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 이전에 하(下)파가 되어야
    [진보정치 현장] 두 사건 통해 ‘나의 현장’을 되돌아보다
        2013년 01월 11일 11: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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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의원이 된 이후 나는 스스로가 정치인이 아니라 보통의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나 프리랜서처럼 여겨졌다. 때로는 세일즈맨, 때로는 오피스맨이었다. 의정활동기간은 어느덧 선거를 준비하고 치르던 시간을 압도했다.

    가끔 아스팔트 위에서 마이크를 잡으며 ‘나, 진보(좌파) 정치인!?’ 하는 수준이다. 여기서도 느낌표보다 물음표가 더 크기는 하다.

    주민들에게 종종 또는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나이 많고 보수적인 다른 의원 틈바구니에서 고생 많으시죠?” ‘틈바구니’에 액센트가 찍힌다. 나는 주저 없이 답한다. “아니에요~”

    나의 원내활동은 조금 시끄러울 때도 있지만 자타의 예상보다 안온하다. 작년 가을 내가 대표발의해 처리한 조례재·개정안 2개는, 태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의원들의 도움을 꽤 많이 받았다.

    다른 지역의 진보 성향 기초의원들을 이따금 만나기도 하는데, 그분들도 이야기를 들으면 구미시의회 사정이 부럽다고 한다. 후반기 의장단 선거를 계기로 나를 의회 ‘주류’로 분류하는 지역언론이 있을 정도다.

    인간적으로 친밀해진 의원들도 있다. 그분들과 밥 한끼, 술 한잔 하는 자리는 활동과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과의 만남 다음으로 가장 편한 자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흘러오고 저렇게 파묻히며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서 쓰고 시간을 보낸 내게 냉엄한 현실과 나의 현장을 되돌아보게 하는 두 가지 사건이 지난 연말에 있었다. 하나는 당연히 대통령 선거였고, 다른 하나는 한 활동가의 죽음이다.

    문재인-안철수 단일화가 한창이던 무렵, 평소 잘 아는 분 두 분이 의회 사무실로 찾아왔다. 누가 단일후보가 되든 그 후보의 선거운동을 위한 시민캠프를 발족할 것이며, 제도권 정치인인 내가 여기에 앞장서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이었다.

    그 몇 달 전에 조금 소란이 있었다. 총선에 관심 많았던 어떤 모임에서 내가 운영위원으로 있는 구미풀뿌리희망연대에 야권단일화 기구 설립을 주문했다. 하지만 구미풀뿌리희망연대는 정치조직이 아니라 시민운동단체의 연대였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대신해 내가 설명에 나섰다. 선거조직이 필요하면 별도로 구성해야 한다, 현직 시민단체 간부가 나서기 어렵다, 단체들은 각각 제 특성에 맞는 활동을 하게 해줘야 한다.

    그러자 그 모임에서는 “시민단체의 비겁”을 포함해 별의별 말이 다 나왔고, ‘뜻이 엇갈렸다는 것’도 아닌 ‘배신’ 비슷하게 규정하며 몰아가는 뒷말까지 들었다. 나는 나대로 선거에 골몰하여 타 단체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는 행태에 신물이 나 다시는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연달은 거절은 스스로도 참 모질게 느껴지는 일이다. 그 모임에서 다시 나를 믿고 찾아주어 고마웠지만, 이번에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녹색당 당원이고 당은 뾰족한 대선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동계에서도 후보 선출을 결의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설령 투표를 그리로 하더라도, 문재인이나 안철수를 공개 지지하고 싶은 의사가 전혀 없었다.

    나는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와 달리 카카오스토리는 주로 사적인 용도로 쓰고자 했는데, 여기서도 대선 이야기를 피하긴 어려웠고 나도 몇가지 단상을 올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문재인의 열성적 지지자들과 신경전을 벌이게 됐다. ‘탈핵이나 노동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고 정권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예전 사회구성체논쟁에서 불거진 오류를 뺨치는 환원주의가 그들의 손끝에서 툭하면 나왔다. 글쎄 10여년전 노무현 지지자들도 저렇게까지 이야기했던가? 하긴 그때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권 재창출’이 목표였지.

    내가 박근혜와 문재인 둘 모두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힐 때, 그나마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김소연이나 김순자를 잘 모르므로) ‘이정희 지지하는구만’이라고는 하는데, 문재인 지지자들은 주로 “투표를 왜 안 합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선거만으로 세상이 많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나의 일반론적인 멘트에도 “당신은 혁명이나 폭동을 주장하는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소위 ‘깨시민’이라고 불리우는 분들과의 대화는 가면 갈수록 앞뒤가 꽉 막혀갔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문재인 정권이 만약 난개발이나 노동탄압을 하면 나부터 가만있지 않겠다. 대선만은 함께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단 한명도 없었다.

