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탄 한 장도 아까워 했던 때
    [어머니 이야기 6] 송아지 한 마리 키우려던 꿈 사라져
        2013년 01월 07일 12: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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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음력 1월 12일에 어머니 아버지는 서울로 왔다. 어머니 나이 22살, 아버지 나이 25살이다. 어머니 시외숙모가 서울에서 기름 장사를 하고 있어서 따라 왔다. 쌀 한 말과 차비만 들고 왔다.

    아버지 고향인 경북 군위군 소보면 위성1동에서 아침 일찍 떠났는데 서울에 다다르니 저녁 8시가 넘었다. 어머니 시외숙모가 말씀하셨던 버스 회사에 갔다. 그곳에서 어머니가 밥 짓는 일을 하면 아버지가 일자리를 얻게 될 거라 했다.

    하지만 버스 회사 사장 부인은 어머니를 보더니 이곳에서 일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도 딸이 있고 며느리가 있는데 이곳엔 모두들 남자들밖에 없어서 예쁜 색시가 있다간 큰일 난다고 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한 밤 중에 그곳을 나왔다.

    그때는 통행금지가 있어서 밤 12시가 되면 밖에 다닐 수 없었다. 기름 장사를 하는 어머니 시외숙모가 자신이 사는 기름 공장에 가자고 했다. 서둘러 버스를 탔다. 밤 11시가 넘었다. 길에는 겨울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다음 날부터 어머니는 그곳에서 기름을 팔았다. 기름을 팔아야지 먹고 잘 수 있었다.

    방 하나에 열 사람 가까이 잠을 잤다. 어느 날 오줌 누러 밖에 나갔다오니 잘 곳이 없어졌다. 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몸 쪽으로 오므리고 칼잠을 잤다. 그 뒤론 어머니는 잠이 들기 전에 물도 먹지 않고 오줌이 마려워도 꾹 참았다.

    쌀을 조금씩 모아 어머니가 밥을 지었다. 어느 날은 밥을 퍼 주다보니 어머니 먹을 밥이 없었다. 다음부터는 밥을 알맞게 퍼서 겨우 어머니 입에 풀칠을 했다. 다른 이들은 참기름과 식용유를 반반씩 섞어서 참기름이라고 속여서 팔았는데 어머니는 식용유를 조금만 넣고 팔았다. 어머니 참기름을 먹어 본 사람들은 어머니 것을 찾았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올라올 때 옷을 따로 가져 오지 않았다. 비로드 치마와 양단 저고리를 입고 집집마다 돌면서 참기름을 팔았다. 젊은 여자가 옷을 곱게 차려 입고 참기름을 팔러 다니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았다. 참기름을 팔고 다닐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스파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을 살았다.

    아버지는 밤에 잠깐씩 와서 아내가 자고 있는 것을 보고 갔다. 이것을 본 어머니 시외숙모가 “아이고, 불쌍한 거! 지 색시랑 자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 을미나 마음이 아프겠노.”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기름 공장에서 가게를 새로 냈는데 그 집 2층 다락방에 어머니 아버지가 살도록 했다. 한 평쯤 되는 작은 다락방이지만 서울에 와서 둘만이 자는 방이었다. 그러나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 다락방 밑에 어머니 시외숙모 조카가 가게 일을 돌보며 지냈는데 꼭 밥을 따로 해 달라고 했다. 밥 짓는 일에 손이 많이 갔다. 물을 떠 와서 그 작은 다락방에서 석유곤로에 불을 지펴서 밥을 해 주었다. 1층에서 2층 다락방으로 물을 들고 좁은 나무 사닥다리를 오르면 다리가 후들거려서 떨어질 것 같았다.

    아버지는 돌 깨는 곳에 일자리를 얻었다. 어머니는 기쁜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 주었다. 근데 어머니가 낮에 기름 공장에 갔더니 그곳에 아버지가 있었다. 왜 여기 있냐고 했더니 돌 공장에서 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빈 도시락을 어머니에게 주었다.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도시락을 떨어뜨리고 앞이 깜깜해지면서 눈물이 솟구쳤다.

    아버지는 이곳저곳 일자리를 찾더니 서울 종암초등학교 앞에서 풀빵장사를 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장사가 되든지 안 되는지 날마다 500원을 가져 오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 약속을 지켰다. 아버지는 집에 올 때 빵 하나 가져오지 않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가 일하는 곳이 궁금해서 찾아갔다. 빵을 하나 먹으려고 했더니 아버지는 모르는 사람 보듯 하면서 돈을 내라고 했다. 아이들에겐 돈을 받고 파는데 어머니라고 그냥 주면 안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야박하게 구는 아버지가 밉기도 했지만 그렇게 알뜰하게 돈을 벌려는 마음이 믿음직스러웠다.

