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는 '저성장' 아닌 '성장의 종말'
    [책소개]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리처드 하인버그/ 부키)
        2013년 01월 12일 02: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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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핵심 주장은 간단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우리가 알던 경제 성장은 이제 ‘끝났다’는 것. 지금의 경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조심스럽다 할지라도 경제 성장에 대한 긍정적 전망은 야바위에 불과하다.

    유럽을 위시한 전 세계가 여전히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의 여파에 시달리며 경기 침체의 수렁에 빠진 와중, 수많은 경제학자와 국가 정책 책임자들은 성장을 회복할 방안을 내놓으려 골몰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제로 성장’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며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그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어쩌면 절벽을 향해 폭주하는 기관차에 (방향을 틀기는커녕!) 석탄을 한 줌 더 집어넣는 격이다.

    성장이 한계를 갖는다는 발상은 예나 지금이나 이단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예측은 점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하인버그는 1972년 출간된 <성장의 한계> 이후 오랫동안 자원 고갈 추세를 연구하며 그 ‘종말’에 주목해 왔고, 2008년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을 보며 문득 ‘우리는 지금 경제 성장의 종말이 시작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깨닫는다.

    종말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금융 붕괴가 환경의 한계와 상호작용하여 예상보다 더 빨리, 더 극적으로 종말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자원 고갈, 환경 파괴, 금융 붕괴에 직면한 경제가 더는 성장할 수 없는 이유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현재 경제 시스템이 지닌 구조적 결함을 파고들면서 자원, 식량, 환경, 지정학 등 전 지구적 문제를 조망함으로써 ‘한 시대의 종언’을 명민하게 포착해 낸다.

    더불어 ‘영구 성장’을 금과옥조로 삼는 경제학이 결코 들려줄 수 없는 제로 성장의 미래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무엇보다 저자는 세계 경제가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 ‘성장’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뿐 아니라 ‘성장하지 않는 경제’로의 대전환에 시급히 대비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성장을 전제한 경제 이론은 왜 틀렸나?

    지금 널리 퍼진 생각, 즉 2008년 촉발된 금융 위기의 원인만 잘 해결하면 국가 경제가 다시 예전처럼 성장을 지속하리라는 통념은 터무니없는 착각이다. 다시는 예전과 같은 성장을 만끽할 일은 없으며, 문명의 규모는 축소될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사실을 적시하지 못한다. 여전히 경제의 가짜 성적표인 GDP를 들이대며 눈속임을 하려 한다. 하인버그는 세계 경제를 진두지휘하는 경제학 이론이 치명적인 맹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로 인해 미래를 제대로 전망하지 못함은 물론 나아가 세계 경제를 더 큰 파국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전파 이후의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은 토지를 자본의 하위 범주로 전락시켰다. 이는 자원을 무한히 뽑아내어 부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자, 천연자원을 언제든 다른 형태의 자본(화폐나 기술)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진실은 정반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유한하다. 지금 사회가 기후변화와 자원 고갈의 시대에 접어든 것은 현대 주류 경제학의 근본적인 논리적, 철학적 오류 탓이다. 경제학은 유한한 세상에서 무한한 성장을 추구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들을 그 노예가 되어 살아가게 만들었다. 화석연료가 때마침 등장해 성장에 (무한해 보이는) 동력을 제공하자 사람들은 착각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성장이 ‘당연’하고 ‘영원’할 거란 착각이었다.

    저자가 보기에는 주류 경제학에서 살아남은 두 진영인 케인스주의와 신자유주의 역시 경제가 영구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신자유주의자들의 규제 완화는 그림자 은행 체제를 탄생시켜 경제 거품과 붕괴를 촉발했다. 케인스주의자들이 주도한 경기 부양책도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정부 부채를 위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그쳤다. 이로써 경제뿐 아니라 경제 이론과 경제철학도 수렁에 빠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의 금융 시스템이 이러한 이론에 기대어, 영구적 성장에 대한 기대를 토대로 구축되었다는 점이다. 이 시스템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 성장 동력이었던 석유를 비롯한 재생 불가능한 자원들은 사실상 정점을 넘어 고갈을 향해 가고 있고(2009년 국제에너지기구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6년 세계는 이미 석유 정점을 지났다),

    이를 대체할 만한 에너지원은 등장하지 않았다. 무한한 에너지 공급에 대한 환상이 허상임이 점점 현실로 드러나자, 이 기대를 먹고 경제를 부풀렸던 ‘신용’ 또한 위기에 처했다. 신용의 위축은 경제에 강력한 충격을 가져온다. 신용이 무너지면 경제에 생긴 작은 구멍도 순식간에 모래 늪으로 변할 수 있다.

