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 21세기에서 살아가려면
    [에정칼럼] 장기비상시대 돌입, 대안적 상상력 필요
        2013년 01월 10일 02: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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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투표율만을 맹신한 야권의 아전인수격 전망에도 일정 정도 설명이 된 듯 하다. 1, 2번 모두 찍지 않은 나도 야권의 승리를 바라기는 했다. 아니 문재인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신승을 예상했다.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사표가 될 것으로 여긴, 내 투표 용지가 대선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인수위원회를 구성한 박근혜 당선인의 권력 인수인계가 시작된 마당에 이제 앞날을 걱정하는 게 나을 성 싶다. 99%도 아니고 48%를 위로하거나 선동할 능력도 의지도 없으니까.

    가재는 게 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취임 준비에 바쁠 ‘박통’ 정권은 그나마 ‘MB’ 정권 때보다 시끄럽지는 않을 것 같다. 적어도 학습효과라는 게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은둔형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행정 수반의 유형으로 기록될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다수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 사회보장 정책이 사회적 추세대로 일부 개선되더라도 경제, 노동, 환경 분야의 토대가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주택 취득세 감면을 연장하려는 신호는 이미 낡은 ‘안전자산 선호현상’을 유지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물론 새로운 박통 정권에 표를 몰아준 유권자들을 ‘통합’하려는 노림수이기도 하다.

    이처럼 박통과 인수위는 일련의 경기부양 대책을 발표할 것이다. 부유세의 대상이 되어야 할 상층뿐만 아니라 경제적 풍요라는 욕망을 표출한 중산층에게도 정치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이와 다른 식의 ‘계급 투표’, 정확히는 ‘환상 투표’ 경향을 보인 하층 역시 정권의 ‘돌봄’을 당장은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예견되는 경제적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보수 정권이기에 할 수 있는,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에서 어느 수준까지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게 흥미롭겠다. 이에 대한 최대치는,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가 대선 직후 발표한 ‘대한민국 중장기 정책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권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남은 집권 1년 동안 야심차게 준비한 이 보고서는 나름의 체계를 갖췄다. 정부와 정당, 국책연구기관에서 이런 식의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국내외 트렌드를 반영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그것도 30년 이상을 내다보고 ‘2050년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렸다. 글로벌 저성장과 다극체제, 고령화의 진전과 개도국 인국 증가, 기후변화 심화와 에너지 수급 불확실성 증대, 글로벌 평준화와 부문간 격차 완화라는 글로벌 트렌드에서 최상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비록 경제적 격차가 완화될 것이라고 낙관하는 희망사항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70세의 미래 세상이다.

    2050년 대한민국의 모습(출처: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 대한민국 중장기 정책과제)

    이명박 정권이 박근혜 정권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일까.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을 연구 결과의 정책을, 왜 본인은 일부라도 추진하지 않았을까.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이보다 흥미로운 것은 중장기 정책과제의 주요 내용이 민주통합당의 정책 방향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두 거대 정당이 집권해도 이러한 정책과제의 경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중장기 비전과 정책방향은 경제성장 중심의 현 체제의 보수 능력을 지나치게 낙관한다. 또한 겉으로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를 주요 변수로 설정하고 있음에도, 경제적․기술적 접근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관성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다. 한마디로 ‘자연의 한계’를 무시하고 ‘지속가능 자본주의’와 ‘자연 자본주의’의 깃발을 든, 장기 21세기의 ‘악마의 맷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국가자본주의로 갈지, 자본주의 4.0으로 갈지, 아니면 신자유주의를 유지할지, 모를 일이다. 확실한 건 점차 ‘자기조정적 시장’에 대항해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시간이 지난 후에 뒷거울(back mirror)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장기비상시대’에 접어들었다. 무수한 경고들이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현상 유지나 개량 수준으로 총체적인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경고 또한 무수히 많다. 당연히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최상의 시나리오가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주인이 되기 위해서 매일 투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무엇을 해야 할까. 판을 바꾸기 위해서는 대안적인 상상력과 전망이 필요하다. 문제는 누가 하느냐이다. 장기 21세기를 살아가려면 이 질문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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