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그래처럼 배운다
    [기승전병의 맛] 윤태호의 <미생: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
        2013년 01월 09일 11:23 오전

    Print Friendly

    윤태호의 <미생: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이하 <미생>)의 인기가 무섭다. 아직 보지 못했더라도 그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거라 믿는다.

    <미생>은 바둑과 종합상사라는 소재로 통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는 회사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미생>의 신입사원 장그래의 성장은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젊은이들에게는 신의 한수와 같은 직장생활 지침서가 되기도 하고 양복 안주머니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직장인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아직 <미생>을 보지 않았다면 당장 찾아보길 권한다. 기획안, 업무일지 등을 작성하기 위해 열어놓은 창을 닫고 윤태호의 <미생>을 훔쳐보라. 회사에서 봐야 더 재밌다. 진짜다.

    잠깐. 상사 몰래 <미생>을 클릭하기 전 미약하마나 도움을 주기 위해 만화가 윤태호에 대해 알고 보면 어떨까. <미생>은 워낙 화제작이라 줄거리를 늘어놓거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방식보다는 만화가 윤태호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미생>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듯하다.

    마침 최근에 그를 만날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니까 윤태호를 처음 만난 건 2008년 늦겨울이었다. 사실 윤태호를 몰랐다. 아래에 글쓴이 소개글에 나오지만 지금은 사라진 ‘전설’의 만화잡지 <팝툰>에서 일했지만 입사 이전까지 한국 만화를 거의 보지 않았던 거다.

    <팝툰> 입사 첫날 선배들은 저녁에 시간되냐고 물었고 그렇게 따라간 곳에 야구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른 윤태호가 있었다. 그날 윤태호라는 만화가의 존재를 알았다. 만화잡지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그때 처음 그를 알았다니 지금 생각해도 매우 부끄럽다.

    사실 나처럼 윤태호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을 거라고 믿어본다. 2008년 미디어다음 만화속세상에 <이끼>라는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 일부 독자들은 “무서운 신인이 나타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거기에 윤태호를 기억하는 사람은 다시 댓글을 달았다. “<야후>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출판만화가 쇠락하고 웹툰이 만화시장의 중심에 놓이면서 윤태호 같은 중견만화가의 입지가 좁아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니 윤태호를 감히 신인이라고 말하는 어린 독자들도 이해가 된다.

    <이끼>의 폭발적인 인기로 윤태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만화가로 ‘다시’ 자리매김했다. 영화로도 제작된 <이끼>는 윤태호에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줬다. 그때 윤태호가 선택한 작품이 바로 <미생>이다. 처음 출판사가 제안한 바둑과 직장생활을 접목한 만화의 가제목은 ‘고수’였다. 바둑의 고수가 직장생활에 대해 한수 가르쳐준다는 식의 컨셉이다.

    그런데 지금 제목이 <미생>이듯이 윤태호는 그런 컨셉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2년 반 동안 고민한 끝에 지금과 같은 스토리 구도를 생각해냈다. 프로 바둑 기사가 되기 위해 오로지 바둑만을 해온 장그래가 종합상사에 계약직으로 입사해 샐러리맨으로 성장하는 내용이다.

    <미생>의 인기는 <이끼>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윤태호는 “4권까지 나온 <미생> 단행본이 <이끼>의 총판매부수를 초과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미생>은 <이끼>에 비해 소장가치가 크다는 것이다. 무엇이 소장가치를 높였을까. <미생> 속에는 신입사원이 거대한 조직에 적응하고 자신의 일을 찾고 배워가는 과정, 회사원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그 속에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이들의 삶이 녹아 있다. 장그래는 분명 누군가의 신입사원 시절이다.

    그래서 <미생>을 읽는 다른 재미는 댓글에 있다. 매회 도입부에 보이는 바둑 기보를 해석해주는 베스트댓글보다 사실은 자신의 경험을 토로하는 내용에 더 공감이 간다. <미생>은 <이끼>처럼 외딴 시골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살인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한 부분이다. 당연히 <이끼>보다 소장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생>을 시작했을 때 윤태호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고 자신감을 상실했다. 그 공포의 근간에는 수많은 회사원, 샐러리맨들이 이 만화를 본다는, 잠재 독자의 수가 어마어마하다는 점이었다. ‘그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그를 압박했다.

    그래서 윤태호는 장그래처럼 배운다. 종합상사에 다니는 취재원들에게 윤태호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물었다. 장그래가 업무용어를 익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다가 “중동항로와 관련된 특이사항”이라는 제목의 문장을 업계에서 통용되는 짧은 문장으로 고치는 에피소드에서 윤태호는 원래의 긴 문장과 축약된 문장을 취재원에게 받았다.

    원래 문장에서 축약된 문장으로 가는 과정에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았다. 스스로 장그래가 되어 그 과정을 만화로 그렸다. <미생>의 소름끼치는 디테일은 윤태호가 체득한 것이다. 그래서 <미생>의 장그래는 단 한번도 회사가 주는 월급을 받아본 적 없는 윤태호가 성장하는 만큼 자란다. 윤태호도 말자하면 신입사원이다.

    윤태호는 <미생>을 통해 드디어 “대중작가가 됐다”고 말했다. 가까운 현재를 세기말의 묵시록적 관점으로 포착한 <야후>, 섬뜩한 스릴러의 끝을 보여준 <이끼>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마이너한 정서’를 품고 있었다.

    <미생>은 다르다. 연재 초기 공포의 기원이 됐던 많은 회사원들에게 공감을 얻었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미생>에 등장하는 요르단 대사관의 초청을 받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감사인사를 받고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는 “우리 기관도 등장시켜주면 안되겠냐”는 말을 듣게 됐다.

    절대 만화 한편 보지 않을 사람들도 윤태호의 <미생>을 본다. 그러면서 윤태호는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믿게 됐다. <미생>과 함께한 2012년은 어떤 해냐고 물었더니 윤태호는 이렇게 답했다.

    “내 인생에서 “아, 이걸 해야겠어”라고 했을 때 비로소 확신을 얻게 된 해라고 해야 할까. <미생> 진짜 열심히 했다. 거의 밤을 새워 일을 해도 행복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취재원들에게 확인받고 그분들을 고무시켜주면서 확신을 갖게 된 게 있다. 내 생각이 그렇게 마이너하지 않고 무리가 없구나, 조금 더 내 생각이나 판단을 신뢰해도 되겠구나, 이런 확신을 얻게 된 게 제일 큰 성과다.”

    이제 더이상 윤태호라는 이름은 만화계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이름이 됐다. <미생>이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10년 후 누군가 (그때도 만화잡지라는 게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만화잡지의 편집자가 된다고 했을 때 윤태호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소개
    '전설'의 만화 잡지 [팝툰] 기자로 일했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영화 잡지 [씨네21]의 편집 기자로 일하고 있다. [레디앙] 모 기자의 열렬한 팬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