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속좌담2-①] 중도의 평가와 전망
    "이정희, 50대 투표율, 민주당 역할은?"
        2013년 01월 07일 04: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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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디앙의 연속좌담 두번째는 주로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를 중심으로 한 중도세력, 자유주의진영의 평가와 이후 전망에 대한 논의였다. 좌담 두번째 참석자는 조희연 민교협 상임의장과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참여했다. 이철희 소장은 상대적으로 민주당에 가까운 정치평론가이며, 고원 교수는 안철수 캠프에 일정하게 관여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2회에 나누어 게재한다. 정리는 레디앙 장여진 기자가 담당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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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권: 이야기 출발을 대선 시기에 화제가 되었던 이정희 후보의 TV토론에 대한 것으로 해보자. 이정희 후보의 TV토론이 문재인 패배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나?

    이철희: 내 또래의 친구들이 이정희 토론 때문에 박근혜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대선 이후에 듣고 깜짝 놀랐다.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보다 영향을 미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5060세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고원: 1차 TV토론 이후 이정희에게 환호했던 사람들은 주로 젊은 세대와 진보진영이었던 것 같다.

    정종권: 예전에는 권영길 후보가 TV토론에서 논쟁할 때는 말투가 좀 어눌해서 진보정치 지지자들이 조금 답답해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TV토론에 좀 더 논리적이고 전달력이 뚜렷한 노회찬, 심상정이 나갔으면 더 큰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TV토론에서 이정희 후보는 훨씬 논리적이고 공격적이고 자기 주장을 뚜렷하게 한 면은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맥락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문제점을 많이 지적하는 것 같다.

    조희연: 굉장히 똑똑했지만, 방식이 사람들이 좀 불편할 수 있는 유시민적인 토론 화법이었다.

    고원: 유시민 정도가 아니었다. 권영길은 나름대로 말투는 어눌했지만 일종의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정희는 할퀴고 물어뜯는 모양새였다. 전략적인 관점에서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전략에 완전히 부응하는 태도였다.

    이 사회에서 박근혜는 가해자를 대변하고 민주진보진영은 피해자나 약자를 대변한다는 프레임이 있었는데, 이번 TV토론에서 그게 뒤집어지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집어지는 착시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선거에서도 야권의 홍보 컨셉은 피해자, 약자, 상처받은 사람과 후보가 같은 사람들이라는 일체감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정희 후보의 토론 태도는 전략적 관점에서는 이적행위나 다름 없었다.

    정종권: 이정희 후보의 진영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지적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다른 면에서는 이정희 후보가 왜 박근혜만 일방적으로 공격하나, 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박근혜 문재인 둘 다를 공격하고 비판해야 진보정당 후보로서 새누리당이나 민주당과 다른 독립적인 이미지를 가지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오히려 마치 문재인 후보를 대신해서 박근혜를 공격하는 모양으로 비춰졌다는 것이다. 비교하면 이전의 권영길 후보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에 대해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스탠스를 취했었다.

    고원: 그것은 이정희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문재인에 대한 지적 상황이기도 하다. 문재인이 이정희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는 전술을 썼어야 했는데 그런 상황을 계산하지 못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조희연: 이정희는 양면성이 있다. 통상적인 진보적 전략이고 입장이었는데, 그것이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유는 진보좌파진영의 위상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2004년경의 진보정당은 좌파 안철수적 성격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부재한 상태이다. 그래서 이정희로서는 그런 토론의 스탠스가 최선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했던 것이고 통합진보당의 정치적 지위 회복이라는 점에서는 일정한 효과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거시적 맥락에서는 부정적으로 작용한 이중적인 효과도 있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한 대학원생이 말해주었는데, 그 또래들의 술자리에서는 이정희 토론 내용이 화제가 되고 회자됐다는 것이다. 나름 무관심층이나 젊은 층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과 자극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맞다.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모두 합산했을 때는 마이너스 작용을 한 측면이 더 큰 것 같다.

    고원: 이정희 토론 발언이 주는 시사점은 있는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이번 대선이 워낙 야권에서 이슈를 못 만들었던 선거였는데 이정희 후보가 토론을 통해서 일종의 이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대선 패배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민주진보진영이 단일화 담론 외에는 어떤 의미있는 이슈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슈가 있어야 바람이 생기고, 바람이 있어야 이기는 것이 민주화 이후 중대선거에서의 법칙 같은 것인데 이번 선거에는 이슈가 없었다.

