 독특한 느낌입니다. 일방적으로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가 오고 가서 어우러지는, 소통이란 느낌이 정말 좋았습니다.

    A: 접견 온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이거다 싶어서 그린 내용도 많았어요.

    Q: 따님이나 어머님이나 편지가 정말 힘이 많이 됐을 것 같아요. 쌍용차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일을 당하신 당사자분도 큰일이지만 주변 가족분들이 굉장히 힘들어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편으로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워낙 대단하셔서 개인적으로는 혜연이가 부럽기도 하더라고요.

    A: 그런데 딸은 잘 모르죠(웃음). 나중에 커서 이 책을 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Q: 부모님께는 참사나 수감 이야기를 숨기셨다고요. 이 책이 나오면 이제 부모님도 아시게 될 것 같은데요.

    A: 그래서 며칠 전에 시골에 다녀왔어요. 4년 만에 내려갔더니 전부터 귀가 잘 안 들리시던 아버지는 이젠 아예 못 들으시고 어머니는 치매에 걸리셔서 아주 다른 사람이 되셨더라고요. 감옥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멀쩡하셨는데… 이젠 알려드려서 용산 일을 아시지만 기억을 잘 못하세요.

    Q: 인터넷 매체에 만화편지가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요.

    A: 그 일 때문에 애먹었어요. 그때가 2010년 1월 1일이었어요. 제가 꾸준히 만화편지를 보내니까 서신 검열하는 쪽에서도 내용을 보고는 딸에게 보내는가 보다 하고 나중에는 그냥 내보낸 거예요.

    그런데 1월 1일이 쉬는 날이라 방 안에 있는데 갑자기 조사과로 불려 갔어요. 만화편지가 뉴스에 나와서 난리가 났다면서 혹시 몰래 편지를 보낸 건 없는지 묻더라고요. 알고 보니 편지에 배경으로 그렸던 서울구치소 건물 그림이 문제였어요. 이 일로 설을 보내려고 시골에 갔던 사람들까지 다 불려 오고 난리가 났죠. 저도 모르고 그렸고 검열하시는 분 잘못이 아니라고 해봤지만 결국 검열 담당이 징계를 받았어요. 저는 구치소 건물 그림은 안 그리기로 약속하고 다시 편지를 보냈고요.

    Q: 편지를 안 보내주거나 하는 일은 없었나요?

    A: 그런 일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일이 있었던 뒤라 검열이 심해졌죠. 그래서 편지를 못 보내고 쌓아놓다가 딸 생일에 맞춰 출소하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아내에게 보냈어요. 그분이 나갈 때 만화편지를 보고 본인이 그린 것 맞느냐며 직접 그려보라고 해서 애를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접견을 왔었는데 공안사범을 접견했다는 이유로 요주의 인물이 되어 불이익을 많이 당했다고 해요.

    Q: 저는 편지가 기사에 나오고 검열이 심해져서 편지를 못 보내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산참사 내용 때문인 줄 알았어요.

    A: 용산 일에 대해서는 교도관들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대우도 잘해주시고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서울구치소에서도 정말 잘해주셔서 혜연이가 접견 오면 알아보고 챙겨주시고 그랬죠.

    Q: 감옥에서 4년을 거의 다 채우고 나오셨잖아요. 모범수이셨을 것 같은데 특별 사면은 없었나요?

    A: 1급 모범수였어요. 모범수인 것보다 이 사람이 출소했을 때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더 중요하게 봐요. 특별사면 신청이 교도소까지는 통과됐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그 위에서 기각됐어요. 결국 일반 범죄자보다 오래 있다 나왔죠, 3개월 남기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내의 응원 덕분에 버틸 수 있었어요. 10월에 못 나왔으면 2013년 1월 19일에 나왔을 거예요.

    Q: 3년 9개월이란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티셨는지 궁금합니다.

    A: 항상 딸과 아내 생각뿐이었어요. 아내가 자주 와줘서 큰 힘이 됐고요. 접견 때 아내와 딸이 고생한 이야기를 들으면 애가 탔죠. 딸을 위해 편지를 썼지만 사실 그리는 저에게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서울구치소에서는 편지에 정신을 쏟는 것으로 버텼어요. 공주에서는 몸을 쓰는 일이 많아서 생각할 시간이 없어 편했고요.

    Q: 용산참사 때문에 잃은 게 많으셨을 텐데, 부모님 일도 그렇고 4년이라는 시간 때문에도 잃은 게 많으신 것 같아요.

    A: 4년 만에 나와 보니까 못 본 사이 딸이 몸이 많이 망가졌더라고요. 딸 챙기면서 생각 중이에요. 딸도 이제 사춘기라 한창 아빠 따라다니며 좋았던 시절이 지나서 많이 아쉬워요. 같이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소원해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요즘엔 딸아이와 ‘카톡’하면서 지내요. 지금은 딸아이와 아내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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