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쿠오카 형무소 윤동주에 대한 응답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지금 '빛'을 보듬고 알리자
        2013년 01월 08일 1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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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다음날, 멘붕상태로 강연 약속에 따라 후쿠오카에 갔습니다. 두 시간 걸려 갔던 그곳에는 쌍용이나 한진 문제도 없었어요. 두 시간 떨어진 그 공간이 어쩌면 저리도 전혀 다른 세계였는지요. 근데 그날 밤 일본 BS티브이에 김대중 특집이 나왔어요

    한국 선거가 끝난 다음날 왜 NHK가 제작했을 김대중 특집을 방영했을까요? 대량해고와 신자유주의의 확립에 대한 비평은 없고, 북한(김정일)과 일본(오부치 총리)와의 성공적 회담, 월드컵4강 평화시대를 열어갔던 탁월한 지도자로 묘사하고 있었어요.

    다음날 금요일에 후쿠오카 대학에서 윤동주 강연을 했어요. 학생 70여명과 일본 시민들이 앉아 계셨어요. 윤동주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후쿠오카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일본인 학생들에게 놀라웠던 거 같아요. 강연을 끝내고 밤새 윤동주와 그 시대를 생각했습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의 윤동주(오른쪽) 그 옆이 문익환(사진은 연세대 윤동주기념사업회)

    그런데 다음날 토요일 아침 윤동주를 생각하다가 가슴에서 욱 하고 치밀었어요. 제 가슴이 무엇이 치밀고 올라왔는데, 그냥 마음 얘기하듯 써볼께요.

    이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요. 윤동주가 다녔던 명동학교는 그냥 학교가 아니예요. 거의 독립군 양성소 같은 곳이었죠. 용정 일본영사관을 학생들이 불태우기도 했고요

    일본군 돈을 강탈한 ’15만원 탈취사건'(1920.1.4) 주동자들도 명동학교 선배들이었고, 몇명은 사형당했죠. 1918년 명동학교에 입학하여 수업시간에 거울 보며 웃는 연습만 하던 ‘엉뚱한 학생’이었던 나운규는 1926년 10월 서울 단성사에서 각본·주연·분장·감독까지 도맡은 첫 영화<아리랑>을 개봉하죠. 이들이 윤동주, 문익환, 송몽규 명동학교 동문들이죠. 결국 일본군은 명동학교를 불태웁니다. 윤동주는 게릴라 학교를 다닌 격이죠

    윤동주 외삼촌인 규암 김약연이란 한학자는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라는 말을 남긴 엄청난 지도자입니다. 3.1운동 때 만주지역에서는 무장투쟁을 주장했는데 그 핵심인물이 김약연입니다. 나중에 목사가 되는 이 분께 14살 때부터 윤동주는 맹자와 성경 등을 배웁니다.

    윤동주가 경성 연희전문으로, 일본으로 유학 간 것을 체게바라의 게릴라학교를 다니던 아이가 뉴욕대학교로 유학 간 것으로 비교한다면 과장이겠죠. 38학번 윤동주는 숨막히는 충격을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대학 2학년 때 1년간 절필했겠죠

    그리고 3학년 때부터 윤동주의 시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일본에서 송몽규와 함께 책을 읽다가, 1년 동안 옆방 벽에서 도청하던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제가 머물렀던 후쿠오카의 형무소에 갇히고 죽습니다.

    후쿠오카대학 게스트 하우스에서 그때 그분들의 답답했던 삶을 생각하니, 눈물이 치밀어 올랐어요. 그리고 멘붕이니 뭐니 하며 말수가 적어진 제 자신이 민망했어요.

    사진 출처는 연세대 윤동주 기념사업회

    조선인 죄수를 모아놓았던 후쿠오카 형무소 자리에 처음 갔을 때 느끼지 못했는데, 1년만에 다시 간 지난 토요일, 밤새 윤동주와 송몽규의 신음소리를 환청으로 들었어요. 밤새 뒤척이다가, 게스트 하우스 창문을 열었을 때 후쿠오카에 눈물처럼 겨울비가 내렸어요.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카아를 생각하며 내 눈시울이 젖었어요.

    “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자동적이거나 필연적인 과정을 믿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잠재능력(human potentialities)이 진보적으로 발전한다고 믿는 것이다. 목표를 향한 ‘무제한적 진보’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ㅡ카아 <역사란 무엇인가>

    식민지시절 명동학교 출신의 사형수들, 명동학교 교장 규암 김약연, 명동학교에서 공부했던 나운규 윤동주 송몽규 문익환 등 죽음을 벗했던 분들을 생각하면 멘붕이니 하는 표현들이 너무 사치스러운 꾀병이지요. 아침에, 힘내자며 훌훌 털고 일어났지요.

    어둠과 싸우는 것도 좋지만, 그 시간에 빛을 보듬고 알리는 일은 더욱 중요하지요. 어둠이 주인공이 아니라 작은 빛이 모든 일의 출발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알리면서 스스로 빛이 되는 일이 너무도 절실한 상황입니다.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영원무궁히 빛나리라”(다니엘서 12:3)고 하지요. 그래서 윤동주는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서시」)라고 했나봐요.

    할 일이 많아요. 과거를 생각하고 잠깐 묵상한다면 감상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래서 저는 올해 윤동주, 송몽규에 대해 두 잡지에 연재글을 쓰기로 했어요. 감상에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그 분들의 삶에 응답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그 분들의 의미를 제 삶에 전이시키고 알리고 싶어서요. 벌써 1월이 며칠 지났어요. 평안하시고요.

    후쿠오카에서 윤동주에 대한 강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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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1,000여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이다. 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는 민교협 회원 중 고부응, 김응교, 유성호, 홍기돈 교수가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월요일에 게재한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홈페이지(http://www.professornet.org/)에도 함께 올라간다.<편집자>

    필자소개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Sinenm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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