    좌담 참석자들의 전체 모습(이하 사진은 장여진)

    이철희: 이정희 효과가 문재인에게 마이너스를 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진보진영, 통진당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하고 통진당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에는 성공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정희를 중심으로 통진당은 새누리당으로부터 종북주의세력이라고 공격을 받아왔다. 이정희의 토론 태도는 그런 공격에 굉장히 짓눌린 사람들의 외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를 중심으로 하는 반공세력이 종북주의 공격으로 진보진영을 압박하는 것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고 그것이 잘못된 공격이고 규정이라고 보여주려면 오히려 더 아련하고 짠한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오히려 ‘조롱’을 해버렸다. ‘너를 떨어뜨리려고 출마했다.’고 말하는 것이나 박근혜에게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등 단문식으로 계속 물어보는 토론 태도는 ‘넌 대통령감도 아닌데 왜 출마했냐’는 식의 조롱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토론 방식으로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조롱으로 대선에 임하는 진보진영의 태도와 모습에 대한 대중들의 역풍을 받은 것이다.

    조희연: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미지를 전도시켰다는 지적은 중요한 지적이다. 급진적이면서도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는 진정성 있는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상실했다. 오히려 가해자인 박근혜를 조롱을 당하는 피해자로 만들어준 것이다.

    정종권: 박근혜가 이정희에게 ‘대통령선거에 무슨 스무고개 문답풀이를 하러 나온 것도 아니고…’라고 발언한 것은 노무현이 ‘조강지처를 버리라는 말인가’ 발언처럼 공격 받는 상황을 뒤집어버리는 효과를 낳았던 발언인 것 같다. 이철희 소장이 지적했던 이정희의 토론 효과가 진보진영에는 도움이 되었느냐는 문제제기는 적어도 통진당이라는 울타리 내에서는 도움이 된 것 같다. 그간 위축되어있던 통진당의 심리상태를 호전시켜준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통진당을 넘어선 전체 진보진영이나 이정희가 옹호하려고 했던 범야권에는 좀 부정적인 효과를 낳았던 것 같다.

    정종권: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왜 패배했다고 보나? 많은 사람들이 패인 분석을 한다. 수도권, 충청, 강원, 제주에서 완패하고, 97년 김대중 후보가 이겼던 지역에서 다 졌다는 것은 지역전략의 부재나 민주당의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손호철 교수의 경우 지난 <레디앙> 좌담에서 패인의 하나로 민주당의 좌경화에 대한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새누리당이 시대의 요구에 따라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민주당도 왼쪽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중도정당으로써 왼쪽으로 더 갈 수 없는 구조적 한계와 약점이 있는 상황이고, 좌파진영 자체는 몰락학 상황에서 사회경제적 쟁점이 형성되지 않고,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정책이 일정하게 수렴되는 효과가 발생했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이런 분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이철희: 왜 졌는지를 가장 중요한 핵심요인을 꼽으라고 한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여러 패인 요인을 거론할 수 있지만 그 중 첫 번째 요인이 무엇이라고 단언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좀 어렵다. 데이터가 나오는 걸 봐야하겠지만 심각한 것 중의 하나는 민주당의 집권전략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연합과 세대연합’이라는 전략적 틀이 다 깨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2040세대의 동맹을 유지하면 성공한다고 생각했고 또 어느 정도 그 목표를 달성했지만 깨졌다. PK지역에서 40% 정도의 득표면 당선가능성이 높다고 봤는데, PK에서는 어느 정도 득표는 했는데 수도권에서 깨졌다. 그 선거전략의 틀 자체가 완전히 다 깨진 것이다.

    출구조사 말고 아직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말하기 난감하지만 정밀하게 본다면 유권자 지형 자체가 바뀌었는데 이에 대해 야권이 무뎠던 것이다. 이 숙제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이걸 짚어 근본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면 이후 어떤 정치적 전략으로 가더라도 난감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고원: 직접적으로는 민주진보진영의 사람들이나 지지자들에게 체감하고 다가오는 이슈를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민주화, 복지라는 구호가 있었지만 매우 추상적이고 기본적으로 미래화법이었다. ‘내가 되면’, ‘정권교체가 되면’ 무엇을 해주겠다는 미래화법이 유권자들에게 안 먹힌 것이다.

