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이 책 몇 번째 읽는 거야?
[메모리딩의 힘 12]엄마는 예리한 관찰자
    2013년 01월 11일 05: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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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열정과 기획력

수민이 엄마(박지희 어머니)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자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대단하다. 초등학교 1학년 딸 수민이는 책을 즐겨 읽지만 새로운 책을 좋아하고 읽은 책들은 다시 안 보는 스타일이다.

책 골라주는 게 수민 엄마의 큰 고민이다. 날마다 책을 골라 줘야 하는데 날마다 넣어주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학교나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권장도서 시리즈에 의존하게 된다.

예전에 권장도서 목록을 읽혀 주다가 안 좋은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추천도서 목록 중에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별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면 골라준다. 깊이 있게 보고 적극적으로 골라주지는 못하지만, 살펴보고 좋았던 것 위주로 선택하거나 검증된 책 중에서 골라서 읽어주는 편이다.

하지만 직접 책을 골라서 선택해주거나 돌봐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이의 책을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골라주는 책의 주제는 퍽 다양하다. 시리즈별로 과학 영역, 사회 영역을 조금 넣어주고, 문학 영역은 이보다 더 많이 넣어 주고 있다. 수민이가 좋아하는 만화책도 하나씩 넣어주고 있는데, 요즘은 판타지 영역도 관심이 있는 것 같아서 그것도 넣어준다.

아이가 새로운 책을 좋아해서 책을 골라주고 2~3일 정도 관심도가 떨어질 것 같으면 책을 바꿔줄 정도로 아이의 독서 현황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수민 엄마의 걱정은 수민이가 좀처럼 표현은 많이 하지 않는 점이다. 학교에서 독서록을 제출하는 독서 프로그램이 있는데 쓰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수현 엄마도 스트레스 덜 주려고 학교에서 부여하는 일주일에 한두 권 정도 과제만 하게 하고 다른 부담은 안 주는 편이다. 독서록에 표현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잘 하는 것 같지 않기도 하고, 운을 띄워주면 잘 대응하고 상당히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해서 알쏭달쏭하다.

특히 요약 부분에서 많이 어려워한다. 그래도 줄거리 쓰기와 감상 쓰기 훈련을 하면서 조금씩 개선해나가다 보니, 페이지의 내용을 베껴쓰는 수준에서 지금은 책을 전체적으로 훑으면서 중요한 부분을 찾아내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아래는 수민이가 <엄마 사용법>을 읽고 나서 요약한 내용이다.

‘현수엄마가 생명장난감을 가지고 싶었는데 아빠가 사주셨다. 조립하다가 손가락이 찔려서 피가 엄마 가슴에 떨어졌다. 현수엄마는 현수가 생각하는 다정한 엄마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랫집 할머니가 엄마 마음이 생겨서 파란 사냥꾼에게 신고했고 쫓기게 되었고, 할아버지가 도와줘서 엄마가 탈출하고 다정한 엄마로 돌아왔다.’

약간 내용 연결이 안 되고 책의 내용을 옮겨다 놓은 느낌이랄까? 이 시기의 어린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도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바로 요약 능력이다. 수민이의 요약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 다양한 독서놀이를 시도했다.

놀이로 아이의 감춰진 열정을 깨우다

독서 빙고 게임은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어 하는 독서놀이다. 가로 세로 전체 25칸 또는 16칸으로 된 사각형을 그려넣고 빈칸에 책에 나오는 낱말을 써 넣어서 가로 세로 또는 대각선을 채우면 이기는 게임이다.

수민 엄마는 수민이가 25개 낱말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수민 엄마도 막상 25개 적으려고 하니까 막막했기 때문이다. 아이한테 ‘우리 빙고게임 할까?’ 하고 제안했더니, 아이가 책을 한번 딱 보고 표를 그려주었더니 “엄마 나 책 보고 해야겠어. 보면 뭐 어때?” 하면서 게임 방식을 스스로 바꾸면서 주도하기 시작했다. 책을 보다가 어느 순간 책을 닫고 했다.

아이가 한 번 더 하자고 해서 이번에는 책에 나온 낱말 25개를 먼저 채우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하자고 했다. 수민 엄마가 낱말을 쓰다가 생각이 나지 않은 것을 수민이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수민이가 낱말을 기억해 내는 것이 신기했다.

기억해낼 뿐만 아니라 낱말이 들어 있는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개구리가 어디 있었어?’ 하면 수민이는 ‘아빠 넥타이에 개구리 있었잖아!’하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수민 엄마는 “그래~~?”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번 하고 나니까 다음에 또 할 때는 다른 단어를 써 넣는 식으로 재미있어 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다른 과제를 하기 위해서 놀이를 하자고 제안을 했더니 수민이는 또 “엄마 빙고하자!”고 달려들어서 결국 다른 독서책으로 빙고 게임을 했다.

