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첫 장은 비어 있다!
[책소개]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김순천/ 오월의 봄)
    2013년 01월 12일 02: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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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다 완성해놓았는데 인터뷰했던 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피해를 입을까봐 못 싣겠다고 한다. 고민 끝에 회사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이 공간을 남겨놓기로 했다.”

책 첫 장에 실리기로 했던 삼성전자 노동자의 원고는 결국 싣지 못했고 고심 끝에 그 페이지는 비어 둔 채 출판하기로 했다. 익명으로 했음에도 회사가 자신을 추적해 피해를 줄까봐 인터뷰 삭제 요청을 한 것이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의 시계바늘은 중세를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비단 한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모든 직장인들, 월급쟁이들의 현실이다.

대한민국 모든 월급쟁이들의 안부를 묻는다.

대통령 선거 직후 다섯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 법원의 판결도 사회적 여론도 미치지 않는 성역, 기업을 어찌할 것인가?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삼성반도체, 한국타이어…… 이러한 일들이 단지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라고, 결코 내 이야기는 아니라고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는 그렇지 않다고,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된다는 보고서다. 이 책은 바로 당신의 안부를 묻는 책이자 우리 시대의 안녕을 묻는 책이다.

르포작가 김순천은 이 책에서 20명에 가까운 대기업과 공기업 사무직 노동자, 하청업체 여성노동자, 해고노동자, 프리랜서, 취업 준비생, 공인노무사와 학생회 간부 등을 인터뷰했다.

저자가 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기업에 다니는 많은 이들의 고통과 어려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기업이 어떠한 구조이기에 수많은 유무형의 고통이 배태되고 삶을 이토록 퇴행시키는지 알고 싶었다. 우리가 음식이나 몸을 하나의 문화 연구의 대상으로 보듯 기업도 하나의 문화로 깊게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계기는 바로 23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쌍용자동차 사태였다.

“어느 한 회사가 그렇게 극단적인 고통을 겪는데 다른 회사라고 안전할까? 사회학적으로 접근해보면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어떤 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 그 회사 자체의 모습만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쌍용자동차가 아닌 일반 기업은 어떤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놀랍게도 우울증, 왕따, 스트레스, 물리적·정신적 폭력, 사내 정치, 은밀하게 진행되는 폭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로 고통을 받는 동안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한 경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저자 서문에서

“이런 개 같은 자본주의가 어디 있어요?”

이 책에 담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차별과 설움에도 회사에서 존중받고 싶다는 반월공단 여성노동자의 간절한 바람, 성과급과 내부 경쟁을 통해 파괴되는 인간관계와 모멸감, 시시각각으로 조여 오는 정리해고의 불안, 경영권 참여는 고사하고 헌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권리마저도 빼앗긴 노동자의 참담함, 기업에게 장악되는 대학을 지키고자 애쓰다 징계와 퇴학을 당하는 대학생들의 기막힌 사연과 마주하게 된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온갖 양보와 희생, 노력을 다했지만 돌아온 것은 대량 정리해고와 연이은 23명의 죽음이었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이런 개 같은 자본주의가 다 있어요?”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하루 종일 하얀 파티션만 바라보게 하는 회사, 화장실에 갈 때도 부서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회사, 휴게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약을 달라고 했더니 아예 냉장고를 통째로 떠메고 가져오는 회사, 아침 6시 반 빵을 먹으면서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전담 감시자가 있는 회사. 사원 대표로 사원들의 권익을 대변하다 해고된 박종태 씨가 이야기하는 삼성의 모습은 참으로 기묘하고 엽기적이다.

1년이 아니라 한 달에 5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간 한국타이어도 다르지 않다. 유족에게 산업재해보상금을 주면서 입막음을 시키고 동료들에게는 근조 리본도 달지 못하게 한다.

