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루다, 사랑과 혁명의 이중주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펜스타인의 『빠블로 네루다』
        2013년 01월 14일 11: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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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 나라에 소개되어 다수의 애독자들을 거느리고 있고, 국내 시인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친 외국 시인들은 여럿 있다. 가령 독일의 릴케나 미국의 프로스트, 엘리엇 그리고 러시아의 푸시킨과 프랑스의 보들레르, 랭보 같은 이들은 우리 시단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고, 지금도 많은 독자들을 거느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구미(歐美)에서 눈을 돌려 시선을 남미나 아시아로 돌릴 경우 우리가 경험한 그들의 문학적 자산은 의외로 빈곤하기 짝이 없다. 물론 타고르나 두보 같은 동양 시인이 널리 읽히기는 하였으나, 남미로 공간을 이동하면 그마저도 매우 남루한 외관을 드러낸다.

    그만큼 우리의 ‘세계문학’은 구미 문학이었던 셈이고, 제3세계적 시각을 철저하게 배제한 ‘제1세계’ 문학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편향된 시각에 경종을 울리는 남미 작가 및 시인들이 우리에게 적극 소개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로 평가받은 마르케스나 ‘환상 소설’로 유명한 보르헤스, 그리고 시인 로르카나 파스, 네루다 등이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와 역사적 상황을 비슷하게 겪은 남미 문학을 본격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한 장면

    우리에게 영화 「일 포스티노」로 널리 알려진 칠레 시인 빠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는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와 함께 우리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남미의 시인이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평전 『빠블로 네루다』(생각의 나무)는, 일생 동안 혁명과 시작(詩作)에 골몰했던 그의 실천과 좌절의 생애를 알게 해주는 유용한 나침반이다. 그의 오랜 동료였던 마르케스가 “네루다는 모든 언어를 통틀어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책 표지글」)라고 말했거니와, 그만큼 네루다는 20세기적 인물이었고, 제3세계적인 인물이었고, 사랑과 혁명이라는 가장 고전적인 권역을 완성한 위대한 시인이었다.

    영국의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라틴아메리카 문학 연구자이기도 한 애덤 펜스타인(Adam Feinstein)에 의해 섬세하고도 풍부하게 구축된 이 책은, 그래서 20세기를 담은 풍속사적 성격과 한 위대한 시인의 생애를 담은 문학사적 성격을 두루 견지하고 있다. 그만큼 『빠블로 네루다』는 인간적으로는 모순과 격동에 휩싸였으면서도, 사랑과 혁명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에너지를 ‘시’를 통해 불사른 위대한 영혼과 조우하게끔 넓은 마당을 열어주고 있다.

    2.

    『빠블로 네루다』는 정통적 평전 구성 방식인 연대기적 서술을 적극 취하고 있다. 목차에서부터 시간적 흐름에 의한 구성임을 선명하게 내세우고 있다. 가령 이 책은 시인으로서의 꿈을 키워갔던 네루다의 유소년기, 보헤미안적인 삶에 탐닉했던 그의 학창 시절, 외교관이 되어 여러 곳을 돌아다니던 중년 시절, 스페인 주재 외교관으로서 스페인 정치에 개입해 아르헨티나로 망명해야 했던 장년 시절 등 굴곡 많았던 네루다의 생을 철저하게 시간적 흐름에 따라 재구(再構)한 기록이다.

    이때 가장 문학적인 문채(文彩)로 채워져 있는 대목은, 산티아고에서 보여준 보헤미안의 초상이라든가 아시아에서의 고립된 이미지 그리고 귀향과 새로운 투쟁으로의 진입이라는 선 굵은 서사적 대목이다. 그러다가 스페인 내전에 따른 변화가 결정적 전회(轉回)를 가져다주어 망명 생활을 거듭하였고 이윽고는 노벨상 수상과 최후의 열정적 사랑에 이르기까지 순탄하지 못했던 파란만장한 그의 생애가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네루다는 이 책에서 일관성 있는 통일된 캐릭터로 그려져 있지 않다. 예컨대 권력 부정의 보헤미안적 아나키스트로서의 속성과 권력 중심의 공산주의자적 속성을 하나의 육체 안에 가졌다든가, 모택동의 개인 통치는 비판했지만 스탈린에게는 침묵했다는 것이라든가, 사랑하는 두 여인에게 동시에 프러포즈를 했다든가 하는 공존하기 힘든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음이 이 책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네루다는 1904년 6월 12일 남칠레의 국경 지방에 있는 한 작음 읍에서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네루다가 소년일 때 기차에서 떨어져 죽었다. 시인은 그때 “우리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비가 제일 많이 오는 묘지에 묻혔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원래 이름은 네프탈리 벨트란이었고, 그의 필명은 아주 어렸을 때 19세기 체코 시인을 숭배한 나머지 얻은 것이다. 19세 때 그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라는 시집을 펴냈는데, 이 시집은 오늘날에도 남미 전역은 물론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네루다는 23세 때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았고, 칠레 정부는 그에게 동아시아 주재 영사 자리를 주었다. 그 후 5년 동안 그는 미얀마, 태국, 중국, 일본, 인도 등지에서 산다. 로버티 블라이와의 대담에서 그는 이 시절을 아주 외롭고 고립되었던 때라고 말하고 있다. 네루다는 1932년 남미로 돌아왔는데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이었다.