    하지만 어머니는 서울살림이 싫었다. 다니는 곳마다 사람들은 싸움질을 하고 하루 먹으면 그 다음날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생활이 싫었다. 아버지를 졸라 다시 시골에 내려가자고 했다. 보자기도 없이 덮고 자던 군용 담요 하나에 석유곤로를 싸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탔다.

    아버지는 기차에 내리면서 다른 이 물건은 내려주고 정작 당신 물건을 놔두고 내렸다. 가까스로 다른 기차역에 가서 물건을 찾기는 했지만 어머니는 그 일을 떠올리며 아버지가 지금도 다른 사람 일은 잘 봐 주면서 자기 것을 잘 챙기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어머니는 고향에 있고 아버지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는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에 있는 상자를 만드는 종이 공장에 일자리를 얻었다. 한 해 뒤 설을 쇠러 고향에 내려와서 어머니에게 방을 얻어놨으니 다시 서울로 올라가자고 했다.

    어머니는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서울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께서 어머니 보고 남편 따라서 서울 가라고 다그쳤다. 할 수 없이 어머니는 1년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아버지가 함께 살 방이라고 가보니 종이 공장 2층에 있는 다락방이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방이 덜컹덜컹거렸다.

    1960년대 연탄 배달에 쓰였던 삼륜차 모습

    어머니는 하룻밤만 그곳에서 자고 다음 날 판잣집 한 칸짜리 전세를 구했다. 어머니는 날아갈듯이 기뻤다. 판잣집이지만 아버지와 오붓하게 둘이서만 살 수 있는 집을 처음으로 얻었다. 어머니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추운 한 겨울에도 연탄 한 장 때는 것이 아까워서 아버지가 일하는 종이 공장에서 버린 자투리 종이를 말려서 군불을 피웠다. 종이 공장 사람들에게 밥을 해 주고 그곳에서 끼니를 때웠다.

    아버지는 달마다 월급을 타서 어머니에게 주었고 어머니는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다. 4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모아서 시골 할아버지께 갖다 드리며 송아지 한 마리 사달라고 했다. 어머니 언니가 소를 잘 키워서 송아지를 사서 키워달라고 할 참이었다.

    근데 할아버지는 그 돈을 대구 큰아버지에게 빌려 주었고 큰아버지는 몇 해 앞서 돌아가실 때까지 그 돈을 갚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가 제대로 먹지도 입지고 않고 모은 돈은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어머니는 크게 원망하진 않았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다. 몸만 튼튼하면 언제든지 다시 돈을 모을 수 있다고 용기를 냈다. 그래도 대구 큰시숙이 갚지 않은 돈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고 두고두고 말씀 하신다.

    어머니는 서울 생활 2년 만에 아기를 가졌다. 아무래도 아버지와 단 둘이 사니 마음이 편했나 보다. 달마다 하던 생리가 멈췄고 밥을 하면 뜸 들일 때 나는 냄새가 역했다. 신 것을 먹고 싶고 입덧도 했다. 병원에 한 번 가지 않아도 아기를 가졌다고 믿었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으려고 다시 시골에 내려갔다. 어머니 고향인 새기터로 가는 산을 넘어가는데 외할아버지를 만났다. “야, 이것아 뭐하라 여기까지 왔노. 서울에서 얼라를 놓째” “아부지요, 서울에서 애기 놀라면 돈 많이 들어요. 내 여기서 애기만 놓고 다시 서울로 바로 올라 갈꾸마.”

    어머니는 아기를 가질 수 있다면 굴러가는 개똥도 먹을 마음이었다. 그렇게 얻은 아기였으니 얼마나 귀하겠는가. 어머니가 시집을 와서 5년 만에 낳은 아들이다. 그 동안 아이를 못 낳는다고 어른들 사이엔 씨받이 말이 오갔다. 어머니는 1960년에 큰 아들을 낳고 나서 내리 아들만 셋 더 낳았다. 어머니 시댁 식구들은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어머니가 내 큰 형을 낳을 때는 이승만 정권이 장기집권을 하려고 3.15 부정 선거를 치렀다. 길에는 데모하는 사람들도 가득했다. 1960년 4월 19일 혁명이 일어났다. 이승만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버지는 그 혼란으로 죽을지도 모르다고 생각해 어머니와 창경궁 나들이 갔다가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은 “명이 짧은 사람은 죽고 명이 긴 사람은 산다.”고 했다. 민주주의를 외치다 수 백 명이 총을 맞고 죽었다. 그때 큰 형이 태어났다. 은종하.

    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새벽에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얀 날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필자소개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 93년부터 일하고 있다. 두가지 꿈을 꾸며 산다.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날과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날을 맞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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