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탑에 대해
    [이상엽의 시선] 사진작가의 눈에 보인 현대차 철탑농성
        2013년 01월 18일 10: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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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서 농성을 시작한지 90일째 되는 날에야 찾아갔다. 울산 현대자동차 명촌정문 앞 주차장에 높이 솟은 한국전력의 45미터짜리 송전탑이다. 이곳에 천의봉 최병승 두 비정규노동자가 20미터 높이 중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내가 찾은 날은 그냥 평일이었다. 집회도 없고 사측이나 한전 직원 또는 퇴거명령을 내린 법원측 관계자도 없다. 가끔 금속노조 현차비정규지회 사람들이 들락거릴 뿐이다. 오후에도 가보고 다음날 새벽에도 가봤다. 농성장은 그냥 텅 비어있다.

    농성장에서 ‘사진’적으로 느낀 것은 붉은색 현수막도 주변의 농성 천막도 아니다. 가까이서 본 철탑의 규모가 놀라웠다. 두 노동자가 아주 작게 느껴질 정도로 철탑은 거대하다. 어마어마한 철을 녹여 아주 튼튼하게 쌓아 올린 구조물이다. 이것을 누가 만들었나? 노동자들이다. 그곳에 올라간 두 노동자는 도로를 질주하는 쇠로 만든 자동차를 만든다. 누구나 느끼다시피 자동차라는 물건은 참으로 잘 만든 현대 기계 공학의 완제품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에 프랑스 미술가 뒤상이 ‘레디 메이드’라는 이름으로 상점에서 사 온 변기를 전시해서 큰 반향을 이끌었다. 현대 미술의 시작이었다. 그는 왜 이미 만들어져있는 변기를 자신의 사인과 함께 전시한 것일까? 그것은 현대 노동자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이 이미 예술가들의 손재주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단지 그 제품 또는 오브제의 맥락만이 중요해 진 것이다.

    저 철탑도 그렇다. 원래는 전기를 보내는 전선을 이어가는 높은 구조물에 불과하지만 그곳을 점령한 이들 덕분에 이 철탑은 새로운 맥락을 부여받은 것이다. 옆에는 거대한 현대자동차 공장, 앞에는 그들이 만든 자동차와 그것을 타는 노동자, 그 모든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농성하는 차별받는 비정규 노동자.

    나는 철탑에서 오늘의 노동자가 벌이는 행위 예술을 보는 듯 했다.

    필자소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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