    얼마 동안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영사로 있었는데, 그때 아르헨티나에 강연하러 온 로르카를 만났다. 서구의 언어로 씌어진 가장 아름다운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평가를 받은 바 있는 『지상의 거처』는 1933년에 출간되었고, 그는 이듬해 스페인으로 발령 받는다.

    스페인은 1936년 7월 19일 북아프리카로부터 프랑코의 습격을 받는다. 네루다는 영사 직위로서는 월권행위에 속하지만 칠레가 인민전선 정부 편임을 천명한다. 칠레 문단에 충격을 주었던 것처럼 유럽 문학계에도 그의 선언은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빠른 속도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인으로서 발전을 거듭하던 이 시기는 스페인 내전 때문에 중단되었다. 친구 로르카의 처형과 미겔 에르난데스의 투옥을 비롯한 거리의 유혈 사태는 이 칠레 시인의 정치적 태도를 성숙시키게 된다. 훗날 그는 “세계는 변했고 나의 시도 변했다. 시구 위에 떨어지는 피 한 방울은 그 속에서 숨쉬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사직에서 물러난 뒤 그는 파리로 갔고 거기서 스페인 망명자들을 위해 모금을 했는데, 브르통 및 다른 프랑스 시인들과 바예호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1938년 칠레로 돌아왔으나 칠레 정부는 곧 그를 멕시코로 보냈다. 이곳에서 왕성한 창작기에 접어들었으며, 이때 쓴 시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벌어진 제2차세계대전과 특히 독일군의 맹공격에 맞서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려는 영웅적 활약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이 때 네루다의 시는 비로소 심각하게 정치적으로 바뀌게 된다. 그는 1940년에 아메리카로 돌아왔고, 1941년에서 1942년 사이에 멕시코 주재 칠레 영사를 지냈다. 스페인 내란에 대해 쓴 작품들은 『지상의 거처 3』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다. 그는 계속 태평양 연안의 이슬라네그라에서 살았지만, 1960년 쿠바, 1966년 미국 방문을 비롯해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여행하였다.

    그의 시는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 산티아고의 산크리스토발 언덕 기슭에 ‘라차스코나’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발파라이소에도 ‘라세바스티아나’라는 집을 지었다. 이 집들은 그가 여행하면서 모은 갖가지 기념물을 진열한 심미적 분위기로 이름난 명소가 되었다.

    이처럼 네루다의 한 생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위대한 낭만적 시인의 풍모와 정치 일선에서 분주하게 움직인 초상의 결합이다. 이 점에서 그를 사랑과 혁명의 시인이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빠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시인, 칠레, 1904년 7월 12일 - 1973년 9월 23일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적 혁명론자였다. 그의 시 역시 그가 사랑했던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그에 깊이 탐닉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닉슨 암살을 선동하고 칠레 혁명을 찬양함」 같은 선전 선동 시편도 엄연히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세 번의 결혼과 숱한 연애, 상원 의원과 대사와 같은 정치적 성공과 시적 성취의 공존 등 그의 생애는 그가 스스로 공산당 대통령 후보직에서 사퇴하면서까지 지지하고 후원했던 아옌데 정부가 군사 쿠데타에 의해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말년을 어둑한 그림자로 거느리고 있다.