    젊은 세대나 소위 화이트칼라, 중산층 등 일정하게 조직되고 의식수준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미래화법이 먹히는 측면이 있지만 특히 50대와 서민, 저학력 저소득 유권자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 당장 죽어갈 판이라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에게 당장 어떠한 처방을 줄 것인지 답하지 않는 미래화법은 그들을 조롱하는 것일 뿐이다. 반대로 박근혜쪽은 이에 대해 잘 대처했다. 민주당과의 쟁점을 만들지 않고 회피하고 유야무야시킨 것도 성공했다. 경제 위기를 강조하면서 나름의 위기 대응에 대한 매뉴얼도 제시했다. 이에 반해 야권은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담론이 없었다.

    2010년 지방선거가 복지라는 추상적인 거대담론에 사람들이 반응했기에 승리한 것이 아니다. 그 복지라는 담론을 무상급식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쟁점으로 만들었고, 현실적인 지금 당장의 문제로 사람들이 반응하는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립 쟁점이 되었고 정치 전선이 되어 나름대로 성공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추상적인 복지만 있었다. 문재인이 가계부채에 대해 무슨 실효성 있는 이야기를 했나. 박근혜는 가계부채대책 18조원 책정 등으로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나름의 구체적인 경감대책을 내놓았다.

    정종권: 고원 교수의 의견에 반만 수긍한다. 문재인의 공약과 정책이 구체성이 없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민주당의 공약과 약속만 놓고 보면 가장 강한 사회민주당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나름의 공약과 정책 정리는 되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이 정책과 공약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졌고, 이것은 민주당과 문재인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 생활에 밀착되고 체감될 수 있는 그런 비젼에서는 부족했던 것 같다.

    결국 민주당 전략의 핵심은 박근혜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것 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 박근혜는 ‘경제 위기에 대한 공포’를 전략의 축을 설정했다면 민주당은 ‘박정희의 망령’이나 ‘유신에 대한 공포’를 전략적으로 설정한 것 같다. 박근혜가 되면 민주주의가 끝난다는 식의 공포담론이었는데, 이에 대해 젊은 세대와 화이트칼라층은 나름 반응을 했지만 그 외의 세대와 계층에게는 어필하지 못한 것 같다.

    이철희: 그런 식의 지적도 나름대로 설명은 된다고 본다. 민주당이 정책이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정책 등의 흐름은 갖고 있었지만, 속되게 표현하자면 이것을 대중들에게 먹여주는 것에는 실패했다고 본다.

    지금의 민주당은 찬반 구도를 만들어놓으면 잘한다. 심판론, 정권교체론 같은 것. 박근혜, 이명박 정권에 찬성하는 세력은 반대세력으로 규정하는 것 등. 하지만 대중은 이번 대선을찬반의 구도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 선거는 결국 한국 사회가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누가 더 제대로 잘 할 수 있느냐의 신뢰성에 대한 초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갤럽 조사를 보니깐 마지막 2-3일과 투표 당일 표심을 결정한 사람이 10%정도였다. 6일전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와 문재인이 초접전 상태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밀렸다는 것은 결국 뒷심이 부족했다는 것이고, 간명하게 말하자면 강한 이슈가 없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이슈를 만들지 않는 것이 전략이었다. 그리고 복지나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슈보다 안보쪽에서 쟁점을 만들었다. 민주당은 안보가 아닌 자신에게 유리한 의제와 영역에서 흐름과 쟁점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의제만 던저놓고 국민들이 따라오기만 바랬다. 초보적인 인식 수준인 것이다.

    복지 의제와 그와 관련한 정책들은 몇 개 있지만 일반 국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맞춤형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민주당에서 정책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구체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정책으로 만들어야 하는 지에 대한 감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많이 봤다.

    경제민주화 관련해서도 설명이 빠져있다. 큰 틀에서는 설명이 되지만 재벌개혁을 하면 당장 나에게 어떤 실익이 있는지 설명이 없으니 감동도 없고 매치도 안 되는 것이다. 대선 전에는 경제민주화든, 복지든 그 안에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 구체화되고 느낄 수 있는 세부 정책으로 만들어서 전선을 형성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대선에서는 그런 게 사라졌다.

