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결혼했어요'와 환타지
    [TV 디벼보기] 결혼 과정의 모든 고뇌와 번뇌는 거세된...
        2013년 01월 11일 01: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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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이 되고, 부모님과의 동거가 끝나기 시작할 무렵, 한국의 많은 청춘들이 고민하는 주제 중 가장 큰 것은 부동산 문제다. 직장과의 거리나 이후 출산 계획은 물론, 가격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우리 형편에 지금 전세라도 갈 수 있는 집의 위치와 가격에 대해 골머리를 싸며매 인터넷 부동산을 뒤적이고, 발품을 팔아 동네를 헤집고 다니기도 한다. 그리고 어렵사리 장만한 집을 유지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배운다. 그리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고 말한다.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이를 포함하여 더 많은 고민을 안겨준다. 때론 집안의 반대도 있을 것이고, 결혼을 약속한 이후에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집안의 눈치와 갈등이 있을 것이다. 예단 때문에, 함때문에, 혼수 문제 때문에, 또 다른 무엇 때문에. 우리는 골머리를 앓는다. 숱한 난관과 고민의 장벽을 넘어 결혼한 모든 커플들에게 존경을.

    티비는 뉴스를 보여주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터전의 이야기를 알려주는 정보의 전달자이다. 뿐만 아니라 티비는 우리에게 환타지를 보여주고, 욕망을 자극한다. 티비 나온 집과 차, 악세서리, 옷, 가방을 보고 소비욕구를 증대시키며, 인간관계와 미래에 대한 환상도 심어준다. 그런 면에서 ‘우리 결혼했어요’는 아주 노골적인 환타지 소설이다.

    잘생기고, 예쁜 그들은 골목골목 부동산 아저씨를 만나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수고와 수첩에 깨알같이 집값과 이사비용, 새 살림 장만에 드는 비용을 적어내려가며 한숨을 쉴 일도 없이 만나 한집에서 살게(?) 된다. 물론 부모와의 갈등도 없다. ‘삶의 생얼’이 거세된 그들의 ‘결혼생활’은 그들의 외모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들이 진짜 사랑으로 만난 커플도 아니며, 공과금을 낼 필요도 없으며, 그저 매주 새로운 이벤트와 여행, 감동으로만 점철된 환타지를 충실히 연기하기만 하면 될 뿐이라는 것을. 아침에 일어나 눈꼽이 낀 얼굴로 상대를 볼 일도 없으며, 날이 추우면 다음달 가스비를 걱정할 일도 없다. 남편의 콘서트에 도시락을 싸들고 가는 일과 그녀의 촬영장 앞에서 풍선 이벤트를 하는 일은 과도한 노동시간에 지친 영혼들에게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지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들이 실제 커플인 것 처럼 환호하는 이유는 그들이 현실에 없는 환타지이기 때문이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십대들에게는 자신이 꿈꾸는 결혼생활의 모습을 보며 동화책을 읽는 것 같은 달콤함을 선사할 것이며, 20대에는 거짓말이라고 해도 여전히 남아있는 꿈에 대한 동경일 것이며, 30대에게는 한때나마 저런 삶을 꿈꾸었던 과거에 대한 향수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주 말초적으로 방송에 출연하는 두 훈훈한 남녀의 실제 스캔들을 바라는 대중들의 열망일 수도 있다.

    그들은 다른 프로그램에 나와서도 서로를 부부인 것처럼 설정했고, 동일한 캐릭터를 유지했다. 대중들은 그들이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들 개인의 인기와 캐릭터는 매우 훌륭한 비지니스가 되었다.