    1970년 대통령 선거 때 살바도르 아옌데를 지지, 선거 운동에 나섰고,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었던 그는,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고 그해 주불 대사직을 사임, 귀국하여 산티아고 국립운동장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다. 1973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아옌데가 죽고, 그해 9월 23일 네루다는 산티아고에서 타계한다. 그가 살고 있었던 밭과 라이소의 집과 산티아고의 집이 샅샅이 파헤쳐지고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이처럼 시에서 일관된 성공을 거둔 것과는 달리, 그의 생은 모순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는 비록 공산주의적 혁명을 주장하였지만, 인간관계에서만큼은 좌와 우를 넘나들면서 다양하고도 넓은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이러한 폭넓은 인간관계는 종종 파스를 비롯한 여러 벗들과의 충돌을 빚어 네루다를 괴롭게 하기도 했다. 연애 역시 네루다의 삶을 한층 극적으로 만든 요소였다. 그는 세 번 결혼하였고 그 밖에도 수많은 여자를 만났다. 두 여성에게 동시에 구혼하였으나 모두에게 거절당했던 청년기, 아내와 연인 사이에서 줄곧 위험한 줄타기를 하며 그들과 잇달아 결혼하였던 장년기, 세 번째 부인의 조카딸과 사랑에 빠졌던 노년기까지 그는 항상 여성들의 틈바구니에 있었고, 그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많은 시에 담아냈다.

    그는 “내가 쓴 시를 합하면 7천여쪽쯤 될 것이다. 그런데 정치를 주제로 쓴 것은 4쪽도 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사랑을 더 자주 노래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네루다의 이러한 인간관계를 통해 그의 모순되고도 격정적인 캐릭터를 부조(浮彫)하는 데 바쳐져 있다.

    3.

    알게 모르게 시인들은 선행 시편들에 의해 감염되고 거기로부터 깊은 영향을 입는다. 네루다의 시가 처음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김수영(金洙暎)에 의해서였는데, 김수영은 네루다의 시 아홉 편을 번역하여 우리에게 처음으로 소개한다. 김수영의 시 세계에 네루다의 정치적 격정이 숨겨져 있음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 네루다를 소개한 사람은 저항시인 김남주(金南柱)인데, 그는 이때 제3세계문학의 한 핵심적 지표(指標)로 네루다를 읽는다. 그는 하이네와 네루다, 마야코프스키의 영향을 자신이 깊이 받았노라면서 번역 시집『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를 펴내 우리에게 네루다를 소개한다.

    그 다음으로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를 번역하여 우리에게 소개한 사람은 정현종(鄭玄宗)이다. 그는 네루다 시에서 인간과 생명에 대한 아름다운 사랑의 힘을 본 것이다. 요약하자면 김남주가 네루다에게서 ‘혁명’을 읽었다면 정현종은 ‘사랑’을 읽었다. 이처럼 풍요롭고도 다채로운 독법(讀法)을 가능케 하는 위대한 편폭의 시인 네루다는, 우리에게 사랑과 혁명의 이중주를 우리에게 들려준 위대한 시인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의 사랑의 시편을 한 편 읽어보자.

     마치 네가 없는 것만 같아서 나는 네가 말없을 때가 좋다,
    너는 저 멀리서부터 내게 귀 기울이고, 내 음성은 네게 가 닿지 못한다.
    마치 눈동자들이 네게 날아가 박히기라도 할 것만 같고
    단 한 번의 입맞춤이 네 입술을 꼭 닫아 버리기라도 할 것만 같다.

    세상 모든 것들이 나의 영혼으로 가득차 있듯이
    너는 그것들 가운데서 솟아 나와, 나의 영혼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꿈의 나비여, 너는 내 영혼을 닮았다.
    너는 우수라는 단어를 닮았다.

    나는 네가 말이 없을 때가 좋다 그러면 너는 저만치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너는 투덜거리고 있는 것만 같다, 자장가 속의 나비여.
    그리고 너는 저 멀리서 내게 귀 기울이고 있지만, 내 음성이 쫓아가 닿지 못한다.
    부디 네 침묵과 함께 나도 침묵할 수 있게 하라.

    등불처럼 밝게, 반지처럼 소박하게
    내가 너의 침묵과 함께 네게 말할 수 있게 해 다오.
    너는 아무 말 없이 별만 초롱초롱 빛나는 밤 같다.
    너의 침묵은 고토록 머나먼 곳의 소박한 어느 별의 것이다.

    마치 네가 없는 것만 같아서 나는 네가 말이 없을 때가 좋다.
    너는 곧 죽을 듯이 저만치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럴 때면 한 마디의 말, 한 자락의 미소만으로도 충분하리라.
    그리고 나는 즐겁다, 확실치는 않아도 무언가 때문에 즐겁기만 하다.

    ― 「사랑의 시 15」 전문

     

    필자소개
    민교협 회원. 한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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