    “화폐는 본질적으로 노동과 천연자원에 대한 청구권이기 때문에, 통화 공급이 증가하여 청구 금액이 늘고 자원이 고갈되면 남은 자원으로는 화폐의 청구를 모두 청산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청구권의 가치가 순식간에 폭락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분지급준비제도를 통한 화폐 창조에 기반한 지폐 및 전자 화폐 시스템은 폰지 사기극이 몰락할 때와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의 경제 전체는 넓게 보면 거품 또는 폰지 수법의 특성을 지녔다. 비틀거리면서 팽창하는 ‘부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미불 채무의 증가가 통화 공급의 증가와 경제 팽창의 전제 조건이 되었다. 모두가 성장을 외치는 판이니, 채무를 창조할 혁신적 방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화폐의 가치를 폭락시키고 부채를 더욱 키웠다. 하지만 이제 부채 역시 한계에 달했다. 모든 광풍의 어머니라 할 만한,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서 경제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지금, 여전히 성장을 논하는 경제학자들은 또 다른 거품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자고 소리 높이고 있는 셈이다.

    혁신으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인버그는 현재의 경제 성장이 근본적 장벽에 가로막힌 주요 요인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자원의 고갈, 환경 파괴(와 그로 인한 비용), 기존 금융 시스템의 붕괴가 그것이다.

    이 책은 이들 세 요인이 개별적 문제가 아니라 하나로 엮인 구조적 문제임을 각종 자료와 통계를 들며 세세히 밝힌다. 경제 전문가들은 여전히 성장의 환경적 한계를 무시하려 들지만,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2011년의 식량 가격 폭등 등 최근의 추세는 위의 세 요인이 어우러져 증폭되는 바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지 잘 보여 준다.

    이럴 때마다 경제학자들이 들고 나오는 것은 ‘기술 혁신’이다. 그들은 환경 제약과 금융 위기가 성장의 ‘종말’을 뜻하지 않으며 발전의 도상에 설치된 과속 방지턱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류는 무한히 창의적이므로 기술 혁신으로 자원을 대체하고 효율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즉 ‘혁신’을 통한 ‘대체’와 ‘효율’로써 성장을 재개할 수 있다고 공언한다.

    보통 사람들도 이러한 믿음을 따른다. 이 책은 이러한 논리를 비판적으로 살피고, 위의 세 요인이 왜 성장의 한계를 없애지 못하고 ‘수확 체감의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사례를 들어 밝힌다.

    물론 저자는 혁신, 대체, 효율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그것들에도 한계가 있으며, 전과 같은 성장을 이끄는 동력으로서 기능할 것은 기대하지 말라고 명토 박아 말한다.

    성장이 멈춘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당연시하는 경제 성장이 사실상 ‘정상적’ 토대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앞으로의 경제가 ‘완전히 다른 무엇’이 될 것임을 깨닫게 된다. 제로 성장 경제 또는 성장을 근본적으로 달리 정의하는 경제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성장의 종말은 경제적, 정치적 격변을 동반할 것이다. 성장의 종말은 피할 수 없지만, 망연자실하게 지켜만 보다가는 더 많은 이들의 더 큰 고통을 피하기 어렵다. 성장 이후의 세상을 이끌 새로운 경제의 토대를 닦고 사회적 통합을 유지하고 구축해야 하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시급한 과제다.

    저자는 부채와 자산을 일정하게 감축하는 헤어컷과 채무에 기반을 두지 않은 대안 화폐, 전환 운동, 공동 안보 클럽 등을 두고 가능성과 한계를 차근차근 살핀다.

    무엇보다 ‘지역 차원의 공동체 복원력’을 높이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다. 연료가 희소해지면서 국제 교역이 감소하면 우리의 삶은 국지화될 수밖에 없다. 이웃과 손잡고 살아가야 한다. 저자의 말 그대로 “힘든 시기가 닥치면 이들이 여러분의 기댈 언덕이 될 것이다.” 미래의 경제적·환경적 위기를 대비하려면 무엇보다 사회적 결속력을 다져야 한다.

    성장의 종말은 암울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경제 성장의 종말이 곧 우리 삶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한 ‘진보’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자본연구소 창립자인 존 풀러턴이 이 책을 읽고 한 말처럼 “양적 성장에서 삶의 질로 돌아서는 것은 우리 시대의 중대 과업이다. 이 과업이 두려울 때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이를 통해 자유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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