    당초 ‘진짜’가 아닌 것으로 시작하여 진짜 같지? 진짜로 발전할 수도 있어, 라는 떡밥으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한번 위기를 겪었다. 진짜가 아니라는 것. 알렉스-신애라는 가장 달콤하고 훈훈한 커플이 프로그램을 하차하자마자 신애라의 결혼발표가 있었다. 대중들은 ‘배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 프로그램의 가장 치명적 단점을 기회로 돌파해 버렸다. 실제 커플 김용준-황정음이 투입되면서 다시 프로그램은 인기를 얻었다. 그들이 처음 만나 통장 잔고를 말하고 앞으로 성실하게 살자로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소소한 대화와 생활은 실제 연인의 모습이었기에 시청자들은 ‘진짜’라는 리얼에 다시 빠지기 시작했다.

    <우결>의 오연서-이준 커플

    최근 오연서-이준 커플은 꽤나 제작진들의 ‘떡밥’에 충실한 커플이었다. 하지만 오연서의 실제 연인은 이장우라는 스캔들이 터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딱히 논란이 될 것도 없는 것이었다. 이들은 ‘가상 부부’였고, 충실히 방송에서 부여된 캐릭터에 부합했을 뿐 그들의 사생활은 따로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굳이 ‘배신’이라는 단어를 들먹일 필요는 없다. 다만 환타지로 연명하는 프로그램에서 엄연히 다른 연인이 있는 것이 알려진 후 환타지를 깨버리고도 캐릭터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부정적이다.

    재미있게도 가장 현실적인(?) 남편의 모습을 보여준 정형돈 – 태연 커플은 현실과 방송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하차 직전 정형돈의 결혼 발표가 있었고, 방송에서는 서로에게 솔직한 고백의 시간을 가지면서 태연은 “나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났다”며 웃었다.

    그런 면에서 ‘결혼’에 대한 훨씬 더 리얼리티를 뽑아낸 것은 종편의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드라마 였다. (양가의 반대, 반대의 이유, 집안 사이의 알력, 예단과 예물 문제, 집 문제까지 결혼에서 생길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제점이 ‘드라마’라는 비현실적인 장르안에서 매우 현실적으로 고민된다.)

    인간은 꿈을 먹고 산다고 누군가 그랬다. 내일이 없는 사람은 절망이다. 내일은 무엇을 하고, 다음 달에는 무엇을 하고, 내년에는, 그리고 나이 마흔에는. 누구나 그런 꿈을 막연하나마 한두 개씩 품고 산다. 반드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것 하나라도 비루하게 부여잡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다.

    나에게도 꿈이 있다. 마흔이 되면, 쉰이 되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꿈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허무맹랑한 꿈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종종 묻는다. 꿈이나 목표가 아닌 환타지는 아닐까. 삶의 비루한 단면이나, 그림자, 관계에서 예상되는 갈등, 스트레스, 번뇌 등의 ‘삶의 생얼’을 고려하지 않는 꿈은 아닐까. 환타지는 때론 마약이다. 현실의 남루함을 잊을 수 있는 마약이며 마취제다. 리얼리티가 거세된 환타지는 우결에 나오는 커플들의 결혼 로멘스에 다름아니다.

    아직 대통령이 되지 않은 박근혜 당선자도 꿈이 있을 것이다. 그녀가 말한 공약이 이루어지고, 100% 대한민국이 되는 꿈. 나는 당선자가 자신의 꿈이 허무맹랑하지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선자는 아마도 그 꿈이 현실 가능한 것이라고 확신할 것 같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지려면 ‘현실’이 고려되어야 한다.

    집 한칸 구하는 문제, 예단과 혼수, 생활비, 양육에의 모든 고뇌와 번뇌가 거세된 결혼은 그저 티비상자 안에만 존재하는 <우결>인 것 처럼 100% 대한민국이 되려면 당선자가 딛고 있는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좌절과 절규는 하늘을 찌르다 못해, 하늘로 올라갔다. 생계가 어려워진 이들이 스스로 생을 포기했다. 그저 차분하게 꿈만 꾼다고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지금 철탑 위의 노동자들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한 당선자의 꿈은 환타지에 불과하다.

    필자소개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의 저자, 은근 공돌 덕후 기질의 AB형 사회부적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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