아이의 독서에 대해서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살펴본 수민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나의 100점 책”이라는 놀이를 하면서 수민이가 어느새 다음 단계의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기 때문이다. 글밥이 없는 그림책은 점수가 상당히 낮았고, 고득점을 받은 책들은 글밥이 상당했다. 수민 엄마는 “옛날에 많이 좋아했던 책을 이렇게 평가를 해서 놀랐다.”라고 말했다.

엄마, 나 이 책 몇 번째 읽는 거야?

행복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다. 월요일은 수민이네 학교에는 독서록을 쓰는데, 항상 책을 빌려 오다가 그날은 깜빡 잊고 안 챙겨 왔다. 독서록 검사가 바로 다음날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보는 책으로 써도 상관 없었다.

수민 엄마의 눈빛이 반짝였다. <엄마 사용법>으로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 사용법>을 보여주며 “수현아 오늘 이거 어때?” 하고 웃으며 말했더니, 수민이가 “엄마 나 이 책 몇 번째 읽는 거야?” 하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엎었다 뒤집었다 해서 한 일곱 번 정도 읽은 셈이다.

수민이는 다시 한 번 책을 읽더니 덮고 나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써서 엄마에게 보여줬다. 안 보고 요약을 하고 머리 속에서 줄줄 쓴 거다. 수민이가 쓴 요약문은 아래와 같다.

“현수한테 엄마가 배달됐어. 그런데 엄마는 현수가 생각한 그런 엄마가 아니었어. 엄마는 집안일 말고는 아무것도 몰라서 현수가 가르쳐주기로 했어. 현수가 가르쳐주었는데 엄마가 마음이 생겼어. 그래서 파란사냥꾼이 잡아가려고 했어. 그래도 엄마는 생명장난감을 탈출시켜주는 곳으로 가서 예쁜 엄마로 돌아왔어. 현수는 엄마와 행복하게 지냈어. 끝.”

요약문을 들은 엄마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요약문은 책의 전체 내용을 온전히 담고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어려운 조건인 140자에도 거의 맞게 썼다. 이제까지의 수민이는 한번도 이런 요약을 해본 적이 없었고, 요약은 커녕 글자 몇 개 없는 그림책도 베끼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독서록을 쓰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책 덮고 요약을 해냈다. 아마도 수민이가 태어나서 일곱 번 이상 읽은 책은 <엄마 사용법>이 처음인 지도 모른다.

엄마는 예리한 관찰자, 끊임없이 고민하는 기획자

수민이가 책에 재미를 붙이고 숨겨진 열정을 찾아내고 어려워하던 요약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데 내가 한 역할은 별로 없었다. 수민이가 가장 많은 일을 했고, 그 다음으로 많은 일을 한 것은 수민이 엄마다. 수민이 엄마는 수민이의 상황을 끊임없이 체크하면서 자연스럽게 독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수민이의 기분을 살피면서 독서활동을 해도 좋을지 쉴지를 판단했기 때문에 수민이가 엄마의 제안에 잘 따르고 독서활동지를 열심히 채워넣을 수 있었다.

아이의 독서수준이 달라지거나 취향이 달라질 때마다 유연하게 대응하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훌륭했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는 수민이 엄마 같은 열정적인 분들이 많이 있지만, 이 분들이 제대로 아이와 독서활동을 하도록 도와주는 장치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출판사나 학교에서 제시하는 거라곤 독서록이나 추천 도서목록이 거의 전부다. 각종 독서 프로그램도 유료이거나 틀에 박힌 것이 많았다. 이런 고민을 담아서 새롭게 만든 독서놀이와 메모리딩 프로그램을 가장 훌륭하게 활용한 사람도 수현 엄마다.

간단한 독서 빙고게임만으로도 수민이의 요약 능력이 향상되었고, ‘나의 100점 책’을 통해서 수민 엄마는 수민이가 벌써 다음 단계의 독서 수준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그램은 독서력 향상의 가능성만 제공할 뿐, 그것을 현실화하는 것은 엄마와 아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준 가족이 바로 수민이네 가족이다.

필자소개
오승주
제 꿈은 어린이도서관장이 되는 것입니다. 땅도 파고 집도 짓고, 아이들과 산책도 하고 놀이도 하고 채소도 키우면서 책을 읽혀주고 싶어요.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하고 아이와 함께 아파하며 아이가 세상의 일원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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