    이번 대선 패배의 책임은 문재인 후보 보다는 2012년 6월 9일 총선 패배를 극복하기 위한 출범한 이해찬 지도부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그 지도부는 대선후보를 선출할 때까지도 새누리당과 제대로 된 정치적 전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민주당의 리더십은 시대착오적이다. 시대흐름을 쫒아가지 못하니 후보가 있어도 정치적 전선이 없고, 그 전선을 만드려는 문제의식도 없었다.

    진보진영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민주당은 찬반 구도를 넘어선 우열 구도에서 이기도록 해야 한다. 보수가 점점 진화한다는 전제하에 박근혜 이후 새누리당의 후보는 아마도 박근혜보다는 더 왼쪽 성향을 갖고 나올 텐데 과연 그 때에는 민주당이 이길 수 있는지 자문해보면, 현재의 민주당 체제와 시스템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고원: 덧붙이자면 무상급식 이슈조차도 민주당이 만든 것이 아니라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맨땅에서 혈혈단신 만든 것이고, 민주당은 그것에 올라탄 것 뿐이다.

    이철희: 그렇게 올라타기라도 해야 된다 (웃음)

    고원: 민주당 의석이 127석으로 적은 수가 아니다. 진보정당까지 합치면 140석 가까이 된다. 그러면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국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뚜렷하고 진보적인 이슈나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전혀 그러질 못했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정기국회에서 승부를 봤어야 했는데 그럴 의지도 생각도 없었다.

    박근혜의 전술은 시종일관 물타기였다. 경제민주화, 복지 이슈가 있을 때마다 다 받아서 민주당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 발을 걸쳤다. 그런데 민주당이 박근혜의 그 물타기 흐름에 대해 제대로 깬 적이 없다. 물타기가 들어오면 옳다구나, 같이 입법안을 처리하자고 발목 잡고 철야농성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너무 허무하게 지나가는 거 보면 고질적인 병이 아직도 치유가 안 된 것 같다.

    이철희: 심각한 문제이다. ‘세대와 지역’ 중심의 전략은 이해찬 전 대표가 주도한 전략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이 전 대표는 대선 때 무조건 투표율이 올라간다고 예견하며 세대 전략을 활용하자고 했다. 그리고 원내에서는 새누리당과의 정책적 차이를 강하게 드러내는 입법활동을 원내대표가 주도해야 하는데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정보에 능해 청문회 때 장관 후보들 낙선시키는 것은 잘하지만 정책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 나중에는 본인 스스로가 그것에 걸려(저축은행 사태) 아무 것도 못했다. 결국. 6월 9일 당 지도부를 잘못 뽑았다. 그 때부터 패배가 시작된 것으로 봐야하고 그 지도부 두 사람의 무능함은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조희연 민교협 상임의장(성공회대 교수)

    조희연: 기본적으로 사회적 균열들이 존재한다. 세대 균열, 지역 균열, 계급 균열이 바로 그것이다. 대선이라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균열을 기반으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둘러싼 일종의 헤게모니 접합의 경쟁인 것이다.

    그 점에서 이철희 소장도 말한 거지만 균열을 둘러싼 대중들의 태도가 달라진 면도 있다.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고 본다. 전체 구도가 52:48으로 2%만 이전되면 통치엘리트가 바뀌기 때문에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 접합이 보수적 접합이냐, 진보적 접합이냐 라는 것인데, 보수적 접합이 성공한 측면을 부각했고, 그 두 흐름의 대결 속에서 후보 경쟁에서는 정책의 실행 주체와 통치 주체로서 박근혜가 더 부각되었던 것 같다. 박근혜의 아우라와 통치 신뢰성이 문재인보다 더 높게 평가받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보수적인 대중에게 문재인은 노무현의 표상이었고 진보적 대중에게 박근혜는 박정희의 표상이었다. 상대방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일정 정도 공포의 심리를 동원할 수밖에 없는데 사실 박정희 때에는 정치적 공포는 있어도 경제적 공포는 없었다. 고문, 독재 등의 정치적 공포는 박근혜가 사과의 체스처를 취함으로서 일정하게 해결됐다. 그러나 노무현은 정치적, 경제적 공포가 다 있던 사람이다. 처음부터 집권 내내 ‘위기’라는 말을 달고 살았고 대통령을 못해 먹겠다고 까지 했던 대통령이었다. 이 점에서 노무현의 표상으로써 문재인 후보가 대안적인 신뢰성을 충분히 주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한다.