    우리 동네의 한 사거리에서는 빨간 목도리와 노란 목도리의 열띤 대결이 한창이었고, 나는 묵묵히 이를 지났다. 노란 목도리 가운데는 녹색당 당원이기도 한 동네 누나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한 번도 싫은 소리를 안 했다.

    사실 우리 집 부근에 사는 한 민주노조 출신에 좌파 성향이 상당히 강한 아줌마마저 문재인을 찍는 눈치였다. 나는 무기력하여 말리지도 못했다. 또 그 누님의 열성과는 대조적으로, 내게는 노동자 후보의 선거운동을 위해 길거리에 나설 기회도 없었다. 연말 예산안 심사가 한창이기도 했다. 그래도 새누리당,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새벽에 선거운동을 하고 상임위에 출근했건만, 나는 먹고 살기 바쁜 여느 생활인처럼 선거에서 떠밀려 나갔다.

    그즈음 이재영 씨의 부음을 들었다. 고인과 인연이 깊지 않았으나,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를 ‘힘들 때 만난 유쾌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는 내게 ‘나도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의지를 불러 일으키는 사람이었다(나는 어느 한 사람한테라도 그런 마음을 심어준 적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만난 게 2008년이었다. 장례식에라도 가기로 했다.

    발인일은 내년도 본예산 최종 계수조정 이튿날이었다. 2011년이나 2010년처럼 계수조정이 자정을 넘겨 새벽에 끝나면 장례식에 못가는 것이다. 그런데 쟁점 예산에 대한 협의가 의외로 쉽게 끝났다. ‘나는 편하게 살고 있구나.’ 기차를 타고 자정을 넘겨 서울에 도착했다.

    아침 영결식에서 턱에 쌓인 눈물을 닦아냈다. 고인을 보내는 슬픔이 아니었다. 나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사람인가, 고인처럼? 그저 자책할 뿐이었다.

    나도 그렇고 녹색당도 그렇고 그 현주소는 국민승리21도 아니고 1990년대 중반 진보정치연합과 비슷할 터이다. 이재영은 진보정치연합의 마지막 상근자였다 한다.

    후일을 기약하며 동지들이 일터로 집으로 돌아가고 비운 그 자리에서 더 작은 사무실로 가기 위해 짐을 싸면서도 세상을 포기하지 않던 그 삶 앞에, 어쩌다 운 좋게 당선되어 선거사무실 짐을 마을에 독자적으로 마련한 의원사무실로 옮기며 뿌듯해 했었던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그때 그 선거에서 올린 21퍼센트라는 득표율은 신기하고 과분했으며, 한편으로는 못내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이중에 내가 손수 일군 것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깨놓고 말해 인품도 기량도 달리는 나는 MB와 반MB 덕분에 당선되었을 뿐이다. 선거운동기간 중에 하루는 꿈을 꾸었다. 꿈속 개표에서 김수민 후보의 득표율은 2.1퍼센트. 해몽을 하며 운동원들이랑 ‘점을 빼면 당선’이라고 웃었지만, 이제는 다시 점을 찍고 새로 출발해야 한다.

    작년 총선과 대선에서 내가 지지한 정당과 후보의 득표율을 보면 2.1이라도 어디냐 싶다. 0.21이라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 일부러 자학적이고 비대중적인 길을 가려는 게 아니다. 현실이다.

    영결식을 마치고 몇 시간 친구들과 정담을 나눈 뒤 서울 올라간 김에 정치부 기자인 선배를 만나러 저녁에 광화문으로 갔다. 그는 나와 정당 분회 활동을 함께했고, 얼마 지나 다른 당으로 갈라졌으며, 지난해 총선에서 나와 같은 정당에 투표한 사람이다.

    그는 문재인 선거운동을 취재하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인파와 멀리 서 있는 문재인, 안철수를 보았다. 그 형을 기다리던 나는 군중 속의 고독을 느꼈고, 그동안 서 있을 마땅한 자리조차 잡을 수 없어 서성댔다. 나는 거기서 나를 보았다.

    고인은 생전의 마지막 칼럼에서 “작은 영지나마 소중히 가꾸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내게는 그런 작은 영지라도 있는가? 지금껏 무턱대고 중원에서 어슬렁거리지는 않았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실질적으로는 1년 남짓이다. “잔도를 불사르고 파촉에 깃”드는 동시에,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49->13->3->2.9->0.5->0.05.

    내가 대선이나 총선에서 지지한 후보 및 정당의 지지율 추이다. 바닥에 머리를 박는 성찰과 도전으로 다시 뛰어보아야 한다. 녹색 풀잎이나 붉은 장미이기 앞서 실낱 같더라도 풀뿌리부터 되어야 한다. 좌파이기 이전에 하(下)파여야 한다.

    필자소개
    김수민
    전 구미시의원. 스스로를 정당인보다는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녹색당 소속. 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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