그 한국타이어는 직원 8~9명에 한 명꼴로 고충상담원이 있고 주임도 고충상담원 완장을 차고 다닌다. 대한민국 기업 중 가장 많은 고충상담원이 있는 기업이라는 한국타이어에서 직원들은 오늘도 고충상담원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다.

쌍용자동차에서 노동자들이 기울인 기업 회생 노력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상여금 200% 반납, 체불임금 반납, 근무시간 5시간으로 조정, 비정규직 임금에 대한 노조 부담……. 더 이상 노동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결국 그들은 옥쇄 파업에 들어갔고 처참하게 끌려나와 죽음의 행렬로 내몰렸다.

한편 놀랍게도 컨택터스라는 노조파괴 전문 컨설팅 회사의 폭력으로 큰 사회문제가 되었던 SJM은 불과 얼마 전가지만 해도 바람직한 노사관계로 유명했던 회사라고 한다. 어쩌다 그런 회사까지 악덕 기업의 행태를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김신태 SJM 노동자의 이야기 속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 돈벌이가 되어버린 세상의 끝을 엿볼 수 있다.

선망의 직장으로 꼽히는 공기업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둘이 마주보고 뺨을 때리게 하는 형벌처럼 직원들끼리 ‘사랑의 작대기’로 해고를 한다.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업 운영과 모든 인간관계를 파괴시키는 성과급제, 점점 줄어드는 인력과 늘어나는 업무량. 금융계 공기업에 다니는 김성오씨는 직장 생활을 하며 모든 관계가 망가졌고 성격마저 바뀌었다고 한탄한다.

그래도 대기업 하청업체들이 밀집한 반월공단의 여성노동자 준서씨는 회사에서 존중받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인정받을 곳이 회사밖에 없잖아요.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살맛이 나니까요. 야단이나 맞고 있고 박스로 머리나 맞고 있으면 우울하잖아요.”

그이의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기업, 회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작업장, 주로 이주노동자들로 채워지는 곳의 열악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밥과 김치만으로 중노동을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 물고기를 잡아 단백질을 보충하고 있다.

한편 두산 그룹이 인수한 중앙대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은 기업이 하나의 사회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자료다. 기업식 경영기법의 도입으로 취업률에만 근거해 평가되고 사라지는 학과들, 월급쟁이가 되어버린 교수들, 대학총장이 자기 입으로 학생을 사찰시켰다고 말하는 학교, 거듭되는 징계와 퇴학……. “대학의 기업화는 곧 기업이 사회를 장악했다는 것”이 김누리 중앙대 교수의 진단한다.

하기에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심원테크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 크다. 심원테크 김준호 대표이사는 장애인 고용으로 시작된 실험을 많은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기업으로까지 밀어가고 있다. 그는 대부업도 사회적 기업을 신청한다며 무늬만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어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가가 중요하며 공적 이익이 있어야만 100년, 200년 가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신상원 기업문화 전문가 또한 공익을 강조한다. 그는 기업들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기업의 목적은 오직 이윤추구라는 “만들어진 허구의 신화”를 깰 것을 주문한다. 역사적으로 기업의 탄생은 이윤추구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방향, 어떤 공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을 찾은 결과 등장했다는 것이다.

“기업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기업을 인문학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기업에는 수많은 꿈과 자아실현과 가족과 인생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신상원_ 기업문화 전문가, <기업문화 오디세이> 저자

기업문화는 기업의 마음이기에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유전자처럼 강한 힘을 갖고 있고 그러므로 기업문화는 직원은 물론 고객까지 변화시킨다. 그는 주주만을 위한 경영이 아닌 종업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소비자, 주주, 경영자들이 함께 가는 이해관계자들 모두를 위한 경영을 이야기한다. 또한 정리해고를 일상적으로 하는 기업과 고용안정성이 높은 기업 중에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인지 평가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민주적 조직문화의 모범사례를 만들고 전파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는 지금까지의 기업으로 인한 불행을 직시하고 더 나은 기업, 더 나은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20여 명의 삶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당연히 더 많은 목소리, 더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 책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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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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