    흥미롭게 봐야 할 지점은 지역 균열의 변화이다. 영남에서 문재인 지지율이 40%에 육박하는 변화가 있었고 87년 이후의 3자합당 질서가 일정하게 무너지는 것도 긍정적 측면이다. 다만 수도권에서 패배하고 충청권을 획득하지 못한 것은 짚어야 한다. 세대 균열은 긍정적으로 존재한다.

    계급적 균열은 월 소득 200만원 이하나 영세자영업자나 이명박식 경제정책에 타격을 받은 저소득층들이 민주진보진영을 지지하지 않는 역설적 상황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지만 이런 요인들이 결합되면서 실패한 것이다.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고원: 보통 수도권에서 부진했던 것과 강원, 충청지역이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도 새누리당으로 돌아선 것에 대해 ‘지역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 본다. 수도권의 부진과 강원, 충청의 변심은 기본적으로 50대 현상이 반영된 파생적 결과라고 본다. 50대 투표율이 약 10%가 낮았다면 수도권에서 문재인이 격차를 벌여서 이겼을 것이고 강원과 충청에서도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을 것이다. 제주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즉 이 지역에서의 패배는 50대의 높은 투표율과 박근혜 지지와 연결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지역이나 세대 문제로 접근할 게 아니라 앞서 말했던 사회적 경제적 약자와 서민, 상처받은 사람들한테 민주진보진영이 다가가는 프레임이 약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중위 수준의 전략 관점에서 보면 강원, 충청, 제주는 상대적으로 도시가 덜 발달한 지역이고 이런 지역에서는 방송매체의 직접적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번 대선에서 방송 매체들은 철저히 편파방송을 했다. 이것을 부수기 위해서 전술이 필요했는데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공포보다는 오히려 더 효과적인 것은 여전히 이명박과 박근혜를 함께 묶어서 박근혜를 이명박의 연장이라는 점을 극적으로 부각시켰어야 했다. 이명박이 총선과 대선에서 문재인, 안철수를 비롯한 그 어떤 공격에서도 피해나갔는데, 이명박을 무력화시키면서 박근혜랑 확실히 엮어 주었다면, 이명박 정부가 방송매체나 국가기구를 통해 박근혜를 편파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철희: 약간 의견이 다르다. 50대 바람에 동의할 수 없다. 50대 때문에 진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02년와 비교하면 60대에서 50대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이회창, 노무현의 격차를 보면 50대가 아니라 60대에서 격차가 더 벌어졌다. 누군가 50대 때문에 졌다고 몰아가지만, 실제 50대가 박근혜를 많이 지지하기도 했지만, 문재인을 지지한 50대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세대 변수는 더욱 면밀하게 봐야 한다.

    고원: 나와 다르게 보는 것 같다. 이번 선거는 02년 노무현 선거보다 세대균열이 훨씬 첨예화됐다. 노무현도 당시 2-30대에서 많은 표차를 벌렸지만 문재인과 박근혜 후보의 표차보다는 적다. 5-60대로 가면 박근혜와 문재인의 표차는 더욱 크다. 노무현이 상대적로 더 많은 표를 5-60대에게 받은 것이다. 반대로 박근혜는 02년 당시 이회창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았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봐야 한다.

    50대가 보수화됐다는 가설은 터무니 없다. 문제는 투표율이다. 50대에서 90%가 투표장에 나왔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없던, 정말로 혁명적인 상황이 어느 순간 펼쳐진 것이다. 대신 50대의 표 쏠림은 크지 않다. 박근혜, 문재인 투표율의 격차는 출구조사 결과로는 50대는 25.1%, 60대는 44.8%를 더 박근혜가 갖고 갔다. 그 세대가 특별히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50대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상황 탓에 평소 가지고 있던 의식구조를 통해 절박함을 표출한 것이다.

    정종권: 우석훈씨가 <88세대>를 통해 20대에게 짱돌을 던지라고 선동했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50대가 선거에서 투표라는 짱돌을 던진 형국이라는 것이군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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